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볼/비판

1 파워 인플레 + 초기 주연들의 병풍화

안드로메다로 치닫은 파워 인플레의 대표격인 작품.

분명 초창기에는 권법이나 기공중국 무협풍으로 시작했던 작품이 나중에 가면 싸움 한번에 별이 날아가고 우주 전체가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 문제는 특히 사이어인 설정이 도입되고 배경이 우주로 확대되는 Z 이후 파트에서 크게 두드러진다. 게다가 파괴력의 스케일은 엄청나게 커졌는데 이를 전투에 그대로 반영하면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한 사태가 발생,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 설정상의 파워에 비하면 너무나 소박한(?) 연출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행성 따위는 숨쉬듯이 분쇄할 수 있을 먼치킨들이 전력으로 치고받는데도 지구는 멀쩡한 등 전투 묘사의 개연성과 정밀성이 흐려져버린 것. 아예 작가 스스로 내퍼 전에서 배틀의 스케일을 묘사할 수 있는 한계치에 도달했다고 말했을 정도니 말이 필요 없다. 이후의 적들은 프리저나 셀이나 마인부우나 연출만 봐서는 누가 제일 센 지 알 수가 없고, 그냥 '걔가 쟤를 이겼는데 얘는 걔를 이겼으니 얘가 쟤보다 세다' 정도로만 캐릭터의 강함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한마디로 직관적인 시각적 연출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냥 설명이 그렇다니까 그런가 보다 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 전투묘사의 최대치를 찍었다는 내퍼가 이후의 적들에 비하면 송사리만도 못한 수준이었으니 더욱 문제.

거기다 사이어인 편 이후로는 전투력의 상승 폭이 도저히 감당 불가능한 수준으로 뻥튀기된다. 스카우터라는 설정의 도입은 전투력의 수치화라는 개념을 통해서 캐릭터의 성장을 간편하게 나타내는 순기능을 가져왔으나, 이것이 점점 남용되면서 종국에는 그냥 수치놀음이 되어버렸다. 당장 사이어인편과 프리저편을 두 에피소드로 치면, 라데츠와 싸울 때 오공의 평균 전투력이 400을 조금 넘었는데, 프리저와 최종결전 때의 최고 전투력이 1억 5천만이다. 대충 어림값으로 계산해도 두 에피소드 안에서 전투력이 300000배나 상승했다는 말도 안 되는 증가폭을 보여준다. 그러한 전투력 상승의 단계 단계만 따져도 납득하기 어려운 엄청난 배수의, 게다가 들쭉날쭉한 성장률은, 그냥 한 장면의 임팩트에만 치중했을 뿐, 전체적인 개연성을 따지면 너무나 엉망진창이다. 이에 관한 자세한 비판은 드래곤볼/프리저 편 참고. 애초에 수백 정도로 시작했던 전투력 수치가 같은 에피소드 안에서 3만 이상, 그리고 다음 에피소드에서는 1억을 오버하는 수치까지 올라간다는 것 자체가 드래곤볼의 인플레가 얼마나 심한지 보여준다.

에피소드 안에서의 인플레도 천정부지지만 한 에피소드와 다음 에피소드 사이의 전투력 간극도 극심하다. 이전 에피소드에서 최고치를 찍었던 전투력이 다음 에피소드에서는 싸움에 끼기에도 간당간당한 레벨이 되어버린다. 초사이어인을 예로 들면, 프리저 편까지는 분명 '전설로만 전해지는 우주 최강의 전사'였으나, 인조인간 편으로만 넘어가도 '참전을 위한 기초적인 소양' 정도가 되어버렸고, 마인부우 편에 가면 초사이어인 1단계 '따위'는 애초에 의미있는 전투력도 아닌 쩌리로 전락한다. 인조인간 편에서 셀은 오반 말고는 대적할 이가 없는 절망적인 강적이었는데, 마인부우 편에서는 셀과 엇비슷한 데브라를 상대하는 오반을 보고 오공과 베저터가 '고작 저 정도 놈을 상대로 쩔쩔매냐'며 혀를 찬다. 괜히 마인부우 편에서 베지터가 '초사이어인의 바겐세일'이라며 메타적 셀프디스를 한 게 아니다.

그런데 크리링이나 천진반 등의 지구인 전사들은 작품 끝까지 가도 그 초1 전투력의 1할도 따라잡지 못하니 더욱 암울하다(...). 초사이어인 레벨은 되어야 싸움이 가능한데 이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게 사이어인들과 그 외 일부(피콜로, 인조인간)밖에 없으니[1] 후반부로 갈수록 지구인들은 아무것도 못하는 사이어인 잔치판이 되어버리고 초반부터 오랜 세월 독자들과 동고동락한 베테랑 캐릭터들은 완전히 안습, 공기, 쩌리 신세가 되었다. 실제로 드래곤볼이라는 만화의 초반부터 등장한 레귤러 중 마지막까지 일관된 활약을 보이는 캐릭터는 주인공인 오공 말고는 전무하다. 드래곤볼에서 오공에 이은 제2의 주인공이라 흔히 꼽히는 베지터조차 작품 전체에서 보면 한참 후발주자다. 정작 초창기부터 드래곤볼이라는 작품을 이끌어오던 원조 레귤러들은 치솟는 파워 인플레 + 사이어인 등쌀에 밀려 까마득한 위에 있는 오공네의 싸움을 그저 바라보며 경탄하는 존재들이 되었다. 무천도사, 천진반, 피콜로 등의 캐릭터가 한때는 드래곤볼 세계관 1, 2위를 다투던 실력자들이었다고 한다면 믿어지는가? 온갖 역경을 거치며 목숨을 걸고 수행해온 백전노장 지구인 전사들이, 평화로운 시대에 태어난 7살 오천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경이 되어버렸으니 이것은 작품의 완성도의 측면에서 좋은 일이라 하기 어렵다. 파워 인플레와 그에 따른 기존 레귤러의 낙오 문제를 현대의 소년만화들보다 훨씬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 드래곤볼이다.

2 생명 경시 풍조

들어가기 앞서 한가지를 확실히 해두자면, 드래곤볼의 생명 경시현상에 대한 비판대상은 죽음과 부활을 너무나 간단히 반복할 수 있는 시스템 자체의 문제지 죽음에 대한 주연인물들의 태도가 아니다. 드래곤볼의 부활은 어떤 위험부담도 리스크도 없는 단순한 혜택, 드래곤볼 수집에 대한 보상에 불과하다.[2] 그리고 작품 속의 어떤 인물도 죽음과 부활이 반복되는 상황이 가지는 윤리적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찰 따위는 하지 않는다.

즉 '인간의 죽음'에 대한 진중하고 생각있는 고찰 없이, 단순한 드라마적 임팩트를 위해 남발하고 냉큼 부활시켜버리는 작품 전개 자체가 드래곤볼이 생명 경시적이라는 지적을 듣는 이유이다. 죽음을 가볍게 본다는 것은 곧 생명의 무게를 안일하게 보는 것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코믹스를 보면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초반에는 작품의 키 아이템이자 환상적 요소였던 드래곤볼이 중후반부터는 그냥 죽은 인물들 부활 & 에피소드 뒷정리 수준의 스토리 편의를 위한 도구로 전락해버린다. 당장 야무치, 크리링, 차오즈 등이 죽고 부활하고를 반복하는 것만 봐도 이 작품에서 죽음과 부활이 얼마나 손쉽게 다뤄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아니 심지어 주인공인 손오공조차도 작중 두번이나 죽고 부활했다. 이렇다보니 결과적으로 캐릭터의 죽음이 단순 리타이어와 전혀 구분되지 않는 수준까지 극적 가치가 하락하게 되었다. 말 그대로 어떤 중요한 캐릭터가 몇 명이나 죽든지간에 '어차피 나중에 드래곤볼로 살려내겠지 뭐'라는 인식이 독자들 사이에서 팽배해진 것이다. 나루토/비판 항목의 서술을 인용하자면, 창작물에서 죽음이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죽은 시점에 그 캐릭터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인데, 드래곤볼의 죽음은 표현만 죽음이지 일시적인 상태이상에 다름아니다. 심지어 한 에피가 끝나기도 전에, 그러니까 지난 전투에서 죽은 캐릭터가 다음 전투 지나서 부활해서 다시 참전하는 전개까지 생길 정도니 말이 필요없다.

그나마 초반에는 이러한 문제점을 의식한 것인지 드래곤볼을 통한 부활 자체에 제약을 걸어놓긴 했다. 한 사람은 한 번만 살릴 수 있다는 식으로. 하지만 포룽가의 등장으로 이 원칙이 깨지고, 죽은 인물이 몇 번이고 부활하고 다시 죽고 다시 부활한다. 그래도 이 포룽가 역시 '한꺼번에 다수의 사람을 살릴 수는 없다'는 별개의 제약이 붙어 있기는 했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마인부우 편에서 드래곤볼의 파워를 미리 업그레이드해놓았다는 식으로[3] 제약을 없애버렸다. 그러니까 이 시점에서 한 명의 인물이 몇 번을 죽든, 혹은 범지구적 규모의 대량학살이 일어나든 드래곤볼로 간단히 복구할 수 있게 되어버린 것. 결국 작가의 전개 편의를 위해서 기존에 있던 최소한의 제약마저 깨트리고 죽음의 의미를 극단적으로 퇴색시켰다는 지적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또 다른 문제점과도 연동된다. 가령 마인부우 편에서 드래곤볼에 '이번 일로 죽은 사람들을 살려달라. 단 악당은 빼고.' 라는 소원을 비는 등의 사례에서는 과연 Z전사가 죽어야 할 자와 살아도 되는 자를 결정할 권리가 있는가에 대한 윤리적 논쟁이 불거진다.[4] 악당이라는 말 자체가 너무나 애매하다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근본적으로 놓고 볼 때 악인이든 선인이든 마인부우 사태 안에서는 마인 부우라는 절대악에 희생당한 피해자라는 점에서 매한가지다. 또한 마인부우 사태 때 죽은 사람들이 살아난다면 그 악당의 희생자들 중 상당수도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고, 피해자가 살아났다면 과연 악당은 '죽어도 상관없는 죄'를 지었다고 할 수 있는가? 에 대한 의문도 제기될 수 있다.[5] 이는 더 나아가서 악(惡)은 행위 자체의 문제인가 행위의 결과를 반영하는 문제인가에 관한 논란, 결과론적인 문제라면 그간의 악당들 역시 죽인 선인들은 모두 살아나고 진짜 나쁜 놈들만 끝까지 죽었으니 오히려 정의의 심판자가 되지 않느냐는 비판, 피콜로와 베지터가 그랬듯이 그 악당 중에서도 갱생하여 훗날 사회를 이롭게 할 이들이 있을 수 있지 않은가에 대한 의문, 과연 예전의 피콜로와 베지터, 마인 부우 이상의 악당이 지구상에 존재할 수나 있었을 것이며 현재의 그들은 자신의 악행을 이후의 공헌으로 상쇄할 수 있는지 또한 논란이 될 수 있다. 삶과 죽음에 조건을 다는 주연인물들의 태도는 심도 있게 들어가면 이렇듯 무수히 많은 난제들을 품고 있는 것이다. 특히 아군이 된 적 보정을 계속 반복해온 작품 특성상 더욱 더. 이전까지 자신들이 싸워 온 대악당들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살려주고 아군으로까지 받아주면서, 절대악에게 살해당한 지구의 악당들은 갱생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계속 죽은 채로 놔두어도 된다는 식의 태도는 작품을 진지하게 읽는 입장에서 상당히 불편할 수 있다. 이렇게까지 깊이 파고들지 않더라도, 인간 생명의 가치를 재단하는 작중의 행위가 이토록 가볍게 지나가는 언급으로 다뤄져도 될 만한 주제인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더군다나 후반부에서는 명목상으로나마 완전히 되살아게 하는 드래곤볼과는 달리, 그냥 영혼 상태에서 직접 전투에 참여하는, 다시말해 아예 부활이라는 중간 과정마저 생략해 버리는 전개가 등장했다. 마인부우 편의 오공과 베지터(그리고 노계왕신)가 바로 그 예. 그래도 죽었으면 드래곤볼 모아서 다시 부활시키기라도 하는 '성의'는 보였던 이전과는 달리 마인부우 편에서는 죽어도 그냥 머리 위에 고리하나 달고 다시 싸우면 그만인 산 사람' 꼴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전개는 결국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최소한의 경계마저 없애버렸다. 물론 '우주적 중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특례'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6][7] 그렇다 하더라도 드라마적 측면에서 '어차피 이럴 거면 베지터는 그 때 뭐하러 자폭한 거야?'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오공의 부활은 노계왕신이 자신의 생명을 대신 주었다는 식으로 설명하긴 하지만, 그래봤자 죽었다는 노계왕신도 머리 위에 고리만 달았을 뿐 생전과 하등 다를 게 없다(…). 한마디로 죽어봤자 어차피 싸울 거 다 싸우고 활약할 거 다 활약하니 죽음이라는 사태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이상의 사항에서 보다시피 드래곤볼의 생명 경시 풍조는 Z전사들이 민간인의 죽음을 가볍게 본다든지 하는 지엽말단적인 부분에서의 비판이 아니라 드래곤볼이라는 작품 안에서 줄기차게 반복되어 온 핵심적인 문제 중 하나다.

2.1 반론

생명에 대한 등장인물들의 반응은 상관 없다는 얘기가 있는데, 특정 가치 묘사에 대한 비판에서 작품 내의 등장인물이 해당 가치에 어떤 태도를 보여주는지는 비판에 있어 반드시 고려해야할 부분이다. 가령 블랙 라군과 강철의 연금술사는 둘다 배틀물이며 사람이 죽는 모습 또한 마찬가지로 묘사되지만, 전자는 생명 경시로 비판되나 후자가 그렇지 않은 점은, 바로 죽음에 대한 등장인물들의 관념이 다르게 묘사되기 때문이다.

드래곤볼은 애초부터 부활이 가능한 환경을 전제한 작품인만큼, 이를 비판한다는 것은 부활 요소 자체를 넣어선 안된다는 뜻인데, 이는 지나친 표현의 제약이다. 오히려 부활이 가능한 환경에 사는 이들임을 감안했을 때, 드래곤볼의 주역들은 현실의 인간보다도 더욱 생명을 존중하는 모습으로 묘사됐다고 볼 수 있다. 사례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가령 피콜로 대마왕 편 당시 최초로 크리링이 죽었을 때, 손오공은 이를 드래곤볼로 부활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더할나위 없이 분노했고, 부르마는 눈물까지 흘렸으며, 주변의 동료들도 슬퍼하긴 매한가지였다. 프리저 편에서도 손오공은 기뉴 특전대는 물론 프리저까지 끝내 생명을 끊으려 하지 않았고, 이후 나메크 별 드래곤볼의 힘으로 얼마든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된 이후에도, 인조인간 편의 손오공은 20호의 도시 파괴에 분노했다. 나아가 지구 방위군의 죽음에 크게 상심한 뒤엔 직접 은하계를 돌며 덴데를 데려와 드래곤볼을 부활시켰는데, 이는 작품의 주역이 인명을 존중하고 있다는 명백한 묘사였다. 손오공의 희생에 모두가 상심한 것도, 베지터가 트랭크스의 죽음에 분노한 것도, 크리링이 17,18호의 몸에 있는 폭탄을 제거시켜준 것도 모두, 인명을 소중히 여기는 관념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는 묘사였다.

인명을 경시했다며 가장 비판을 받는 부우 편조차, 마인 베지터의 학살을 손오공이 막고 분노하는 모습과 더불어, 남편의 잘못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책임지고 살려낸 부르마의 모습이 여실히 묘사되어 있다. 이후 부우의 학살 와중에 손오공이나 피콜로가 취한 태도는 막을 방법이 있음에도 방치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막을 방법이 수련의 완성 뿐이었던 상황에서의 불가피한 결정이었고, 이런 불가항력적인 상황은 1,2단계의 셀이 학살을 벌이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8] 그 증거로 손오공과 베지터는 우선 부우와 함께 동료들을 모조리 죽여버린 뒤에, 드래곤볼로 되살린다는 선택지가 있었으나 실행하지 않았다. 오히려 배리어 작전 실패라는 리스크까지 감수하면서 부우의 체내에 흡수되어 있던 자식과 친구들을 구해냈으며, 이어진 부우의 공격 앞에선 그렇게 구해낸 이들보다도 친분이나 전력 모두 떨어지는 사탄과 덴데를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구출했다.

애초부터 부활이 가능한 세계관이다보니, 간혹 비판할만한 부분이 나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작품은 이처럼 생명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서두에서도 말했지만, 부활이 당연한 세계관에서 이 정도로 인명을 존중하는 묘사가 나온다는 것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작품 내 그 어떤 인물의 죽음도 연재 종료까지 희화화 된 적이 없으며[9], 전세엔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 베지터의 자폭마저도 그 당시엔 그 방법 밖에 없었던 비장의 수단이었다.[10] 점쟁이 바바를 통해 죽은 자들이 하계에 내려온 것 역시 작품 초의 손오반, 후반의 손오공 단 두번 뿐이었으며 특히 손오공은 애초에 그 엄청난 업적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 하계에 내려갔을 뿐 그 또한 오랜 시간을 머물지 못했고, 베지터의 경우엔 글자 그대로 전 우주의 비상 사태라는 특별한 상황이었다. 등장인물이나 작품의 대체적인 태도도 아니고 이처럼 지엽말단적인 부분으로 생명 경시라고 할 것 같으면 그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배틀물은 없을 것이다.[11]

'절대악에 죽은 악당들은 살아날 가치도 없는가'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는 다시 말해 등장인물들에게 부처님 수준의 자비로움과 불살주의를 기대한다는 것인데, 그들은 어디까지나 인간일 뿐이다. 당장 사형제부터가 찬반이 나뉘는 현실 속에서[12] 그들에게 무조건 반대 선택지를 고르는 인간상을 바라는 것은 무리다. 더욱이 '악당은 빼고 살려달라'는 소원이 악당의 부활 가능성 자체를 막았다는 것은 틀린 말로서, 살리고 싶으면 그 악당의 연고자들이 드래곤볼을 모아 살리면 될 일이다.[13]

또한 악인 부활 논쟁에서 지나치게 엄격한 불살주의를 들이대는 것은 다소 무리하다고 할 수도 있는데 "악인이라도 죽었으면 부활시켜야 한다."는 정도까지 불살주의를 적용시키려면 배틀물이라는 장르 자체가 진행하기 어려워진다. 괜히 나루토에서 주인공의 손에 피 묻히기 싫다고 예토전생한 적들을 등장시켰다가 까이는게 아니다. 가령 불살주의 측면에서 비판하려면 대상은 드래곤볼이라는 특정 작품이 아닌 배틀물이라는 장르 전체여야 할 것이다.

게다가 당시 작중에서도 언급했듯이 데브라, 바비디 등이 부활하는 경우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14] 아무리 사이어인 3인방이 데브라 따위는 우습게 볼 정도로 강해졌다지만 마인부우라는 강적을 상대로 고전하는 상황에서 이런 놈들이 지구에서 깽판을 친다면 잠재능력을 해방한 손오반이 있어서 이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해도 마인부우의 퇴치에 방해가 될 것이다. 일반인 악당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스터 사탄이 총으로 무장한 악인 둘을 그냥 주먹으로 때려눕혔다가 총탄에 반격당한 일을 생각해보자. 이 둘은 미스터 사탄과 부우의 관계까지 알고 있다. 이놈들이 살아났다면 원기옥 피니쉬를 제대로 훼방 놓았을 가능성이 높다. [15]

또한 피콜로, 베지터 등의 갱생을 이유로 불살주의를 주장하는 것 역시 지나치게 결과론적이다. 드래곤볼이라는 만화는 처음부터 모든 스토리 진행을 상정하고 그려내는 만화가 아니므로 결과는 좋았다는 이유만으로 불살주의를 남발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어디까지나 창작물의 교묘한 스토리 짜임으로 이런 악역들의 갱생을 납득할 수 있는것이지 현실에서 대중들이 과연 이런 악당들이 갱생하기를 인내심있게 기다려 줄지, 그리고 실제 갱생에 성공했다고 해도 받아줄지 의문이다. 특히 베지터의 경우, 아군으로 합류한 후에도 제대로 갱생하기 전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으며 그동안 여전히 일반인들을 학살하거나 셀, 마인 부우 등 적들의 등장에 기여하며 민폐를 열심히 끼쳤다. 즉 갱생 가능성을 언급하기 전에 그로 인한 희생자의 증가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악인을 제외라고는 하지만 정확히 질 나쁜 악당들을 제외라고 했지 모든 악당들이라고는 안 했다. 피라후 일당같이 악인이지만 프리저, 셀같이 극악무도한 악인까지 아닌 소악당들이 되살아 난 것을 생각하면 되살리지 못한 대상들은 극악무도한 악인들만 되살리지 못한 것으로 제한했다.[16] 또한 "극악무도한 사람들은 제외하고 부활시켜야 한다"고 소원을 빈 것은 Z전사들이었지만 "어디까지 악해야 극악무도한 것인지" 를 판단하는 것은 인간을 초월하는 존재인 포룽가다. 즉 누구를 살릴지 실질적인 재량권은 포룽가에 있으며 인간을 초월하는 존재인 만큼 이 분야에서 일반인보다 권위성이 충분하다. 또한 현실에서 사형제 반대자들이 내놓는 이유 중 하나가 오심의 경우 후과를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인데 여기에서는 이럴 가능성은 배제할 수 있다. 또한 포룽가는 선한 종족인 나메크인의 창조물이므로 이에서 나오는 판단도 충분히 선하다고 하겠다. 즉 상술한 권위성+선함으로 인하여 이번 소원은 충분한 합리성을 지니게 된다.

요약해보자. FPS 게임은 사람을 총으로 쏘아 죽이는게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스타크래프트는 종족간 대전쟁을 카타르시스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이러한 게임들은 하나같이 생명을 경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을 해서는 안된다고 할 순 없다. 드래곤볼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죽는 모습과 부활하는 모습이 표현되지만, 이런 표현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할 순 없고, 그 부활이 당연시되는 세계관 내에서도 등장인물들은 작품 전체에 걸쳐서 생명을 존중하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즉, 드래곤볼은 인명이 살상당하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일지언정, 인명을 경시한 작품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더불어 해당 작품이 나온 시대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인데 드래곤볼은 완결된 지가 20년이 넘어가는 작품이고 당시에는 사형제의 찬반 논란이 현재보다 훨씬 덜하였다. 당장 한국도 사형제가 실형으로 선고되던 시절이다. 따라서 작품 외적으로 볼 때, 해당 비판은 지나치게 시대를 앞서간 면이 있다.

3 주제 전달 및 주인공 교체 실패

드래곤볼/마인 부우 편에서도 언급되는 사항이지만, 주인공을 손오공에서 오공의 2세들로 교체하려고 시도하다가 실패한 흔적이 보인다. Z의 시작과 함께 등장한 오반은 초반부의 철없는 아이였던 오공이 어느새 '아버지'가 되었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또 아버지를 능가하는 잠재력을 지닌 신세대의 전사로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아닌 게 아니라 인조인간 편 후반부의 진주인공은 손오반이었고, 하이스쿨-마인부우 편에서는 아예 작가가 직접 '여기서부터는 오반이 주인공입니다!'라고 말했을 정도였다.[17] 실제로 하이스쿨 편까지만 해도 그랬고. 하지만 결국 그래놓고서 손오반은 페이크 주인공화가 되었고 손오공이 사실상의 주인공으로 복귀한다(...). 이전 에피에서는 진주인공으로 활약했던 캐릭터가 정작 본격적으로 주인공이 된 뒤에는 페이크 주인공이 되는 엉뚱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마인부우와의 싸움에서 오공은 '이미 죽은 자신이 아니라 살아있는 젊은 아이들이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태도를 보이고, 베지터는 아내와 자식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며 장렬히 퇴장하지만, 정작 마인부우 사태를 해결한 건 오공과 베지터 등 '이미 죽은 아버지 세대'들이다. 뭐 사실 이 둘이 벌여놓은 사고긴 했다 마인부우 편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이 '1세대에서 2세대로의 계승'이었다면, 그 주제에 있어서만큼은 확실하게 실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반, 오천, 트랭크스 등 해당 에피소드의 주역이 되었어야 할 캐릭터들은 마인부우에게 잡아먹힌 뒤로 딱히 아무런 활약도 못한다. 그저 아버지들의 도움으로 부우에게서 풀려나고, 부우에게 죽고, 아버지들이 드래곤볼에 빌어 다시 살아나고, 아버지들이 준비하는 원기옥에 다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를 보태줄 뿐이다. 아무리 좋게 봐도 이들은 중간에 잠깐 분량을 차지하는 서포트 캐릭터들이지 '새 시대의 주인공'과는 거리가 멀다. 적한테 힘만 보태준 뒤 아무런 활약도 없다가, 결국 이미 죽은 아버지들에게 싸움을 전부 맡긴 채 끝나는 2세 캐릭터들을 두고 작가가 의도한 '젊은이들로의 세대교체'가 제대로 표현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이러니 마인부우 편 초반에 오공이 '젊은이들이 해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던 말이 무색해질 지경. 내적 개연성은 차치하더라도 외적으로 보면 해당 에피소드를 통해서 전하고 싶었던 내용에서 한참 엇나간 셈이다. 마인부우 편의 전체 플롯을 이 '세대교체와 계승'에 포커스를 맞추고 보면, "아버지들은 아들들에게 지구를 믿고 맡긴 채 이승에서 물러나지만, 결국 그 아들들은 처발리고 얘네들로는 도저히 안 돼서 저승에 있던 아버지들이 기어코 다시 와서 해결해야 했답니다(...)"라는 병맛스런 줄거리가 되어버린다.

특히 이런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캐릭터가 바로 손오천. 하이스쿨-마인부우 편에서 당당하게 신캐릭터로 등장한 손오천이었지만 제대로 된 활약상을 보인 건 별로 없었다. 트랭크스야 베지터의 부성애를 보여준다든지, 이미 인조인간 편에서 아기 모습이 나왔으니 등장하는 게 마땅하다고 치지만 손오천의 경우 이 캐릭터가 아예 없다고 쳐도 딱히 스토리에 지장이 없다. 분명 오공의 아들이자 하이스쿨 편 이후의 새로운 주역으로 등장했다는 캐릭터가 이 모양이다. 형 오반은 인조인간 편에서 아군 최후의 히든카드로 간지폭풍을 보여주기라도 했지만 마인부우 편의 오천은 그냥 개그 캐릭터에 가깝다. 메인 스토리에서 오천이 가지는 의의라면 퓨전(드래곤볼) 설정을 보여주고 오천크스가 되어 전투에 참여했다는 정도인데, 그렇다고 이 오천크스 상태로 인조인간 편의 오반만큼 활약상이나 임팩트, 스토리에 기여한 바가 컸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게다가 사실 오천크스 이후로 퓨전이 다시 조명되는 일도 없던지라, 그냥 손오천과 함께 퓨전 설정까지 들어내 버려도 큰 문제 없다. 따져 보면 오반도 마인부우 편에서 혁혁한 활약상은 많지 않지만, 오천은 사실상 이때가 유일한 활약의 기회였기에 더더욱 지적의 대상이 된다. 손오천 항목에도 언급되다시피, 마인부우 편의 주역으로 만들어놓고도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아버지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넘어가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취급을 받게 된 비운의 캐릭터. 결과적으로 캐릭터는 캐릭터대로 붕 뜨고 주제는 주제대로 흐려지고 에피소드의 방향성도 뒤죽박죽이 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에 대해 반론하는 측에서는 독자들이 손오반을 새로운 주인공으로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인기를 따라서 손오공을 복귀시킬 수밖에 없었다며 그것을 작가의 문제로 몰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오랫동안 연재된 인기만화의 주인공이 교체된다면 독자들이 반발하거나 혹은 어색해하는 것은 삼척동자도 예상할 수 있는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교체라는 강행수를 둔 이상 그 교체를 설득력있게 묘사해줄 책임은 작가에게 있다. 즉 오반을 주인공으로 인정하지 않은 독자들 탓이 아니라, 오반이라는 새 주인공을 설득력있게 제시하지 못한 작가 자신의 역량에 책임이 있는 것이다. 작가는 오공을 일관성있게 주인공으로 밀고나가지도 않았고, 교체한 주인공을 주인공답게 활약시키는데도 실패했다. 오공의 은퇴에 대한 독자들의 반발을 예상 못했든, 불만을 사그라뜨릴만큼 오반에게 힘을 실어주지 못했든 간에 이는 작가와 출판부의 책임이지 독자에게 돌릴 문제가 아니다. 한마디로 독자들이 오공을 다시 원했다는 건 작가가 오반이라는 새 주인공 어필에 실패했다는 소리밖에 안 된다. 작가가 독자들에게 원하는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한 것을, '독자들이 작가가 원하는대로 반응해주지 않아서'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궁색한 논리다. '주인공 교체'라는 파격적인 수를 둔 이상 이에 대한 독자들의 이의제기는 당연한 것이고,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느냐 마느냐는 작가의 역량에 달린 것이다.

3.1 반론 - 주제 전달 및 세대 교체의 성공

마주니어 편의 클라이막스에서 무천도사의 대사를 통해 강조된 드래곤볼의 주제는 하나의 드래곤볼이 사람들의 만남을 있게 했고, 그것이 세상을 지키는 기적을 낳은 이야기, 즉 '연대의 기적'이었다.[18]이는 모험 편에서부터 묘사된 주제로서, 야생아 손오공은 드래곤볼을 찾으러 온 부르마를 통해 세상에 나오게 되었고, 이들은 오룡, 푸알, 야무차를 적으로 만나지만, 결과적으로 이들의 만남 덕분에 피라후의 세계 정복이 저지되었고, 괴물 원숭이로 변한 손오공의 지구 파괴 또한 막아낼 수 있었다. 바로 여기서 '적이었던 이들이 만나 세상을 지킨 이야기'라는, 드래곤볼 519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이 제시된다.

모험물에서 격투물로 장르를 바꾼 이후엔 손오공의 무도(武道)에 대한 목적이 제시된다. 무천도사는 손오공에게 처음 무술을 가르치는 자리에서 무술은 승리를 위함이 아닌 자신을 이기기 위함이며, 이로써 인생을 즐겁게 살기 위한 수단[19]이라는 대명제를 설파하고, 이는 손오공의 평생 철학이 되어 작품 내내 지켜진 기조였다. 이러한 주제와 철학은 모두 2부인 사이어인 편을 연재하면서 보다 명확히 지켜졌다.

사이어인 편부터 살펴보자. 바로 직전의 에피소드인 피콜로 편까지만해도, 적을 쓰러뜨릴 수 있는 인물은 손오공 뿐이었다. 그러나 이 편에서 손오공은 아군 최고의 전력이긴 하나, 사상 유례 없이 무참히 패배하고 온 몸의 뼈가 박살나 전력으로 기능하지도 못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베지터를 몰아내 지구를 지켜낸 요인은, 아버지와 친구의 죽음을 두고볼 수 없어 돌아온 손오반-크리링-야지로베가 합작한 연대의 힘이었다. 언제나 문제를 해결했던 손오공마저 이 과정에선 유력한 조력자일 뿐이었다.[20] 그토록 힘겹게 이긴 베지터를 자기 발전을 위해 손오공이 놓아주면서 끝난 이 에피소드는, 사람들의 만남이 세상을 지킨 주제[21]와, 승리보다 자신의 한계를 깨기 위한 싸움으로서의 철학이 모두 지켜진 좋은 사례였다.

이어진 프리저 편에서는 두 가지 특징적인 연대의 요소가 국면을 바꾼다. 하나는 나메크인과 지구인의 연대요, 다른 하나는 손오공과 크리링의 연대다. 이 편은 우주 최강자 프리저가 적수이며, 베지터 또한 여전한 위협으로 존재하면서, 그런 그들이 드래곤볼을 찾고 있는 상황으로 설정된다. 초반에 이에 대항하는 전력은 크리링, 손오반, 부르마로서 순수 전투력만 따졌을 때, 이는 프리저의 말처럼 개미들이 공룡에 대항하는 격이었다. 하지만 그 개미들이 기적을 이루어낸다. '영원한 생명을 얻어 우주를 정복하겠다'는 야망에 비해, '친구들을 살리고 싶다'는 지구인들의 순수한 소망은 나메크인들의 인정을 받게 되고, 서로의 조력을 통해 드래곤볼 쟁탈전을 훌륭히 수행했으며, 마침내 드래곤볼의 소원을 먼저 빌게된 주역 또한 절대강자인 프리저나 베지터가 아닌, 절대약자인 지구인들이었다. 공룡의 무지막지한 힘이 개미들의 소소한 연대에 패배하는 순간이었다.

이처럼 꿈 같던 상황은 결국 프리저의 절대적인 강함에 현실이 되어 무너졌다. 그토록 강하던 베지터는 죽고, 보다 강하게 돌아온 손오공도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일행은 몰살의 위기를 맞게 된다. 그러나 크리링이 죽는 순간, 손오공은 초사이어인으로 각성한다. 우주 최강자 프리저를 이긴 힘은 계왕성의 수련도, 100배 중력의 지옥훈련도, 죽다 살아나면 강해지는 사이어인의 특성도 아닌, 10여년간 이어진 두 친구의 인연이었다. 이는 손오공의 개인적인 노력에 더해진 연대의 힘이 기적을 발한 순간으로서 역시 원작의 주제가 잘 지켜진 부분이며, 끝내 프리저를 죽이긴 했으나 이는 불가피한 반격이었을 뿐, 몇 번이고 살려줄 의도가 묘사되면서[22] 본연의 철학 또한 훌륭히 묘사되었다.

이렇듯 잘 지켜져온 주제가 단 한번 옅어진 에피소드가 이어진 인조인간-셀 편이었다. 이 편에선 '손오공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적'이 등장했고, 이에 맞서는 수단으로는 전 회에서 보여진 초사이어인의 강화가 제시되었다. 물론 초사이어인 개념이 등장한 이후로 연재 연장이 결정된 순간부터, 이러한 전개는 불가피한 부분이긴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자동적으로 초사이어인이 가능한 캐릭터들 위주로 극을 단조롭게 만들었고,[23] 결국 셀을 쓰러뜨린 힘 또한 손오반 개인의 천재성이 결정적 요소가 되는 등, 주제 연출 면에선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연대의 연출 면에서도, 손오반의 각성에 크게 작용한 요소는 16호의 파괴와 손오공의 조력인데, 16호는 오히려 크리링과 더욱 깊은 연대를 맺고 있었고, 손오반과는 사실상 파괴 직전까지도 일체의 접점이 없었다.[24] 손오공과의 관계 역시, 그간 이들은 막연히 사이좋은 부자로 묘사되었을 뿐, 오히려 손오반 각성 전까지도 손오공은 피콜로에게 자식과 상의도 안 할 뿐더러, 자식의 마음도 모르는 무심한 아버지로 지적당할 정도였다.[25] 물론 이후 손오반이 자신의 전투 경험 이상의 힘을 가지게 된 천재아의 미숙함을 보여주고, 이를 저승의 손오공이 보완하면서 셀을 쓰러뜨리는 부자 연대를 통해 좋은 마무리를 했지만, 사이어인과 지구인의 연대를 강조해 온 이전에 비해, 연대마저 사이어인들만의 잔치로 전개된 부분은 분명 아쉬운 점이었다.

특히 손오공->손오반의 주역 교체는 셀 편만으로 한정한다면 훌륭한 클라이맥스지만, 드래곤볼 전체로 따진다면 전혀 합당하지 않은 결말이다. 오리지널부터 묘사된 드래곤볼의 주역으로서 손오공의 특징은 첫째, 누구보다 투철한 노력가요, 둘째, 싸움을 좋아하는 인물이며, 셋째, 이 특성들에 더해 지구인과의 연대를 통해 성공해 온 강자라는 점이다. 셀 편에서 묘사된 손오반은 이 세 가지 조건 중 단 하나도 충족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그가 견지해온 특징 또한 작품 전체의 결말을 맺는 주역으로선 합당하지 못했다. 먼저 그가 아버지 같은 노력가인지는 일절 묘사되지 않았고, 셀 편에서도 손오반은 셀에게 '아버지처럼 싸움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분명히 고백했으며,[26] 마지막으로 셀을 쓰러뜨린 손오반의 힘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천재성이었다. 바로 이 부분이 가장 큰 문제인데, 손오반의 천재성은 누구보다 싸움을 좋아한 손오공이나 베지터가 평생의 시간을 들여 쌓아온 노력을, 싸움을 좋아하지 않는 소년이 불과 1년 미만의 수련으로 아득히 초월해버린 수준으로서, 이런 인물이 한 에피소드의 강자를 넘어 드래곤볼 전체의 결말을 맺는 주역이 된다면, 이는 작품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전개에 지나지 않는다.[27] 이처럼 주제는 물론이거니와, 세대 교체의 주역을 제시하는 연출에서도 셀 편은 작품 전체의 결말로서는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결정적으로, 손오공이 힘을 목표로 한 계기는 부르마의 인도를 받아 세상을 겪은 뒤, 자신의 의지로 택한 길이었다. 그러나 손오반의 주역화는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자식이 원래의 꿈을 접고 딱히 원치도 않은 길을 걸어야만 할 상황이라는 점에서도 껄끄러운 부분이 있었다. 즉, 단순히 셀 편에서 손오반이 주역으로 제시됐으니까가 아니라, '손오반이 정말 세대 교체의 주역으로서 합당한가?' - 맞다면 왜 맞는지, 아니면 왜 아닌지 그에 대한 답이 제시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재된 에피소드가 바로 마인 부우 편이었고, 이 편은 인조인간 편에서 잠시 옅어진 작품의 주제와 철학을 다시 한번 확실히 전달하며 훌륭하게 끝을 맺었다.

원점으로 돌아와보자. 손오반에게 주역 자리를 물려주면서 손오공은 '내가 악당을 불러모으는 듯 하니, 내가 없는 편이 지구의 평화를 위해서도 좋을 것'이라는 명분을 설파한다. 사이어인이나 인조인간으로 한정하면 그 말은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피라후, 레드리본, 피콜로 대마왕, 프리저는 손오공의 존재와 관계 없이 평화를 위협하던 적이었다. 과연 마인부우는 어땠을까. 이 적은 이미 인간이 이족보행을 시작할 무렵부터 태동했고, 그가 봉인된 구슬 또한 비슷한 시점에 지구에 안착된다. 다시 말해, 손오공과 관계없이 지구의 평화가 위협되는 상황이 재차 확인된 것이다. 이 시점에서 셀 편이 제시한 손오공이 없어져야 할 명분 즉, 손오반이 세대 교체의 주역이 되어야 할 명분은 사라진다. 이와 더불어 손오공이 미래를 믿고 맡긴 손오반 또한, 예상대로 아버지만큼 무술 연마에 노력하지 않은 모습으로 묘사된다.[28]

물론 이 경우에도 질문은 생긴다. 그럼 손오공이 다시 주역이 되어야 하는가, 즉 '지구는 손오공이 없으면 평화를 지킬 수 없는가' 에 대한 답이 필요한 순간이다. 초반의 부우 편은 얼핏 인조인간 편과 유사하게 진행된다. 강력한 적이 나오고, 그에 맞선 초사이어인 강화나 새로이 등장한 퓨전이 제시된다. 이번에도 어디까지나 수단은 사이어인 전사들인마냥 보여진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미스터 사탄이라는 지구인이 등장한다. 모든 주역들이 전투에 집중하던 작품 중반에, 사탄은 마인부우와의 만남을 통해 전투가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를 개심시키는데 성공했다. 설혹 찰나에 불과했을지언정, 부우를 막아 평화를 지킨 요인은 그 어떤 전사의 강대한 힘이 아니라, 미약한 지구인이 부우와 쌓은 인연이었다.[29]

이후 또 다른 악한 지구인들에 의해 부우가 각성하면서 기적은 절망으로 바뀐다. 부우 편의 차이점은 이 적을 사이어인의 힘으로 쓰러뜨리지 않았다는 부분에 있다. 물론 승리의 수단으로 오천크스와 손오반이 제시되며, 이들은 모두 순수한 전투력으로는 손오공을 초월한 천재들이었으나, 그런 그들조차도 부우를 압도했을 뿐, 끝내 쓰러뜨리진 못했다. 마지막 타자였던 주인공 손오공 역시 혼자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30] 최고의 적인 부우를 쓰러뜨린 힘은 바로, 베지터가 입안하고 손오공이 준비하며 (미스터)부우가 막아주고 사탄이 완성시킨 원기옥으로 묘사된다. 이 기술은 그동안 손오공이 드래곤볼을 계기로 만난 모든 이들은 물론, 만난 적조차 없던 평범한 지구인 전체의 힘이 모인 연대의 결정체였고, 이 힘에 의해 비로소 부우는 소멸된다.

이 원기옥 시퀀스는 단순한 시각적인 감동을 넘어 작품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데, 우선 원기옥의 완성에 기여한 이들이 드래곤볼을 통해 만난 적수 베지터, 얼마 전까지 타도의 대상이었던 뚱보 부우는 물론, 그 부우를 개심시킨 사탄이라는 점은, '서로 적이었던 이들이 만나 지구를 지킨다'는 기조에도 더없이 합당한 연출이었다. 더불어 원기옥 완성의 결정적 공로자인 사탄과 지구인들 또한, 단순히 사이어인들을 빛내주기 위한 수동적인 도구처럼 묘사된게 아니라, 저마다의 자유 의지로써 의심도 해보고, 확인도 해보고, 깨달아가며 단결함으로써[31] 또 하나의 당당한 주역으로 빛났다. 마지막으로 이 승리는 누구에게 한정된 성공이 아니라, 원기옥의 완성에 기여한 모든 이들의 성공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었다.

뚱보 부우를 변화시킨 사탄의 모습과 더불어 원기옥으로 적을 물리친 이 연출은, 연대의 기적이라는 작품 본연의 주제는 물론, 뛰어난 영웅의 힘보다 평범한 사람들의 힘이 더욱 위대한 기적을 만들 수 있다는 발전된 메시지까지 명확히 전달헀으며, 이후 에필로그에서 이러한 메시지가 상징화된 캐릭터로 지구인 우부가 등장하면서, 손오공의 진정한 세대 교체는 비로소 완성된다. 특히나 이 세대 교체는 그 옛날 부르마가 손오공을 더 넓은 세상으로 인도했던 것처럼, 손오공이 우부에게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계기를 만들어주는 방식이었다는 점에서,[32] 강제적인 상황에 손오반을 던져 놓던 셀 편의 세대 교체와도 차이를 보였다. 게다가 이 결말의 시점에선 우부 이외에도 새로이 자라나는 팡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손오공이 여전히 건재하면서 우부와 함께 현재 진행형으로 끝 없는 강함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도 세대 교체의 전망을 더욱 희망적으로 그려냈다.

더불어 마지막 순간에 손오공이 적수인 부우를 마음 깊이 인정하며 환생을 바라고, 그 바람대로 환생한 우부를 선의의 라이벌로 삼아 새로운 도전을 지속하는 모습은 '자신의 한계를 깨기 위한 끝 없는 도전'으로서의 무도 철학이 관철되는 순간이었고, 이후 손오공에게서 물려받은 근두운을 탄 우부의 모습에 어린 손오공의 실루엣이 겹쳐지는 연출은, 그 옛날의 손오공처럼 이 지구인 소년이 만들어나갈 또다른 '만남의 이야기'를 암시하며 작품의 주제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33] 이처럼 부우 편은 옅어졌던 작품의 기조를 훌륭히 되살리며 막을 내렸고, 특히 에필로그에선 손오반 또한 어린 시절부터의 꿈인 학자가 되어, 본인이 진정으로 원하던 길을 걷는 장면 또한 빠짐 없이 묘사되었다.

이러한 작품적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 그저 '손오공의 아들이기 때문에' 혹은 '손오공보다 강하기 때문에' 무조건 손오반이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옳지 못하며, 그 때문에 작품의 주제 전달까지 실패했다는 것은 전혀 합당하지 않은 지적이다.[34] 분명 손오반을 주인공이라 공언하고 중도에 변화시킨 것은 비판할만한 부분이나, 이게 무슨 변경할 수 없는 대명제가 될 순 없으며, 그 변경 또한 초반부터 자연스럽게 이루어졌고[35], 주간 연재물에서 계획이 바뀌는 것은 허다한 일이다. 당장 인조인간 편부터 최종보스는 원래 19, 20호였으나 이후 17,18호로 바뀐 뒤 또다시 셀로 변경되었지만, 이 부분 하나를 갖고 주제 전달에 실패했다고 할 순 없다.[36] 더군다나 변경 이후의 전개가 부우 편처럼 작품 본연의 주제와 철학을 훌륭히 살려냈다면 이는 의미 없는 지적이다.

손오반이나 손오천의 비중 문제도 마찬가지로서, 이 비판의 골자는 '보스를 끝내지 못했으니 등장한 의미가 없다'인데, 그런 식으로 따지면 사이어인 편에서 죽은 z전사들은 물론이거니와, 프리저 편의 베지터 피콜로, 셀 편의 베지터 피콜로 트랭크스도 등장한 의미는 없다. 오히려 손오공이 없는 상황에서 손오반과 손오천은 그 이상의 전력으로 훌륭히 잘 싸워주었고, 이들의 싸움은 최종전 직전에 으레 벌어지던 서브 이벤트로서도, 그 패배가 의미하는 바로서도 충분히 역할을 다 했다.[37] 결정적으로, 부우 편이 전하고자 했던 세대 교체의 포인트는 지구인의 힘으로써 지켜내는 평화였으므로, 이러한 비판은 작품의 흐름은 일절 무시한 채, '무조건 손오반 손오천이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 왜? 손오공 아들이니까.'라는 식의 맹목적인 비난일 뿐이다.[38]

요약하자면 원작은 본연의 주제와 철학의 전달은 물론, 세대 교체라는 소재도 훌륭히 연출하며 잘 마무리 되었다.

4 드래곤볼 超/논란

항목 참조
  1. 그나마 피콜로와 인조인간 18호도 인조인간 편에서나 활약했을 뿐, 마인부우 에피소드로 넘어가자마자 전력 외 해설역이 된다(...).
  2. 드래곤볼을 모으는 과정도 초중반에나 고난의 연속으로 나왔지, 우주레벨 괴수들이 되어버린 Z 이후 이야기에서는 난관 축에도 끼지 못한다. 그냥 번거롭게 약간의 시간이 걸리는 문제일 뿐.
  3. 게다가 이 말 자체가 드래곤볼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에 와서야 한마디로 설명하고 지나갔기에 스토리 진행을 위한 편의주의적 설정변경이라는 느낌이 다분하다.
  4. 게다가 Z전사인 배지터와 손오공이 서로 싸워 부우의 부활을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게 한 원인이라서 본인 때문에 지구의 인류가 죽었는데 여기서 악당은 뺀 모든 사람들을 되살려달라며 아무리 본인때문에 억울하게 죽임을 당해도 나쁜 사람이라며 되살아나지말라는 권리는 없다.
  5. 사형제도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주장 중 하나가 '피해자의 생명은 되돌릴 수 없으므로 가해자 역시 생명으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피해자가 되살아난다면 가해자를 심판하는 방법이 꼭 죽음이어야 하는가는 재고의 여지가 분명히 있다. 물론 그 악당들이 어디까지나 극악무도한 악당을 한정이고 피라후 일당같이 소소한 악당은 되살아나지만 그렇다해도 극악무도한 악당이라도 엄연히 절대악인 마인부우에게 죽임을 당한 피해자를 되살아날 자격이 없다고는 단정할수가 없다.
  6. 문제는 이렇게 될 경우 베지터보다 강한 오천크스, 오반 등은 그냥 죽은 채로 놔뒀다는 데에도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더구나 베지터는 갱생 이전의 악행도 그렇고 스스로 마인 베지터가 되어 저지른 짓도 그렇고 도덕적 약점이 잔뜩 있지만 오천, 트랭크스와 오반은 완전한 선인인지라 명분적으로도 실리적으로도 베지터보다 훨씬 나은 선택임에도. 그냥 작가가 생각 못했거나 그걸 무시하고 스토리를 원하는대로 진행시키고 싶어서라고 볼 수밖에 없다.
  7. 귀걸이 퓨전을 하고 나서 일부러 흡수 당해던 당시 마인 부우의 몸 속에 뚱땡이 부우를 비롯한 먼저 흡수 당했었던 Z 전사들이 남아 있었고 그걸 뜯어내서 제거하고 밖으로 나오면 원래 크기로 다시 혼절한 채로 쓰러져 있는 것을 봐서는 죽은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지만, 그래도 키드부우랑 싸울 때는 왜 안 데려왔냐란 문제가 생긴다. 슈퍼부우보다 강한 오반이라면, 최소 키드부우와 동급이거나 우세를 점할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다.
  8. 대놓고 지구인을 목표로 삼아 학살한 적은 셀과 마인부우 뿐이며, 특히 셀이 완전체 이후로는 자중했던 것에 비해, 부우는 총 이틀 중 하루 만에 지구인 80%를 전멸시켰다.
  9. 가장 가볍게 그려진듯 보이는 노계왕신의 희생조차 손오공 본인부터가 못내 미안해했고, 당사자인 노계왕신은 그런 감상에 빠지지 말고 빨리 적을 쓰러뜨리라는 충고를 했을 뿐이다.
  10. 적을 쓰러뜨리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왜 죽었냐고 할 것 같으면 과거 천진반, 차오즈, 피콜로의 희생도 그 정도의 의미란 뜻인데, 이런 마인드가 오히려 생명 경시 아닐까.
  11. 가령 강철의 연금술사에서 호문쿨루스들이 사람을 실실 웃으면서 죽이는 것도 얼마든지 인명 경시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12. 특히 드래곤볼은 연재가 종료된지 20년이 넘어가는 작품이며 당시에는 사형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지금에 비해 덜하다. 지금에도 범죄자 인권이 거의 조소적인 의미로 사용된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13. 드래곤볼의 존재에 대한 인지 여부는 의미 없는 부분이다. 부르마나 피라후가 알게된 시점에서 인지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14. 애니에서 데브라가 천국에서 성격이 착해졌지만 드래곤볼의 원작 설정과 애니 설정이 동일하지가 않다. 진짜로 데브라가 착해졌다다면 베지터가 그랬듯, 마인 부우 퇴치에 도움이 되라고 부활시켰을 것이다.
  15. 당장 셀전만 하더라도, 셀이 이런 식으로 베지터에게 방해받아서 생긴 잠깐의 빈틈때문에, 오반의 에너지파에 밀려서 죽어버렸다. 당시 키드 부우가 어찌어찌 밀어낼 뻔했고, 손오공은 이미 셀전에서 일상생활에서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완성한 초사이어인도 못 될 만큼 지친 상황이니, 원기옥을 떨쳐낸 키드부우에 의해 몰살당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16. 작중 마인부우 편에 나온 등장인물들중에 극악무도한 악인들을 보더라도, 바비디, 데브라, 야무, 스포포비치, 푸이푸이, 야콩, 폭도 2인조로 전부 마인부우를 부활시키거나 악의 부우로 각성시킨 장본인으로 사실상 인명사상을 낸 인물들이다.
  17. 애니메이션 OP 영상에서도 드러나는데, 이전까지 오공-오반이 나오는 장면의 구도를 오반-오천이 계승하고 있다.
  18. 사이어인 손오공을 착한 아이로 키워낸 손오반, 그리고 올바른 무도의 길을 제시해 준 무천도사와의 만남은 모두 손오공의 인생, 나아가 지구의 운명을 크게 변화시켰다는 점에서 이미 기적이었다.
  19. '악한 이들에게 한 방 먹여줄 힘도 물론 필요하다'는 부록도 잊지 않는다.
  20. 물론 내퍼를 이긴 계왕권, 베지터에게 큰 충격을 준 원기옥 등, 손오공 개인의 노력 또한 충분히 가미되었다.
  21. 그 외에도, 악당이었던 대마왕 피콜로가 원수의 아들 손오반을 지켜내는 장면, 그렇게 살아난 손오반이 베지터를 몰아내게 되는 연출 역시, 적이었던 이들이 만나 세상을 지킨 유명한 사례다.
  22. 작중 프리더가 손오공에게 살려달라고 구걸했을때 손오공이 프리더가 극악무도한 악인으로 살려줘선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잠시간의 생각을 하며 프리더를 살려줬다.
  23. 물론 예전에도 손오공의 힘이 주가 되긴 했으나 지구인들의 활약도 균형있게 연출된 반면, 인조인간 편부터는 아예 사이어인 외 인종들의 존재 가치를 없앤 케이스였다.
  24. 물론 그전까지 아버지나 친구들이 고통받는게 도화선이 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결정적 방아쇠가 된 것은 16호의 파괴였는데, 그 16호와 손오반에게 아무런 인연이 없었다는 것은 연출적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25. 이를 보완하려면 최소한 정신과 시간의 방에서 수련을 할 때, 그들 부자만의 연대가 남다르다는 특징적인 장면 하나라도 연출되었어야 하지만, 그런 장면은 없었다.
  26. 싸우기 직전에도 언급되지만, 손오반의 꿈은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학자였다. 또한 등장 이후 손오반의 싸움은 모두가 싸우는데 나 혼자 편할 순 없다는 생각으로 언제나 불가피한 상황에 떠밀려 벌어졌을 뿐, 이전에도 그가 싸움을 좋아한다는 묘사는 없었다.
  27. 이 경우, 그동안 강함에 대한 열망과 투철한 노력에 더해 사람들과의 연대로서 성공해온 주인공의 이야기는 결국 천재성이 장땡이라는 결말로 끝나게 된다.
  28. 물론 이는 손오반의 낮은 인기라는 외적 조건의 발로겠지만, 작품 내적 상황으로도 세대 교체의 주역이 꼭 손오반이 될 필요가 없음이 설명되었다는 뜻이다. 언급한 작품 전체의 사례를 봐도, 이쪽이 훨씬 개연성이 있다.
  29. 사탄과 정분을 쌓은 미스터 부우는 이후 순수 부우의 체내에서 벗어난 뒤, 사탄을 지키기 위해 순수 부우에 맞서 싸움으로써, 결과적으로 손오공의 원기옥 완성에도 크게 공헌했다.
  30. 이러한 연출은 걸출한 영웅 하나의 존재가 더이상 극복의 수단이 될 순 없음을 극명히 보여주면서 셀 편과 부우 편의 메시지를 구분지었다.
  31. 처음부터 꿈이라며 부정하던 사탄은 뚱보 부우의 고통과 손오공의 절박함을 목격하면서 손오공 일행과 단결했고, 바비디 일당의 음모 아니냐던 지구인들은 생명의 은인인 사탄의 목소리를 확인한 이후 단결했다. 이 차이가 중요한데, 지구인들은 끝까지 정체 모를 목소리가 아닌, 지구인 미스터 사탄에게 협력했다.
  32. 이는 우부와 손오공의 첫 만남이 담긴 이 최종화에 부르마와 손오공의 첫 만남이 그려진 이유이기도 하다.
  33. DBMangaEnd2004-2.png 완전판에서 강조된 부분이며, 이후 풀컬러 판에도 그대로 반영된 진정한 엔딩이다.
  34. 애초에 드래곤볼의 주제는 '손오반의 천재성'이나 '손오반으로의 세대 교체'가 아니다.
  35. 손오반은 등장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베지터나 본인 입을 통해 몸이 둔해졌다며 수 차례 언급되었다.
  36. 주인공과 보스는 다르지 않냐고 할 지 모르나, 그 편의 보스를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극복하는가의 문제는 주제 전달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고로 보스가 바뀌면 이 방식도 바뀔 수 밖에 없다.
  37. 오천크스는 협력을 통해 개인의 한계를 뛰어넘은 전사로서, 손오반은 작 중 최고의 잠재능력을 지닌 천재로서 각각 의의가 있는 캐릭터들이다. 그런 그들의 패배는 제아무리 천재라도 전투 경험이 미숙하거나(오천크스), 노력없이 쉽게 얻은 힘으로는(손오반) 한계가 있다는 메시지로서, 영웅의 슈퍼파워가 무조건적인 대안이 될 순 없음을 의미했다.
  38. 당연한 얘기지만, 드래곤볼은 재벌 2세의 기업 계승 스토리가 아니다. 도리어 손오반이나 손오천이 주역이 될 경우, 전자는 수련에 몰두하는 전투광이 되면서 본연의 캐릭터성을 무너뜨려야 하고, 후자는 나이가 어린만큼 또다시 천재성에 기댈 수 밖에 없는데 이는 제 2의 셀 편일 뿐이므로, 역시 합당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