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이스라엘 국왕 | ||||
예루살렘 왕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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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y de Lusignan (1150 ~ 1194)
십자군 전쟁 당시의 기사. 영어 표기에 따라 뤼지냥의 기(Guy of Lusignan)라고 읽기도 한다. 그 외에 예루살렘의 기(Guy of Jerusalem), 키프로스의 기(Guy of Cyprus)란 칭호도 존재한다.
프랑스 푸아투 출신으로 뤼지냥 가문은 푸아투 지역의 영주이면서 동시에 아키텐 공작에 종속된 위치에 있었다. 문제는 1168년 기와 그 형제들이 당시 근처를 약탈하고 귀환중이던 잉글랜드의 대귀족이자 최강의 세력을 가졌던 솔즈베리 백작 패트릭을 살해하고 그 일행을 납치해가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 때 포로로 잡혀간 인물 중에는 훗날 잉글랜드의 대귀족이 되는 윌리엄 마샬도 있었다. 게다가 이 때 패트릭은 다름아닌 아키텐의 엘레에노르[1]를 호위하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대형사고. 더 상세히 사고를 설명하자면, 아키텐에 종속된 사람이 아키텐을 소유한 사람[2]의 친구이자 호위하는 사람을 죽이고, 그의 물건을 털어갔다. 명백한 반역인 셈.
당시 아키텐 공작을 대행하고 있던 사자심왕 리처드 1세는 이 보고를 듣고는 진노하였으며, 당장 기와 그 형제들을 추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결국 프랑스에서 쫓겨난 기는 그의 형 아모리가 있던 예루살렘 왕국으로 건너갔고, 이를 계기로 예루살렘 왕가의 가신 자격으로 십자군 전쟁에 참전하게 되었다.
이 시기 예루살렘 왕국의 국왕은 보두앵 4세였는데 공교롭게도 나병환자였던 까닭에 후계자를 놓고 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기가 망명한 시점에는 트리폴리 백작 레몽 3세[3]와 에데사 백작 보에몽이 연대하여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기에 보두앵 4세는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 1180년 기를 누이 시빌라와 혼인시켜 야파와 아스칼론의 백작으로 서임하였다. 그리고 1182년에는 섭정으로 임명하여 왕국의 전권을 맡겼다.
하지만 기는 르노 드 샤티용(또는 샤티용의 레이날드)와 동맹을 맺고 이슬람 상단을 공격하여 살라흐 앗 딘과 맺은 휴전조약을 파기해 버렸는데, 이는 당시 예루살렘 왕국의 상황을 봐서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다. 결국 분노한 보두앵 4세는 시빌라의 아들이자 조카인 보두앵 5세를 공동왕으로 세우고 기의 섭정직을 박탈하였다. 더 나아가 시빌라와 혼인도 파기하려 하였으나 공교롭게도 1185년 나병으로 숨을 거두면서 파혼은 없었던 일이 되었다. 게다가 보두앵 5세가 이듬해 사망하면서 그 뒤를 이어 시빌라가 왕위에 올랐다.
당시 예루살렘 왕국의 왕위계승은 이벨린의 발리앙의 양녀인 이사벨[4]과 시빌라의 다툼이었는데, 이사벨의 남편이 기 드 뤼지냥을 지지하자 발리앙-레몽 라인은 타협해서 시빌라의 왕위 계승을 인정하는 대신 기와의 파혼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시빌라는 이를 받아들여 순조롭게 여왕에 즉위하였으나, 여왕에 오르자마자 기를 다시 남편으로 지목하면서[5] 기 드 뤼지냥은 예루살렘의 왕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왕위에 오른 기가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으니 본인 스스로 일으킨 살라흐 앗 딘과의 전쟁이었다. 당시 살라흐 앗 딘과 중재를 위해 노력하던 트리폴리 백작 레몽 3세를 협박[6]하여 협력하게 만들고[7] 동맹인 샤티용의 레이날드와 함께 살라흐 앗 딘에 맞섰으나 하틴 전투에서 레몽 3세 말 안듣고 병크 저질러 대차게 말아먹고 포로로 잡혔으며 다마스커스로 압송되었다. 레이날드는 살라딘이 친히 참수했으나[8], 기는 목숨만은 건지고 투옥되었다. 그 사이 이벨린의 발리앙, 몽페라토의 콘라드 등 남은 기사들이 X빠지게 고생해서 왕국 전체가 공중분해되는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예루살렘은 어쩔 수 없이 넘겨주었지만. 사실상 하틴 전투 덕분에 예루살렘 왕국 자체는 공중분해 되다시피하고, 왕국령으로 칭할 만한 영지는 티레 한 곳 밖에 남지 않게 되버린다. 하틴 전투의 소식을 들은 교황 우르바누스 3세가 뒷골잡고 쓰러진 뒤 저 하늘의 별이 된 것은 덤.(...)
1188년 석방된 기는 시빌라와 함께 티레로 향하였으나, 티레의 영주이던 콘라드가 "무슨 낯짝으로 여길 오는거냐!"면서 길길이 날뛰며 입성을 거부하였다. 그 때문에 티레 성 밖에서 한동안 머물다가 제3차 십자군 원정대가 오자 그들과 함께 합류하여 아크레 공성전에 참여하였다.
바로 이 아크레 공격이 그의 최대(?)업적이라 할 수 있는데, 때마침 하틴 전투의 참극을 전해들은 유럽의 동지들이 속속 십자군 수하의 몇 안 남은 항구 도시들로 들어오고 있었던 덕분이었다. 이 멋모르는 유럽 친구들이 부하에게 무시당하며 아크레 앞에서 얼쩡이는 기 드 뤼지냥의 군대를 보고 "예루살렘의 왕이 적은 병력으로 대적과 맞서 싸우는데 부하란 놈은 성에서 벌벌 떨고 있다."고 생각해서 모두 그리로 가 합류하는 바람에 정작 콘라드는 개털이 되고 기 드 뤼지냥은 명성을 드높일 수 있었다. 역시 인생은 타이밍. 그런것도 있지만, 당시 아크레를 점령했던 살라흐 앗 딘은 아크레의 요세를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해버려서 기 드 뤼지냥이 아크레를 접수하자 제 3차 십자군에게는 그야말로 최적의 집결지가 굴러온 셈이 되었다.
1190년 아크레 공성전 와중에 시빌라와 그의 두 딸 알리사, 마리아가 모두 전염병으로 사망하자 예루살렘 왕국의 제후들은 시빌라가 죽었으니 기는 더이상 예루살렘의 왕이 아니라고 선언하고 이사벨을 여왕으로 추대하였다. 당시 이사벨의 남편은 몽페라토의 콘라드였고 프랑스의 왕 필리프 2세의 든든한 지지를 받고 있었는데, 이게 마음에 안들었던 사자심왕 리처드 1세가 기를 지지하면서 대립구도를 형성해주었기에 한동안 왕위를 놓고 분쟁이 벌어졌다.
하지만 3차 십자군 원정이 마무리되고 리처드 1세가 본국으로 귀국하게 되자 기는 지지기반을 잃게 되었고, 어쩔 수 없이 예루살렘 왕국의 왕위를 이사벨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리처드 1세가 오면서 점령하였던 키프로스를 기에게 선물해주면서 키프로스의 영주가 되었으며, 덕분에 키프로스 왕국의 초대 국왕으로 기록되었다. 어째서인지 리처드 1세 무서워서 원정 왔는데 리처드 1세에게 받은 게 많은 것 같다
기는 1194년에 사망했지만 후계자를 두지 못했던 까닭에 동생 아모리가 그 뒤를 이고 1489년 마지막 여왕 카트린느 코로나로가 베네치아 공화국의 압력으로 왕국이 해체되고 베네치아 공화국의 일부가 될 때까지 아모리의 후손이 계승했다. 여담으로 키프로스는 1571년에 오스만 제국에게 점령된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선 헝가리 계 뉴질랜드 배우인 마턴 초카스가 연기했는데 상당히 찌질하면서도 매우 호전적이고 광신적이고 계급주의를 상징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주인공인 이벨린의 발리앙의 안티테제라 하겠다. 실제 인물 역시 찌질한 편인데 우유부단한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르노 드 샤티용과 공모하고 이슬람과의 전쟁에 미쳐 있는 인물로 나온다. 사실 기가 현실감각이랑 외교능력이 부재한 나머지 왕국을 말아먹은 것을 보면 영화에서 이렇게 나와도 충분하다.
- ↑ 헨리 2세의 부인이자 리처드 1세, 존 왕의 어머니.
- ↑ 아키텐은 엘레에노르의 소유였고, 그녀와 결혼한 헨리 2세와 둘 사이의 아들이 공작위를 상습받았다.
- ↑ 티베리아스 또한 그의 영지였기 때문에 '티베리아스의 레몽'이라고도 한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서는 티베리아스를 영어식으로 읽은 '타이베리어스'로 불린다. 배역은 제러미 아이언스.
- ↑ 시빌라의 이복동생이다.
- ↑ 시오노 나나미조차 십자군 이야기에서 이 사실을 언급하면서 "시빌라는 기 드 뤼지냥의 얼굴에 반해 있었지만 기 드 뤼지냥에게 잘생긴 얼굴 빼고는 아무런 장점이라고는 없었다"고 깠다.
- ↑ 교황과 주교들에게 "이 새퀴가 이교도들하고 공존을 주장하네염. 아무래도 파문시켜야 될 듯"이라는 서신을 날렸다.
- ↑ 킹덤 오브 헤븐에서는 트리폴리 백작 레몽 3세 즉 티베리아스가 작중 하틴 전투 직전에 열린 회의에서 당장 이교도들을 치러 나서자는 기 드 뤼지냥과 다른 기사들에게 지금 전쟁하면 안 된다고 반대하며 말리는 발리앙을 지지하며 내 기사단은 이번 전투에서 빠지겠다고 막사를 나가 버린다. 기 드 뤼지냥은 "그럼 전공은 모두 내 차지로군"이라면서 비웃지만...
- ↑ 왜냐면 이 인간은 이슬람에게 당한 일 때문에 이슬람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기에 악명이 높았고 나중에는 살라딘의 여동생까지 살해했다. 안죽이는게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