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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홍상수(洪尙秀) |
출생 | 1960년/1961년[1] 10월 25일, 서울특별시 |
학력 |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중퇴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터바버라대학원 미술과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대학원 영화 1년 수료 시카고예술학교 대학원 예술학 석사 |
데뷔 |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
가족 | 아버지 홍의선, 어머니 전옥숙 |
형제 | 2남 1녀 중 셋째 |
1 인물 소개
한국 예술영화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영화감독
2016년을 나쁜 의미로 뜨겁게 달군 논란의 영화감독
대한민국의 영화감독. 한국형 누벨바그 영화의 총아라는 평가를 받았었다.
모호하게만 알려져있으나 가정환경이 굉장히 비범한 사람이다. 스스로도 잘 말하지 않는 부분이지만 그의 가정환경을 살펴보면 이게 그의 유년기에 얼마나 강한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다. 홍 감독은 1960년대 영화 제작자 부부인 홍의선(父), 故 전옥숙(母) 아래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부친 홍의선은 육군 중령 출신 영화 제작자로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 제작 스튜디오를 설립한 사람이다. 전옥숙은 영화, 방송 제작자로 후지TV의 서울지국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대쪽같은 성미와 호탕함, 리더십으로 따르는 사람도 많았던 듯. 미인이기까지 했다고. 故 전옥숙 사진 1968년 경향신문에 실렸던 사진
흥미로운 것은 부부가 각자 정치적 성향이 굉장히 달랐다. 홍의선은 아무래도 군 장교 출신이니 보수우익 성향이었고 전옥숙은 정반대였다. 故 리영희 교수가 누님이라고 깍듯이 존경했다고. 그러나 호탕한 성격으로 우익인사들에게도 우호적이었기에 2015년 7월 9일에 전옥숙이 86세로 세상을 떠날 당시 보수 언론 뉴데일리가 꽤 긍정적인 기사를 내며 명복을 빈다는 글을 썼다.
어쨌거나 전옥숙이 시인 김수영의 뺨을 칠 정도로 괄괄한 성격에, 밤에 술 마시다가 YS를 부르면 YS가 금방 나타났다고 할 정도로 워낙 당대의 정치-문화 계통으로 마당발이어서 굉장히 요란한 집안 환경에서 자란 듯 하다. 부부가 해방-전쟁 후 겨우 다시 싹 트던 근현대 문화의 핵심인물들이었으니 잘 사는 집안도 집안이지만 집안이 갖는 문화-예술적인 권력과 특권 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화 《오! 수정》 당시 부잣집 도련님들금수저들의 심리와 행태에 관한 살아있는 디테일은 멀리서 온 게 아닌 듯 싶다.
여러 인터뷰에서 밝히지만 어릴 때 방황했으며,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음주와 비행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편해지긴 하지만 확실히 이 시절의 경험이 그를 오랫동안 사로잡았던 듯. 어디에도 잘 속하지 못하고 도덕적-문화적 결벽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래서 책도 읽어보고 나름대로 사회가 권하는 방안(지금으로 치면 처세술이나 자기계발 같은 내용)을 열심히 시도해보았지만 관계는 더욱 악화되고 자신은 자신대로 고통스러웠다. 그때서야 자신의 타고난 기질을 인정하면서 모든 통념과 틀을 버리고 세상의 모든 것들을 자기만의 직관적인 눈으로 보고자 하는 노력을 했다고 한다. 이 과정만 거의 몇 년이 걸렸다고. 그의 가치관 중 가장 중심을 차지하는 부분이다. 자기 계발, 혹은 힐링에 있어서는 거의 자신만의 세계를 찾아낸 인물. 힐링이라기보다는 어떤 태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대학도 갈 생각없이 빈둥거리던 중, 작곡이나 해볼까 했는데 입시 기간을 놓쳐서 포기하고 다시 빈둥거렸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머니의 문화계 파워가 워낙 엄청나서 연극연출가 오태석이 "너는 연극 연출하면 잘 어울리겠다"라는 권유를 듣고[2]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해서 연극 연출을 배우려고...하나 강압적인 과 분위기와[3] 무기력한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서 1년 만에 자퇴한다. 이 당시의 그는 굉장히 소심하고 연약하고 감성적이었다고(...) 술회한다. 아직도 그 때를 떠올리면 혼자 학교 앞 술집에 앉아서 한없이 답답함에만 빠져있는 자신의 상태만 생각난다니 학교가 꽤나 싫었던 듯.
결국 그는 미국에 도피성 유학을 가서 캘리포니아 예술대학과 시카고 예술 대학에서 공부한다. 거의 10년동안 유학 생활을 했는데, 그의 세계관과 가치관은 모두 이 시절 확립되었을 정도로 중요하고 치열했던 시기였다고 한다. 미국 유학 시절에 영화 말고도 미술, 문학, 음악 등 전반적인 예술 분야에 관심을 기울였던 듯 하다. 그가 사랑해 마지 않는 예술가들(세잔, 지드), 미국의 대문호들(벨로, 헤밍웨이) 등은 모두 이 시기 때 탐닉한 걸로 보인다.[4] 그리고 이 시기에 결혼도 했다. 25살 때인 1985년에 동갑내기 여자와 결혼을 했다. 부인이 미국 영주권자였기 때문에, 병역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영화에 눈을 뜨고 영화를 파기 시작한 것은 20대 후반이나 돼서였다고 한다. 그렇다고 카메라를 들고 어디든 달려가는 씨네키드는 아니였던 모양. 대학 졸업 과제로 실험 영화 '개미 쳐다보는 여인'과 '사과 먹는 여인' (...)등을 찍었다. 말 그대로 개미보는 여자와 사과먹는 여자를 롱테이크로 찍은 실험 영화였다. 원래 사과 먹는 여인은 고기 먹는 여인(...)이였는데, 모델이 채식주의자라고 해서 뒤늦게 사과로 바꿔서 찍었다고 한다. 이 영화는 제출 기간에 턱걸이로 냈고, 그 외에 기간도 오로지 생각과 구상으로 보냈다고 한다. 그의 기질과 즉흥성을 나타내는 단적인 예.
1991년 프랑스 파리에 1년간 체류하기도 했다. 30줄에 들어선 나이인 1992년에 한국에 돌아와서는 어머니가 설립한 '시네텔 서울'에 들어가 PD 생활을 하였다. SBS에서 방영했던 다큐 《작가와 화제작》[5]이 홍상수가 만든 프로그램. 이외에도 한양대학교, 중앙대학교, 성균관대학교에서 강사 생활을 하기도 했다.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발표하며 영화 감독으로 데뷔하였다. 구효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발표되자마자 비평계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일약 주목받는 감독으로 떠올랐다.
이후 1998년 《강원도의 힘》으로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분에 초청되어 프랑스 비평가들을 사로잡았으며, 몇 년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시나리오 교수로 임명되어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 시절에 졸업한 영화과 학생들의 졸업 작품이 모두 홍상수화되었다는 도시 전설이 있다.
이후 2004년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로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으며, 2005년에는 《극장전》으로 칸 경쟁 부분 연속 진출에 성공했다. (이기우 인터뷰 기사) 결국 2010년 63회 칸 국제 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특별 언급 상을 받게 된다. 2015년 로카르노 영화제 대상인 황금표범상을 받았는데 이는 1989년 배용균이 감독한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이후 26년만에 한국영화로 이 상을 받은 것이다.[6]
지금도 꾸준히 영화 만들고 있는 중이지만 흥행 부진 탓인지 사재를 털어서 만든다는 안습한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최근엔 지자체에서 투자를 받아서 찍는다고 한다. 또한 최근 개봉한 몇 편의 영화에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 스타일에 반한 배우들이 노 개런티로 출연함으로써 제작비 절감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노 개런티로 출연한 배우들의 목록을 보면 그야말로 위엄이 쩐다. 고현정을 시작으로 김태우, 정유미, 문성근, 이선균, 김상경, 유준상, 하정우, 정재영, 김상중, 문소리, 엄지원, 예지원, 김강우, 김규리, 윤여정 등 독립/예술 영화 진영에선 찾아보기 힘든 캐스팅이다.
2011년 개봉작 《다른 나라에서》의 주연 배우인 이자벨 위페르(프랑스의 대표 세계구급 여배우 중 한 명. 칸 여우주연상 2회) 역시 노개런티로 촬영했다. 한국에 올 때 수행원 한 명도 없이, 가방 하나만 끌고 인천국제공항에서 촬영지까지 혼자서 왔다고 한다. 흠좀무 그리고 2013년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서는 제인 버킨이 출연하였다. 이 사람은 잉글랜드의 가수,영화 배우,각본가로 유럽 대중문화계의 아이콘적인 존재.[7] 물론 노개런티. 버킨이 다른 스케줄차 방한하였을 때 홍감독에게 개인적으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고 한다. 지금 촬영하는 영화가 있다고 하니 자신이 출연할 수 있겠냐고 먼저 물어봤다고... 흠. 그리고 당연하게도 즉석 캐스팅.
2013년에는 일본의 배우인 카세 료와도 함께 영화를 찍었다. 원래부터 카세가 홍상수 감독의 작품을 좋아했었다고. 그리고 우리의 생각보다 더 프랑스에서 네임드 있는 감독으로 한국 문화를 좀 안다 싶은 사람들은 홍상수 감독 이야기를 꼭 한다. [8] 로맨스의 일주일 예지원 편에서도 가게 주인이 예지원을 홍상수 영화에서 봤다고 사진을 요청하거나 예지원의 파트너가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예지원이 출연했다고 하자 놀라워할 정도.
홍상수 감독의 데뷔는 지금까지도 전설로 회자되고 《강원도의 힘》까지만 해도 나름 대중의 관심과 평론가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다. 하지만 점점 그의 반복되는 영화 연출 방법에 지친 대중들이 그의 영화를 외면하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의외로 흥행은 알차게 거두는 감독이다(밑에 필모그래피 참고). 최근 2010년대 들어서 개봉한 5편의 영화 《밤과낮》,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하하》, 《북촌방향》, 《옥희의 영화》의 경우는 전작들에 비해 관객들이 보기에 굉장히 편한 영화가 되었으며, 어느 정도의 대중성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평가받는다.
홍상수 감독은 처음에 자신의 영화들이 모두 수익을 내는데 실패하자, 나름대로 영화를 계속 찍기 위한 방법을 모색 했다. 예를 들어 감독 본인 포함 5명을 넘지 않을 정도로 스태프를 줄이고, 카메라도 좋아하는 필름을 버리고 디지털 카메라를 쓰기 시작했다.[9] 거기에 예술적 명성을 미리 얻은 덕에 배우들도 노개런티로 출연해준다. 그리하여 최근의 영화에서는 심지어 흑자전환(!!!)을 이룩했다.
재미있는 건 처음에는 경제적 이유 떄문에 이렇게 스태프와 제작비를 줄이기 시작했지만, 이게 오히려 예술적으로도 이익이 되었다는 점이다. 스태프가 적고 투자비도 소액이다보니, 외부 간섭 없이 감독이 맘 편하게 자신의 의도대로 영화를 이끌 수 있게 되었다. 자잘한 의견교환, 조율도 블록버스터에 비해 훨씬 더 빠르게 진행된다고 한다. 홍상수 감독은 앞으로 자신이 더욱 상업적으로 실패할 경우에는 혼자서 100만 원 가지고라도 영화를 만들 의향이 있다고 한다. 실험영화 감독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 소통을 유지하는 한에서 자기 자신을 위해 영화를 찍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데뷔 이후 영화적으로나, 품행으로나, 외모적으로나(...) 느리지만 꾸준히 계속 변화해오고 있는 사람이지만 대중들에게는 '징그럽게도 그대로'라고 욕먹는 경우가 잦다(...). 근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홍상수 영화의 99%는 거의 대부분 술을 마시는 장면이 들어가며 여자가 동시에 다른 남자도 사랑하고 있거나, 남자가 유부남이거나 현실적 상황이 안 맞는 등 이뤄질 가능성이 거의 없는 남녀의 스토리가 꼭 나오기 때문이다. 단지 다른 미장센을 가지고 동어반복적으로 반복되니, '징그럽게 그대로'일 수 밖에... 섬세한 터치나 세세한 것이 바뀌고, 배우가 바뀌어도, 본질은 안 바뀐다고 느낄 수 밖에 없다.
물론 일부의 예술 영화가들 혹은 평론가들은 영화를 이미지와 편집의 예술로 보는 경우가 있다. 역사적으로도 영화의 오리지널리티를 살리기 위한 방편으로 예술 영화 감독들이 서사의 종속에서 벗어난 이미지의 영화를 만들려는 시도를 여러번 했다. 하지만 그런 작품이 꼭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문학에서의 서사와 영화에서의 서사는 완전히 다르기에 서사를 차용하지 않는 것이 영화의 본질을 추구하는 노력이 아니라 문학으로는 표현 할 수 없는 방식의 내러티브를 펼쳐냄으로 거장의 반열에 오른 경우도 있다. 《대부》의 경우, 디테일한 내러티브는 마리오 푸조의 원작 소설이 더 좋으나 대신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영화는 완벽할 정도의 전개를 보여준다. 다만 홍상수는 위에 언급한 이미지를 추구하는 계보에 올라 있는 감독이며, 그렇기에 몇몇 평론가들이나 영화 마니아들이 보기에는, 홍상수 영화는 매 영화마다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대중에게 있어서 지겨워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대중들도 영화 예술의 본질이 이미지라는 것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느끼고 있다. 일례로 비슷한 계보인 이명세 감독의 경우 굉장한 비주얼리스트라서 너무 단촐한 내러티브로 욕을 많이 먹긴 하지만 계속해서 비슷한 내러티브를 써먹지는 않는다. 그가 감독한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은 영화 마니아들이나 평론가들 뿐만 아니라 각종 대중 매체들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저 홍상수 본인이 직접 줄거리를 요약할 수 없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밝힌 적이 있을 만큼 원래 줄거리 자체에 관심을 기울일 생각이 없는 듯하다.
2 불륜 논란
2016년 6월 21일, 배우 김민희와의 불륜설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아내가 치매 걸린 시어머니를 4년이나 모셨을 정도로 조강지처였는데, 홍 감독은 2015년 9월 30일 문자 한 통 보내고 집을 나간 뒤 다시는 아내에게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아내에게 "이제 다른 사람과 살고 싶어. ○○도 나가서 남자들 좀 만나봐."라 말했다고 루머가 돌았다.관련 기사
2016년 6월 22일에는 김민희에게 돈을 쓰느라 딸 유학비마저 주지 않고 있다는 주장까지 제기되었다. 기사 아직 당사자 2인의 입장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현재 김민희는 미국에 체류 중이라고 하며 홍상수 감독 역시 해외 영화제 일정으로 해외에 있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두 사람의 불륜은 영화계에 암암리에 알려져있던 사실이었고 홍상수 감독의 지인들이나 연예업계 종사자들도 이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한다. # 홍상수의 배우자의 주장으로는, 자신이 찾아간 김민희가 "그러게 남편 관리 잘하지 그랬어요."라는 망언을 했다고도 찌라시가 돌았다. 이 발언은 증거 없는 일방적인 주장임을 유의할 것. 또한, 소원이 말년에 젊은 여자와 사귀는 것이라는 홍상수의 평소 언행이 주목받기도 한다.
그러나.....
- 2016년 7월 20일, 리얼스토리 눈에서 홍상수 감독의 부인이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홍상수와 김민희 관련 보도가 처음 대중적으로 나오던 때에 각종 언론에서 본인(부인)이 얘기했다고 하는 단독 보도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정작 자신은 언론 매체와 인터뷰를 한번도 한 적이 없었으며 개중 일부는 악의적 편집 등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관련 기사들의 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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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언론에 단독 보도랍시고 떠돌아다니고 있는 막장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김민희의 망언이나 비밀 결혼설 등은 당사자와는 얘기 한 마디도 나누지 않은 기자들의 소설이라는 것이다. 진짜 천하의 개쌍놈들은 기레기들이었던 것. 결국 이런 언론의 무분별하고 무개념스러운 소설보도 행태 때문에 애꿎은 홍상수 감독의 가족들과 김민희의 가족들만 더 고통받게 되었다.
사실 홍상수 감독은 스캔들을 일으킨 전적이 많다. 다시 말해서 여성 편력이 굉장히 심한 편이었다.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 전, 대학교에서 강사를 할 때도 학생과의 스캔들이 있었고, 건국대학교에서 영화과 교수를 맡을 때에도, 한예종 영상원 시절에도 유사한 스캔들이 발생했다고 한다.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고 난 이후에도 자신의 영화에 출연한 여배우들에게 치근덕거린 적도 많았다는 카더라도 존재한다. 《해변의 여인》에 촬영 당시에 대한 고현정의 인터뷰[10]를 보면 자신의 영화에 출연한 여배우에 대한 홍상수의 치근덕거림을 짐작할 수 있다. 고현정 의문의 1승
“재미있는 게,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아마 홍상수 감독 페이스에 말려들지 않은 배우는 저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어요. 예컨대 저는 감독님한테 ‘나한테 술 먹이지 마라, 술은 회식 자리에서 내가 알아서 먹는다. 대신 연기할 때 원하는 게 있으면 얘기를 해라. 나 할 수 있다. 그러니 이상한 현학적인 말로 나를 헷갈리게 하지 말아라. 나 그런 말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 다 안다’ 했어요.”(웃음)
실제 일어난 스캔들과 유사한 상황들이 그의 영화 속에서 자주 변주되기도 한다. 《옥희의 영화》의 '주문을 외울 날'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우리 선희'에서도 교수와 학생의 사랑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김민희와 불륜의 계기가된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의 경우 아예 유부남 감독이 여성에게 껄떡거리는 자전적인(?) 이야기다. 그러다보니 데뷔 초부터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홍상수의 영화에서 여성은 항상 남성의 유혹 대상으로 그려져 왔으며,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에 대한 '준비된 존재'로 설정되어 왔다'는 비판이 있었다.
하여튼 치매를 앓고 계시는 시어머니를 무려 4년이나 돌본 아내와 대학생 딸까지 둔 가장이 나이가 22살이나 어린 여자 배우와 불륜 관계에 빠졌는 사실에 대해서 많은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3 트리비아
작년 2015년에 모친 전옥숙이 사망하면서 상속받은 유산이 1,200억이라고 하는데, 버젓이 뉴스링크로 떳고 검색도 되지만, 불행히도 그게 카더라 통신이라는 또 다른 카더라가 있다. 모친의 재산 1200억의 사실여부도 근거가 없지만 사실이라 하더라도 홍상수 3남매(형, 누나)가 나눠갖고 상속세 내면 액수는 훨신 줄어든다. 어찌됐건 확실한건 1200억이 아닐 지 몰라도. 육군 중령의 아버지와 연극영화계에서 한가닥 한 어머니에게 부족하지 않을 만큼 유산을 받은 건 확실하다. 도피유학이 시작이었지만 어찌됐건 10년동안 유학을 할 가정형편이었으니. 1200억이 사실이라면 외동딸 유학비 끊는 일은 없었을듯. 유학비 끊은 문제는 돈과 무관하다. 스티브 잡스도 리사의 대학생 등록금과 학비를 지원하지 않았다. 잡스가 돈이 없었겠는가
참 후덕하게 생겼(었)다. 2015년 현재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가 수상을 하게 되어 프레스에 비친 모습은 건강을 염려할 정도로 야윈 모습이 되었다(...). 모친상 이후 체중이 급격히 줄었는데 본인이 이 모습을 꽤 마음에 들어해서 유지하는 중이라고 한다.
늘 후덕한 신선같은 모습이지만 데뷔 시절만 해도 굉장한 독설가에 달변가였다. 어느 영화 잡지 편집장이 홍상수 데뷔 최초의 인터뷰를 회고하길 나는 아직도 그 사람보다 자기의 영화에 대해 토나올 만큼 잘 설명하는 사람은 못봤다고. 욕도 많이 했고 음담패설의 황제였다고 한다.
다소 주류 영화계와 거리를 두는 인상이지만, 의외로 잘 나가는 영화 감독들과 친한 사이라고 한다. 한국 영화판 감독들이 모르는 사이가 없다. 배우들 사이에서도 선호도가 높아서 유명한 배우들이 노개런티로 출연하길 자청한다고 한다.
술을 굉장히 좋아해 영화에 등장하는 술은 모두 진짜 술이다. 그래서 촬영하다가 배우가 술에 취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옥희의 영화》에 등장하는 페트병 소주는 진짜 소주다. 원래 술집 한곳을 잡아 촬영을 하려고 했지만 여건이 안 되어 진구의 가방에 소주를 넣어다니는 걸로 설정했다. 진구 역을 맡은 이선균은 촬영 내내 소주를 홀짝홀짝 까며 좋아했다고. 그리고 《오! 수정》, 《생활의 발견》,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극장전》에서 배우들이 펼지는 취중 연기는 실제상황이다. 특히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엄지원은 술에 취해 구토하는 장면에서 괴로웠다고 회고했다. 그 외 《하하하》에서는 유준상이 관련 에피소드가 있다. 술에 잔뜩 취해서 큰아버지댁에서 꼬장을 피우다 쓰러져 자는 장면이 있는데, 진짜로 술에 취해서 한 연기다. 한마디로 촬영하다 진짜로 잤다. 그 장면이 맘에 안든 홍상수 감독이 여러번 테이크를 갔지만 자고 일어나서 점점 술이 깨는 바람에 결국 제일 처음 테이크를 사용했다고 한다.
원래부터 2년에 한 편 씩 낼 정도로 다작 감독이였는데 영상원 교수를 겸임하면서 영화를 찍기 힘들어서 결국 교수를 그만두고, 2008년부터는 1년에 하나씩 작품을 내고 있다.그리고 건국대 교수를 맡고 있다 그리고 그 틈이 갈수록 줄어들어 2010년에는 무려 1년에 두 편, 5월엔 《하하하》, 9월엔 《옥희의 영화》를 개봉하기에 이른다. 전에 비해 홍상수 감독의 최근 영화가 조금이나마 더 대중성을 띄게 되었고 대부분의 배우들이 노개런티로 출연했기에 제작비가 많이 절감되어서인 듯 하다. 사실 카메라를 모두 디지털화하고 스태프를 10~5명 혹은 그 이하로(!!!) 줄이면서 그야말로 남들 뮤비 찍을 돈으로 장편영화를 만드는 신화(?)를 써내려가고 있다.
시나리오를 쓰지 않지만 치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로케이션이 되는 현장에 몇번이고 둘러보고, 배우와 잦은 대화를 나눈 뒤 그때의 인상들을 바로바로 시나리오에 반영한다고 한다. 유준상의 엉까지마가 영화에 나온 이유. 《하하하》에서 유준상이 다리를 다치는 것도 원래는 없는 설정. 진짜로 다치면서 병원신이 생겼다. 배우들이 홍상수 감독과 자주 작업하고 싶어하는 이유도 이런 방식이 배우 본인에게 굉장히 좋은 경험이 되기 때문인듯 하다. 대신 애드리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배우들에게 (시나리오 상의) 대사를 그대로 정확하게 칠 것을 요구한다고 한다.
촬영은 항상 시나리오 내의 시간 순서대로 촬영하기로도 유명하다. 대개 영화는 로케이션과 배우의 사정에 따라서 왔다갔다 하면서 촬영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날씨가 바뀌면 바뀌는 대로, 풀리면 풀리는 대로 영화에 반영한다. 그러니까 《극장전》의 눈 내리는 장면은 기적에 가까운 씬. 그리고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의 마지막 장면에 또 한번 기적이 일어났다.
이런 독특한 영화 제작 과정은 유준상과 김상경이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서 이야기한 바 있다. 넘어져서 허리를 다쳤더니, 갑자기 다음날 한의원씬이 생겼다느니
작품과는 다르게 GV 등에서는 말을 잘 안하는 편이다. 데뷔 시절에는 꽤나 달변가였고 말도 많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부터 더 이상 자신의 생각이나 가치관을 잘 표현하지 않는 듯하다. "무언가를 발견하고 잘 포장했다고 해서 팔아먹지 말자"라는 말을 자주한다. 가끔씩은 운이 좋은 건지 기분이 좋은 건지 다정하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는 GV도 있는데, 특히 오랜 친구 사이인 허문영 평론가와 함께하는 자리에서는 자신을 잘 드러내는 편이다. 여자 인터뷰어와 함께할 때도 말을 잘하는 편이다(...). 이동진 평론가와는 궁합이 잘 안맞는 듯. 이동진이 워낙에 정리를 잘 하고 논리적인 스타일이라 그런 듯하다.
술자리에서 가위바위보 게임과 진실게임을 하기로 유명했다. 진실게임은 이제 접은 듯. 둘 다 술자리에서의 빈말과 괜한 소리들을 미연에 방지하고 엑기스만 뽑아내기 위한 게임인듯 하다.
지병으로 눈병이 있다고 한다. 《오! 수정》 촬영 때 병이 났고 수술을 받았지만 점점 멀어간다고 한다. 때문인지 각종 취재자리에서 강한 플래시가 비칠 때마다 괴로워하곤 한다(...).
딸을 굉장히 아낀다고 하며 술먹거나 사람만나러 허문영과 함께인사동에 자주 출몰한다. 하지만 압구정동에 살고 작업실은 청담동에 있다.
사실 홍상수 감독 영화가 망했다, 돈이 안 된다고 하는데 엄청난 저예산으로 만든 걸 생각하면 전혀 아니다. 밑에 작품들 관객 수치를 참고. 의외로 꽤 흥행에 알짜배기로 성공하는 감독이다. 게다가 밑의 영화들 대다수가 전국 30~50개 수준 상영관에서 개봉한 독립영화 수준 배급으로 소개된 걸 생각하면 절대로 망한 게 아니라 꽤 대박이다. 보통 1~2만 관객이 본 수준으로도 흥행작으로 평가받는 독립영화라는 걸 생각하면 흥행도 되고 해외에서도 평가도 좋다.
예전에는 19세 관람가가 당연한 수위의 영화들이었으나 2010년대부터[11] 홍상수의 작품세계가 많이 완화되었음에도 심의신청을 19금으로 넣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본인의 말을 옮기자면..
예전부터 늘 청소년은 내 영화를 안 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청소년이 제 영화를 봐야 뭘 느끼겠어요? 제 영화는 인생의 한 사이클을 산 사람, 20대 후반은 돼야 볼 수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죠. 출처
제가 청소년들을 무시해서가 절대 아니다. 제 영화를 이해하려면 어느 정도 인생 경험과 연륜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성인이 되려면 최소한 겪어야 할 일들이 있지 않나. 그런 걸 고려해 제가 영등위에 등급 신청할 때 처음부터 청소년 관람불가로 요청했다. 출처
본인이 운영하는 영화 제작사인 전원사를 차린 이후 내놓은 영화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후)의 포스터는 보통 한국 영화 포스터와 달리 태그라인이 일절 없고 배우/감독 이름과 영화 제목, 초대받은 영화제 마크만 있는 초심플한 디자인을 자랑한다. 딱 본인의 영화 세계관이 변하는 것과 궤를 같이하는듯. 가장 좋아하는 감독으로 꼽는 오즈 야스지로의 오프닝들과 점점 굉장히 닮아가고 있다.. 실은 홍상수 이름 하나만으로도 보러 갈 고정 관객들이 제법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별 도움도 안되는 싸구려 문구들 덕지덕지 발라서 포스터 보기 안 좋게 만드는 것보다야 이게 차라리 낫다. 일본 애들이 해외영화 포스터 어떻게 만드는지 보면 답 나오지
4 필모그래피
연도 | 제목 | 역할 | 비고 |
1996 |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 연출, 각본 | 37,103명 |
1998 | 강원도의 힘 | 연출, 각본 | 15,967명 |
2000 | 오! 수정 | 연출, 각본 | 90,257명 |
2002 | 생활의 발견 | 연출, 각본 | 124,682명 |
2004 |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 연출, 각본 | 284,872명 |
2005 | 극장전 | 연출, 각본 | 41,919명 |
2006 | 해변의 여인 | 연출, 각본 | 225,388명 |
2008 | 밤과 낮 | 연출, 각본 | 13,940명 |
2009 | 잘 알지도 못하면서 | 연출, 각본 | 39,914명 |
어떤 방문 - 첩첩산중 | 연출 | ||
2010 | 하하하 | 연출, 각본 | 57,234명 |
옥희의 영화 | 연출, 각본 | 37,086명 | |
2011 | 북촌방향 | 제작, 연출, 각본 | 45,560명 |
2012 | 다른나라에서 | 제작, 연출, 각본 | 30,590명 |
2013 |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 제작, 연출, 각본 | 35,461명 |
우리 선희 | 연출, 각본 | 68,770명 | |
2014 | 자유의 언덕 | 제작, 연출, 각본 | 39,091명 |
2015 |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12] | 제작, 연출, 각본 | 80,118명 |
2016 |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 연출, 각본 | 11월 개봉 예정 |
5 수상경력
연도 | 수상 | 작품 |
2016 | 산 세바스티안 국제영화제 |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
2015 | 제68회 로카르노 영화제 황금표범상 |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
2014 | 제36회 낭트 3대륙 영화제 골든 몽골피에(최우수작품상) | 자유의 언덕 |
2014 | 제34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최우수작품상 | 자유의 언덕 |
2014 | 제23회 부일영화상 최우수감독상 | 우리 선희 |
2013 | 제14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심사위원특별상 | 우리 선희 |
2013 | 제66회 로카르노 영화제 국제경쟁-감독상 | 우리 선희 |
2012 | 제21회 부일영화상 유현목영화예술상 | |
2011 | 제2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표창 | |
2011 | 제40회 로테르담 국제 영화제 리턴 오브 타이거상 | 옥희의 영화 |
2010 | 제19회 부일영화상 최우수감독상 | 하하하 |
2010 | 제63회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부문 대상 | 하하하 |
2008 | 제28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최우수작품상 | 밤과 낮 |
2008 | 제28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각본상 | 밤과 낮 |
2008 | 제17회 부일영화상 최우수작품상 | 밤과 낮 |
2008 | 제9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최우수작품상 | 밤과 낮 |
2007 | 제22회 마르 델 플라타 영화제 감독상 | 해변의 여인 |
2006 | 제9회 디렉터스 컷 시상식 올해의감독상 | 해변의 여인 |
2003 | 제29회 시애틀국제영화제 거장감독쇼케이스상 | |
2002 | 제47회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감독상 | 생활의 발견 |
2000 | 제45회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각본상 | 오! 수정 |
2000 | 제1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최우수작품상 | 오! 수정 |
2000 | 제1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각본상 | 오! 수정 |
2000 | 제13회 도쿄국제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 오! 수정 |
2000 | 제13회 도쿄국제영화제 특별언급상 | 오! 수정 |
1998 | 제19회 청룡영화상 감독상 | 강원도의 힘 |
1998 | 제19회 청룡영화상 각본상 | 강원도의 힘 |
1997 | 제42회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최고신인상 |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
1997 | 제20회 황금촬영상 시상식 신인감독상 |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
1997 | 제26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 타이거 상 |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
1996 | 제16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감독상 |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
1996 | 제17회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 |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
1996 | 제15회 밴쿠버국제영화제 용호상 |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
6 참고자료
<극장전> 극장에 도착하다 - 홍상수 인터뷰 ①
<극장전> 극장에 도착하다 - 홍상수 인터뷰 ②
인터뷰 홍상수 감독, 그의 추종자들을 만나다인터뷰 분위기가 홍상수 작품스럽다
6월1일 일곱 번째 특강, 홍상수 감독이 말하는 ‘홍상수 월드’에 영향을 준 인물들
말.2005.06. 극장전-정성일
theDVD 2005.07.한국영화의 작가주의-정성일
오!수정 키노 인터뷰
티티엘 반복 속의 차이 -정성일
말2002.04 생활의 발견 -정성일
서브 1998.04.강원도의 힘 -정성일
문화예술. 1998.05 강원도의 힘-정성일
뉴스플러스 1998 강원도의 힘-정성일
말.1998 강원도의 힘-정성일
미디어 오늘 1996 돼지가 우물에 빠진날-정성일
포스코신문 1996 돼지가 우물에 빠진날-정성일
북촌방향, 당신의 자리는 어디인가
- ↑ 60년생 인지 61년생 인지 불분명하다.
- ↑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 ↑ 당시 각종 데모와 운동이 한창이었는데 그런 데에는 관심이 없었던 듯 하다. 이 당시 자살 시도를 했다는 모호한 인터뷰도 있다.
- ↑ 때문에 한국 평론가들 사이에서 홍상수 영화는 민주화 항쟁 등으로 격렬했던 한국사와 무관한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흐름을 보인다는 지적이 많다.
- ↑ 이 다큐는 1992년 한국방송대상 '외주제작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 ↑ 국제영화제-아시아 쪽 영화제 빼고 서구권-로서 한국영화가 처음으로 대상을 받아 당시 엄청난 화제를 일으켰던 영화다.
- ↑ 전세계 수 많은 여성들을 애끓게 하는 그 유명한 에르메스 버킨백의 모티브가 된 그 버킨이다. 남편은 프랑스의 국민 작곡가 세르주 갱스부르이며 딸은 역시 세계적인 배우이자 가수인 샤를로트 갱스부르. 그야말로 프랑스 문화계의 로열 패밀리.
- ↑ 2008년 개봉한 여덟 번째 작품 《밤과 낮》의 경우 모든 촬영이 프랑스 파리에서 이루어졌는데, 오르세 미술관 관장이 홍상수 감독의 팬이어서 무료로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오르세 미술관은 대여료가 원래 2천만원이다.
- ↑ 때문에 홍상수는 인디 영화 감독이면서도 블루레이 발매율이 높은 감독이기도 하다. 디지털로 찍으니 오소링 과정도 간편하고, 블루레이 제작도 전원사 쪽에서 관여하기에, 싸게 내놓기 편해서인 듯. 물론 본인 성격상 코멘터리 같은 부록은 거의 없고 조촐하게 영화만 내놓지만... 사실 전원사 이전에도 당시로썬 보기 드물게 HD 텔레시네도 거친적 있고('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기존 엉성한 DVD가 HD 리마스터링되어 재발매될 정도로('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강원도의 힘'-'오! 수정'. 이 영화들은 블루레이로 재발매되기도 했다) 유달리 광매체 친화적인 감독이기도 했다.
- ↑ 진중권과 정재승이 쓴 ‘크로스 2’에 실렸다.
- ↑ 정확히는 자신이 직접 차린 제작사인 '전원사'를 통해 나온 작품부터.
- ↑ 의도적으로 띄어쓰기를 하지않은 제목. 홍상수의 말로는 제목이 너무 길어서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