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전체

紀傳體

1 개요

사서(史書, 역사)의 서술 방식 중 하나. 인물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사마천의 《사기》가 최초의 기전체 사서인데 이 때문에 중국의 정사(正史)인 '25사'는 모두 기전체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한국의 정사인 삼국사기고려사 역시 기전체의 형식으로 작성되었다. 즉, 한국과 중국의 모든 정사는 기전체로 작성된 셈이다. 이 때문에 기전체는 정사체라고도 부른다.

2 구조

기전체 사서는 다음과 같은 구조를 지니고 있다.

  • 본기(本紀)[1]: 천자, 특히 황제의 전기(傳記). 각 왕조의 연대기 역할을 한다. 본기만 쭉 따라 읽으면 편년체 사서를 읽는 것과 별 다름이 없다. 명분보다는 실세를 중시한 사마천의 《사기》에는 항우, 여후의 전기가 본기로 분류되어 있는데 항우는 잠시 천하의 제후들의 위에 군림했으며 여후는 혜제를 대신한 사실상의 황제였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반고의《한서》에서는 항우는 열전에 수록되어 있으며, 혜제 시기의 경우 '혜제기'가 따로 있다.[2]삼국사기》는 각 나라 별로 본기(本紀)를 작성했다.
  • 세가(世家): 제후국, 특히 의 전기로 이후 제후국이 몰락하여 중국 사서에서는 《사기》와 《신오대사》에만 존재한다. 사마천의 《사기》는 유교의 교조인 공자를 높이 평가하여, 열전이 아닌 세가에서 다뤘다. 《고려사》는 고려의 왕들을 제후의 예에 따라 세가에 올렸다.[3] 《진서(晉書)》의 경우 서진, 동진을 제외한 역대 군주의 기록은 (본)기도, 세가도 아닌 재기(載記)라는 편명으로 다루고 있다.
  • 열전(列傳): 본받거나 타산지석으로 삼을만한 신하나 일반인의 이야기. 일종의 전기 문학이라 할 수 있으며 기전체의 핵심이 되는 부분이다. 그래서 국내의 《사기》 번역서 들을 보면 열전만 발췌, 번역한 경우가 많다. 한국의 기전체 사서는 이 부분이 좀 부실한 편이다. 특히 《삼국사기》는 김유신열전 빼고는 거의 날림 수준.
  • 표(表): 연표, 가계표, 인명표 등.
  • 지(志): 본기, 열전에 들어가지 않는 사회적인 사항. 주로 법률이나 경제, 자연 현상 등이 여기에 들어간다. 이 표현은 반고의 《한서》에서 처음 썼고, 기전체의 시효인 사기에서는 '서'(書)라고 했다.

3 주의점

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록이 관련된 이들의 전기에 흩어져 있어서 각 사건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는 문제가 있지만, 인물을 중심으로 하여 역사를 바라보는 데에는 유용하다. 기전체 사서는 일반적으로 전의 주인공의 공은 제대로 기술해도, 허물은 가리는 편이 많은 편으로 어떤 사람의 짧게 기술된 내용이, 다른 사람의 전에는 자세히 서술된 경우가 종종 있다.

따라서 기전체 사서를 읽을 때는 해당 인물의 전기에 안 나온다고 그런 기록이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매우 섣부른 행동이다. 다른 필법에 비해 교차검증을 신중히 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으로 적벽대전의 경우 무제기에는 역병이 돌아 조조가 그냥 물러난 것처럼 설명되어 있으나, 촉지 선주전, 오지 주유전, 위지 정욱전 등 다른 전들을 읽어보면 조조가 참담하게 패배하고 물러간 사실을 알 수 있다.

4 한국사상의 기전체 사서

사실 한국의 전통 사서는 편년체기사본말체가 주를 이루어 기전체 사서는 많지 않으나, 대표적인 정사인 《삼국사기》, 《고려사》는 기전체로 쓰였다. 한치윤의 《해동역사》는 편명에 세기(世紀), 고(考) 등 독자적인 용어를 사용했으나 기전체 사서로 분류된다.

어떤 의미에서는 나무위키도 기전체 구조다. 반대로 이쪽은 있어야 되는 기록이 누락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참 걱정거리.

덤으로 고려 후기에 나타난 가전체(假傳體)라는 문학 양식이 바로 이 기전체 구조를 빌려온 것이다.
  1. 또는 기(紀)
  2. 다만, 한서에서 조차 여후는 본기에 들어있다. 여후 본인의 기록과 두명의 소제에 관한 기록은 고후기(高后紀)라 하여 본기에 기록되어 있다.
  3. 고려는 외왕내제 국가였지만, 고려사는 후임 조선왕조에서 편찬된 책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