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옥

이름김자옥(金慈玉)
출생1951년 10월 11일, 부산광역시[1]
사망2014년 11월 16일
가족배우자 오승근, 딸 오지연, 아들 오영환, 동생 김태욱[2]
학력배화여자중학교
배화여자고등학교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 (중퇴)
데뷔1970년 MBC 2기 공채 탤런트
취미독서, 공상
종교개신교

1 소개

대한민국의 배우. 말년에는 당연히 중년의 여인 역을 주로 맡았지만, 사실 1970년대에 하이틴 스타로도 활약한 경험이 있다. 귀여운 외모에 호감 가는 인상은 말년에도 잘 드러났다. 생각해보면 당연하게도, 김자옥뿐 아니라 현재 아줌마, 시어머니로 나오는 많은 중년 이상의 배우들이 젊은 시절엔 그 시절의 아이돌들이었다. 중년 노년 어머니 역할을 많이 하는 여배우들 중에서도, 젊었을 때 연기커리어가 상당히 화려한 편으로, 사실 데뷔 때부터 외모뿐만 아니라 연기력까지 훌륭하다고 호평 받았던 흔치 않은 경우이다. 지금은 레전드 거성이 된 고두심보다도 20대 시절 연기 커리어나 연기력 평가가 확실히 더 위였을 정도.[3]

부드럽고 촉촉한 목소리로도 유명하다. 덕분에 오래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도 있으며, 동생이 아나운서다.

주로 드라마에 많이 출연한 배우로 알려져 있지만, 영화에도 많이 출연한 경력이 있다. 70년대에는 정부의 3정책에 의해 상당히 야한 영화에도 나왔었다. 예능 프로그램에도 종종 나왔는데, 1996년 MBC 코미디 프로그램 《오늘은 좋은날》에서 조혜련, 서춘화 등과 출연해 공주병 여고생 컨셉으로 열연한 것이 대 히트 하였다.[4] 그 여세를 몰아 1996년 태진아의 도움으로 《공주는 외로워》라는 곡으로 가수로 활동하기도 했었다. 앨범이 꽤나 팔리는 등 꽤나 히트 쳤고, 이 노래를 통해 당시 우울증도 나았다고 한다. 중견 배우였던 그녀는 이를 계기로 또 한 번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때의 활동 때문에 공주병 기믹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배우가 되었다. 한 번 들어보자.

사실 컬트 팬들 사이에서는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의 자옥 공주로 더 유명하다.

2 가족

아버지가 시인 김상화이다. 어릴 적 아버지의 바람기가 심해, 가족 모두가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심지어 그녀의 어머니가 김자옥에게, "네 아버지 죽었으면 좋겠다", "밤에 화재가 났을 때 (방에서 자고 있던)네 아버지를 안 깨우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었다" 고 말했다고 했을 정도. 그러나 김자옥이 해석하기로는, 어머니가 아버지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미움도 컸을 수 있다고 했으나, 본인도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미워서 편지에도 아버지를 해치겠다고 써서[5] 아버지 방에 두었다고 했었으니, 어쨌든 힘들었던 가정환경이었던 건 사실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남편은 가수 오승근[6][7]. 김자옥과 오승근 각자에게 모두 재혼이었으며, 오승근 사이에서 아들 1명을 낳았다. 그리하여 오승근의 전처 소생 딸과, 재혼 후 낳은 아들까지 1남 1녀를 슬하에 두고 살았었다.

그의 형제도 이쪽 분야에서 일하는데, 김자옥의 9세 아래 남동생은 SBS의 개국 멤버로 입사하여 활동 중인 김태욱 아나운서다. 채시라의 남편으로 알려진 가수 출신의 사업가 김태욱과는 동명이인이다.

3 투병과 그 이후

2008년, 대장암 진단을 받아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고 회복되어 연예활동을 재개했다. 대장암에서 회복된 후 시트콤지붕 뚫고 하이킥》에 출연한 것을 시작으로, 꾸준히 드라마, 영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활동을 거의 쉬지 않았다.

2013년 말, tvN의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에 출연하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는데, 그동안 암 수술과 공황장애 등을 치료하며 꽤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밝혔다. 실제 방송에서도 다른 연기자들이 많이 챙기는 모습이 나온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방영된 SBS 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도 출연했다.하지만 《꽃보다 누나》 촬영과 방송에 이어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결국 그녀의 마지막 출연 프로그램이 되었다. 마지막 영화 출연작은 같은 해 2월에 개봉한 홍상수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2014년 봄, 《세 번 결혼하는 여자》 종영 후 한동안 휴식기를 가졌는데, 사실 전에 발병했던 대장암이 폐와 임파선 등 다른 장기로 전이된 상태였다고 한다.[8] 결국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어, 2014년 11월 16일 향년 63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이후 오승근은 서울을 떠나 김자옥의 장지가 있는 분당신도시로 이사했다고 하며, 김자옥이 죽은 후 장남이 결혼식을 치르게 되어 안타까움을 주었다.

2014년 연말 방송 3사 연기대상에서 모두 공로상을 받았다. 12월 30일, MBC 연기대상과 31일 SBS 연기대상에서는 아들 오영환이, SBS와 같은 시간 진행된 KBS 연기대상에서는 남편 오승근이 고인(故人)을 대신해 수상했다.

추모 공연을 따로 한 것은 없으나, KBS의 특별프로그램 《트로트대축제》에서 오승근이 《떠나는 임아》를 노래하면서 고인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

4 트리비아

여담으로 1970~1980년대 오뚜기의 전속 모델로 활동했다. 김자옥이 나온 제품광고 중 오뚜기 도마도 케챂 광고에 자주 출연했는데, 이 광고 내용이 나름 충공깽이다. 다름 아닌 깍두기에 케찹을 넣어 만드는 조리법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맛있다고 한다. [1]실제 방송도 탄 적 있으며, 시식 반응도 괜찮았다.
  1. 본적은 대구광역시지만, 피난을 와서 부산에서 태어났다.
  2. SBS 아나운서. 배우 채시라의 남편과 동명이인으로, 김자옥과는 무려 9세 아래다.
  3. 사실 고두심은 젊을 때도 깨끗한 외모에 연기력을 갖춘 괜찮은 젊은 여배우들 중 하나였으나, 동시대의 다른 여배우들의 스펙이 너무 뛰어났다.때문에 당대 청춘 탑스타였다라기보다는, 중년이 되면서 더 연기력의 진가가 훌륭하게 발휘되어 크게 인정받는 배우 유형인데, 김자옥은 청춘기에도 잘나가던 스타였던 유형이다.
  4. 예를 들자면, 입원하신 선생님의 문병에 돈을 모아 꽃을 사가자고 하자, 김자옥은 이렇게 말한다. “어머, 꽃을 돈 주고 사는 거였구나! 난 남자애들이 나한테 갖다 주는 건 줄 알았어” 라는 식이다. 그때 비명을 지른다거나 하며 날뛰는(?) 것이 조혜련, 서춘화 등의 반응. 일부에서나 쓰던 공주병이라는 말을 온 사회로 퍼뜨린 장본인이다.
  5. 김자옥 본인이 방송에서 "나는 아버지를 어떻게 하고(해친다는 의미) 감옥에 갈 거야" 라고 썼다고 한다.
  6. 1970년대 포크 그룹 금과 은(투에이스) 멤버로 활동해, 이후에는 트로트 가수로 전향. 《빗속을 둘이서》, 《사랑을 미워해》, 《있을 때 잘해》, 《내 나이가 어때서》 등의 히트곡이 있다. 트로트 가수로 바꾼 것 때문에, 젊은이들은 그냥 트로트 가수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금과 은’이었을 때의 인기가 더 많았다. 김자옥 남편으로 주목받기 전까지의 인기로 보자면 그러하다.
  7. 참고로 전 남편은 가수 최백호. 대표곡으로 《영일만 친구》, 《낭만에 대하여》 등이 있다.
  8. 사실 생전에 스스로 대장암 수술을 받았을 때의 상황에 대해 방송에서 이야기하며, 이미 대장뿐만 아니라 폐로 전이된 부분도 같이 수술해서 제거했다고 밝혔었으니, 아마 그때 전이된 부분이 완전히 발견되지 않았거나 완전히 제거된 것이 아니었던 것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