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이집트 대통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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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Attachment/Nasser.jpg
고대 벽화 속 이집트인들처럼 아이라인 화장이라도 하신 것 같다 눈매가 곱다.[1]
Gamal Abdel Nasser 1918-1970
이집트의 군인, 정치가. 아랍 연합 대통령.(1958-1970)
이집트 북부 지중해 연안 출신으로, 그가 4살 때인 1922년 이집트 왕국은 법적 독립을 얻었으나 수에즈 운하를 영국이 소유하는 등 여러모로 영국에 종속도가 높았다. 그의 친척 중에도 정치적 이유로 구속수감된 사람이 있었다. 이래저래 나세르는 영국을 별로로 평가하게 됐다.
2 초기 생애
나세르는 1918년 이집트 북부의 지중해 연안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우체국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집트는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했지만 영국의 보호령이 된 이집트의 독립을 어린 시절부터 꿈꿨다고 한다. 1939년에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영국과 이집트의 공동령인 앵글로 이집트 수단에서 근무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이집트의 독립을 위해 나세르는 훗날 이집트 대통령이 되는 안와르 사다트와 함께 영국과 싸우던 이탈리아의 첩보원 몇 명과 접촉하여 이탈리아군이 이집트로 침공했을 때, 동시에 영국을 몰아내기 위한 군사쿠데타를 일으키기로 계획했다. 그러나 이탈리아군은 패배했고 나세르의 계획은 실패했다, 그러자 나세르는 쉽게 이집트를 독립시킬 수는 없다고 판단하여 영국에 반대하는 모임인 자유장교단에 참가했고, 그곳에서 핵심적인 인물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이른바 제1차 중동전쟁이 시작되자, 소령 신분으로 아랍 연합군에 참가한 나세르는 아랍 연합군이 패배하자 이집트로 돌아왔고, 1952년 7월 23일에 자유장교단이 쿠데타를 일으켜 1953년에 왕정을 폐지한 후 제1차 중동전쟁에서 활약한 무하마드 나기브 장군을 수반으로 한 혁명지도평의회가 결성되어 이집트 권력의 중심부에 들어가게 된다.
3 임기 초기
1952년 나세르는 육군 대위였는데 이때 자신과 안와르 사다트 등의 자유 장교단이 지도력에 문제가 많던 파루크 왕정을 쿠데타로 퇴출시키고 그의 아들인 푸아드 2세를 꼭두각시왕로 즉위시켰다가 1953년에 폐위하고 나기브 장군을 대통령으로 추대했다. 나기브는 1954년 퇴출되고 나세르가 총리에 취임했다. 여담으로 파루크 1세 국왕은 와인 상자에 돈을 가득 채워 유럽으로 망명했고 유복한 생활을 누리다가 1965년 로마에서 점심을 먹던 도중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한마디로 육군 대위가 쿠데타를 일으켜 성공하고 정권을 장악한 것이다.[2]
나세르는 1952년 농지개혁을 추진하면서 왕정 치하의 정치, 경제 등 체재 개혁을 추진했고, 외교적으로는 범아랍주의를 내세우면서 이라크 시리아 등의 아랍국가들과 연대해 "바그다드 조약기구" 결성에 반대하며 아랍 각국간의 단결을 외치면서 아랍권의 지도자로 떠오르게 된다. 1955년에는 티토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지금은 크로아티아령인) 브리오니 섬에서 네루 인도 총리도 함께 3자회담을 가졌다. 그 이후 대표적인 제 3세계의 지도자 중 한명으로 손꼽혔다.
1956년에는 대통령에 취임했다. 1956년 1월에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난민처리를 놓고 이스라엘과 극비회담을 진행했고, 이스라엘과 화해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지만 이집트로 팔레스타인 난민을 거주시키는 것에는 반대했다고 한다. 한편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에 동시에 접근하며 서방으로부턴 아스완 댐 건설비용을 지원받았고 동구권에선 체코슬로바키아 산 무기를 많이 들였는데 아스완 댐의 천문학적인 건설비용과 동구권 무기를 들여오는 것에 자극받은 서방에서 건설 비용을 주지 않음으로 열받아서 동구권에 상당히 기울어졌고 같은 해 공식적으로 영국 소유이던 수에즈 운하를 전격적으로 국유화한다고 선언해 결국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과 한바탕 전쟁을 치르는데 이는 제2차 중동전쟁에서 확인하기를.
이스라엘에선 나세르를 상당히 호전적인 인물로 파악했고 모셰 다얀이나 다비드 벤구리온을 비롯한 당시 이스라엘의 수뇌부들은 나세르의 침공을 우려해서 여러차례 예방전쟁과 도발을 통해서 그를 자극했지만 아랍 통합과 아랍 내부의 영향력을 확보하려 했던 나세르는 이스라엘이나 가자 지구에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수에즈 전쟁과 6일 전쟁으로 잇달아 이집트와 전쟁을 벌인다. 그리고 이집트는 졌다.
이 제3차 중동전쟁 종전 3일 뒤 대국민 방송으로 패전의 책임을 지고 하야할 것을 표명했지만, 이후 3주 동안 거리로 국민들이 밀려나와 외치는 "나세르여! 우리를 버리지 마십시오!"라는 아우성에 "그렇다면 국민들의 의사에 따라 다시 복귀하겠다."(...)고 밝히고 다시 컴백, 대통령직을 수행했다.이게 뭔 코미디냐. 나세르의 정적, 이스라엘, 미국 등은 이 같은 과정을 나세르의 정치적 쇼로 분석하기도 했다. 실제로 권력자들은 자기를 대체할 만한 인물이 없다는 가정 하에서 짐짓 하야하는 척 하거나 하야함으로 자신의 권위를 재확인하였다.[3]
4 두 나라를 한 나라로
1958년 이집트와 시리아는 하나의 나라로 합쳐 아랍 연합 공화국이 됐다. 나세르 본인이 대통령이 됐다. 그런데 서로 다른 국가를 통합하여 운영하면서 많은 문제점이 발생했고, 이집트 쪽이 인구수가 월등히 많고 면적과 인지도가 앞서서[4]시리아 보다 우위를 차지하는 바람에 시리아측의 불만이 점점 늘어갔다. 결국 1961년 시리아가 쿠데타로 재분리해 3년 천하로 끝내 분열되었다. 그러나 다른 아랍 국가의 추가 가입 가능성을 의식해 아랍 연합 공화국의 국호가 계속 유지됐다.
5 임기 후기
1962년 북예멘 내전에 개입해 공화국 정부를 지지했고 많은 이집트 군대를 보내 공화파를 도왔다. 1967년 시리아와 대 이스라엘 포위진을 짰으나 많은 군대가 예멘에 묶인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으로 패배해 시나이 반도를 상실하는데, 이는 제3차 중동전쟁에서 확인하기를.
이후 나세르의 이집트는 이스라엘에 대해 이스라엘의 국가 승인불가, 이스러엘과의 교섭불가, 이스라엘과의 화평불가, 팔레스타인인의 권리회복을 내세우며 강경노선으로 택했다. 한편 나세르는 도피 중이던 나치의 전범을 보호하기도 했는데, 그 대부분은 이집트군과 정치기구의 양성, 그리고 반유대주의 선전물의 작성을 시켰다고 한다. 실제로 이집트 정보국에서 반이스라엘 선전을 담당한 전 나치당의 선전활동가인 요한 폰 레르스와 이집트 국가정치국의 전 게슈타포의 간부인 레오폴드 그라임이 있다. 이에 1960년대 이스라엘 정부는 이집트가 독일군의 과학기술을 입수해 로켓개발을 하는 것을 꽤나 우려했다고 하며, 나치의 과학자로 일하며 로켓개발을 담당했던 자를 이집트에 스파이로 보낼 정도였다고 한다. 다만 나세르는 나치에 적대적인 소련과는 우호관계였기 때문에 나치간부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큰 도움을 주지는 않았다. 소련과 중국, 체코슬로바키아 같은 동구권 및 공산국가들의 협력을 얻어 아스완 하이 댐을 건설했지만, 국내에선 수에즈 운하의 수입이 줄어들어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나세르 정권의 지지율은 하락세를 걸었다.
그러던 중 1970년- ↑ 실제로 이집트 사람들중에 아이라인이 진한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대다수의 이집트인들은 이걸 자기네 민족 특징이라고 매우 자랑스러워 한다. 게다가 눈동자색도 연녹색이면 최고로 예쁜 눈으로 쳐준다.
- ↑ 박정희는 5.16 쿠데타 당시 육군 소장이었다.
- ↑ 대표적인 것이 선조의 선위쑈와, 장제스의 잦은 하야다. 선조의 경우에는 왕조 국가의 특성상 "아, 너님 퇴위하시고 잘난 세자에게 왕위 주시죠^^"이럴 수 없다는 분위기를 적극 활용, 자신의 권위를 재확립했고 장제스의 경우에는 사분오열된 국민당을 다스리기 위한 돈, 군사, 권위를 모두 가진 사람이 자신 밖에 없다는 것을 이용하여 비판이 들어오면 "너네들끼리 잘 해보세요"라고 자주 사퇴했고 후임자들은 장제스가 사퇴함과 동시에 싹 사라진 재정, 군사력, 권위를 도무지 커버하지 못하고 장제스에게 도로 권좌를 바쳐야 했다.
- ↑ 물론 시리아도 역사적으로 볼때 이집트에 버금갈 정도로 긴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역부족이었다.
- ↑ 이원복의 가로세로 세계사 3권에서는 끝내 이스라엘을 못 꺾고 죽다니라고 원통해하면서 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