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萬景臺革命學院
북한의 특수 교육 기관...이라고 쓰고 특권층 자제 전용 학교라고 읽는 교육 시설. 개교 목적과 운영부터 일반 학교와 판이하게 다르며, 사실상 서구에 20세기 중반 까지 존재했던 유년사관학교라고 볼 수 있다.
1 연혁
북한 측의 기록에 의하면 1947년 10월 12일에 평양 대동군에 설립된 혁명열사유가족학원이 직계 모체로 되어 있다. 김일성이 항일 빨치산으로 활동하던 당시 전사한 동료들의 자녀들을 위해 세웠다고 하며, 1948년에 대동군에서 만경대구역으로 이전했다. 이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전쟁에서 전사한 조선인민군 군인들의 유자녀들도 원생으로 받아들이면서 휴전 후 현재의 이름으로 최종 개칭했다.
1958년에 북한 내각 결정 제6호에 따라 유치원부터 소학교, 고등중학교까지 대학 직전의 모든 교육 체계(유치원 1년제-소학교 4년제-고등중학교 6년제)를 소화할 수 있도록 확대 개편되었는데, 이후 혁명 유가족들과 전사자 가족들의 수가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적으로 줄어들게 되자 2000년대에 김정일의 지시로 기본적으로는 고등중학교 과정만 남겨놓는 식으로 축소되었다. 다만 소학교 과정을 아예 없애지는 않았고, 자신의 친족들이나 최측근의 자제들을 위해 소규모 정예 형태로 존속시키고 있다고 한다.
혁명열사유가족학원 시기에는 성별을 가리지 않고 원생을 받아들였지만, 전쟁 중이었던 1951년에 남포혁명학원이 개원하고 1972년에 김일성의 어머니인 강반석의 이름을 딴 강반석혁명학원으로 개칭되면서 만경대혁명학원은 남학생만, 강반석혁명학원은 여학생만 받아들이는 식으로 성별 분류가 이루어졌다.[1]
2 구성
다른 북한 교육 기관들이 내각 밑의 교육성 관할 하에 있는 것과 달리, 이 곳과 강반석혁명학원 두 곳은 성급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인민무력부 관할 하에 있어서 다른 학교들과 비교하면 넘사벽 급의 클래스를 자랑한다. 당장 학원장부터 현역 육군 소장이다. 원생들은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고, 체육 등의 과목을 제외하면 항시 교복을 착용하고 생활하도록 되어 있다. 다만 말이 교복이지 색상과 디자인이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 장교 정복과 똑같은 군복이고 교육 과목 중에도 군사학이 당당히 포함되어 있는 등, 사관학교에 준하는 엄한 똥군기를 자랑한다.
이 때문에 원생들은 좋던 싫던 군대 문화에 익숙해져야 하고, 졸업 후에도 바로 조선인민군 군관으로 배치되어 의무적으로 군 복무를 해야 한다. 다만 10여 년은 썩어야 하는 일반인들과 달리 복무 기간은 비교적 짧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대우도 다른 군관들보다는 좋다고 한다. 전역 후에는 김일성종합대학 등에 진학해 추가 교육을 받거나 조선로동당이나 여타 국가 기관에 등용되어 정치인이나 고위 군인으로 경력을 시작하기 때문에, 이 학원 출신이라면 거의 기본적으로 출세길이 막힘없이 열린다고 보면 된다.
상당히 엄격한 학제로 유명하지만, 그 만큼 북한 정권 측에서 작정하고 밀어주고 있기 때문에 시설 면에서는 다른 북한 교육 기관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수하다고 알려져 있다. 북한 최고 지도자들의 교육계 시찰 때도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북한 지도층 인사들의 대다수가 이 학원 출신이라 북한 체제의 권력 세습의 첫 단계로 매우 중요시되고 있다. 물론 외교관 전문 양성 기관인 평양외국어학원이나 '민간'교육기관으로는 최고급에 속하는 남산제1중학교[2] 출신도 북한 사회에서 상당히 후한 대접을 받지만, 선군정치가 아직도 통하는 북한 체제의 특성 상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자를 더 우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김일성훈장을 두 차례(1972, 1986), 김정일훈장을 한 차례(2012)년 수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