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use of Glücksburg
정식명칭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글뤽스부르크 왕가(Schleswig-Holstein-Sonderburg-Glücksburg). 현 덴마크, 노르웨이, 전 그리스, 아이슬란드의 왕조이다.
시조 가문은 '올덴부르크 가문'. 이름과 같은 독일 북부 올덴부르크의 백작가문으로 신성 로마 제국의 제후국이었다. 15세기 중엽 덴마크와 칼마르 연합의 왕으로 선출됨으로써 왕조로 등극하였으며 이 때부터 북유럽사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게 된다. 그리고 글뤽스부르크 가문은 이 올덴부르크 가문의 분가인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 가문의 분가(...)이다.[1] 보다시피 분가할 때마다 성이 점점 늘어났다. 어찌되었건 글뤽스부르크 가문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지방의 공가(公家)로, 슐레스비히 공국과 홀슈타인 공국의 군주로 덴마크 왕국과 신성 로마 제국의 이중 봉신이었다.
1 본가
독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지역에 근거한 본가는 가문 전체를 대표한다. 현 당주는 1949년생인 크리스토프이다.
2 덴마크계
문장의 왼쪽 윗부분과 오른쪽 아랫부분은 덴마크를, 오른쪽 윗부분은 슐레스비히를, 왼쪽 아랫부분 에서 세 왕관은 칼마르 동맹을, 염소는 페로 제도를, 북극곰은 그린란드를 나타낸다. 가운데 위치한 문장은 본가인 올덴부르크의 상징이다.
덴마크의 프레데리크 7세에게 자녀가 없자,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글뤽스부르크 공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4남 크리스티안(후의 크리스티안 9세)이 후계자로 지정된 것이다. 올덴부르크 본가가 단절된 이후에 덴마크 왕위에 오르게 된다.
크리스티안 9세의 장남은 프레데리크 8세로 덴마크 왕위를 물려받고, 장녀 알렉산드라는 에드워드 7세의 왕비가 되었으며, 차남 빌헬름은 그리스의 게오르기오스 1세로 즉위하고, 차녀 다그마르는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3세의 황후가 되는 등 크게 번창하였다. 아울러 프레데리크 8세의 장남 크리스티안 10세는 1918년~1944년 사이에 아이슬란드의 왕위도 동군연합으로 차지하였으며, 차남 카를은 노르웨이의 호콘 7세로 즉위하였다. 현 당주는 마르그레테 2세 여왕이다.
원래 살리카법이었으나 1947년에 국민투표로 장자상속법으로 바뀌고, 2009년에 절대적 장자상속법으로 바뀌었다.
3 그리스계
그리스 왕가의 문장. 아래 적혀 있는 글씨는 왕실 모토인 "Ἰσχύς μου ἡ ἀγάπη τοῦ λαοῦ(국민의 사랑은 나의 힘)[2]"
전술했듯이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9세의 차남 빌헬름이 1863년, 그리스 왕국의 게오르기오스 1세가 되어[3] 50년간 재위하였다. 1924년부터 11년간 그리스가 공화국(제2공화국)이 된 적도 있었으나, 다시 왕조가 복위했다가 1973년의 국민투표로 제3공화국이 됨에 따라 국왕 콘스탄티노스 2세가 폐위되었다. 현 당주는 콘스탄티노스 2세이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부군 필립 마운트배튼의 부계가 이 가문에 해당한다. (게오르기오스 1세의 4남 안드레아스 왕자의 아들)
이쪽도 살리카법이었으나 언젠가부터 아들 우선 장자상속법으로 바뀌었다.
4 노르웨이계
전술했듯이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10세의 차남 카를이 1905년에 호콘 7세로 즉위하였다. 왕위 계승은 살리카법이다가 1990년에 절대적 장자상속법으로 바뀌었다. 현 당주는 하랄드 5세 국왕이다.
노르웨이/왕실 문서 참조.
5 영국계
현재 영국 여왕의 부군인 필립 마운트배튼이 본래 글뤽스부르크 왕조 출신. 부계혈통으로만 따지면 영국의 차기 국왕들은 글뤽스부르크 왕조의 후예다. 게다가 영연방 국가들 중 영국 여왕을 군주로 모시는 국가들까지 따져보면 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등의 국가들도 글뤽스부르크 왕가이다(...) 하지만 영국왕실은 부계혈통을 이어받든 모계혈통을 이어받든 왕실의 피를 이어받았으면 후대의 왕조 이름도 윈저왕가로 계속 간다고 선언하였다.
- ↑ 또다른 분가로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아우구스텐부르크 가문도 있었으나 1931년 단절. 빌헬름 2세(독일 제국)의 황후 아우구스타 빅토리아가 이 가문 출신이다.
- ↑ 덴마크 프레데리크 7세의 표어였다. (덴마크어로는 Folkets kærlighed, min styrke)
- ↑ 즉위 당시 17살이었는데, 자신이 그리스 의회에서 국왕에 선출되었다는 걸 점심 먹으면서 신문을 보고서야 알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전 해 오토 왕이 쫓겨나고 새 국왕을 뽑는 국민투표가 있었을 때, 빅토리아 여왕의 차남인 앨프레드가 95%의 압도적 지지를 얻었기 때문. 참고로 24만 1,202표 가운데 공화국을 원한다는 표는 93표, 빌헬름 본인은 6표, 나폴레옹 3세는 2표, 전 국왕인 오토의 복위는 1표(...)를 얻었다. 이후 앨프레드가 국왕 후보에서 배제되고, 그리스와 열강들 사이의 조정에 의해 빌헬름이 선택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