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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주요 세대-갈등론 | |||
88만원 세대 | 20대 개새끼론 | 386세대 | 4050대 책임론 |
용어와 유래를 잘 이어보면 20대가 자기네를 지지하지 않으면 개새끼. 왜 20대만 개새끼야?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개새끼 눈에는 개새끼만 보여서 그렇다 카더라
1 개요
이른바 '88만원 세대' 라고 불리는 21세기 한국의 20대(넓게 보면 30대 포함)의 정치적 무관심 및 체제 순응 경향에 대한 비판을 담은 극단적인 비칭. 사실 개새끼 운운은 비판론자들보다는 오히려 기성세대의 비난을 반박하는 웹의 젊은 세대들 입장에서 노무현 정권 말기부터 유행했던 국개론과 결부시켜 기성세대에 대한 적개심을 표출하는 역 비아냥에 가깝다. 비판론자들 입장에서 순화하자면 '20대 비판론' 또는 '20대 각성론' 쯤 되겠다.
비판론의 요지는 현재의 젊은이들이 사회 구조에 대한 저항적인 타파보다는 개개인의 경쟁력인 학습(소위 스펙 쌓기)에 너무 몰두한다는 것이봐 누가 그렇게 가르쳤지?. 그 밖에 반지성주의지성으로 친다면 4,50대들이 더...와 쾌락주의(=놀이문화, 이성교제에 대한 관심 증가)로 인한 지적 빈곤도 20대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00년대부터 있어왔던 의견이었고 2008년 즈음해서 점점 수면위로 떠올랐으나 2010년까지 반짝하고 후엔 사그라 들었으며 이후 20대의 투표율이라든가 기타 여러 가지 일로 인해 이제는 사실상 사장된 표현이다. 심지어 진보계 언론인 경향신문조차도 20대 개새끼론을 비꼬면서 '남 탓하지 말고 님부터 잘하셈' 이라는 어조의 날선 논설을 내보냈다. 해당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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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역사
논리 수준으로 정형화된 단계까지는 아니었지만 이른바 '민주화' 의 전환점으로 평가되는 1987년 6.29 선언 이후 젊은 세대의 보수화, 탈정치화, 속물 근성을 비판하는 분위기는 진보 성향의 지식인 집단에서 꾸준히 이어져 왔다. 홍세화가 2003년 2월 18일 《한겨레》에 발표한 '그대 이름은 무식한 대학생' 이라는 글이 대표적이다.
[특별칼럼] 그대 이름은 '무식한 대학생' - 홍세화그대는 대학에 입학했다. 한국의 수많은 무식한 대학생의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지금까지 그대는 12년 동안 줄세우기 경쟁시험에서 앞부분을 차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영어 단어를 암기하고 수학 공식을 풀었으며 주입식 교육을 받아들였다. 선행학습, 야간자율학습, 보충수업 등 학습노동에 시달렸으며 사교육비로 부모님 재산을 축냈다.
그것은 시험문제 풀이 요령을 익힌 노동이었지 공부가 아니었다. 그대는 그 동안 고전 한 권 제대로 읽지 않았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했다. 그대의 대학 주위를 둘러 보라. 그 곳이 대학가인가? 12년 동안 고생한 그대를 위해 마련된 '먹고 마시고 놀자'판의 위락시설 아니던가.
그대가 입학한 대학과 학과는 그대가 선택한 게 아니다. 그대가 선택 당한 것이다. 줄세우기 경쟁에서 어느 지점에 있는가를 알게 해주는 그대의 성적을 보고 대학과 학과가 그대를 선택한 것이다. '적성' 따라 학과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성적' 따라, 그리고 제비 따라 강남 가듯 시류 따라 대학과 학과를 선택한 그대는 지금까지 한 권도 제대로 읽지 않은 고전을 앞으로도 읽을 의사가 별로 없다. 영어영문학과, 중어중문학과에 입학한 학생은 영어, 중국어를 배워야 취직을 잘 할 수 있어 입학했을 뿐, 세익스피어, 밀턴을 읽거나 두보, 이백과 벗하기 위해 입학한 게 아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어학원에 다니는 편이 좋겠는데, 이러한 점은 다른 학과 입학생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인문학의 위기'가 왜 중요한 물음인지 알지 못하는 그대는 인간에 대한 물음 한 번 던져보지 않은 채, 철학과, 사회학과, 역사학과, 정치학과, 경제학과를 선택했고, 사회와 경제에 대해 무식한 그대가 시류에 영합하여 경영학과, 행정학과를 선택했고 의대, 약대를 선택했다.
한국 현대사에 대한 그대의 무식은 특기할 만한데, 왜 우리에게 현대사가 중요한지 모를 만큼 철저히 무식하다. 그대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민족지'를 참칭하는 동안 진정한 민족지였던 <민족일보>가 어떻게 압살되었는지 모르고, 보도연맹과 보도지침이 어떻게 다른지 모른다. 그대는 민족적 정체성이나 사회경제적 정체성에 대해 그 어떤 문제의식도 갖고 있지 않을 만큼 무식하다.
그대는 무식하지만 대중문화의 혜택을 듬뿍 받아 스스로 무식하다고 믿지 않는다. 20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읽지 않은 사람은 스스로 무식하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중문화가 토해내는 수많은 '정보'와 진실된 '앎'이 혼동돼 아무도 스스로 무식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물며 대학생인데!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에 익숙한 그대는 '물질적 가치'를 '인간적 가치'로 이미 치환했다. 물질만 획득할 수 있으면 그만이지, 자신의 무지에 대해 성찰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게 된 것이다.
그대의 이름은 무식한 대학생. 그대가 무지의 폐쇄회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그대에게 달려 있다. 좋은 선배를 만나고 좋은 동아리를 선택하려 하는가, 그리고 대학가에서 그대가 찾기 어려운 책방을 열심히 찾아내려 노력하는가에 달려 있다.
홍세화 / 한겨레신문 기획위원,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저자 // 발행: 03/02/18 등록: 2003/02/18
이를 비꼬는 식으로 각 문단별로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1. 주입식 교육받고 부모님 사교육비 축냈네? 제대로 된 고전이나 읽어보았냐?
2. 요즘 대학 제대로 된 곳이 아니라 합법적으로 놀고 먹는 곳이잖아?
3.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따지지 마라. 적성에 맞게 안가고 왜 성적따라, 대학서열만 따져서 가느냐?
4. 현대사 존나 무식하네. 왜 현대사가 중요하냐고? <민족일보>가 압살된 것을 봐. 진보 언론에 관한 게 가장 중요하단다.
5. 능력주의와 자본주의가 최고인 줄 알지? ㄴㄴ. 철학과 니 무지에 대한 성찰이 중요함.
현재 20대 입장에서 읽는다면, 실소를 터트릴만한, 그 시대 운동권 특유의 황당한 주관과 논리로 이루어져있다.
다음 칼럼에 대한 일반적인 3줄 요약 비판은 다음과 같다.
1. 정작 학벌주의를 만든 원흉인 기성세대의 책임을 모조리 청년세대에게 전가한다.
2. 진보 언론에 관한 관심과 지식이 현대사의 지식을 판가름하는 대표적이고 유일한 척도라고 주장한다.
3. 대한민국 현실인 능력주의,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먹고 살기 위한 실용 학문보다 먼지쌓인 '책질'이나 하는 걸 더 중요시여긴다. 씹선비[1]
개새끼 같은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않아서 그렇지 소위 민주화세대라는 민청학련세대, 386세대 들이 순화된 표현 이리저리 말 돌려서 으로 젊은 세대,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입학하여 탈정치화가 강화된 세대에게 비판적 논조의 글들을 많이 발표했다. 또한 2000년대 초기 각급 대학의 자유게시판에는 이 주제로 키배가 한창이였고.
이와는 반대로 기성세대, 즉 산업화세대 또한 02년 오노와 장갑차 사건에 이은 반미 시위에서 대선까지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에서의 새로운 세대의 파급력을 보고는 이들을 주시해야 한다는 의견을 여럿 표명한 적 있다. 특히 조갑제의 용돈으로 자식들을 통제하자는 글은 여러 의미로 유명....
이러한 문제의식은 06년과 08년 선거의 잇다른 패배에 절망한 민주화 세대의 분노가 여론 조사 결과 한나라당이 가장 높은 지지율을 올린 것으로 나타난 20대에 향하면서더욱 심화되었으며 광우병 시위때 자신들의 의견을 고조시키던 진보쪽 언론들과 민주화세대들이 왜 시위에 대학생이 제일 많지 않냐는 등으로 갈등이 고조되다가[2] 2007년 8월 세대간 착취로 인한 현 20대의 빈곤한 미래를 전망한 우석훈의 《88만원 세대》가 인터넷 공간에서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어 마침내 '20대 개새끼론' 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3]
그리고 의식 정도의 차원을 넘어 20대 개새끼론이 쟁점으로 이슈화된 것은 2009년 6월 8일, 당시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였던 김용민이 충남대학교 신문에 기고한 '너희들에게는 희망이 없다' 는 글이 퍼날라지면서부터였다. 이 김용민은 나꼼수에 나왔고 19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그 김용민이 맞다.
그러나 김용민은 2011년 11월 "제가 잘못 생각했다. 죄송하다" 며 해당 발언이 자신의 잘못이었음을 시인했다. 문제는 그의 잘못 시인이 자신의 저서 출간을 하며 이루어진 것으로, 저서의 가장 큰 예상수요인 젊은층을 다시 포섭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될 수도 있다는 점.
다만 김용민의 저작은 꾸준히 계속 나왔기 때문에 책 판매를 위해서라는 이유보다는 20대가 김용민이 주장하는 입장 쪽으로 기울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이 시기에는 반대쪽에서 20대 개새끼론을 주장하고 있었고 김용민은 나꼼수 열풍과 함께 한참 승승장구 하던 시기였다. 단적으로 나는 꼼수다가 세계 1위 마크를 찍은 것이 2011년 8월의 일이고 김용민의 책들은 돼지 10쇄니, 18쇄니 하면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1.2 논리의 문제점
이러한 비판론은 당연히 현 20대 및 이들을 전후한 세대, 즉 10대 후반~30대 초반 젊은이들의 격렬한 반발에 부딪혔는데 주요한 반론 요지는 다음과 같다.
- 2015년 기준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중반인 1981~1990년생들은 20대 비판론자들이 옹호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에 걸쳐 재학하면서 소위 '탈권위' 교육을 가장 집중으로 받은 세대들이다. 특히 1983, 1984년생은 그들의 고등학교 재학 당시 교육부 장관 이름을 따서 이른바 이해찬 세대라는 신조어로 불리울 만큼 특정화되었다. 그런 교육적 토양에서 성장한 세대들이 권위주의 교육을 받은 과거 세대들에게조차 개새끼라고 불리울 정도라면 사실상 2000년대 초중반의 탈권위 교육이 옛 권위주의 시절 교육만도 못한 수준임을 시인하는 소리나 진배없으며 사실상 비판론자 제 얼굴에 침을 뱉는 격이다.
- 20대 비판론자들은 젊은 세대 중 특히 대학생 계층에게 사회 변혁 운동의 선도를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의 대학생들 대부분은 대학 진학률이 낮은 탓에 전체 상위 10% 정도의 인재들이었던 반면 오늘날에는 대학 진학자가 80%를 넘어섰을 정도인지라 과거 기준이라면 대학에 들어가지못했을 사람들조자 대학 간판을 달고 있게 되었다. 즉 대학생의 범주가 크게 확장되었기에 그들이 말하는 인텔리는 현재 대학생 중에서도 일부에 불과하다.
- 과거엔 젊은 대학생들이 사실상 사회 변혁의 주도권을 독점했으나 이제는 대학이라는 공간을 제외하더라도 노동 운동, 정당 운동을 포함한 시민 사회의 진보 운동 역량이 충분히 성숙했기 때문에 더 이상 대학생이 변혁 운동의 선봉에 설 필요가 없다. 애초에 6~80년대 사회운동을 선도했던 그 대학생들이야말로 지금은 나이가 들대로 든 중노년들이다. 4.19 혁명 당시 혁명의 주역이였던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은 2015년 현재 70대[4]다.
- 20대 비판론자가 대학을 다니던 시기는 정치적으로는 암울했지만 일단 대학을 졸업하기만 하면 취업이 매우 쉬운 세대였고 그로인해 학사관리나 취업준비 등에 신경 쓸 일이 적어서 군대만 다녀왔다면 나름대로 사회참여를 할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많은 상황이였다. 일반화하기 힘들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이 시대는 데모도 하고, 연애도 하고, 취직도 셋 다 할 수 있었던 시대였다. 반면에 젊은 세대는 대부분 외환위기 이후에 대학에 진학하여 극심한 취업난 때문에 취업준비나 스펙 관리 외적인 면에 시간적, 정신적 관심을 두기 어려운 세대란 점을 생각해야 한다.
- 세대론이란 근본적으로 경제적, 사회적 입장이 제각각인 여러 개인을 한 묶음으로 취급한다는 점에서 뚜렷한 한계를 가지기 때문에 사회 개혁론으로서는 전혀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 정상적인 취업이 아닌 학연/혈연/지연 같은 비정상적인 사회적 능력으로 인한 최대의 특혜자들이 비판한다는 자체부터가 말이 되지 않는다. 인사비리의 98%는 바로 20대 비판론자들이다. 당장 뉴스만 봐도 20대가 인사비리, 정치자금같은 부정부패 관련된 사범으로 적발된 뉴스가 있긴 한가??
물론 이슈인 '20대가 옛 독재 시절보다 덜 정치적이 되었다' 는 지적 자체는 20대 스스로도 수긍하는 면이 있고 또한 그에 대한 반론이 현재 기득권 지위에 올라선 과거 운동권(386 세대)에 대한 비판을 함의하고 있음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단순히 양비론으로 보기에는 그 추궁 주체들인 운동권들과 구세대가 이처럼 비판받을 구석이 많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고 게다가 일정 자극 수준을 넘어 너무나도 감정적이고 배설적인 막말적 어조와 논지를 선택함으로서 오히려 적지 않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더더욱 진보 성향 자체에 대한 혐오감을 들게 만들는 자충수가 되고 말았다. 이러한 반론은 진보진영 언론에서조차도 다르지 않다.
아울러 굳이 늘 정치적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역대 투표율은 현재 20대가 어느 때보다도 높다! 젊은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경제적 고통이 현저히 큰 이 시점에서 말이다. 현재 젊은이 상당수들은 경제적인 궁핍 속에 내몰린 처지다. 예도 배가 부른 뒤에 찾는 것이다. 이득을 위해 청년들에게 스펙 쌓기를 강요하는 장본인들이 청년을 비판할 자격은 당연히 없다. 이런 상황에서 '너희는 정치적이지 않아서 희망이 없다?' 어느 때보다도 투표에 열성적인 젊은이들에게 구직 활동 대신 정치적 입장을 어필하는 데 열심이길 바라는 것은 이기심일뿐이다. 게다가 이들이 바라는 정치적 참여는 단순히 투표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편에 서서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라는 뜻을 숨기고 있다. 정치적 무관심과 자신의 진영을 편들지 않는 것을 교묘하게 헷갈리게 만드는 것.
특히 위에서도 언급된 김용민은 20대를 강하게 비판하는 기고문을 실으면서 아예 제목을 '너희에겐 희망이 없다' 라고 달아버리는 희대의 병크를 저질렀다. 결국 이 논란은 20대를 진보의 편으로 끌어들이기는 고사하고 진보 자체를 경멸하는 20대층만 늘리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했다. 게다가 김용민이 제기한 20대 비판 기고문은 몇 년 뒤 2012년 총선에서 20대 어그로보다도 더 심한 여성계와 노인계와 종교계에 대한 모멸적인 표현들까지 드러나 그것과 함께 그 본인과 그가 몸담은 야권연대 전체의 발목을 잡아버리는 요소 중 하나로 작용함으로서 단순 병크를 넘어 사실상 흑역사 수준에 이르렀다. 비정치적이라 개새끼라고요? 그래서 개새끼가 되어 드렸습니다
1.3 진보에서 퇴조
2009년 무렵까지 20대의 투표율 저조에 대한 공감대는 있었지만 이조차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20대의 표심이 전에 없이 강하게 드러남에 따라 결국 크게 수그러들었다.
심지어 20대 개새끼론의 기수이자 온갖 독설로 유명한 신해철조차 20대의 저력을 인정하고 당해 6월 4일 트위터에 "요즘의 20대를 깔보았던 나의 교만을 사죄한다" 며 공개사죄, 5일에는 무대 위에서 큰 절까지 올리며 자신의 오판을 뉘우쳤다. 관련 기사.
게다가 각종 진보 성향 언론에서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탈권위 교육을 받았던 20대가 드디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는 논조로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관련 기사.
1.4 보수에서 부활
보수 진영에서 20대 개새끼론은 공식적인 용어가 등장하지 않았을 뿐이지 역사는 깊다. 노무현 후보의 승리로 끝난 2002년 대선 직후에는 젊은이에게 별 것 아닌 이유로 화내는 노인이 많았다고 할 정도니.
노무현 정부의 인기가 떨어지면서 잠잠해지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부활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로 김무성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아새끼 교육 잘 시키라' 는 발언이 있다.
서울시장 재보선 선거 패배의 충격 때문인지 조선일보는 2040은 괴담을 믿는다는 기사를 시리즈로 내기도 했다. 사실 조선시대 이전부터 괴담을 믿고 안 믿고는 어느 세대나 같다. 즉 이것을 2040과 트위터 여론의 문제로만 몰아세우는 것은 잘못이다. 다만 지금 시대에는 괴담이나 루머가 검증되기도 전에 너무 빨리 퍼져나간다는 점이 문제라고 볼 수 있다.
2012년 4/11 19대 총선 당일에는 변희재가 '투표 안 하는 젊은이들이 나라의 미래' 라는 논지의 트위터 발언으로 민주주의 디스에 가까운 행위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18대 대선에서는 오히려 20대보다 30대의 투표율이 더 낮은것으로 드러났다. 30대 개새끼론 물론 30대는 빡빡한 직장생활 때문에 그나마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시간을 운용할 수 있는 20대보다 투표할 시간이 일반적으로 부족하며, 게다가 20대 초중반의 남성들은 군대에서 거의 의무적으로 투표하고 있기 때문에 30대의 투표율은 20대의 투표율보다 낮을 수밖에 없다는걸 감안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궤변도 20대 개새끼론을 주장하려면 그냥 개소리나 다름없는 변명에 불과하다.
1.5 눈높이를 낮춰보라?
20대나 30대에게 윗세대가 주문하는 내용 중에서 이른바 '노오력'과 함께 가장 많이 언급되는 내용이다. 처음부터 많은 보수를 바란다는 비양심적인 세대라고 비꼬는 게 특징이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노력을 안 한다고 지껄이지만 자기 자식새끼들은 힘든 일 시키는 것을 당연히 싫어하는 이율배반적인 태도 때문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한마디 덧붙인다면 (한국과는 환경이 다르니 이런 여론이라는 정도로 읽도록) 현 미국 대선후보 중 젊은 층에게 많은 지지를 받는 버니 샌더스와 그 지지층 대부분인 20대, 30대 초반을 비꼬는 윗세대들은 (미국인만큼 더더군다나 만연한) 요새 젊은 것들은 아무하고나 자고 애 낳아 제껴놓고 정작 나중에 제대로 결혼해서 애 낳고 살려고 하면 생활비에 배우자와의 애 키우기에도 벌어먹고 살기 힘든데 예전 낳아놓은 애들 법적으로 양육비 대야 하니 돈은 없고 그제 와서 저질러놓은 자기 잘못은 생각 안 하고 자기 돈 없다고 불평한다 내지는 슬럼가나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서 자긴 대학도 못 가고 험하게 산다고 불평하는데 대부분 거주하는 주의 2년제 전문대 학점은 점당 몇만원 수준으로 싸다.
한 마디로, "마리화나 피우면서 퍼질러 앉아 있지 말고 그 돈 틈틈히 아껴 몇십만원 저금했다 학교 다니고 직장 다닐 생각을 안 하냐, 왜 일하는 세대가 세금을 더 많이 내면서 이런 노력도 안하는 세대에게 건강보험이니 대학자금을 무료로 퍼줘야 하느냐?" 이런 여론이다.[5]
대학자금이 비싼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은 인종별로 딸 수 있는 장학금도 많고 전문대에서 기본 영어 수학 학점 따놓고 좋은 대학에서 실전공하러 옮기는 것이 저렴할 뿐더러 그렇게 옮기는 것을 장려하는 여건이지만 그것까지 길게 다 설명하자면 이 본문 맞먹거나 이상으로 너무 길어질 테고, 이 본문의 내용과는 딴 길로 새므로 생략한다.
일할 능력 검증도 안 된 사람을 처음부터 보수를 많이 주는 곳은 당연히 없다. 즉, 맞는 말이다. 그런데 왜 맞는 말을 틀리다고 할까? 그 이유는 뭘 해도 됐던 베이비붐 이후 세대와 IMF로 인해 인력시장이 신자유주의로 개편된 현 20-30대 세대들은 놓인 상황이 아예 처음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386(486)시대의 대학 진학률은 30%정도 밖에 안됐으며, 여성의 경우 대부분 대학을 가지 못했던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현 세대는 80%가 넘는 대학진학률을 보이고 있으며 대학 등록금이 저렴했고 고정되었던 과거와 달리 현 세대들은 국가에 대출을 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를 충당하고 있다. 학비 자체도 자율화 되어 연간 천만단위는 훌쩍 넘겨버린지가 오래다. 그리고 학점이 소숫점대의 개판 점수라도 인서울 대학이나 인맥이 있으면 공/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 세대들은 과도한 경쟁에 의미없어져버릴정도로 높아져 버린 스펙에 살인적인 취업률을 자랑하고 있다. 이런 환경을 만들어낸 건 다름아닌 이기적인 386세대다.
현 교육환경을 만든 건 학부모들이지, 학생들은 억울한 피해자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학생들은 스스로 주어진 국가의 교육환경을 선택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기존 386세대의 높은 임금으로 인해 신규 일자리 생성에 제한 받고 있고 시대가 흐름에 따라 직원 급여가 늘어나버렸기 때문이다.
기업이 세워질 당시에는 얼마 없던 인력이 회사가 성장하면서 인력이 늘고 기존 인력이 직급이 높아지면서 인건비 지출이 급격해지니 신규채용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걸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퇴직뿐이다. 2015년 임금협상 때 노사 측이 최저임금을 올리기 위해선 인력 해고를 자율화 하기 이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요구가 있던 것도 이것 때문이다. 퇴직자는 없고 회사는 더 이상 이익이 나지 않는데 기존 근로자들의 임금만 하염없이 상승하니 이유없이 신규 인력을 뽑을 수가 없는건 당연한 현상이다.
결국, 남아있는 일자리는 아무도 들어려고 하지 않는 3D 업종인 1차나 2차 산업이다. 즉, 공장같은 직업군만 남아있게 되는데 눈높이를 낮추라는 말은 자신들의 자녀들에게 공장이나 힘든 일을 하면서도 박봉에 시달리는 직업군으로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막상 자신들의 자식이 공장에 간다고 하면? 위의 만화처럼 된다는 것이다.
결국, 대학까지 보낸 현 부모세대의 욕심으로 인해 국가적으로 사기를 치는 자폭을 한 것이다. 참고로 현재 대한민국 공장은 여전히 낮은 임금으로 점점 인력난에 휘둘려서 외국인 노동자나 상당수가 자동화. 특히 로봇이 되고 있다. 즉, 이대로 가면 공장마저도 일자리가 사라지게 된다. 공장도 요즘엔 중국이나 필리핀등으로 옮기고 있어서 이 현상은 점점 가속화 될 것이다. 결국 눈높이를 낮춰보라는 이야기는 정말 생각이 없는자의 개소리나 다름 없는 소리다.
이 문제는 이 링크에서도 자세히 나와 있다.
2 결론
결국 20대 개새끼론은 한때의 어그로로 점차 묻혀가는 양상이지만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잠잠할 만하면 수면 위로 떠오르고 또 잠잠할 만하면 또 수면 위로 떠오르는 무한루프에 걸릴 것이다. 보수나 진보나 골고루 소환할 마법의 주문이 될 듯하다.
정치도 모르는 개새끼였다가 갑자기 민주주의의 주역으로 둔갑하거나 한국의 미래를 책임질 자랑스러운 글로벌 인재였다가 돌연 청춘을 낭비하는 쓰레기가 되는 것이 지금 한국 사회가 20대를 재현하는 방식이라는 비평이 있다. #
그리고 20대도 정치에 관심이 있다. 여성부가 셧다운제를 했을 때 게임을 좋아하던 10대와 20대들은 비판했으며[6] 여성부의 형편없는 국고 관리 비판, 4대강 사업 비판, 아청법에 대한 비판을 했다.그리고 투표해봤자 뭔 소용이냐를 느꼈지 보수나 진보나 하긴 여성부는 진보도 아니다 각자 나이와 세대마다 관심 분야가 다른 것일뿐 정치를 모르는 개새끼따위가 아니다. 문화산업을 깎아내리는 우리나라의 모습과 자기들과 관심분야가 다르다는 이유로 20대를 깎아내리는 행위는 자제되어야 한다.
'너희들도 젊었을 때 비슷한 얘기 들은 주제에' 라는 식의 반론은 애초에 문제의 주장이 누구나 거치게 되는 20대라는 나이대만을 겨냥했다기보다는 특정 '세대' 에 대한 것이니 다르다는 비판론자도 있으나 따지고 보면 과거에도 이런 식으로 기성세대에게 도매금으로 매도당한 '특정 세대' 역시 흔히 존재해왔다.
아니, 애시당초 20대 개새끼론 자체도 어디까지나 김용민에 의해 주창되어 정치적 성향에 민감한 커뮤니티 일각에서 잠깐 회자되었을 뿐 특별히 범유행하거나 생명력이 강했던 용어도 아니어서 용어가 나온 초기인 2010년 5월 이후 수년이 지나도록 매스컴도 그렇고 사용 빈도가 화석 수준이다. 차라리 그보다 먼저 나온 전 세대 개새끼론 국개론 쪽이 더 유명하고 자주 회자될 정도.
그런데 2016년 브렉시트 투표를 계기로 영국과 EU에서도 20대 개새끼론이 주목을 받게 되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젊은세대에서 브렉시트 투표결과에 대한 반발이 거셋는데 정작 통계상으로 청년층들의 투표율이 낮게 나오다보니까 비웃음을 사게 된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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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론 인문학적 사고 방식과 순수 학문, 예술에 대한 탐구와 존중의 자세를 기르는 것 자체는 세대를 불문하고 권장되어야 할 자세이다. 하지만 현대 문사철 학생들이 주변에서 듣는 소리에 조금만 귀기울여도 애초에 지독하리만큼 돈 안되는 학문에 립서비스만 했지 막상 대중이 이를 즐기고 존중할만한 사회적 제반을 무너뜨린건 20대가 아니다. 원래 인문학적 가치관은 등따습고 배부른 다음에야 함양 할 수 있는 물건이고, 현대 한국의 장년층 세대는 그 기본적인 등따습고 배부르기 위해 필요한 노력의 장벽을 절망적으로 높여 놓았다. 이러니 홍세화 세대의 사람들이 청년층 보고 속물적이다, 천박하다 따위 소리를 하는거 자체가 대단히 불쾌하고 이율배반적으로 들릴 수 밖에 없다
- ↑ 지금이야 방향을 돌렸다지만 이때는 진보언론들도 산업화 세대를 부모를 둔 20대가 주역에서 물러나고 386세대를 부모로 둔 10대가 주역으로 올 날을 기다린다거나 불만을 표현할 줄 모르니 시위를 처음 해본 20대라는 식으로 일방적으로 20대를 이지메하는데 일조 했었다.
- ↑ 그는 결국 그러한 미명하에 그 책마저 자체 절판시켰는데 이게 공동저자인 박권일과는 사전협의 한 마디 없는 독단적인 행위였음이 밝혀졌다(...) 정작 책의 공동저자 박권일은 이 우석훈의 태도를 두고 "유감스럽다. 솔직히 말해서 '이건 또 무슨 이벤트이고 마케팅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고도 청년들이 싸우지 않아 실망했다' 는 우석훈씨의 주장은 이 책에 대한 과대평가다" 라고 트위터상에서 우석훈을 비판했다.
- ↑ 참고로 이들과 맞서던 자유당 인사들은 조선 말기, 대한제국 태생으로써, 오늘날로부터 110~140년 전에 태어났다.
- ↑ 사실 이런 가정 자체가 비약이 많고, 극단적으로 희화화 된 현대 20대의 왜곡된 모습일 뿐이다. 당장 1970년대와 현대 미국의 대학 등록금 상승률 부터 비교해 보자. 마리화나니 뭐시기 따위 운운하고 싶으면 저런 소리 하는 미국의 중장년층은 지들이 10대, 20대일 때는 바로 그 68혁명을 겪고 만끽하며 자란 세대이다. 21세기의 20대가 베이비부머 세대보다 더 향락적이라 볼 근거는 전혀 없다. 차라리 향락의 방식과 소비 형태가 더 다양해 졌다면 몰라도. 커뮤니티 칼리지 운운하지만, 당장 일반적인 4년제 대학과 CC에서 받을 수 있는 교육의 질과 이후 취업의 기회는 현격한 차이가 난다. 차라리 노골적으로 자식 세대에게 '꿈을 낮춰라'라고 말하는게 훨씬 더 정직하다
- ↑ 대표적인 예로 민국엄마가 있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