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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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悳祐
1924.4.22~2013.5.18

역대 대한민국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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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공화국제5공화국
13대 신현확14대 남덕우15대 유창순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자 관료이다.

1924년 경기도 광주군에서 태어났다. 1946년 국민대학관 정경학과(야간)에 입학하였다. 1948년 야간이던 국민대학관이 주간 정규대학인 국민대학교로 승격되고, 정경학부는 정치학과와 경제학과로 분리됨에 따라, 1950년 국민대학교 정치학과 제1회 졸업생이 되었다.[1] 이후 1956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1961년 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52년부터 1954년까지는 한국은행에서 근무했다. 1963년에는 국민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지냈고 1964년부터 1969년까지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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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재무부장관에 임명되어 관료 경력을 시작하였다. 1974년 9월 개각에서는 경제기획원장관 겸 부총리로 승진하여 이후 4년간 재직했다. 말하자면 1970년대 한국 경제정책의 실질적인 수장이었던 셈. 이 점에서 그는 1960년대 초기의 장기영, 1960년대 말~70년대 초기의 김학렬과 더불어 박정희 시대 한국의 경제건설기를 대표하는 경제관료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1978년 부가가치세를 도입했다가 그 해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신민당에 득표율이 1.1% 뒤지는 민심 이반이 나타나자 12월 개각에서 경질되었고, 후임 경제기획원장관 겸 부총리에는 신현확이 임명되었다.

이 당시 시사 만화가 김성환 화백은 고바우 영감에서 경제부총리 남덕우를 이렇게 풍자했다.

남 : 남의 돈을

덕 : 떡 주무르듯
우 : 우물주물 하는 사람

(...)

1980년 9월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자 국무총리에 임명되었고, 1982년 1월까지 국무총리로 있었다. 국무총리 임기 중인 1981년에는 재정상의 이유를 들어 올림픽 유치에 반대하였다. 1983년 무역협회 회장에 취임하였으며, 삼성동에 무역센터를 만들었다.

2013년 5월 18일 오후 9시 55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9세.

서강대는 향후 지어질 경제학부의 신축 건물을 '남덕우 경제관'으로 명명할 계획이다.
  1. 이전 판에서 서울대학교를 다니다 국대안에 반대하여 자퇴한 것으로 써있었는데 이는 잘못이다. 본인이 집필한 회고록인 '경제개발의 길목에서'에 보면, 1945년 해방 후 을지로에서 프린트사를 경영하다가 1946년 9월 야간대학 학생 모집 공고를 보고 정경학과에 입학하였다고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