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스 세나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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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스 안토니오 세나 다 실바
(Marcos Antônio Senna da Silva)
[1]
생년월일1976년 7월 17일
국적스페인
출신지브라질 상파울루
포지션수비형 미드필더
신체 조건177cm
등번호19
클럽 경력하우브랑크 (1997)
아메리카-SP (1998)
코린치안스 (1999 - 2000)
주벤투지 (2001)
상카에타누 (2002)
비야레알 CF (2002 - 2013)
뉴욕 코스모스 (2013 - 2015)
국가 대표28경기, 1골
스페인 올해의 축구 선수
산티 카소를라
(2007)
마르코스 세나
(2008)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2009)
EURO 2008 BEST XI
FW
안드레이 아르샤빈
FW
다비드 비야
MF
루카 모드리치
MF
차비 에르난데스
MF
마르코스 세나
MF
하밋 알틴톱
DF
유리 지르코프
DF
카를로스 마르체나
DF
카를레스 푸욜
DF
필립 람
GK
이케르 카시야스

무적함대의 두번째 메이저 대회 우승을 이끈 중원의 핵심.[2]

대기만성형 수비형 미드필더의 대표적인 예시

귀화해서 성공한 대표적인 선수.[3]

2 클럽

브라질 시절에는 코린치안스 시절을 제외하면 딱히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전형적인 대기만성형 선수이다. 코린치안스 시절 주 리그 우승과 브라질 세리에A를 우승으로 이끌며 주목받기 시작했고 이때의 활약을 바탕으로 당시엔 무명에 가까웠던 비야레알로 이적한다. 그리고 04-05 시즌 노란 잠수함의 라리가 폭풍에는 후안 로만 리켈메, 디에고 포를란, 후안 파블로 소린등의 쟁쟁한 선수들과 함께 세나가 있었다. 05-06 시즌에는 이 훌륭한 스쿼드를 바탕으로 챔스에서까지 노란 잠수함의 돌풍을 이어나갔다. 조별 예선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격침시키고 기세를 이어나가 16강에서는 스코틀랜드의 맹주 레인저스를, 8강에서는 이탈리아의 3인자 인테르를 원정 다득점 원칙으로 누르고 4강에 오르는 돌풍의 숨은 주역으로 활약한다. 이후 마누엘 페예그리니가 리켈메를 내칠때도 꾸준한 활약을 선보이면서 비야레알의 핵심멤버로 경기에 나서지만 09-10시즌 전 시작된 부상으로 점점 출장횟수가 떨어지더니 결국 2010 남아공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서 2년전 자신이 밀어낸 사비 알론소세르히오 부스케츠에게 밀려 탈락하고, 이후 뉴욕 코스모스로 이적한다. 32세때 유로 2008에서의 맹활약으로 페네르바체등의 팀에서 2000만유로 이상의 오퍼가 온 선수가 이렇게 몰락할 줄이야...[4]

사실 빅 클럽으로 이적할 기회는 꽤 있었다. 05-06 시즌 비야레알의 챔스 4강 돌풍을 이끈 이후 아스날등의 클럽의 관심이 있었고 독일 월드컵 종료 후 로이 킨의 후계자를 찾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그를 영입하려 했지만 마이클 캐릭의 영입으로 파토가 났고, 07-08 시즌 시작전에도 오퍼가 있었으나 역대급 유리몸의 영입으로 또 다시 파토가 났다.

이후 2013년까지 팀이 세군다 리가로 강등되는 위기 속에서도 비야레알에서 꿋꿋이 활약하다가 이후 미국으로 진출하여 선수 생활의 말년을 보내는 중이다. 팀 동료 라울 곤잘레스와 함께 2015시즌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3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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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아라고네스에 의해 2006 독일 월드컵 직전 스페인으로 귀화 하였고 독일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도 발탁되었고 조별리그에서 극강의 포스를 보였지만 16강에서 지네딘 지단에게 팀이 우주관광을 당하면서 광탈한다. 한창 물이 올라있던 2008년에는 유로 2008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명단에 포함되었다. 세나는 대표팀의 최대 경쟁자 사비 알론소를 벤치로 밀어내고 6경기 중 5경기를 풀타임으로 소화하며 스페인의 유로 2008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이 당시 세나의 활약은 희대의 스페인 포메이션인 4-1-4-1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으로서 4백 앞을 세나에게 모두 위임함으로 공격 2선 미드필더들이 마음 놓고 공격에 가담해 '스페인'의 축구를 구사할 수 있었다. 유로 2008에서의 활약으로 축구에서 가장 권위있는 발롱도르 후보 30명에 수비형 미드필더로선 유일하게 이름을 올려 11위를 차지했다. 2009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대표팀 명단에는 부상으로 선발되지는 못하였다. 그리고 소속팀에서도 주전으로 출전 못 하는 사이 세르히오 부스케츠가 그의 자리를 대체하여 2010년 FIFA 월드컵 명단에 포함되지 못하면서 사실상 은퇴.
  1. 브라질식 포르투갈어로는 마르쿠스 안토니우 세나 다 시우바로 읽지만, 스페인으로 귀화했으므로 마르코스 세나로 읽는 것이 옳다.
  2. 이니에스타나 차비의 공로도 크긴 하지만 유로 2008은 명백히 따져보면 세나의 공헌이 없었다면 우승이 불가능했다. 8강에서 이탈리아를 만나 승부차기로 겨우 이겼으며 이 경기에서 세나가 없었다면 졌을지도 모르며 스페인의 두번째 메이저대회 우승은 뒤쳐졌을지도 모른다.
  3. 비슷한 시기 귀화해서 성공한 케이스라면 데쿠그러고 보니 둘 다 원래 브라질 사람이었네? 마우로 카모라네시 같은 케이스가 있을 듯. 20세기 초중반까지는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 선수들을 자주 흡혈하였다. 대표적으로 루이스 몬티,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가 있다.
  4. 수비형 미드필더로, 그것도 당시 저정도 이적료면 제대로 미친 수준이다. 일례로 2006년 17M 파운드에 토트넘에서 맨유로 이적한 마이클 캐릭의 이적료도 과도하다고 극딜을 먹은 시절이다. 안드리 셰브첸코의 3000만 파운드는 선수의 당시 활약상이나 이름값이 있었다지만 당시에도 노쇠화 기미가 보이고 전성기 끝물인 선수에 과하게 투자하면서 겨우 꺼진 세리에 A, 갈락티코스발 이적시장 거품을 다시 부활시켰다며 첼시도 욕을 한사발 얻어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