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두앵 4세

역대 이스라엘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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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왕국
5대 아모리 1세6대 보두앵 4세7대 보두앵 5세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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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나병 증세가 나타나고 있다는 걸 묘사한 그림
킹덤 오브 헤븐에서 등장한 보두앵 4세

Baudouin IV[1]. 예루살렘 왕국의 제6대 국왕. 일명 '나병왕 보두앵(Baudouin le Lépreux)'.

생몰 1161 년 ~ 1185 년 3 월 16 일 (24세)
재위 1174 년 7 월 11 일 ~ 1185 년 ( 약 11 년 )

2 생애

예루살렘의 아말릭 1세와 쿠르트네의 아녜스 사이의 1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친누나 시빌라는 그보다 1살 연상이었다.

보두앵이 9살 때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그만 서로의 손을 할퀴어 다치게 되었는데 보두앵만이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충신 기욤이 즉시 보두앵을 의사에게 데려갔다. 의사가 진찰한 결과, 보두앵은 심각한 피부병인 나병에 걸렸으며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후 보두앵의 나병은 급속도로 확산되어 몸 전체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아모리 1세가 1174년 사망하자 보두앵은 7월 15일 왕위를 이어받았다. 예루살렘 왕국은 귀족들이 서로 파벌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었으며 최대의 적인 살라딘의 지도 아래 이슬람 세력이 이집트에서 시리아까지 그 영향권을 넓혀가면서 다시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기에 존망이 불투명한 상태였다. 그런 시기에 왕이 된 보두앵은 국정을 맡기에는 나이가 아직 어렸기 때문에 비공식적으로 그의 오촌 아저씨트리폴리의 레몽 3세와 플랑시의 밀 등 두 명의 섭정을 계속적으로 두었다. 1175년 레몽 3세는 예루살렘 왕의 대행자로서 살라딘과 조약을 맺었다.

이 후 예루살렘 왕국의 존속을 위해 지속적으로 살라딘과 끝없는 분쟁을 치루면서 한편으로는 협정도 맺기도 하는 등 아슬아슬한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개혁적인 성향도 있어서 허례허식이나 이유없는 탄압, 폭정은 최대한 자제하려 하였고 예루살렘 왕국 내부의 아랍인들에게도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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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어린 나이지만 대단히 용맹스러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1177년 그의 나이 16살에 그는 카이로에서 북상하여 아스칼론과 예루살렘을 노리던 살라딘군과 전투 중이었는데 2만 6천명의 살라딘군에 겨우 580명에 불과한 주변의 기사들만 이끌고 한덩이가 되어 돌격한 적이 있었다. 비록 숫자가 턱없이 적다고 해도 그 당시 중무장한 기사들이 뭉쳐 돌격하는 파괴력은 말 그대로 무시무시했고, 상대적으로 경무장에 불과한 살라딘군은 어린 왕과 그의 기사들에게 순식간에 도륙당했다. 살라딘의 쿠르드 친위대들까지 달아나려 하자 자신의 안위까지 위험해진 살라딘은 군대를 후퇴시켰다. 이처럼 용맹스러운 기사이기도 했지만, 아직 어려서인지 앞뒤 안 보고 혼자 돌격한 적이 많아서 항상 주변에 기사들이 왕을 지키기 위해 긴장하고 있었고, 1179년에는 돌격했다가 적들에게 둘러싸여 거의 죽을 뻔했는데 보두앵의 최측근이었던 기사가 사실상 자기 몸으로 칼을 다 맞아가며 왕을 구해냈지만 상처가 심해 죽게 된다. 이후 보두앵 4세는 그의 복수를 하기 위해 곧바로 트리폴리 백작 레몽 3세와 성당 기사단, 구호 기사단을 통솔하여 살라딘이 기다리는 시리아로 깊숙히 진격했는데, 이때 낙마하고 만다. 당시에 이미 지병인 나병이 심해진 탓에 스스로 일어날 수조차 없었으나 병사들의 도움으로 겨우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레몽 3세와 보두앵 4세를 제외한 예루살렘 왕국과 기사단의 주요 인물들이 대거 살라딘의 포로가 된다. 이들 대부분은 석방되었지만 성당 기사단장은 다마스쿠스의 감옥에서 남을 것을 고집하여 그곳에서 숨을 거둔다. 이후 살라딘이 알레포와 모술 지역을 공략하면서 예루살렘 왕국은 아이유브 왕조의 공격 선상에서 벗어났고 6년간의 평화가 도래한다. 이후로도 보두앵 4세는 말 안장 위에 몸을 묶어서라도 전장에 나섰다.

이렇듯 현명하고 용맹하였으나 나병 환자였던 보두앵 4세가 오랫동안 재위하거나 혼인해서 후계자를 낳을 가망은 없었다. 그리하여 신하들과 영주들은 다음 왕위의 강력한 후보자로 떠오른 보두앵의 누이 시빌라 공주의 영향력을 받게 되었는데, 시빌라는 하필 뤼지냥의 기와 재혼하게 된다(...). 처음에는 보두앵도 이 혼인에 호의적이었지만, 갈수록 지도자로서는 무능한 모습만 보이는 기에게 크게 실망하여 그에게 준 섭정의 지위를 박탈하고 다시 왕국의 지배권을 장악했다. 그리고 시돈의 뤼지냥, 레몽, 그리고 다른 많은 봉신들의 지지를 받아 아직 5세에 불과한 자신의 어린 조카(보두앵 5세)[2]를 자신의 후계자로 임명했다. 또한 자신 사후에는 당시 기와 대립하고 있던 레몽이 보두앵 5세의 보호자로서 보두앵 5세가 성년이 될 때까지 섭정을 맡도록 하였다. 또한 보두앵 4세는 통치를 계속하면서 보두앵 5세를 1183년 11월 20일 공동 지배자로 내세워 자신이 사망하더라도 기에게 왕위가 가지 않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1184년 초에 보두앵은 시빌라와 기가 맺은 혼인까지 무효화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기는 이에 반발하여 보두앵의 엄중한 경고를 무시한 채 아내 시빌라를 데리고 자신의 영지인 아스칼론으로 돌아갔으며 이미 예루살렘 왕국에 귀순하여 보호를 받던 베두인족을 대량 학살하기까지 하였다. 왕실의 내분과 케락을 구원하기 위하여 보두앵 4세는 좋지 못한 몸으로 군사 원정을 강행했고 그 결과 그의 건강은 더욱 악화됐다. 실제로 말년에는 온몸으로 전이된 나병 때문에 스스로 몸을 못 가누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나병균이 눈까지 침투해서 시력까지 잃었다고 하니 그 고통을 짐작케 한다. 여담이지만 사망하기 몇년 전부터는 나병으로 얼굴이 심하게 상해 제례 때 쓰는 은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공식석상에 나왔다고 한다.[3]

1184년에 모후인 아그네스가 아크레에서 사망했다. 그리고 불과 몇달 후인 1185년 봄에 보두앵 4세 역시 악화된 나병으로 인해 예루살렘에서 사망했다. 항년 24세. 어린 시절부터 병마로 고통받으면서도 일평생을 왕국을 위해 헌신했던 성군이 안타깝게 요절한 것.

만일 그가 나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생존해서 여느 왕처럼 혼인하고 후사도 두었다면 예루살렘 왕국은 더 오랫동안 존속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정치관이 유지되지 못하기도 했지만 그 사후에 그의 어린 조카와 누나마저 일찍 죽고 이복여동생마저 죽는 등 적법한 후사가 없어서 왕통이 제대로 계승되지 못한 것 역시 예루살렘 왕국 멸망의 한 원인이 됐다.

살라딘은 보두앵 4세에 대해서 적이지만 훌륭한 지도자로 여기고 높이 평했다. 물론 그와 별도로, 보두앵 4세 생전에 놔두었던 예루살렘 왕국이 그의 사후 망해가자 접수하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참고로 잉글랜드 국왕인 헨리 2세와는 사촌지간으로 헨리 2세의 조부인 앙주 백작인 폴크 5세가 예루살렘의 멜리장드와 재혼하면서 보두앵 3세와 보두앵 4세의 부친인 아모리 1세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일단 헨리 2세가 사촌 형으로 보두앵보다는 28세나 많다.

3 킹덤 오브 헤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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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딘: 왕께서는 부디 기병을 물리고 이 문제는 나에게 맞기시길 바라오.

보두앵 4세: 병사들을 다마스커스로 돌려보내기를 간청하오. 르노 드 샤티용은 반드시 처벌하겠소. 철수하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 이곳에서 죽을 것이요. (침묵) 받아들이겠소?
살라딘: 알겠소. (침묵) 당신에게 내 주치의를 보내겠소.
보두앵 4세: 살람 알레이쿰(당신에게 평화가 함께하길)
살라딘: 와알레쿰 살람(당신에게도 평화가 있길)

실제 역사대로 성인군자성군으로 나온다. 에드워드 노튼이 열연했는데 극중 분량이 미미함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인상을 주는 캐릭터였다.[4] 정의롭고 평화로운 '천상의 왕국'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국정에 임하며 종교에 따라 사람들이 차별받지 않도록 노력하지만, 나병이 이미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상황이라 항상 가면을 착용해 얼굴을 가리고 있고 양손 역시 이미 부패가 심하게 진행된지라 약을 바르고 벙어리 장갑을 착용하고 있었다.

극중에서는 옛 스승 고프리(리엄 니슨 분)의 사생아인 발리앙(올랜도 블룸 분)이 예루살렘에 올라오자 그를 알현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나병 때문에 가면과 장갑, 긴 망토로 전신을 가리고 있었다. 자신과 마주 앉은 발리앙에게 "권력이 몸을 움직일 수 있어도 정신은 자신의 것이며 누가 시켜서 했다는 변명은 신에게 통하지 않는다."며 양심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명언을 남겨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이후 발리앙의 조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성벽을 보완하는 등 위기의 시대에 국왕으로서 국토 방어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안습인 것은 자신의 병이 갈수록 악화되어 더는 오래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여동생 시빌라(에바 그린 분)[5]의 두번째 남편으로서 성전기사단을 이끌고 있는 기 드 뤼지냥(마튼 초카스 분)과 기와 한통속이었던 케락의 영주 르노 드 샤티용(브렌단 글리슨 분)이 허구헌날 무고한 캐러밴 상단을 기습하고 살해하여 왕국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살라딘과 전쟁이 일어날 위기에 처하자, 이를 막기 위해 군사 고문인 티베리아스(제레미 아이언스 분)가 "그 몸으론 무리십니다."라고 만류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직접 가겠다."며 기어이 위중한 몸으로 십자군을 직접 이끌고 케락으로 가면서 발리앙에게 성 밖 수비를 맡긴다. 발리앙이 소수의 기사들만 이끌고 일전을 벌이는 사이에 성 밖에 있던 백성들은 무사히 성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고, 얼마 뒤에 십자군을 이끌고 도착한 보두앵 4세는 "르노는 반드시 처벌하겠다."며 살라딘을 설득하여 일촉즉발의 상태에서 전투를 멈추게 한다. 이땐 이미 망토를 추스리는 것도 힘겨울 정도고, 말에서 내리는 것도 버거워서 옆에서 종자나 기사가 도와줘야 했다. 그의 설득을 받아들여 철수하기로 결심한 살라딘은 "내 주치의를 보내주리다."라고 한다.[6] 아마 보두앵 4세 사망 후에는 정말 전쟁을 막을 수 없다는 걸 실감한 듯하다. 살라딘의 부하들도 보두앵 4세를 보며 "예루살렘 왕은 곧 죽을 거고 그럼 전쟁을 피할 수 없을 거다."라고 살라딘에게 간언했다.

그 직후에 르노 드 샤티용에게 간 보두앵 4세는 르노에게 접근하여 "내가 예루살렘이다." (I am Jerusalem.) [7]라고 선언하며, "충성의 맹세로 내 손에 입을 맞추어라."라고 말한 뒤 벙어리 장갑을 벗고 부패가 진행 중인 손을 내민다. 르노는 살아남기 위해 무릎을 꿇고 피고름이 흐르는 손등에 입을 맞추었지만, 보두앵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후련하게 두들겨 팬다. 하지만 무리한 탓에 다시 가마로 가 누워야 했다. 그러나 가마를 타고 떠나기 전에 발리앙을 잊지 않고 불러들여 "자네 오늘 참 잘해 주었다."며 그 공적을 치하했다. 발리앙에 대한 신뢰를 굳이 감추지 않는 이 모습에 그의 매제인 기는 당연히 불편함과 불안함을 감추지 못한다. 안그래도 발리앙이 시빌라와 내연 관계였는데 이젠 처남이자 왕의 총애까지 받고 있었기 때문.

저렇게 헌신적으로 왕국을 지켜냈건만 그렇지 않아도 심했던 병세가 더 악화되어 정말 살 날이 얼마 남지 않게 된다. 건강 문제로 혼인을 못해 후사도 두지 못했던 보두앵 4세는 일단 어린 조카[8]의 즉위식을 준비하게 하면서도 유력한 계승자이자 많은 기사를 거느린 권력자 기 때문에 왕국이 위험해질 것을 염려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대안책으로 이미 시빌라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던 총신 발리앙을 은밀히 불러들여 "시빌라가 혼자 되면 그 아이와 혼인할 생각이 있나?"고 제의한다. 기를 대신하여 왕위를 계승하라는 그 간접적인 제의에 발리앙은 그럼 기는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고 곁에 있던 티베리아스가 "자네에게 반기를 드는 다른 기사들과 함께 처형된다."고 답변한다. 이에 발리앙은 보두앵 4세의 명을 따르라는 티베리아스와 시빌라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양심 때문에 그럴 수 없다면서 "전하께서 말씀하셨듯이 권력이 몸을 움직여도 제 정신은 제 것이다."라며 제의를 거절하며 예루살렘을 떠나 보두앵 4세와 티베리아스를 낙담하게 만든다.

이후 임종을 앞둔 그는 시빌라를 불러들여 "열여섯살 때 살라딘을 이겼던 날[9]의 꿈을 꾸었다."며 과거를 회상한다. 이에 시빌라는 울음을 참으며 "오라버니는 언제나 아름다운 소년이었죠."라고 했고, 보두앵 4세는 "내 아름다운 모습만 기억해줘."라는 유언을 남긴다. 그러나 그의 사후에 시빌라가 그가 늘 쓰고 있던 가면을 기어이 벗기고 얼굴을 확인하는데, 이미 병세가 심하게 진행된지라 얼굴이 심하게 문드러진 상태였다.[10]

그의 사망 후에 즉위한 어린 보두앵 5세마저 그처럼 나병 환자임이 드러나고 이 사실이 퍼져 나가 왕국이 흉흉한 분위기에 휩싸이자 절망한 시빌라는 오빠처럼 아들이 고통스럽게 사는 걸 차마 볼 수 없어서 아들을 독으로 안락사시킨다. 아들을 죽이고 폐인이 된 시빌라는 남편 기에게 양위하고 기도실에 칩거한다. 이후 기의 지시를 받은 르노는 살라딘의 누이를 비롯한 수많은 이슬람 교도들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러 전쟁을 일으키고 예루살렘 왕국은 빠르게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 기가 죽이라고 보낸 기사들을 역관광시켜 쳐죽인다음 우여곡절 끝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발리앙에게 티베리아스는 보두앵 5세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그 아이(보두앵 5세)가 죽으면서 예루살렘도 함께 죽었다."고 말한다.
  1. 영문식 표기는 Baldwin IV
  2. 시빌라의 아들, 첫 남편인 몬페라토 후작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다.
  3.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서 보두앵 4세로 분한 에드워드 노튼도 이 사실을 반영해 극중 내내 가면을 쓰고 나온다.
  4. 에드워드 노튼 본인이 대본을 읽어 보고 감독인 리들리 스콧에게 자신이 이 역을 맡고 싶다고 요청해서 해당 역을 맡게 되었다. 에드워드 노튼에게 원래 배정되었던 역은 기 드 뤼지냥.
  5. 실제로는 시빌라가 보두앵 4세의 누나이나 극중에서는 시빌라가 여동생으로 나왔다.
  6. 작중 살라딘의 이후 대사를 보면 살라딘 본인이 열받아서 쳐들어간 것도 있었지만 이맘들의 강요로 인해 움직인 면이 강하며, 일단 긁어모아서 쳐들어가긴 했는데 준비는 덜 된 상황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더 깊게 파고 들어가면 보두앵 4세는 살라딘이 준비가 덜 됐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물러설 명분을 준 셈이다. '서로를 위해'라는 것은 그것을 의미한다. 살라딘이 준비가 되지 않은 병력으로 십자군과 격돌하면 결국 남는 것은 패자 뿐인 양패구상이다. 물론 살라딘이 이기기야 했겠지만 피해도 매우 컸을 것이다. 대규모 병력은 그만큼 움직이는 데에 신경써야 할 것이 많은 법이다. 병참이라든지.
  7. 이 때 기 드 뤼지냥이 이 말을 듣고 처남인 보두앵 4세를 부러움이 섞인 시선으로 슬쩍 쳐다본다. 저 말이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보두앵 4세가 사망하고 그의 조카이자 자신의 의붓아들인 보두앵 5세마저 요절하여 결국 시빌라로부터 왕위를 양위받은 뒤에 살라딘의 사신을 죽이고 전쟁을 선포하면서 이번엔 자기 입으로 "내가 예루살렘이다."라고 선언한다.
  8. 시빌라가 첫 남편과 낳은 유복자인 보두앵 5세
  9. 앞에서 서술한, 1177년에 580명의 기사들과 함께 살라딘의 2만 6천 군사를 대파했했었던 전투. 발리앙과 처음 대면한 자리에서도 보두앵 4세 본인의 입을 통해 언급되는데, "그때는 내가 백 살까지도 살 줄 알았는데, 이젠 서른까지도 힘들겠지."라는 쓸쓸한 대사로 이어진다.
  10. 특수분장이지만 다소 징그럽다. 물론 실제 나병 환자들의 부패가 심각해져서 나중엔 사망할시 저런 모습이 되기에 이것도 고증을 잘 살린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