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유일신과 성전에 의한 한국인 희생자
"한국군은 제발 이라크에서 철군하라. 나는 죽고 싶지 않다. 당신들의 목숨도 소중하지만 내 목숨도 소중하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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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이라크전이 끝난 직후 유일신과 성전에 붙잡혀 참살(斬殺)[3]당한 한국인 희생자.
1970년 9월 13일 ~ 2004년 6월 22일, 향년 33세.
1.1 사건 경위
故 김선일 대학졸업 사진 |
2004년 5월 31일 이라크에서 피랍되었다.
그를 붙잡고 협박하는 동영상이 1차로 배포되었다. 물론 "이 사람을 살리고 싶으면 가나 무역과 한국군은 철수해라"라고 요구했지만 당시 한국 정부 입장은 "파병 철회는 못하겠다"…결국 협상은 결렬됐고 그에 따라 살해되었다.[4][5][6]
당시 협박하는 동영상 이전에 무장단체에 잡힌 뒤 그의 인적사항이나 전쟁에 대한 생각을 인터뷰하는 영상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긴장해도 살벌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처음에 납치한 단체에서 돈을 받고 파병 철회를 요구하려던 유일신과 성전에 그를 판 것이 아니냐는 말이 있다.
협상이 결렬된 후 '알라후 아크바르'를 외치며 김선일을 참수하는 동영상을 공개하며 전국이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6월 22일 팔루자 인근 도로변에서 참수된 시체로 발견되었다.
1.2 여러 진상
한때 김선일씨가 선교 목적으로는 비자가 안 나와 가나무역에 취업해 편법으로 간 것 이라며 책임을 분산 시키려는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에 의하면 김선일씨는 대학원 학비 마련을 위해 미군의 군납업체 직원으로 이라크에 취업을 했는데 납치를 당한 것이다. 단, 본인이 위험을 모르고 중동으로 갔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중동에서 미군의 군납업체 직원이라는 타이틀은 개신교 선교자와 별 다를것 없이 위험하다.
김선일씨의 학력은 부산 경성대학교 신학과 졸업 후 한국외국어대학교 아랍어과를 학사 편입하여 졸업하였다. 동시통역대학원 학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미군의 군납업체인 가나무역에 1년 계약직으로 일하게 되었다.
김선일씨가 선교에 관심이 있었고 개신교 신도인 것은 사실이나, 이라크에 간 목적은 선교보다는 직장생활이었다. 김선일씨를 샘물교회 피랍자들과 동일선상에 올리는 것은 명백하게 잘못된 것이다.
사실 이 논란의 개신교 자체의 민폐가 더 크다. 김선일 사후 열사 등을 주장한 것은 다름 아닌 개신교였단 사실.
게다가 이력서 자체에는 신학과 경력이 기재되지 않고 있고, 선교 활동을 했는가 하지 않았는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아래는 김선일씨의 가나무역 입사 당시 자기 소개서 전문.
저는 남들과 다름없이 1남 3녀의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무난하게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초등학교 2학년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조금씩 불안정한 심리를 가지고 살게 되었고 얼마있지 않아 약 6개월후 아버지께서는 새어머니를 맞아들이게 되었습니다.처음에는 새어머니와 잘 융화되지 못하여서 갈등이 참 많았습니다. 괜히 비뚤어진 마음에 반항심을 가져 말을 듣지 않았고, 자라갈수록 점점 더 심하게 비뚤어져 갔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도 역시 비뚤어진 마음들을 품게 되었고, 고등학교 시험에 합격을 하여 입학을 앞둔 무렵 그 당시에 아버지께서 가정을 잘 돌보지 않아 등록을 하지 못하게 되어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저는 그 이후로 아버지를 더욱더 미워하게 되었으며, 다음해 재수를 하여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였을 때는 큰 누나, 작은 누나, 여동생 그리고 저 이렇게 4명이서 살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을 한 후 3학년이 되었을 무렵, 같은 반의 한 급우(김OO)로부터 복음을 전해듣게 되었고, 평소에 그 친구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터에 그 친구가 다니는 교회를 따라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같은해 여름방학 즈음에 심OO 라는 또다른 친구를 통하여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성령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조금씩 개우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대학교에 진학을 하고 나서는 졸업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며 평범한 삶을 살고자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저의 마음은 왠지 모르게 그렇게 하는 것보다는 내 앞길을 의탁하는 기도를 한 번 해보자 라는 생각에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게 되었고, 작정해놓고 기도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약 5개월 간 꾸준히 기도를 한 끝에, 선교사에 대한 마음의 소원을 하나님께서 주셨고, 좀더 구체적인 비전을 위해서 계속 간구를 하고 묵상을 하던 중 중동선교에 대한 비전을 품게 되었습니다.
간략하게나마 연유를 말씀드리자면,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누구일까 생각을 하던 중 예수 그리스도가 그 마음 속에 없는 이들(영적인 고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중에서도 가장 복음에서 소외된 지역이 중동지역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또한 제가 성장해온 배경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중동지역 선교사에 대한 마음을 품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가정에서 저 혼자 신앙생활을 하게 되어 힘든 점도 없지는 않았으나(장손이라서 친척들의 반대까지 심하게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 생활을 계속 할 수 있게 되었으며 감사하게도 지금은 큰 누나와 작은 누나가 예수님을 영접한 상태이고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도 계속적으로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는 중에 있어 지금은 마음의 문이 많이 열리신 상태입니다.
또한 계획 중에 있는 단계지만, 아랍지역에서 본격적으로 사역을 하게 되면 영어와 아랍어와 미용기술을 통하여 그들에게 복음으로 다가가고자 합니다. (미용은 군복무 시절 이발병과 군종병이라는 좋은 경험이 저의 밑거름이 되어, 미용기술을 좀더 배우고자 하고 있습니다.)
아직 아랍지역은 가본 경험이 없기에 이번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갈 수 있게 된다면 복음을 좀더 구체적이고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또한 그 영혼들을 좀더 온전히 섬기고 사랑하기 위한 좋은 훈련의 시간들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 이렇게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원문.
1.3 사후
김선일씨의 아버지와 누나 등 유가족 측근 4명은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으나, 2007년 김선일씨의 피살 과정에서 국가의 과실 또는 불법 행위는 없었다는 원고 패소 판결이 내려졌다.
이때 남극 세종 기지에서 비상 상륙한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해 나섰다가 사망한 故 전재규 대원과 처우가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고 개신교 측과 유족측에서 반발했었다. 전재규 대원은 훈장이 추서되었고, 국립묘지에 안장되었으며 특별위로금까지 지급된데 반해서 김선일씨는 그런 것이 없다는 이유였다. 그렇지만 전재규 대원은 국가에서 연구하라고 보낸 대원이었고 다른 대원을 구출하러갔다가 안타깝게 순직한 것이며 김선일씨는 이라크에 자신의 목적으로 방문했다가 사망했으니 애초에 같은 선에서 바라보면 안 된다. 그러니 되려 여론적으로 반격을 맞아 욕만 먹었고 결국 김선일씨의 유족도 그 점을 인정하고 국립묘지 안장은 포기했고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는 패소했다.
테러 단체는 김선일씨의 참수 장면을 비디오로 촬영하였다. 일부 이슬람 웹사이트가 이 영상을 공개했고, 한국 정부는 이 동영상의 접속을 차단하였다.
죽고 나서 개신교 측에선 매년 추모도 하고 이후 꽤 오랫동안 대중매체에 그를 노출시켰다. 어떤 교회에서 "이왕 죽을 거면 마지막까지 전도하는 모습을 보이고 죽어야지 왜 공포로 벌벌 떨며 죽었냐"고 탓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순교[7]가 찬반으로 갈리곤 했었다. 마지막 유언은 순교자의 모습이라기 보단 살고자하는 비명으로 들리는 것이 사실이니까. 하지만 결국 그를 순교자로 인정하는 분위기인듯. 그가 이라크로 간 것이 궁극적으로 선교사로서의 뜻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점이 주된 이유. 순교자의 의미를 확장했다고 보면 된다. 지금 그의 묘비에는 '김선일 순교자의 묘'라고 적혀있다. 자세한 것은 링크된 의견들과사후 공개된 이력서와 김우현 감독의 팔복 中 애통하는 자를 참고.
그의 순교를 헛되게 할 수 없다며 이라크로 더 가야 한다고 하는 선교사들도 있었다. 아랍 정보통 목사 김동문은 2004년 초반에 이라크 선교사 파견을 촉구하는 국민일보 기사를 비난하며 "지금 여긴 현지 기독교인들도 마구잡이로 죽어나가는데 죽으려고 오는 거냐, 그러다가 한국인 끔살 당한다"라는 글을 썼더니만 몇 달 안가 이런 일이 벌어졌다. 한국에선 충격일지 몰라도 당시 이라크에선 여러 종파 기독교인은 물론 무슬림도 별의별 이유로 참수하는 일이 자주 벌어져서 이라크인들은 이 사건을 신경도 쓰지 않는다고 한다. 참고로 2010년 11월에도 이라크 내 시리아 정교회까지 테러 공격을 받고 지금도 이라크는 기독교인들의 헬게이트가 열려있다. 그나마 아랍 토속 기독교라고 다른 기독교보단 훨씬 인식이 좋은 시리아 정교회도 저 모양인데 한국 개신교가 가면 차례로 김선일 및 아프간 피랍사태가 똑같이 재현될 뿐….
어느 기업 노조에선 그의 사망 당시 모습을 패러디하는 퍼포먼스(일명 허동수 사건)를 했다가 욕을 먹었다. 서울 강동구의 모 중학교에서도 김선일 참수 모습을 패러디한 사진이 나왔다고.
확인되지 않은 별별 소문이 있었다. 하지만 이 와중에 김선일 사망만 부각된다고 여러 말도 많았다. 이를테면 이 사건보다 먼저 일어난 이라크 파견 오무전기 직원 피살사건[8]으로 희생된 한국인 직원들 보상 및 언론 관심이 너무나도 조용하던 것과 비교된다는 비난이 터져나왔고, 심지어 2002년 제2연평해전 당시 전사한 참수리 357호 참전장병 유족들도 이 사건을 거론하면서 전사 장병보다도 김선일만 부각된다고 한탄한 적도 있다.
유일신과 성전에선 그가 선교사임을 이용하여 그의 죽음을 정당화시키진 않았는데 괜히 종교간 대전으로 몰고 갔다간 이래저래 여론이 복잡하게 꼬일 것임을 예상해 그가 미군군납업체 직원임을 인용해서 그를 타겟으로 잡았라고 주장한다.
동방신기 빠순이 중 한 명이 이 사건을 소재로 BL 팬픽을 썼다가 지탄을 받고 도로 지운 사건도 있었다.
고인의 사체에 부비트랩을 장착하여 이를 수습하는 관계자를 대상으로 한 2차 폭탄 테러를 기도하였다.[9]
한국 내 이슬람 관련 단체들은 일제히 성명을 내면서 "무슬림들은 평화를 사랑하며 폭력과 살인에는 절대적으로 반대한다", "저들은 알라의 가르침을 제대로 어기고 있다, 왜 애꿎은 민간인을 죽이는 것이냐"라고 하였고, 이태원에 있는 이슬람 사원은 혹시라도 있을 폭력 사태를 우려하여 경찰이 배치되었다.[10] 하지만 다행히 아무런 사태도 일어나지 않았다.
더불어 한국에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같은 해 일본인과 미국인도 이라크에서 참수당했다. 자세한 내용은 코다 쇼세이 이라크 피살 사건과 닉 버그 항목 참고 바람.
영화 평론가 정성일은 이 사건을 영화 평론 하듯이 해설하기도 했다. 씨네21
1.4 유언
노 대통령에게 나는 살고 싶습니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제발 이라크에 한국 군인들을 보내지 말아 주십시오. 제발, 이건 당신의 실수입니다. 이건 당신의 실수입니다. 많은 한국인들은 그들의 자식을 이라크에 보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모든 한국 군인들은 이라크에서 나가야 합니다. 제발, 제발. 이건 당신의 실수입니다. 왜 당신은, 왜 당신은 한국군을 이라크에 보냈나요? 고국에 계신 한국 동포들, 제발 저를 도와주십시오. 제발, 대통령님! 제발 부시! 제발, 노무현 대통령! 제발 이라크에서 나가주십시오. 제발, 나는 살고 싶습니다. 나는 한국에 가고 싶습니다. |
판단은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다.
너무 이기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목숨이[12] 걸린 상황에서 무엇이든 못하겠는가 라는 시선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13] 오히려 이쪽으로 보는 편이 더 타당할 지도 모른다. "한국군이 철수 안 하면 죽이겠다"는 협박을 받고 있는 상황임을 고려하자. 설령 겁을 상실하고 "죽일 테면 죽여라 한국군은 절대 철수 안 함ㅋㅋ" 같은 말을 했었어도 범인들이 그걸 그대로 공개할 리가 없다.
참고로 영어로 된 유언이었다.
1.5 범인
고인을 살해한 유일신과 성전의 지도자는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이며, 그는 나중에 미군에게 사살되었다.
이들은 김선일을 납치했을 때 동영상을 통해서 대한민국 정부에 대해 강한 비방을 쏟아내며 성명을 발표하였다.
- 납치했었을 때의 성명(아랍어로 발표하였다)
우리는 한국 정부와 그 인간들에게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한다. 우리는 이 신성한 이슬람의 성지(聖地)에서 멋대로 이교도 활동을 부추기는 한국 놈을 잡아 여기 이 자리에 앉혀놓았다. 이 한국 놈은 지금 우리의 손아귀에 붙잡혀 인질로 잡혀있는 상태이며, 우리는 한국 정부와 한국의 인간들에게 다음과 같은 사항을 요구한다. 우리의 신성한 땅에 무단으로 침입하여 무장주둔한 한국 군대는 즉각 이라크에서 나가라. 또한 침략자 미국의 개노릇을 하고 있는 당신들이 우리의 이같은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 한국 놈을 즉시 죽여버릴 것이다. 침략자 미국의 개노릇을 해대며 우리의 신성한 땅을 감히 침범하고 무장공격을 하려는 한국 정부는 즉시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한국군을 모두 철수시켜야 하며, 한국 정부가 우리의 요구를 거절할 경우 하나님의 이름과 계시로써 여기있는 이 한국 놈은 물론 지금 이라크 땅에 있는 한국군을 비롯해 모든 한국 놈들을 전부 죽여버려 대가를 치르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
- 참수 직전의 성명(역시 동영상을 통해 아랍어로 발표하였다)
침략자 미국의 개노릇을 해대며 우리의 신성한 이슬람 땅을 멋대로 침략하여 드는 한국 정부는 끝내 우리의 요구를 거절하고 묵살하였다. 또한 한국 정부 당신들은 더러운 거짓말로 미국 놈의 개노릇을 해대며 우리의 땅을 감히 무력으로 침략하려는 만행을 저지르려고 했다. 약속대로 우리는 여기있는 이 한국 놈을 참수할 것이며, 그 대가의 책임은 모두 한국 정부와 그 인간들에게 있음을 알린다. 한국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결국 침략자 미국의 개 노릇을 함과 동시에 미국을 기쁘게 해주려는 아부에 불과할 뿐이며 우리는 약속한대로 이 한국놈을 참수하여 우리의 뜻을 알릴 것이다. 이 한국 놈의 모든 책임있는 대가는 한국 정부와 그 인간들에게 있으며 앞으로 미국과 이교도의 개 노릇을 하며 신성한 우리의 땅을 침공할 경우 언제든지 우리는 한국 놈은 물론 우리의 신성한 땅을 침공하려는 모든 외국 놈들과 이교도 놈들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처형하여 똑같은 대가를 받게 될 것이다. |
말투만 보면 모 집단 이 생각난다.[15] 어쨌거나 김선일이 참수된 이후 한국인들도 격앙되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군대를 보내 저 테러집단의 뿌리를 뽑아버려야 한다는 여론이 강해졌다. 어차피 한국군이 전투하러 간 건 아니었지만.
1.6 처벌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한국인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위해를 가한 데다 이 경우는 그냥 범죄도 아니고 테러집단의 계획적인 납치 살인으로 죄질이 매우 나쁘며, 소말리아 해적 출신으로 UDT 구출작전 당시 석해균 선장에게 총격을 가했다가 뒤늦게 밝혀져 살인 미수로 기소된 모하메드 아라이가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다는 이유로 사형 대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음을 고려하면 이 사건의 범인들은 일반 가담자건 주동자건 관계없이[16] 사형을 받을 가능성이 크고, 설사 선처할 소지가 있다고 쳐도 사회 복귀는 불가능할 것이다.
다만 실제 처벌이 가능한지는 미지수. 법적으로 이 사건은 공소시효가 없기에 잡으면 바로 기소 가능하지만 이들이 이라크 알 카에다조직원이라는 사실과 육성만 확인될 뿐 정확한 신원을 알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팔루자 주민 전체를 기준으로 하면 암묵적인 동조자가 대부분이라 이들 모두가 살인에 간접적으로 가담했다고 할 수 있지만 동조자는 살인 혐의자가 아닌 만큼 비난할 수는 있어도 기소할 수는 없다. 그나마 리더인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 정도가 외부에 드러났는데 체포되지 않다가 2006년 미군 폭격으로 죽었기 때문에 역시 기소가 불가능하다. 이라크 정부도 수 차례에 걸쳐 외국인 납치 살해범을 체포, 사형시켰지만 현재까지 김선일을 살해한 범인은 체포하지 못한 상황.
일단 검찰은 살인 등의 혐의를 적용한 뒤 이들의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이유로 기소 중지 처분한 상태다. 물론 2015년 살인 사건에 대해서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법안인 태완이법이 시행되면서 김선일을 살해한 범인에 대한 공소시효도 사라졌다. 다만 범인들의 목소리와 소속을 제외하고는 알려진 것이 전혀 없고, 이라크 정부가 많은 알카에다 조직원들을 붙잡아 심문했지만 살인범을 잡기는 커녕 실체조차 밝혀내지 못했으며, 또한 11년이나 지나 어느 정도 나이가 든 경우 외모와 목소리 모두 바뀔 수도 있기에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2 수원 삼성 블루윙즈 소속의 축구선수
수원 삼성 소속의 축구선수로 2010년에 드래프트로 선발되어 입단한 선수.
아직까지 출장경력이 없다.
3 전 롯데 자이언츠의 야구선수
김선일(야구선수) 문서로.- ↑ 2004년 6월 21일 공개된 영상에서의 절규. 이 때는 영어로 외쳤다.
- ↑ 납치된 상황에서 테러리스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 말임을 염두에 두자.
- ↑ 불법으로 저질러 진 참수형이기 때문에 처형 등의 용어 보다는 참살(斬殺)이라는 표현이 더욱 정확하다.
- ↑ 정부의 이와 같은 결정에 대해선 당시 논란이 많았다.정부 결정을 찬성하는 측에서는 고작 한 사람 때문에 해외파병과 같은 국가 중대사를 철회하기는 무리라는 의견이었고, 반대측에선 단 한사람의 국민이라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정부가 아무 죄 없이 붙잡힌 사람을 고작 남의 나라(미국)의 전쟁을 위한 파병 때문에 죽게 내버려두었다는 의견이었다
- ↑ 그러나 김선일씨가 납치되어 살해당한 것은 전형적인 테러이다. 테러와 인질극에 대해선 국가의, 타협 없는 강경한 대응이 일반적으로 요구되는데 그 이유는 만일 국가가 테러에 협상을 하기 시작하면 테러 단체가 '테러는 나보다 강한 상대에 대한 효과적인 협상 수단이다.'라고 인식하여 계속해서 테러를 저지르고 인질극을 벌이는 악순환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고인과 가족들에게는 매우 미안하고 안쓰러운 말이지만, 만일 대한민국 정부가 인질 한명 때문에 파병 문제같이 중요한 군사적, 경제적 사안을 철회했다면 테러가 더 빈번하게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짐은 물론이고 테러 조직과 협상했다 하여 미국과 다른 국가들의 국제적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 ↑ 그리고....알다시피 한국군은 전투병력이 아닌 치안유지 및 재건지원 명목으로 파병되었다. 평화유지군이 아니다 애초에 이라크에는 평화유지군이 파병된적이 없다.....미군이 원하던 전투병 파병은 일본이나 다른 친미국가들도 상당수 거부해 한국처럼 비전투 치안유지군 파병을 하는 정도였고, 스페인은 대대적인 테러로 보복받으면서 전투병을 전면 철군하고,파병을 결의한 여당이 다음 선거에 참패한 경우같이 결국 전쟁은 누구도 이득을 보지 못했다. 몽골은 전투병을 파병했지만 소수병력을 보낸 수준이라 전투에 그리 도움이 되지 못했다.그나마...이득을 본거라면 다에쉬라는 막장들일 것이다.
- ↑ 그를 순교자로 봐야하는지에 대해선 그 당시 교계 내부에서도 의견
- ↑ 2003년 11월 30일 이라크 전기 관련 공사 파견업체 오무전기 직원 김만수·곽경해가 총에 맞아 숨진 참극이다. 하지만 오무전기는 영세기업으로 보상금도 제대로 못 치루었고 고용업체인 미국 웨스팅하우스, 워싱턴인터내셔널 사의 외면 및 산재보험도 거절당했고 유족들도 법정 투쟁을 벌여 2006년에서야 미법원 승소를 거두면서 미국 고용업체들에게 보상금을 받았다. 이 당시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직원 이상민은 이후 인터뷰를 통하여 김선일 사건을 거론하면서 "일부 교회들의 보상 관련 시위도 있던 김선일과 달리 오무전기 두 사람 이름은 잊혀지고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며 분노했었다. 참고로 오무전기는 그 뒤로 모든 비난을 다 뒤집어쓰고(여기도 잘못은 없는 건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영세기업으로 용역된 것이었고 법정 소송 중에 밝혀진 조사에 의하면 회사 사정도 어려워서 보상금을 줄 여력도 되지 못했다) 사장은 홧병으로 쓰러져 몇 해 못가 사망했고 결국 사장의 부인이 사업을 이어나가게 되었다 [1].
- ↑ 국가정보원 최근 테러의 대상·수법·수단 분석, 2005.9
- ↑ 이때 당시의 국내 거주 아랍인들이 자주 다니던 이태원 일대에서는 아랍인들의 발길이 한시적으로 뚝 끊어지기도 했다. 레바논에서 유학을 온 어느 아랍인의 증언을 들어보자면 흉흉한 분위기가 걱정되어 학교나 가게를 갈 때 말고는 외부 출입을 절대적으로 삼갔다고 한다.
- ↑ 이미 납치된 상황에서 테러리스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에 그가 한 말로서, 본인의 의지가 그대로 표현되었다기 보다는 납치 중인 테러리스트들에게 압박을 받았거나 검열되는 등 감시 중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실제 유언으로서 봐야 할지조차 분명하지 않다.
- ↑ 한 번 잃은 목숨은 돌아올 수 없다. 그리고 국익을 말하지만, 그 전에 국가가 존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국민의 안전을 우선시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 대한민국은 그를 살릴 의무가 있었다. 다만 위험지역인 것을 알면서도 그곳으로 간 것은 그의 과실이 존재하기는 한다.
- ↑ 다만 저런 마지막 모습 덕분에 한국 교회들이 말하는 것처럼 피해자가 순교했다는 주장은 조금 억지라고도 할 수 있다. 진정으로 복음 전파를 위해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하고 위험 지역에 들어갔다면 저런 식의 유언 아닌 유언을 남기진 않았을 것이다. 즉 선교가 목적이 아닌 직장 때문에 이라크에 들어갔다고 보는 것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
- ↑ 해당 이력서를 보면 알겠지만 적어도 선교 준비의 한 과정으로 이라크에 입국했다는 심증을 얻을 수 있다.
- ↑ 사실 유일신과 성전은 바로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의 전신이다.
- ↑ 참고로 청부 살인의 경우 살인 가담자에 대한 처벌은 교사범과 동일하거나 더 가혹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장 사모님 청부 살해 사건에서 사모님 윤씨의 명령을 받아 여대생을 살해한 두 범인은 교사범과 같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