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왕실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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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국왕인 하랄 5세와 소냐 왕후, 왕위 계승 순위 1위인 호콘 왕태자와 메테-마리트 왕태자비이다.

노르웨이 왕가의 정식명칭은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글뤽스부르크(Schleswig-Holstein-Sonderburg-Glücksburg)이다. 독일북유럽 왕가들은 신성로마제국 내의 수많은 제후국들간의 정략결혼으로 이렇게 성이 엄청나게 길어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자면 러시아로마노프 왕조만 해도 정식 왕조명은 홀슈타인-고토로프[1]-로마노프(Гольштейн-Готторп-Романовской)이다.

2 현 국왕 하랄 5세

국왕인 하랄 5세가 상당히 대인이다.[2] 경호원도 없이 혼자 오슬로 시내를 자전거로 산책하는게 취미. 경호 문제 때문에 주위에서 경호 병력을 추가할 것을 건의하자 이에 대한 대답이 걸작이다. "나에겐 근위대가 400만 명이나 있는데 무슨 걱정인가?"[3] 비슷한 일화로 덴마크의 국왕 크리스티안 10세는 나치 독일 점령기[4]에 늘 애마 쥬빌리를 타고 코펜하겐 시내를 돌아다니곤 했는데 그 때 한 독일 군인이 조롱하는 투로 왕이라면서 왜 경호원이 없는 거지라고 말하자 한 소년이 "모든 코펜하겐 시민이 그분의 경호원입니다."라고 답했다.

이철호(밑에 한국 쪽에 후술)의 책을 보면 선왕인 올라프 5세도 이랬다. 전철을 경호원도 없이 홀로 타고 다니지 않나, 자신을 알아본 역무원이 돈을 받지 않자 "나는 왕이기 앞서 이 나라 한 국민입니다."라고 말하며 기어코 돈을 내고 타기도 했다. 이철호도 올라프 5세를 직접 만났는데 스키장에서 경호도 없이 스키를 타고 있어서 "어딘가에서 본 사람인데?"하고 봤다가 놀랐다고.

3 가족

3.1 아들 호콘 왕태자와 메테-마리트 왕태자비

이러한 대인배 기질은 호콘 왕태자의 결혼 때에도 어김없이 드러났는데, 왕태자가 결혼하겠다고 선언했던 동갑내기인 '메테-마리트 셰셈 호이뷔'라는 여성은 어려서 부모가 이혼해 홀어머니 밑에서 정부보조금을 받으며 자랐으며 공부에 흥미없는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고등학교를 1년 늦게 졸업했다. 졸업 후 야간대학에 다니다 마약에 빠지게되고, 교환학생으로 떠난 오스트레일리아딸기농장에서 일했으나 암페타민코카인 소지혐의로 추방당했다. 결국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고 당시 유행하던 집단섹스하는 마약파티에 빠져들었고 '지하 세계의 보스'라 불리던 마약밀매조직 보스와 동거하며 1997년에 아들 '마리우스 보르 호이뷔'를 낳았다. 링크[5] 마리우스의 친부는 10대 청소년들을 상대로 난교파티를 계획하다(…) 감옥에 갔고 메테-마리트는 미혼모오슬로에서 식당 종업원에서 일하면서 아들을 키웠다.

워낙 잘 놀기로 유명했던 메테-마리트는 마약파티에서 친해진 방송국 직원을 통해 케이블 방송 <데이트 프로그램>에 일반인 참가자로 출연하며 화려한 20대를 보냈다. 링크 그러다가 한 음악축제에서 호콘 왕세자와 만나게 되었고 사랑에 빠졌다.

호콘 왕테자는 궁전을 나와 메테-마리트와 그녀의 아들 마리우스와 함께 오슬로의 아파트에서 동거했고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메테-마리트와의 결혼을 발표하지만 당연히 그녀의 화려한 과거는 엄청난 논란이 되었고[6][7] 90%대를 자랑하던 왕실 지지도는 50%로 떨어지더니 아예 왕실폐지 시위까지 일어났다. 다른 나라 같았으면 왕이 앞장서서 반대할 만한 사안이지만 정작 하랄 5세는 전국민이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왕태자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반대하지 않았다. 본인도 선왕 올라프 5세의 반대를 극복하고 평민출신인 소냐 왕후와 9년간의 연애끝에 결혼했던 적이 있어서 그런 듯.[8] 오히려 9년은 너무 길었다며 할 정도.

물론 왕의 허락과는 달리 국회 승인은 당연히 안나고 노르웨이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에 충격을 안겨주다시피해서, 결혼하기 며칠전에 궁여지책으로 기자회견을 기획했으며 메테-마리트는 조신하게 차려입고 왕태자랑 같이 나와서 언론 앞에서 다소 두리뭉실하게 자기가 과거에 좀 험하게 살았다는 걸 인정하면서 자기가 원하는 건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는 것 뿐이라며 눈물 쏟아내며 감성에 호소했는데 그 방법이 제대로 먹혀 국민들 마음이 돌아섰고 드디어 국회 승인을 받아 결혼했다.[9]

여담으로 메테-마리트 왕태자비가 결혼 전에 낳았던 아들 마리우스는 당연히 왕위 계승권은 없지만 왕태자 가족과 함께 생활하며 공식 행사에도 같이 참석한다.[10] 마리우스는 호콘 왕세자를 그냥 '호콘'이라 부르며 친아버지한테 '아버지'라 부르며 자주 만난다. 하지만 마리우스가 처음으로 학교 가는 날에도 호콘 왕태자가 직접 데려다 주고 친아빠도 만나서 웃고 얘기할 정도로 잘해주며 실제로 두 사람의 사이는 좋다. 마리우스의 친아버지는 출소 후 전직 모델과 결혼했는데, 그 남자의 결혼식이 왕실을 주로 다루는 잡지에 마치 스타처럼 생중계 되기도. 흠좀무.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결혼 후 3개월간 왕태자비 수업을 받으며 거칠었던 과거의 모습을 버리고 우아한 왕태자비로 변신했다. 패션 센스는 그다지...[11] 남편 호콘 왕세자와의 사이에 딸 잉리드 알렉산드라 공주와 아들 스베레 망누스 왕자를 낳았으며 각종 공무행사에 참가하고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국제무대에서 노르웨이를 홍보하는 한편, 유엔 에이즈 예방 홍보대사로 선정돼 아프리카 주민을 위한 자선활동에 앞장서고 있으며 소외 계층을 돕는 등 큰 잡음없이 왕실생활에 적응하는 듯 했다. 이 부분은 2014년 12월 14일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의 코너인 Surprise Secret에서 다루었다. 하지만...

개인비행기에서 자신의 비서를 손찌검하고 욕설한 것이 밝혀졌다. 링크 1 링크 2 노르웨이 왕실은 왕태자비아 고소공포증 때문에 예민해져서 그런것이라며 별 시덥지도 않은 사과성명을 냈으나 피해자인 비서 힐데 하랄드스타트는 메테-마리트의 사과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에도 메테-마리트 왕태자비가 전 남친이 과거에 찍은 섹스 테이프를 유출하겠다고 하거나 그녀의 가족들이 결혼전 사생활을 언론에 폭로하며 구설에 올랐다. 참고로 그녀의 아버지는 스트리퍼와 재혼했다. 링크 그리고 2012년 궁전 직원이자 친구인 동성애자 부부가 인도인 대리모를 통해 쌍둥이를 출산하자 비자가 만료된 그들을 대신해 메테-마리트 왕태자비가 직접 인도에 가서 비밀리에 그들의 아이를 노르웨이로 데리고 왔다. 문제는 노르웨이에서는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얻는게 불법이기에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호콘 왕세자를 눈이 삔 남자로 취급한다. 실제로 눈 삔거 맞잖아. 또한 2010년 이후로 호콘 왕태자 부부는 이혼설에 휩싸이고 있는데, 부부관계는 사실상 끝났지만 어쩔 수 없이 체면[12]상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최근 왕태자 부부가 사적인 시간을 보내는 파파라치 사진들을 보면 호콘에게 적극적으로 애정표현을 하며 사이좋은 부부의 모습을 연출하려고 애쓰는(…) 메테-마리트와는 달리 호콘은 전혀 애정표현을 하지 않는 걸 볼 수 있다. [1] 비슷하게 골드 디거에게 낚여(…) 불행한 결혼생활로 인해 대놓고 나 절망적이에요라며 표정관리도 안하는 덴마크 왕세자 프레데리크에 비하면 호콘은 그래도 나름 표정관리는 하지만 완전히 감춰지지는 않는 듯. 또한 딸 잉리드 알렉산드라 공주의 얼굴도 점점 어두워진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3.2 딸 마르타-루이세 공주

이렇듯 메테-마리트 왕태자비가 행동이 자주 문제가 되다보니 차라리 호콘 왕세자의 누나인 마르타-루이세 공주가 왕위를 계승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왔으나...

마르타-루이세 공주는 예쁘장한 겉모습과는 달리 자기는 죽은 자가 보이고 동물 및 혼령과 대화가 가능하며 천사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이를 많은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다며 2007년에 '천사 학교'까지 세웠다. 링크 6개월 비용은 12,000 노르웨이 크로네(한화로 약 230만원)이며 총 3년을 수강해야 한다고. 이에 노르웨이의 각종 언론들은 그녀로부터 노르웨이의 공주 지위를 박탈시키고 정신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게 어떠냐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개인의 이익을 위해 허가없이 왕실의 사진을 도용한 서적을 판매하면서 크게 물의를 일으켜 이로인해 역사상 처음으로 왕족이 법원까지 출두하는 진풍경까지 연출했다. 남편인 아리 벤 역시 왕실의 일원으로 국내의 정치나 정당에 대해 그 어떤 발언도 해서는 안되는 위치임에도 2006년에 자신은 노동당을 지지한다는 발언으로 크게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그래서 마르타-루이세 공주 부부에 대한 평판은 상당히 낮으며, 호콘 왕태자 부부 못지않게 기괴한 행동을 하다보니 그냥 예정대로 호콘 왕태자가 왕위를 물려받게 된다(…)

여담이지만 마르타-루이세 공주와 아리 벤도 평탄치 않은 과정을 걸쳐서 결혼했다. 공주는 물리 치료와 관련된 공부를 하다가 자기를 가르치던 교수의 소개로 그 교수의 아들인 아리 벤과 만나 사귀게 되었다. 하지만 공주의 부군감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아리 벤이 예전에 TV 프로그램에 나와서 마약 복용을 찬성 혹은 찬양하는 발언 같은 걸 했다고 하는 게 문제가 되었기 때문. 그리고 왕실의 휴가 사진을 몇십장을 찍어서 SNS에 올리는 바람에 발칵 뒤집혔다. 왕실 경호 문제도 있고 사생활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바람에 난리가 났었으며 평소에도 그렇게 SNS를 애용한다고. 그래서 반대가 좀 있었지만 그래봤자 아리 벤은 메테-마리트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일 뿐이라서 결국 결혼했고 결혼식 당시 마르타-루이세 공주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4 현황

여하튼 호콘 왕세자나 마르타-루이세 공주나 여러모로 문제가 되었던 사람들을 극구 배우자로 맞아들이면서 노르웨이가 대외적으로 이미지가 많이 망가졌는데, 그 불똥은 남매의 부모인 하랄 5세과 소냐 왕후에게까지 튀었으며 특히 평민 출신 왕후 때문에 자식들이 이런 식이라는 말까지 나왔었다.

그래서 현재 유럽의 내노라 하는 왕실의 왕세자빈/왕비들이 과거에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개차반 이력을 가지고도 한 나라의 왕태자비/왕후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메테-마리트 왕태자비의 공이 지대하다못해 모두들 그녀에게 빚을 지고 있다 해도 모자랄 정도. 유명해서 늘 뒷담화 대상이 되는 캐서린 미들턴이나 메리 도날드슨은 적어도 범죄자는 아니고, 막시마 소레기에타는 문제 많은 집안 출신이지만 본인은 일단 문제될만한 짓 자체는 안 저지르고 다녔고 네덜란드의 요한 프리소 왕자와 결혼한 마벨은 과거 조폭과 사귀기까지 했지만 어쨌든 애까지는 안 낳았다. 괜히 메테-마리트가 넘사벽 취급받는게 아니다. 근데 옆동네 스웨덴에서 칼 필립 왕자의 부인 소피아 헬퀴스트라는, 메테-마리트의 아성(?)을 넘보는 새로운 개차반이 탄생했다!

사실 왕족이란 게 조상과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것이고 현대에 와서는 정치에 파워가 있다기보다는 외국 귀빈 대접이나 해외순방, 봉사활동 이외에는 별 할 일도 없는, 국민들의 전통에 대한 자부심을 위한 상징적인 존재다 보니 전세계 어딜 가나 아직도 왕실을 유지하고 있는 30여개 국가에서는 영웅담이나 선행보다는 막장 드라마를 연출하는 경우가 더 많다. 왕족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다

현재 왕위 계승 서열 2위, 즉 왕태손의 자리는 호콘 왕세자와 메테-마리트 왕태자비 사이에서 태어난 큰딸 잉리드 알렉산드라 공주이다. 호콘 왕태자가 태어날 때까지만 하더라도 노르웨이는 남성 중심의 왕위 계승 서열 제도를 가지고 있었으나, 이후 법이 개정되면서 남녀 구분 없이 왕위 계승 서열이 정해지게 되었다. 이런 분이시니 왕실 근위대장으로 닐스 올라브를 임명하셨지.

참고로 오슬로에 있는 왕궁에 가까이 가보면 벽에 무슨 초등학교 건물도 아닌데 별 장식도 없이 노란색 무광 파스텔 톤으로 페인트 칠이 되어있다. 비교적 깨끗하긴 하지만 왕궁 뒤 연못에는 커다란 건축용 PVC 파이프 자재가 물에 나뒹굴질 않나 그닥 신경을 쓰고 있지 않고 있다. 예로부터 노르웨이 왕실은 영국 왕실과 친분이 있어서 오슬로 시청에 가면 그런 두 왕실간의 교류의 역사를 표현한 그림이나 휘장도 구경할 수 있지만 노르웨이의 왕궁은 으리으리한 영국 왕궁의 모습과는 얼핏 외관상으로 봐도 차이가 있다. 왕궁도 검소함의 끝이다. 장식의 끝끝끝판왕을 보여주는 휘황찬란한 황금빛 프랑스 궁전들을 갔다오신 분들이라면 그냥 평범한 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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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러시아의 차르 표트르 3세의 아버지가 홀슈타인 고트로프 공작 카를 프리드리히(1700년 4월 30일 ~ 1739년 6월 11일)이기 때문.
  2. 자주 틀리는 표현으로 대인배를 비롯한 ~배는 특정 무리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어느 한명에게 쓰는 건 잘못된 표현이다. 대인배 문서 참조.
  3. 노르웨이 총인구가 400만 명이다. 다시 말해 노르웨이의 모든 국민들을 아우러서 하는 말.
  4. 크리스티안 10세는 나치 독일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기도 했다. 왕궁인 크리스티안보르궁에 나치 독일의 기가 게양되어 있자 크리스티안 10세는 독일측에 나치 독일 국기를 내리라고 요구하고 나치가 당연히 거절하자 내일 당장 군인 1명이 가서 기를 강제로 내릴거라고 말했다. 나치는 그 군인을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으나 크리스티안 10세는 "그 기를 내리는 군인은 바로 짐이오."라고 받아쳐서 독일 국기를 왕궁에서 내려버린 일화가 있다. 또한 국민들에게 유대인의 대피를 도울 것을 명령하기도 했다.
  5. 사실 메테-마리트는 마리우스를 낳기 전에도 15살 연상의 남자랑 동거하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 그 남자의 친구였던 '지하 세계의 보스'라 불리던 마약밀매조직 보스와 바람 펴서 마리우스를 낳았다...
  6. 다만 노르웨이가 왕태자라도 확률적으로는 미혼모를 충분히 만날 수 있는 환경일 정도로 '미혼모의 나라'라서 메테-마리트가 미혼모라는 점 보다는 본인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은 없지만 마약을 복용했다는 사실 때문에 더 문제가 되었다. 그리고 아무리 그렇게 개방적이고 동거가 결혼보다 많은 노르웨이라지만 왕태자까지 왕궁을 뛰쳐 나가면서까지 미혼모랑 동거한다는 사실은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7. 노르웨이 같은 경우는 메테-마리트가 결혼할 당시인 2001년에도 50% 이상의 아이들이 미혼모한테서 태어날 정도.
  8. 실제로 몇십년 전만 하더라도 유럽 왕실에서 평민과의 결혼은 환영받지 못하는 일이었다. 요즘이야 평민과의 결혼이 왕실의 이미지를 더더욱 좋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어서 옆다른 왕실도 거의 평민과 결혼하는 추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메테-마리트를 시작으로 현재 대부분의 평민 왕태자비/왕후들이 과거 이력이 개차반인 건 기본이요 대다수가 애초에 왕자라는 골든 티켓을 잡기 위해 결혼한만큼 결혼 후 명품에 돈을 쳐바르는데다가 인성 면에서도 문제가 드러나면서 평민 왕태자비/왕후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도 꽤 생겼다. 이러한 논란에서 그나마 자유로운 건 스웨덴의 빅토리아 잉그리드 알리스 데씨리에 왕태녀의 남편인 다니엘 공 정도. 다니엘 공은 평범해도 너무 평범하다는 이유로 결혼전까지 까였지만(…) 부부사이가 좋고 미래의 여왕의 부군으로서의 역할도 잘해내고 있어서 부군계의 끝판왕 앨버트 공을 잇는 인물이 될 것 같다는 평도 있을 정도.
  9.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메테-마리트는 어두운 과거를 정직하게 인정하고 청산한 후 새 삶을 사는 본보기인양 미화된 면이 많은데, 사실은 그 인터뷰를 하게 된 계기에 대해 뒷 얘기가 있다. 둘의 약혼이 발표되고 난 후, 메테-마리트의 전 남친이 그녀가 마약을 복용하고 섹스하는 장면을 찍은 섹스 테이프를 유포하겠다고 협박하자 왕실에서는 그 섹스 테이프를 사려고 그녀의 전 남친과 협상을 시도했지만 합의를 못 봤다. 그 전 남친은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날, 즉 왕후가 되는 날에 공개하겠다고...
  10. 마리우스는 어릴 적에는 백금발에 신비롭고 인형같은 귀여운 용모로 주목받았으나 마의 16세를 거치며 완전히 역변해버렸다(…) 지못미.
  11. 메테-마리트 왕태자비는 주로 샤랄라한 소녀스러운 패션을 즐기는데, 문제는 본인이 워낙 키와 체격이 북유럽 여인답게 크고 외모도 다소 강하게 생긴지라 이게 영 안 어울린다(…)
  12. 메테-마리트와 연애하던 시절의 호콘은 스스로가 가난한 미혼모인 메테 마리트를 구해주는 정의의 기사 노릇에 심취했던 게 아니냐는 얘기가 있었고 실제로 이런 이미지가 있던 건 사실이다. 그도 그럴게 겉으로 봤을 땐 모든 걸 갖춰서 남부러울 게 없는 한 나라의 왕태자 + 가난하고 별볼일 없는 미혼모 조합이다보니 당연히 이런 이미지가 생길 수밖에... 이러니 이제와서 이혼한다고 하면 그의 이런 이미지가 와르르 무너지게 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