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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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敬仁
1925년 08월 03일 - 2001년 09월 01일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호는 호당(祜堂)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조카이다.

1925년 전라남도 신안군(당시는 무안군의 도서 지역)에서 태어났다. 제2공화국 시절 목포시의회 의장을 역임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목포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강기천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되었다. 김대중이 지역구를 그에게 양보하고 전국구 2번으로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1972년 10월 유신 선포 후 같은 신민당 국회의원이던 김상현, 최형우, 김녹영, 나석호, 박종률, 이종남, 강근호, 류갑종, 조연하, 김한수, 이세규 등과 육군보안사령부에 끌려가서 고문당하였다. 이듬해인 1973년 신민당 유진산 총재의 지도노선에 반발하여 양일동민주통일당에 입당하였고 그 해 치러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일당 후보로 목포시-무안군-신안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강기천 후보와 당선되었다. 그 해 8월 양일동과 같이 일본으로 갔다가 김대중 납치 사건에 연루되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통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최영철 후보와 신민당 임종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전두환의 신군부가 집권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가 1983년 해금되었다. 1984년 민주한국당에 입당하였으나 전국구 국회의원 공천을 받는 데 실패하였다. 1987년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에 입당하였으나 역시 공천을 받는 데 실패하였다. 이후 통일국민당, 국민신당 등의 정당에 몸담았다.

2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1971제8대 국회의원 선거 (목포시)신민당-당선1973년 양일동민주통일당에 입당
1973제9대 국회의원 선거 (목포시-무안군-신안군)민주통일당-당선[1]
1978제10대 국회의원 선거 (목포시-무안군-신안군)민주통일당낙선
  1. 민주공화당 강기천 후보와 동반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