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드레

이름Andre Romelle Young (안드레 로멜 영)
국적미국
출생1965년 2월 18일 캘리포니아콤프턴
자녀4남 1녀 [1]
직업래퍼, 프로듀서, 사업가
데뷔그룹 : 1988년 N.W.A: Straight Outta Compton
솔로 : 1992년 The Chronic
소속인터스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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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30년간 웨스트코스트를 대표한, 힙합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프로듀서중 하나

가장 위대한 힙합 아티스트중 하나 [2]

Dr. Dre[3][4]

미국 로스엔젤레스 카운티 콤프턴 출신의 래퍼이며 힙합 프로듀서. 이복동생은 워런 G.

G-펑크의 선구자로 불리며[5] 전형적인 웨스트 코스트 힙합의 스타일을 정립한 프로듀서이다. 국내의 힙합 비애호가들에게는 어떤 헤드폰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백인 랩퍼의 스승으로 유명하다.[6]

2 바이오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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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월드 클래스 렉킹 크루에 영입되어 데뷔하였으며, 기가 막힌 디제잉과 잘생긴 외모(!)로[7] 인기를 끌었다. 그룹 내 멤버 중 한명인 DJ 옐라와 친했으며 함께 작업한 레코드를 판매한 적도 있다. 그러다가 이지-E의 루슬레스 레코드로 옐라와 함께 영입되고, 사촌인 아이스 큐브와 아라비안 프린스가 합류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그룹으로 악명을 떨치는 N.W.A를 결성했다. 처음에는 컴필레이션 1집 앨범이 흥행에 밀렸고 아라비안 프린스도 나가버렸으나, MC 렌D.O.C.[8]이 들어온 뒤 1988년 전설적인 1집 Straight Outta Compton이 발매되며 드레는 순식간에 멤버들과 함께 전설이 된다.

이지의 횡령에 빡친 뒤[9]그룹을 나간 후엔 데스로우 레코드(Death Row Records)를 설립하고 솔로로 데뷔해서 1992년 'The Chronic' 라는 앨범이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리고 스눕 독의 데뷔 앨범의 전곡을 프로듀싱해서 스눕독을 슈퍼스타로 만드는 데 일조하였다. 그리고 데스로우 레코드에서 투팍 샤커스눕 독과 함께 90년대 중반 웨스트 코스트의 최전성기를 열어갔다. 다만 드레와 수많은 협업을 한 스눕 독과는 달리 투팍과 드레는 같은 소속사에 있었을 때 협업한 곡이 "California Love," "Can't C Me" 두 곡밖에 없다.[10] [11]데스 로우 레코드를 탈퇴하고는 애프터매스 레코드를 설립하는데, 영입한 대표 아티스트가 바로 다름아닌 에미넴! 이 때를 기점으로 다시 떠오르기 시작하였고 2집인 2001으로 재기에 성공하였다. 뿐만 아니라 50 센트앨범의 프로듀싱을 맡는 등 힙합계의 마이더스의 손으로 떠오르게 된다.

1999년에 2집을 낸 뒤 16년 동안 새 앨범을 발표하지 않고피쳐링이랑 헤드폰 출시만 하고 있어서 3집인 Detox는 힙합계의 듀크 뉴켐 포에버로 통하고 있다. 사실 1집과 2집 사이 텀도 7년 정도로 엄청 길었다.

2011년에 Kush와 I Need A Doctor 싱글을 내며 올해 안으론 반드시 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전에도 2~3년 주기로 똑같은 말을 번복했기 때문에 팬들은 '웃기지 마'라고 반응했다(...).

하지만 2010년 11월 Kush, 2011년 2월 I Need A Doctor 를 발표함으로써 팬들의 기대를(?) 깨버렸다. 그리고 또다시 음악적 휴식을 가진다며 버로우 타버렸다.(...)그러면 그렇지

2012년에 신인 래퍼 켄드릭 라마를 발굴하고 데뷔시켜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로 인하여 그의 3집 앨범 발매 가능성은 점점 미궁으로 빠졌다. 더 게임은 그의 3집 앨범 'Detox'를 예수에 빗대면서 아무도 예수를 본 적이 없듯이 그의 3집 앨범도 마찬가지라고 디스를 날렸다. 하지만 3집이 나왔고 그 역시 그 앨범에 참여했다. 물론 디톡스는 아니다

그리고 애프터매스 레코드의 프로듀서가 말하길 Detox는 이미 폐기처분되었다고 한다. 모 힙합커뮤니티에서는 그 이후로 나오지 않는 앨범들에 대하여 'Detox되었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하지만 지민은 이미 디톡스를 들어봤다카더라

이 트렌드는 몇 년 뒤 프랭크 오션이 이어받았다고 한다.

2014년에 5월 28일에 애플이 비츠를 인수하면서 애플의 직원이 되었다.내라는 앨범은 안 내고! 직책은 따로 없고 그냥 "드레." WWDC에서 페더리기는 닥터라고 불렀다 [12]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참여하였다. 스눕 독, 에미넴, 켄드릭 라마를 지목.

영원히 안 나올 것 같은 3집이 드디어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Detox는 폐기처분된 앨범이고 새 앨범은 Compton : A Soundtrack By Dr.Dre라고 한다. 이 앨범을 만들게 된 계기는 N.W.A의 전기 영화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을 제작하는 동안 그 영화에 감명을 받아서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드레 역시 Detox는 열심히 만들었지만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 앞으로 나오지 않을 앨범이라 못박았으며, 이번 3집이 마지막 정규앨범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처음엔 늘 그랬듯이(...) 믿기지 않았지만 앨범아트, 트랙리스트도 전부 공개되었으며, 아이튠즈에서도 프리오더를 받고 있는 것을 보면 이번만큼은 진짜라고 믿어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오랜시간 낚여왔기에 직접 듣기 전까진 믿지 않겠다는 팬들도 많다고...

2015년 8월 7일, 마침내 3집이 발매되었으며 평가도 좋은 편이다. 거기다 판매량에서 골드를 찍었다. 드레의 전작인 The Chronic과 2001이 워낙에 명반이다보니 예전만 못하다라는 평도 없지 않지만 분명히 잘 만든 앨범이라는 평이 많다.

3 디스코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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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 px
The Chronic2001Compton

4 평가

Who you think brought you the oldies

Eazy-E's, Ice Cube's, and D.O.C's
The Snoop D-O-double-G's
And the group that said motherfuck the police
Gave you a tape full of dope beats
To bump when you stroll through in your hood

누가 그 명작들을 만들었지?
이지-이, 아이스 큐브, D.O.C
스눕 D-O-G-G
그리고 경찰 ㅈ까라고 외쳤던 그룹을
누가 그 쩌는 비트가 넘치는 테잎을 선보였지?
너네가 동네 돌아다니면서 틀었던것 말이야.

- Forgot about Dre 중

힙합 역사상 최고의 프로듀서. 비트 만드는 장인

80년대 말부터 시작하여 대략 30년간 만들어 온 그만의 비트 메이킹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꾸준히 본인이 잘 하는 G-펑크 스타일의 비트를 만들다가, 2000년대 들어서 G-펑크를 조금씩 현대화시킨 스타일을 추구하더니 최근 나온 싱글들이나 (Kush, I Need A Doctor) 켄드릭 라마 등에게 프로듀싱해준 곡들은 최신 트렌드에도 잘 적응한 모습을 보인다. 자신이 속한 N.W.A의 두 정규 앨범 "Straight Outta Compton"과 "Niggaz4Life"를 N.W.A의 멤버인 DJ 옐라와 함께 전곡을 프로듀싱해 클래식의 반열에 올려놓아 갱스터 랩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N.W.A의 척추 역할을 했다. 또한 N.W.A를 나가서 솔로로 낸 1집 "The Chronic"은 상업적 성공과 평단의 평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클래식을 계속 만들어내는 위용을 보인다. 2집 앨범 "2001"[13] 역시 프로듀싱은 완벽의 경지이며 "Still D.R.E"와 같이 싱글로도 성공한 킬링트랙이 다수 실려있음은 물론 앨범 전체적으로도 미친 고퀄을 자랑한다. 16년만에 나온 3집 앨범 "Compton"은 전작처럼 획기적으로 새롭다거나 씬의 흐름을 바꿀 장르적 개척은 아니지만 앨범 전체의 구성이나 비트와 사운드의 퀄러티가 과연 드레라고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것은 공통된 의견인 듯.

또한 신인 아티스트들을 발굴하는 안목도 훌륭하다. 자신의 앨범 "The Chronic"에서는 당시 신인이었던 Snoop Dogg을 앨범의 주인공으로 밀어줬고, 성공했으며, 후에 스눕 독의 앨범도 프로듀싱해 성공시킨다. 에미넴은 말할 필요도 없이, 언더그라운드에서 전전하고 있는 것을 드레가 듣고 스카웃해왔는데 다이아몬드 앨범(천만 장 이상 팔린 앨범을 일컫는 말.)이 두 장이나 있는, 힙합에서는 '거의' 유일무이한 거물 래퍼로 탄생시켰다.[14] 그에 이어 50 센트, 켄드릭 라마 등 엄선해서 발굴해내는 래퍼들도 하이 퀄리티를 자랑한다.

래퍼로서의 닥터 드레는 특유의 목소리와 플로우가 랩을 상당히 안정감 있게 끌어간다고 평가받지만, 본인의 주요 곡들 거의 대부분을 다른 랩퍼가 가사를 써준다. 랩은 자기가 작사한다는 힙합계의 불문율을 어긴 것인데, 이는 애초에 드레가 스스로도 진지한 래퍼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저 자신이 랩하는 걸 듣고 싶어하는 팬들이 있어서 하는 것뿐이고, 자신은 비트를 프로듀싱하고 다른 래퍼들에게 주인공 자리를 내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화려한 플로우를 지닌 건 아니어도 기본기는 있어서 못하는 건 아니다. 아이스 큐브한테 랩하지 말고 프로듀싱이나 하라고 까였다[15]Detox 앨범 작업 당시에는 루다크리스가 가사를 쓴 'OG's theme"이라는 곡이 유출되기도 했다. 일종의 가이드 버전인데 루다크리스가 닥터 드레의 스타일로 랩을 해서 화제가 되었었다. 루다크리스는 본인의 트위터로 "닥터드레 스타일로 랩하는 건 재밌는 일이었어."라고 쿨하게 인정했다.

즉 MC만으로서의 역량은 보통이하이지만, 프로듀서이자 소속사 사장으로서는 거물 중 거물. 애초에 힙합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고 할 정도다. 애초에 프로듀서보다는 래퍼가 훨씬 주목받기 쉬운 것이 당연한데, 프로듀서로 이 정도 존재감을 자랑한다는 것이...

5 여담

2000년도 냅스터 사태때 미국음반협회, 메탈리카와 이어서 3번째로 고소한 전력이 있다
.
2011년에 찍은 I Need A Doctor 뮤비를 보면 몸을 정말 미친 듯이 만들었다. 5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돈이 많다곤 하지만) 계속 회춘하는 중. 물론 몸만.. 얼굴은 나이의 흔적이 그대로 보인다

각종 스니커를 신고 다니는 다른 랩퍼들에 비해 나이키 에어포스 원 로우 화이트만 고집한다. 2013년에 더 게임의 인터뷰를 빌자면 한번 신으면 버린다고 한다. 거의 양말 수준이라고 함. 양말도 세탁해서 신으면 오래 신는데 매일 새삥만 신는데 본인은 이 신발을 진짜 클래식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DJ 퀵에 의하면 소속사 아티스트들을 노예처럼 다루는 완벽주의자라고 한다. 더 게임의 인생사를 다룬 다큐에 의하면 프로듀싱 땐 무진장 늦은 시간이 돼서야 스튜디오에 온다고 한다.

2014년 1년 동안 가장 돈을 많이 번 아티스트로 기록상 1위를 차지했다! 물론 원래도 돈을 가장 많이 버는 아티스트들 중 하나였지만 비츠를 애플이 인수하면서 준 돈 (3조원 본인한테 6400억) 때문에 압도적 1위가 된 것.
현금자산은 8000~9000억대라고 한다. 허나 부동산,레이블,사업 등 으로 총재산은 1조원을 훌쩍넘긴다.

6 비판?

소리나오는 머리띠를 만들었다

드레는 물론 힙합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인건 사실이지만 몇가지 비판이 존재한다.

대표적인걸 꼽자면 G-Funk의 창시자라고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지 펑크는 이전에 해왔던 (혹은 해왔다던) 아티스트들이 여럿 존재한다. 드레의 명성의 시작은 물론 N.W.A 지만 그가 솔로 아티스트로서 커나간게 지펑크를 선보인 대작 The Chronic 인걸 볼때 몇몇 래퍼들이 불만을 표시하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

그리고 또 하나는 작곡자 표기에 관한 일인데 그의 첫 정규 앨범인 크로닉과 자신이 프로듀스한 명작 Snoop Doggy Dogg (지금은 그냥 스눕독) 의 Doggystyle 역시 전 곡 프로듀스가 닥터 드레로 되있지만 실제론 데쓰로우 소속 아티스트인 Daz [16] 가 만든 곡들이 표기가 드레로 되어 발매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팬들은 Daz가 만든 트랙들이 있다고 (혹은 전부) 라고 생각하고 있다.

게다가 99년도 발매작 2001 역시 많은 프로듀서 들이 곡을 만들었지만 [17] 모든 곡이 드레 프로듀스로 되어있다.

그러나 프로듀서=작곡가라는 잘못된 정의로 많은 이들이 오해하고 있어서 그렇지, 드레능 사운드를 조율하고, 가장 최상의 퀄리티로 끌어올리는 프로듀서의 일을 잘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수많은 래퍼들이 말 했듯이 드레의 사운드에 대한 감각은 천부적이며 다른 작곡가가 써온 곡도 드레의 손과 귀를 거치고 나면 아예 다른 수준의 곡이 되어있다고 할 정도로 만들어 버린다.

프로듀서라는 이름이 작곡가 뿐만 아니라 곡에 대한 책임자로 여겨진다면 [18] 표기 자체가 아예 틀렸다곤 할 수 없다.
  1. 참고로 2번째 아들은 약물과다 복용으로 2008년 사망(장남은 Curtis Young이라는 1981년생 랩퍼)
  2. 리드머의 Dr. Dre의 세 번째 정규앨범 Compton의 리뷰 中. 원문은 "힙합 역사에서 닥터 드레(Dr. Dre)의 존재감은 독보적이다. 가장 뛰어난 힙합 아티스트를 꼽는 건 무의미한 일이지만, 가장 위대한 힙합 아티스트를 꼽는다면 닥터 드레가 아마도 꼭대기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으로, 그 이유로는 프로듀서로서 만든 수많은 클래식들과 발굴한 랩퍼들의 위용 두 가지를 꼽고 있다.
  3. Doctor Dre라고 쓰는 경우가 가끔 있으나,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전직 MTV VJ이자 라디오 방송 진행자인 '안드레 브라운'이 Doctor Dré라는 예명을 쓰기 때문.
  4. 여담으로 닥터 드레에서 닥터는 의사가 아니라, '박사'라는 뜻이다. 즉, 랩/힙합 분야에서 자신이 박사라는 뜻이다.
  5. 다만 현재는 G-펑크를 관뒀다. 본인의 말로는 시대착오적이고 용도폐기된 음악이라서 그렇다고.
  6. 실제로 에미넴이 자신의 곡 'Rap God'의 가사에서 자신을 키운 사람 중 한명을 닥터 드레라고 언급한다.여담으로, 닥터 드레 뿐만이 아니라 라킴, 투팍, N.W.A 등도 언급이 된다.
  7. 드레의 옛날사진을 보면 지금처럼 주름도 없고 얼굴형태도 지금보다는 갸름했다.
  8.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지만 The D.O.C.는 N.W.A의 멤버가 아니다.
  9. 현재는 이지 이보다는 매니저인 제리 헬러가 횡령을 주도했다는 것이 정설이 되었다.
  10. 여기에는 드레가 슈그 나이트와의 불화로 데스로우 레코즈를 나갔기 때문도 있다. 실제로 드레가 데스로우 레코즈를 탈퇴한 후에 나온 투팍의 곡 "To live and die in L.A."를 들어보면 "California love pt. 2 without gay ass Dre"("병신새끼 드레가 빠진 California love 후속곡이라구")라고 아웃트로에서 조그맣게 드레를 디스하기도 한다.
  11. 물론 이 둘이 워낙에 명곡이여서 사람들 기억에 더 강렬하게 남아있는 것도 있다. 특히 California Love는 아직도 캘리포니아 라디오에서 심심하면 나올 정도로 사랑받는 노래. 아무래도 드레와 투팍이 각각 웨스트 코스트를 대표하는 프로듀서와 래퍼다 보니 연상작용이 더 강한 것도 있을 테고.
  12. OS X 새 버전인 '요세미티'의 아이폰 연동 통화 기능을 드레에게 전화를 거는 것으로 시연했다.
  13. 발매된 건 1999년인데 본인의 비트는 2년 앞서있다고 해서 2001란 타이틀로 발매, 본래는 Chronic 2001였으나 데쓰로우 레코드가 'Chronic' 이름에 대한 판권을 가지고 있어 'Chronic'을 제외하고 2001이란 명칭만 남게됨, 그 흔적으로 앨범커버의 2001 옆에 Chronic을 뜻하는 대마초 잎 모양 그림을 넣었다.
  14. '거의'라고 한 이유는 에미넴 말고 투팍도 다이아몬드 앨범이 2장 있기 때문이다.
  15. 아이스 큐브가 NWA를 탈퇴하고 디스전에 엮여 있을 때였다. No Vaseline이라는 노래에서, "Ayo, Dre, stick to producin'!"이라는 구절.
  16. 그 역시 전설적인 웨스트 코스트 랩 그룹인 Dogg Pound의 멤버이며 랩과 프로듀싱에서 탁월한 감각을 뽐내기로 유명한 베테랑이다
  17. 대표적으로 Still DRE의 피아노 스트링은 스캇 스토치의 작품이다, 다만 이 앨범엔 드레와 함께 Mel-Man 역시 표기되어있다.
  18. 적절한 단어가 없어 책임자로 표기했지만 그가 리터칭한 곡들이 대부분이니 맞는것 같기도.. 적합한 표현을 찾으면 추가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