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락티코스

1 개요

Galácticos
'은하수의(Galactic)'를 의미하는 스페인어로, 스페인의 프로 축구 클럽인 레알 마드리드 CF에서 추진하는 선수 영입 정책의 일환으로 유명하다. '갈락티코스'라는 말 그대로 초특급 축구 스타들을 대거 영입해 은하수를 이루겠다는 레알 마드리드만의 영입 정책이다.

갈락티코스가 탄생한 계기는 2000년대 초 레알 마드리드 CF의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이 이상적인 축구 팀을 만들겠다는 일념하에 최고 선수들을 영입하는 정책(지네딘 지단, 호나우두, 루이스 피구, 데이비드 베컴 등)을 편 것으로, 세계적인 관심을 끄는 마케팅 효과와 더불어 전 세계 시청자들을 레알 마드리드의 팬으로 만드는 효과를 가져왔다. 위닝빠들이 열광한 것은 덤

2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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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락티코스 1기는 명성에 비해 절반 정도 성공에 그쳤는데, 베컴 영입 이후 클로드 마켈렐레를 방출하여 공격적인 선수들만 남아버렸기에 팀 밸런스가 붕괴되고 말았다. 이때 수비 영입에 소홀했다는 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당시 로마에서 철벽으로 꼽히던 왈테르 사무엘이나 잉글랜드산 초특급 센터백 유망주 조나단 우드게이트,[4] 중원 안정화를 위해 에스테반 캄비아소, 토마스 그라베센 등을 영입했으나 기대에 못 미치는 활약을 보여주었다. 또한 02-03 시즌 시작 전 세계 최고 센터백으로 꼽히던 알레산드로 네스타를 영입하려 했으나 AC 밀란과의 경쟁에서 밀려서 실패. 이후 인테르파비오 칸나바로나 라치오의 야프 스탐 등도 노렸으나 전부 실패하고 만다. 결국 페르난도 이에로 은퇴 후 센터백은 사실상 클래스가 아쉬웠던 이반 엘게라, 프란시스코 파본 같은 기존 선수 및 유스 선수들을 위주로 중용했지만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대망. 그나마 다행이라면 양쪽 풀백 라인에는 미첼 살가도, 호베르투 카를루스라는 월드 클래스급 선수들이 자리매김하였다는 것인데, 체력 소모가 엄청난 풀백의 특성상 이들만으로 시즌을 운영할 수는 없었고 결국 후보들의 부족한 기량이 문제가 되었다. 정리하면 팀 밸런스 붕괴, 주전과 비주전의 심각한 기량 차가 갈락티코스의 발목을 잡았다.
다만 흔히들 레알 마드리드의 갈락티코스 결성이 완전한 실패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레알이 얻은 최고의 팀이라는 프리미엄적인 이미지와 재정적 효과를 제외하더라도 2000년 피구 영입 이후 2005년 피구 방출까지 레알 마드리드의 성적은 프리메라 리가 우승 2회,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우승 2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로 절반 정도는 성공을 거두었다. 단 갈락티코스 이전까지 레알 마드리드가 거둔 성적과 세계적인 선수들을 모으는데 투자한 이적료를 생각해 봤을때는 재정적인 부분을 제외하면 실패라고 보는 시선이 대다수다.

3 1.5기: 네덜란드 커넥션

페레스 회장이 갈락티코스 1기의 실패의 책임을 지고 칼데론 회장이 부임한 시기이다. 는 망했어요 06-07 시즌부터 09-10 시즌까지 들어올린 트로피가 리가 우승 2회밖에 없다. 실패의 원인은 기대치가 높았던 칸나바로, 메첼더 라인의 부적응과 에메르손, 마하마두 디아라 라인의 중원 불안정, 반니를 제외하면 세워둘 공격진이 없었던 상황과 로번의 부상, 반 니의 부상, 스네이더르의 부상, 여기가 FC Hospital 입니까? 끝나지 않았어 훈텔라르와 반 더 바르트의 적응 실패였다. 결국 페레스 회장이 재선임되면서 네덜란드 커넥션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5] 이 외에도 파비오 칸나바로, 예지 두덱, 에메르손, 페페, 마하마두 디아라, 마르셀루, 페르난도 가고, 곤살로 이과인, 라사나 디아라, 로이스톤 드렌테 등 크고 작은 선수 이적도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06-07 시즌 갈락티코스의 유산을 정리하려는 칼데론의 정책으로 인해 데이비드 베컴, 호베르투 카를루스가 자유 계약으로 이적해버리고, 스페인에서 땡깡 피우던 안토니오 카사노와 체중 감량 실패 및 부상으로 기량이 하락한 호나우두를 이탈리아로 보내는 등 시즌 중반까지 팀 분위기가 매우 어수선했다. 설상가상으로 발롱도르 위너인 칸나바로와 독일의 정상급 센터백 메첼더는 리가 적응에 애를 먹었고, 예전부터 눈독 들였던 에메르손은 기량 저하가 눈에 띄는 등 총체적 난국이었으나 후반기 파비오 카펠로의 주도하에 데이비드 베컴의 재기용과 전술이 맞물리면서 폭발한 호비뉴, 택배 받아먹던 반 니의 골 폭풍으로 역전 우승에 성공한다. 하지만 카펠로는 유럽 무대 부진으로 인해 팬과 언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질되고, 후임으로 베른트 슈스터가 부임한다. 07-08 시즌에는 리가 내 라이벌인 발렌시아로날드 쿠만의 첩자질로 폭망하고, 바르셀로나는 그간 감춰져 있던 고름이 터져 검은 양 드립 등 팀 전체가 혼란스러워 가볍게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다. 하지만 코파 델 레이 광탈 및 챔스 광탈로 팬들에게는 전혀 만족스럽지 못한 시즌이었고, 자연스레 슈스터보다는 역전 드라마를 썼던 전임 카펠로를 원하는 팬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대망의 08-09 시즌, 레알 마드리드는 라이벌이 6관왕을 차지할 동안 무관에 그치며 칼데론 & 슈스터 시대에 종말을 가했다.

4 2기

갈락티코스 2기는 카카 영입이 실패로 끝나고, 우승 청부사 무리뉴가 결국 챔피언스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하며 흐지부지되나 싶었으나, 3기 출범과 동시에 고스란히 남아 있던 2기 멤버들을 주축으로 라 데시마를 달성하면서 결국 실패라는 오명을 뒤집어쓰지는 않게 되었다.

5 3기

이상한 칭호가 껴 있지만 신경쓰지 말자

갈락티코스 3기는 2기의 상징적 인물 중 하나인 주제 무리뉴가 첼시로, 메수트 외질이 아스널로 떠남과 동시에 토트넘으로부터 가레스 베일을,[8] 말라가로부터 이스코를, 레알 소시에다드로부터 아시에르 이야라멘디를 영입하고 레버쿠젠으로부터 다니엘 카르바할을 임대 복귀시키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2014/2015 시즌에 앞서, 직전 월드컵에서 MVP급 활약을 펼친 하메스 로드리게스를 모나코로부터 영입하였다.
  1. 당시 세계 이적료 순위 1위였다.
  2. 마켈렐레는 베컴 영입 직후에 첼시로 이적했다.
  3. 사실 마켈렐레가 미화된 부분도 없지 않아 있는 게, 마켈렐레의 볼 배급은 매우 불안정했고 지단의 빌드 업 도움으로 이를 상당히 상쇄할 수 있었다. 물론 수비적인 공헌도는 두 말할 필요 없는 마켈렐레의 최대 강점이었다.
  4. 우드게이트에 대한 기대치는 어마어마했다. 리오 퍼디난드존 테리 그 이상.
  5. 로벤은 뮌헨으로, 스네이더르는 인테르로, 반 니는 함부르크로, 훈텔라르는 샬케로, 반 더 바르트는 토트넘으로 이적하며 말 그대로 공중분해된다. 로벤이랑 스네이더는 분해되고 더 잘 된 게 함정
  6. 2기 명단의 선수 중 유일한 카스티야 유스 출신이다
  7. 9천 4백만 유로로 역대 이적료 1위였으나 훗날 가레스 베일이 레알로 이적할 때 1억 유로를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2위로 깨졌다.
  8. 베일의 이적료는 언론과 구단의 주장이 판이하다는 게 특징이다. 잉글랜드 유수의 언론은 1억 유로라는 타이틀을 붙여 역대 최고 이적료를 기록했다고 보도하고 있지만, 스페인의 언론들과 레알 마드리드의 공식 입장은 9천 1백만 유로이다. 허나 후에 실제이적료가 1억유로라는게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