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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조일때. 좌측부터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Vo/G), 리치 제임스(Guitar), 니키 와이어(Bass), 션 무어(D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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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의 3인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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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3인조. 이제 옛날의 턱선은 안녕
Manic Street Preachers
1 소개
영국 웨일스 출신 록 밴드. 카디프에서 결성했다. 카디프 나아가 웨일스 출신 밴드 중 가장 출세했다. 줄여서 MSP나 매닉스라 부른다. 한국에서는 후자쪽이 보편화 되어 있는듯. 밴드명의 유래는 불명확하지만 브래드필드가 버스킹 도중 누가 '넌 무슨 미치광이 길거리 목사Manic Street Preacher 같은거냐?' 라고 말한거에서 따왔다는 얘기가 가장 유명하다.
90년대 영국을 휩쓸었던 브릿팝 열풍의 주역들 중 하나이며, 지금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밴드이다. 80년대 중반 섹스 피스톨즈를 좋아했던 4명의 노동 계급 젊은이들이 모여서 결성했으며, 초기엔 하드 록에 가까운 강성 록을 선보였으며, 이후 점점 주류 친화적인 사운드로 변모해 갔다. 정치적인 가사와 강한 사운드가 인상적인 밴드.
...라고 적으면 무지 단순해 보이겠지만, 이 밴드만큼 파란만장한 밴드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2 평가
사운드 면에서 초창기에는 반골적인 매카시의 가사와 말초적인 건즈 앤 로지스의 메탈 사운드의 영향을 많이 받아 LA메탈 컨셉이 강하였지만 이후 더 클래시처럼 전통적인 락큰롤의 범주 내에서 펑크적인 시도로 출발하여 브릿팝으로 마무리짓는 스타일이 주를 이루어 서정적인 멜로디와 비장미 넘치는 비트의 조화가 Everything Must Go에서 절정을 이룬다. 후기에는 리치 제임스의 실종으로 인한 트윈 기타 포지션의 붕괴와 사운드 공백을 메꾸기 위한 키보디스트 니콜라스 네이스미스[1]의 비중 증가와 러쉬, 그것도 뉴웨이브 시절의 러쉬 빠돌이가 된 니키 와이어 덕분에 사운드에서 드라마틱한 전개와 기타 솔로가 사라져 힘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Send Away The Tigers에서 스웨디시 팝의 변용을 통해 생명연장을 꾀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멤버들 모두가 상당히 문학적, 예술적 소양이 뛰어난 편이다. 4집 가사 대부분이 실존 미술가, 시인, 건축가를 인용하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그리고 싱글, EP, 앨범, 라이브 DVD등 모든 결과물에 유명 인사들의 명언을 첨부한다. (심지어 세트리스트가 적힌 종이에도 항상 인용구가 다르다. 그 모든 책을 다 봤다는 소리?)
결론은 음악스타일을 종합하자면 더 클래시 + 건즈 앤 로지스 + 매카시 + 러쉬 + 카디건스의 합집합.
광적인 팬들이 많다. 라이브도 상당히 열정적이라는 평. 유명한 공연으로 1999년 12월 31일 카디프 밀레니엄 스타디움에서 열린 새천년 기념 공연은 매닉스 최고의 공연으로 꼽으며 영미권 밴드 처음으로 쿠바에서 라이브를[2] 하기도 했다. 흠좀무
잉글랜드가 아닌 웨일즈 출신으로 향토의식이 강해 4집의 발매때에는 웨일즈어로 프로모션을 한 적도 있다. 우리나라 지역주의 뺨치는 이들의 향토의식을 엿볼 수 있는 단면이기도. 보컬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는 공산주의자로도 유명하다. 최근에는 웨일즈를 빛낸 100인의 위인 100 Welsh Heroes에 제임스가 17위, 리치가 25위에 선정되었다. 이 설문에 과거 인물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감안해봤을때 이들의 위치가 어느정도인지 가늠해볼수 있는 부분. 오아시스가 영국 노동자의 그것과 같은 비타협적인 태도로 구설수에 휘말린다면 이들은 사회비판적인 발언으로 자주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대놓고 좌익
배트맨의 주인공 크리스찬 베일이 이들의 팬이다. 같은 웨일즈 출신[3] 이라 잘 아는듯.[4] 9집에서 오프닝 트랙에 그의 대사를 도입부에 사용하였다.[5]
최근 리치제임스 관련해서 허가받지 않은 전기가 나와 마음고생이 심했다. 내용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찌라시라면 능히 있는말 없는말 갖다붙여 BL물로도 내놓을 기세니까 (...) 고소미 먹여서 해결했겠지
그리고 휴지기인 2012년말에 뜬금없이 WWE 소속 레슬러 웨이드 바렛의 테마곡을 만들어준다는 소문이 돌고있다. (...) 좌빨 밴드가 자본주의의 상징을? 링크 사실 매닉스도 레슬링을 좋아하여 Journal for Plague Lovers 앨범에서는 영국 레슬러 자이언트 헤이스택스를 인용한 적이 있다.
3 멤버
-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Vo/G)
- 리치 제임스(Guitar)
- 니키 와이어(Bass)
- 션 무어(Drum)
4 사건사고
사실 섹스 피스톨즈처럼 되고 싶었다는 그들의 선언처럼, 그들의 초창기 활동은 센세이션으로 가득차 있었다. 초창기에는 "건즈 앤 로지스 판매고 넘으면 해체한다~"라는 충격 발언도 했으며 (앨범 한 장만 내고 해체된 섹스 피스톨즈의 영향이 느껴지는 부분이라 할수 있다.) 당시에는 스웨이드와 한 묶음으로 센세이션 폭탄으로 여겨졌다. 다음은 그 사건들의 나열.
- 4 Real 사건
- 주의
- (사진이 좀 충격적이니 노약자와 임산부는 클릭을 자제하시기 바랍니다.)
- 1991년 영국 음악 잡지인 NME가 밴드의 기타리스트인 리치 제임스와 인터뷰를 하던 도중, "당신들의 펑크 정신이 진실된 거냐" 취지의 질문을 던졌는데, 이에 빡돈 리치 제임스가 면도칼로 자기 팔에 '4 Real'(우린 진짜다) 라는 문구를 새겨 세인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든 사건이다. 위 사진 보면 잘 알 수 있을 거다. 흠좀무
- 그런데 이 사건으로 그들은 소니 뮤직과 계약하게 된다. 흠좀무 계약후 내놓은 첫 앨범 Generation Terrorist가 퀄리티가 워낙 좋아서 진실성을 입증 받았으니 잘 된 듯. 그 이후로도 그 인터뷰를 했던 스티브 라막과는 상호간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 Motorcycle Emptiness PV 사건
- 이들의 대표 곡인 Motorcycle Emptiness는 일본을 배경으로 PV가 제작되었다. 하지만 촬영허가를 얻지 못해 그냥 가서 몰래 찍었다고 한다 (...) 영상을 자세히 보면 멤버들 표정이 왠지 굳어있고 노래를 부르는 데도 뭔가 뻥긋뻥긋 말하는게 보인다.
- 마이클 스타이프 디스 사건
- 80~90년대 명성을 쌓은 컬리지 락 밴드 R.E.M.의 보컬 마이클 스타이프를 빗대 1992년 공연에서 '요즘 같은 좋은 시절에 마이클 스타이프도 프레디 머큐리처럼 가버리라고 기도하자'라는 발언을 하였다. 문제는 마이클 스타이프는 당시 게이가 아닌가 루머에 시달렸던 인물. 훗날 커밍아웃을 하였지만 당시에는 딱히 시인하지 않았으므로 좀 무례한 발언이다.
고인드립+게이드립 - 훗날 인터뷰에서 니키 와이어는 '앞뒤가 안맞고 멍청한 짓이었지만 자주 하던 특이한 비유였으며 논쟁의 끝에는 결론은 없고 논란이 될만한 거리만 남는 것'이라며
오해 드립을?해명하였다.
- IRA 코스프레 사건
- 3집을 발매하고 으레 그렇듯이 매닉스도 마찬가지로 앨범 프로모션을 위해 영국 TV 프로그램에 하나하나 출연하기 시작하였다. 그때 당시 BBC의 Top of The Pops라는 음악 프로에 나오게 되었는데 무대가 공개되자 제임스가 사고를 쳤다.
- 군복에 발라클라바를 머리에 쓰고 연주를 하였는데 생긴게 딱 IRA 테러리스트를 연상시켜서 BBC는 2만5천통이 넘는 시청자들의 항의전화를 받게 된다. 영국에서 꽤 민감한 소재를 건드린 셈.
- 리치 제임스 실종 사건
- 각종 센세이셔녈한 사건들과 자신들이 원하지 않았던 열광적인 인기로 인해 밴드는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이런 피로와 분열증은 3집 The Holy Bible (무려 제목부터 성경이다. 충공그깽)로 나타나는데, 90년대 나온 브리티쉬 록 앨범 중 가장 비타협적이고 살벌한 명반으로 대접받는 이 앨범에는 온갖 살벌한 인간들(유고 내전의 세르비아 지도자, 요크셔의 강간범[6], 리볼버 권총을 발명한 사람, 캄보디아의 학살범)과 자해적인 내용들의 가사로 가득 차 있었다. 메세지나 사운드나 퍼포먼스나 여러모로 인상적이지만 밴드에 음울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앨범이었다.[7]
- 아니나 다를까. 조이 디비전의 이안 커티스와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의 뒤를 잇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1995년 2월 1일,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와 리치 제임스가 3집 The Holy Bible의 미국 프로모션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기로 예정되어있던 날, 리치는 런던의 호텔에서 아침 7시에 체크아웃한 뒤 영영 모습을 감췄다.
- 이 사건의 여파는 무척 커서, 미국 진출용으로 따로 믹스한 음반은 그대로 사장되어 캐나다에서만 소량으로 찍어내는데 그쳤고 (2004년에 The Holy Bible 10주년 기념반이 나오면서 빛을 보았다.) 밴드 멤버인 니키 와이어는 10년이 지난 뒤에도 인터뷰에서 "그가 사라지고 난 뒤, 난 멤버 이외의 어떤 친구도 원치 않게 되었다"라고 술회하기도 했다.
- 사라진 뒤, 리치 제임스의 통장에 나타난 출금 기록과 여러 목격 정황을 보아 그는 세인의 눈을 피해 잠적을 한 것으로 짐작된다. 2002년에 법적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내려졌지만, 가족들은 거부했다. 그러나 2008년 11월 23일, 리치 제임스는 법적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상태가 되었다.
- 그가 사라지고 난 뒤, 나머지 멤버는 리치 제임스 몫의 로열티를 계속 신탁기금에 적립하고 있다. 밴드이기 이전에 먼저 친구였기 때문에 당연하다는 게 멤버들의 말.
- You Racist 사건
- 웨일즈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제임스가 자기 앨범 홍보하러 나온 자리에서 전날 숙취가 덜깼는지 뭔가 심기가 불편했나 보다. 옆의 MC가 '웨일즈어로 피시 앤 칩스 말 해봐, 웨일즈어로 말 해봐, 웨일즈어로 말 해봐' 계속 쫑알대니까 팍 '시끄러 이 인종차별자야' 지르는 패기.
2분 40초부터.
- T In The Park 사건
- 스코틀랜드에서 매해 열리는 락 페스티벌인 T In The Park에 나와서 니키 와이어의 심기가 뭔가 안좋았는지 영국 포크 아티스트 빌리 브랙은 '남의 곡좀 그만 훔치시지?', 스코틀랜드 출신 베타 밴드는 '저 멀리 텐트에 있는 네 사람이 팬의 전부'라고, 동향의 스테레오포닉스는 '기타는 이렇게 놓는거야' 라며 가열차게 깐 사건. 그 결과 매닉스는 T In The Park 페스티벌 영구 출연정지(...)를 당했다.
그런데 09년에는 어떻게 또 나온걸까14년에도 나왔다
- 라디오헤드 디스 사건
- 이들의 특징중 하나는 대부분 밴드에게 공연시 멘트는 보통 보컬의 몫인데 이들은 베이시스트 니키 와이어가 대부분 하고 싶은 말을 한다. 문제는 그가 하고싶은 말은 앞뒤 생각 안하고 지르는 타입이라 대부분의 사건/사고는 그의 입에서 나오는 편. 2010년 초 라디오헤드의 기타리스트 에드 오브라이언이 그들의 신보 In Rainbows의 상궤를 벗어난 디지털 발매에 관해 'MP3 음원으로부터 수익을 찾을 방법을 고려해야한다..'는 인터뷰를 듣고 왠지 모르게 흥분해서 글래스고우 공연에서 '음악을 제대로 들으려면 CD를 사야지 말 많네 먹물 든 티 내지말고 니 잘난 기숙학교로 돌아가라' 요지의 디스를 했다. 그러나 MP3 음원의 대중화는 돌이킬 수 없는 추세이고 라디오헤드의 시도는 생존을 위한 혁신으로 간주해야 하지 않나 싶다. 영미권 리스너들의 반응도 그가 너무 계급적인 반응을 하였다고 열폭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다. 영국 특유의 노동 계급의 연대의식을 자극하려 했지만 무리수였던듯.
- 그래도 최근에는 도서관 예산에 관한 개념찬 글을 올려서 이미지를 회복힌듯.
막판에는 부유세좀 더 거두자는 좌익다운 말까지
5 Discography
6 내한공연
데뷔 초기부터 일본 공연은 빼놓지 않고 다니던 그들이라 한번쯤 한국에 들를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가 끊이지 않았던 밴드였지만 이상하게 내한을 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겨왔다. 우리나라 음반산업 특성상 열정적인 관객 외에는 주목받기 힘든 앨범 판매량 때문이 아닐까 싶었는데 마침 2011년 12월 런던 O2 공연장에서 25년간의 활동에 마무리를 짓고 3년간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기간동안은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곳으로 공연하러 갈 수도 있다는 떡밥을 남겨 국내팬들에게 혹시 라디오헤드처럼 깜짝 내한을 할지 귀추가 주목되었고 결국 내한확정! 한국 더럽게 안오기로 유명했던 매닉스였던지라 펜타포트의 흥행을 책임질 밴드로 기대가 컸다.
그리고 8월 12일 헤드라이너로 공연을 하게 되었다. 강풍과 폭우가 쏟아지는 불안한 상황속에 공연 시작 1시간 전 무대 뒤에 올려 놓은 베스트 앨범의 대형 포스터가 강풍에 추락하고 메인 마이크에 문제가 생겨 해결하느라 스텝들의 부산한 모습을 보여 불안감을 자아냈지만 다행히 예정시간에서 10분을 넘긴 후 공연이 시작되었다. 짧게 "안녕!"이라는 한국어로 인사를 건넨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는 최근의 체력부족조용해진 퍼포먼스에서 벗어나 무대를 연신 누비며 전성기때 특유의 외다리 연주로 관객들의 성원에 답했다. 특이하게 대부분 니키 와이어가 멘트를 맡던 다른 공연과 달리 제임스가 멘트의 대부분을 맡고 가장 활발한 모습을 보였다. 전체적으로 공연 시작 전의 악천후를 제외하면 최상의 컨디션을 보여준 의미있는 공연이었다. 매닉스에게도 Fxxing Brilliant를 연발하던 기억에 남는 공연이 될 것으로 보인다. 꼭 와라 두번 와라
세트리스트의 인용문은 The Holy Bible과 Journal for Plague Lovers의 커버아트를 그린 제니 사빌의 인터뷰에서 따왔다.
"The Point is that destruction is fundamental to the process; Without it, you never get anywhere interesting. But fundamental to that is knowing what you can excavate from the destruction"
- J.Saville
'파괴는 결과를 위한 과정에 필수적이며 파괴 없이는 흥미로운 것을 얻을 수 없다. 하지만 파괴에서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게 필수다'라는 해체와 재구성이라는 예술의 근본 명제를 말한 그들이 항상 가져온 자세와 연관있는 인용문이었다.
- ↑ 95년부터 2005년까지 꼬박 10년간 매닉스의 모든 앨범과 투어에 참가하여 사운드의 한 축을 담당하였고 밴드의 작곡에 관여하는 모습을 Everything Live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 ↑ Louder Than War 이란 제목으로 DVD를 발매하였는데 이게 피델 카스트로가 공연장을 방문하였는데 꽤 시끄러울 거라고 말하니까 "그래도 전쟁보다 시끄럽진 않겠지, 그렇지? (It cannot be louder than war, can it)" 이라고 소감을 말한 것이 제목이 되었다. 근데 또 니키 와이어 인터뷰에선 드럼소리가 전쟁보다 시끄럽다고 말했다는데 진실은...
- ↑ 레인 오브 파이어 홍보를 위하여 출연한 미국의 토크쇼에서 매닉스의 팬이라고 인증. 하지만 베일이 태어난 곳은 웨일즈가 맞지만 어린 시절부터 여기저기로 옮겨다니면서 자랐다고 한다. 정작 웨일즈에서 지낸 시간은 얼마 되지도 않는다고.
- ↑ 재미있는 우연이지만 매닉스는 La Tristesse Durera (Scream to a Sigh)싱글에서 소설이 원작인 아메리칸 사이코의 주인공의 이름을 따 페트릭 베이트먼이란 B사이드 곡을 수록한 적이 있다.
- ↑ NME 인터뷰 9집의 Peeled Apple의 오프닝 부분에 삽입되었으며 영화 머시니스트의 대사 중 일부라고.
- ↑ 뻔뻔하게 연금을 달라고 주장하여 최근 영국인들을 아연하게 만들었다. 기사
- ↑ 당시 밴드의 분위기는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는 알콜 중독에 니키 와이어는 섭식 장애에 리치 제임스는 신경 쇠약 증세로 공연에 올라가지 못한 적이 있을 정도로 분위기가 바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