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dth=50 백제의 역대 국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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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 | 근구수왕(近仇首王) | |
성 | 부여(扶餘) | |
휘 | 수(須) / 근귀수(近貴首) / 귀류(貴流) / 구소(久素) | |
생몰년도 | 음력 | ? ~ 384 4월 (미상) |
재위기간 | 음력 | 375년 11월 ~ 384년 4월 (10년) |
1 업적
백제판 흑태자
이름은 《삼국사기》,《양서(梁書)》에는 수須, 《신찬성씨록》에는 귀수貴首 또는 근귀수近貴首로 《속일본기續日本紀》에는 귀류貴流 또는 구소久素.
근초고왕의 아들로, 백년 전쟁의 에드워드에 비견할 백제판 흑태자. 태자시절, 아버지 근초고왕이 이끄는 여러 전쟁에 참여하여 수많은 공을 세웠다.
371년 반걸양(치양) 전투에서 본래 백제 사람인 사기(斯紀)가 백제로 다시 돌아와[1] 근구수에게 군사기밀을 제공한다. 고구려군은 숫자는 많으나, 붉은색 깃발을 들고 있는 군대만 정예군이고 나머진 오합지졸이니 붉은색 깃발을 들고 있는 군대만 격파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무너진다고 것이 그것. 그 결과 근구수는 고구려군을 개발살내고 패주하는 고구려군을 쫓아 수곡성 (지금의 황해도 신계 부근으로 추정)까지 쫓아간 뒤 그곳에 돌을 쌓아 국경으로 삼았다.
근구수는 더욱 진격하려고 했는데, 장군 막고해가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노자의 도덕경 구절을 인용하면서 만류하였다. 고마해라 마이무다이가
정작 왕위에 즉위하고 난뒤에는 기록이 별로 없다. 377년 고구려의 평양을 공격했다는 기록이 있긴 한데 고구려 쪽에서는 캐관광 시켰다고 하고, 백제에서는 거꾸로 관광 보냈다고 하여 결과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진사왕 대 국경선이 예성강 유역으로 내려간 것을 보면 대방지역에서 우위를 상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382년에[2]에 왜인 사지비궤가 가라국(비정 미상)을 공격해 가라국왕이 백제로 귀부하자 망명을 받아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자료해석의 문제 때문에 확실하지 않다.
동진과도 교류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근구수왕기에는 379년 3월에 동진에 조공하려고 했지만 해상에서 폭풍을 만나 되돌어 왔다고 하는 기사가 기록되어 있고, 양서(梁書) 백제전에서는 '동진 태원(太元)년간 (376년 ~ 396년)에 백제왕 수(須)가, …중략… 생구(生口, 노예)를 헌상 했다' 라는 기록되어 있다.
중국 ·일본과도 국교를 맺어 중국의 제반 문물을 일본에 전하기도 하였다. 특히, 일본에서 백제에 사람을 보내어 학자를 구하므로, 왕의 손자 진손왕(辰孫王)과 함께 왕인(王仁)을 일본에 보내면서 《논어》 10권과 《천자문》 1권을 가지고 가게 하였으며, 왕인은 일본 태자의 스승이 되었다.
장인인 진고도(眞高道)를 내신좌평으로 삼아 정사를 그에게 위임하였다. 여담으로 근초고왕의 처가가 진씨인데, 그 아들 근구수왕의 아내 역시 진씨다.
아들인 침류왕은 불교 공인 외에는 별 할일 없이 곧 죽고, 침류왕의 아들(아신왕)이 나이가 어려 근구수왕의 차남이자 침류왕의 동생인 진사왕이 즉위했다. 그리고 백제는 이 때부터 고구려의 최전성기 광개토대왕-장수왕 콤보를 맞으며 안습일로를 달리게 된다...
2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2.1 근초고왕(드라마)
근초고왕(드라마)에 후반부터 등장했지만 어이없게도 기록에 맞게 진씨부인의 소생이 아니라 가상인물 부여화의 소생이다. 게다가 부여화의 전남편이었던 고국원왕이 친부라는 소문 때문에 궁 밖에서 지냈고 어릴 때 죽을 뻔해서 역사왜곡과 사극 막장화의 중심으로서 공홈과 디씨인사이드 갤러러 등에서 온갖 욕을 먹었다. 이름부터도 기록대로 수나 귀수, 휘수가 아닌 쇠꼬비에서 나중에 근구수왕이라고 구수로 개명;; 근구수왕 지못미 ㅠㅠ
3 삼국사기 기록
一年冬十一月 근구수왕이 즉위하다
二年 장인 진고도를 내신좌평으로 임명하다
二年冬十一月 고구려가 북쪽 변경을 침입하다
三年冬十月 고구려의 평양성을 공격하다
三年冬十一月 고구려가 침입하다
五年春三月 사절을 진나라에 보내 조공하다
五年夏四月 흙비가 종일 내리다
六年 전염병이 크게 돌다
六年夏五月 땅이 갈라졌다가 다시 붙다
八年 비가 내리지 않아 굶주린 사람이 많이 발생하다
十年春二月 대궐 뜰의 큰 나무가 저절로 뽑히다
十年夏四月 근구수왕이 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