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대한민국의 전 · 현직 정치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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羅碩昊
1934년 07월 12일 ~ 2011년 10월 31일
대한민국의 전 법조인(판사, 변호사), 정치인이다. 자는 청강(靑崗), 호는 향천(香天)이다.
1934년 전라남도 나주군에서 태어났다. 광주제일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행정고시,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이후 판사로 활동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전라남도 나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1972년 10월 유신 선포 직후 같은 신민당 국회의원이었던 조윤형, 김상현, 이세규, 강근호, 이종남, 김경인, 김녹영, 김한수, 조연하, 최형우, 류갑종, 박종률 등과 군부대 등에 끌려가서 고문당하였다. 이후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여당인 민주정의당에 입당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전라남도 나주군-광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한국당 이재근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82년까지 민주정의당 정책위의장을 역임하였다가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에 따른 당직개편으로 경질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이재근과 동반 당선되었다. 1987년부터 1988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이후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들의 모임 등 보수 단체에서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