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실존 인물 전국시대 진나라의 장수
蒙武
생몰년도 미상
진나라의 장수인 몽오의 아들이자 몽염, 몽의의 아버지.
소양왕 때부터 활동하던 장수로 기원전 285년에는 제나라를 정벌하였다.[1]
기원전 223년에 비장군으로 임명되면서 왕전과 함께 항연이 옹립한 창평군을 죽이고 초나라의 군사들을 격파하며 다음 해에 초나라의 왕인 부추를 사로잡아 초나라를 멸망시켰다.
2 하라 야스히사의 만화 킹덤에서의 묘사
공식능력치 | ||||
시기 | 무력 | 지휘력 | 지력 | 정치 |
20권 | 99 | 90 | 83 | ? |
가이드북 | 99 | 90 | 84 | ? |
무력은 작중 초반에 등장한 성교의 애완동물 란카이와 동급으로 진나라 최강이다.
성우는 쿠스노키 타이텐.
진나라의 장군으로 대장군 몽오의 아들이자 몽염, 몽의의 아버지. 그리고 승상 여불위의 최측근인 여씨사주 중 한 명으로 진나라 총사령관인 창평군과 군사관련역을 맡고 있다.
힘만으로 따지자면 진나라 최강이라는 평을 듣고 있는 무장으로 그 실력은 일찌기 명성을 떨쳤던 육대장군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으나 여불위가 늘 곁에만 두고 싶어하는 탓에 중화에 나름대로 이름은 알려졌지만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다. 자신이야말로 중화최강임을 알리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관심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무(武)에 충실한 장군.[2]
조나라의 침공을 저지할 진군의 지휘관이 될 뻔 했으나 왕의에게 밀려버린다. 그러나 왕의의 요청으로 부장군이 되어 함께 출진한다. 이후 수비의 이백과 겨루는데, 너무 미적지근하게 이백에게 막히면서 이백에게 얕보이나, 사실 이것은 급하게 징용 된 백성들의 사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계책[3]으로, 다음날에는 이백군을 개발살내버린다.[4]
이후 왕의에게 전군을 받아 총돌격하나, 전공을 세울 목적으로 후방의 숲으로 이동한 조군의 본진을 공격하며 무리한 진군을 하다 함정과 복병들에 걸려서 털리고 만다.[5] 결과적으로 자신의 실수로 많은 군사를 잃고 무시하던 왕의에게 오히려 목숨을 구걸받은 입장이 되었다.
조나라의 중화십궁인 위가의 방해로 왕의는 방난에게 치명상을 입고 진군은 이목군의 등장으로 완전포위되나, 전장구석에 있던 몽무는 남은 병사들과 함께 왕의의 퇴로를 만들어 후퇴한다. 이후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 치명상을 입고 죽어가는 왕의에게 그 강한 자존심에도 불구하고 순순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왕의에게 사과를 한 후 자신에게 남길 말이 없냐고 묻자 왕의는 당신에게 부족한 것은 명확해졌으니 정진하고 이제 몽무는 진군의 얼굴이 될 것이라며 충고와 격려를 받는다. 이 사건을 계기로 몽무는 크게 성장하고 왕의에 대해 큰 경외심도 가지게 된다.[6]
1년 뒤에 조나라에서 이목이 진조 동맹을 맺으러 오자 그 연회에 초대되었는데, 큰 항아리의 술을 모두 마시고 술이 떨어졌군이라면서 되돌아갔다. 이목에게 발린 경험이 있는터라 누구보다도 그 연회에 있기 싫었을 듯.
이후 몽오의 위나라 침공 때 창평군의 명령으로 염파가 출진했다는 급보를 몽오에게 전하기 위해서 재등장한다. 이신이 몽오에게 천인장으로 임명될 때 몽오의 사람보는 눈은 정확하다며 이신을 어느정도 인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몽오에게 언제까지 몽염을 천인장으로 둘 것이냐며, 이제는 손자의 실력을 믿으라는 말을 한 후 초나라의 침공을 대비하여 표공, 장당 등과 국경을 지키러 떠난다.
이후 합종군에 맞서기 위해 출진하기 직전에 창평군에게 사진돌격을 이용한 전술을 지시받았으며, 합종군과 맞서는 진나라의 총대장으로 출전하여 사진돌격을 하여 초군과 싸운다. 또한 초나라의 총대장인 한명이 보내는 기병대 5천을 모두 격파하였으며, 이후 한명과 싸우지만 크게 압도된다. 한명의 공격으로 손목뼈가 튀어날 정도로 왼손이 부러지거나 얼굴을 맞아 일시적으로 기절하지만 창평군이 한명은 강하지만 자신은 그 한명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말을 떠올려서 다시 일어나 한명의 한 팔을 부러뜨리며 호각의 혈투를 벌인다. 결국 한명과의 싸움 도중에 언의 방해를 저지하려고 한 몽염이 본의 아니게 끼어든 직후 한명이 몽염에게 부상을 입히자 바로 한명의 무기를 파괴하여 한명의 머리를 날려 승리한다.[7] 그 뒤 곧바로 초군을 향해 돌격하여 초군의 사기를 완벽히 꺾어버린다.
그 뒤 이야기가 최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모습을 비추지 않다가 합종군 퇴각 후 혼자 부대를 이끌고 [8] 추격해 제를 치던 합종군이 해산하는 데 직접적인 공헌을 하였다. 그 뒤 논공행상에서 공을 인정받아 나머지 장군들을 제치고 제일 공신이 되었다. 1년 후 부친 몽오의 임종 때에는 전방의 적 동향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 없어서 입회하지 못했고, 다만 큰 술잔에 술을 가득 부은 뒤 부친과 함께 전국을 주유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부친을 추모하였다.
413화에서는 자칫 위태로운 상황에 몰릴지도 모르게 되었다. 여불위의 측근인 까닭에 함양으로 진군하고 있는 노애의 군대를 토벌하게 될 예정인데, 문제는 여불위가 꾸며놓은 계략에 따라 몽무의 군세 속에 정을 비롯한 진나라 왕족들의 목숨을 노리는 자객들이 다수 숨어있기 때문. 역사상에서 노애의 반란도 실패하고 여불위도 몰락하게 되는 만큼, 본의는 아니어도 여불위의 계략에 놀아나는 결과에 몰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후 여불위가 실각해도 능력있는 자는 그대로 등용한다는 진시황의 방침에 따라 여전히 대장군직을 유지 중. 진시황이 육대장군 부활을 천명한 가운데 현 시점에서 등과 함께 가장 유력한 육대장군 후보로 꼽힌다.
외전에서는 몽무와 창평군의 어릴 적 모습이 나온다. 힘을 주체하지 못해 길거리에서 도전자를 기다리지만 호리호리한 몸의 초나라 공자에게 얻어맞고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한다. 이후 초나라 공자와 친구가 되는데, 공자가 인질로서 가치가 사라져 버려 희망을 잃고 투신하려 하자 가까스로 구해주고 진나라에서 출세할 것을 권유한다. 공자는 이후 승승장구하여 창평군이 되고, 몽무는 진나라 최강의 장군이 되어 해피엔딩으로 끝나나 싶지만... 창평군이 초나라 공략을 포기하고 낙향한 후, 패잔병들의 옹립에 의해 초나라 왕이 되어 두 사람은 전장에서 만난다. 몽무는 왕께서도 과거를 묻지 않겠다며 설득을 시도하지만, 창평군은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옛 친구와 일기토 대결을 벌인다.- ↑ 다만, 부친인 몽오의 주요 활동시기와 몽무의 주요 활동시기를 생각해보면 이는 몽오의 오기이거나 동명이인일 가능성이 높다.
- ↑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 왕의를 제외하고는 거의 사장 된 육대장군의 부활을 상소할 정도. 이에 왕의는 몽무가 실력은 있지만 육대장군이 되려면 최소한 백전은 경험해야한다고 이신에게 말했다.
- ↑ 이백의 명성을 잘 아는 군사나 장군들의 경우에는 첫날의 미적지근한 몽무를 보고 "역시 몽무도 이백에겐 안 된다."라고 생각했지만 이백은 커녕 적장이 누군지도 잘 모르는 민병 입장에선 "(자기들이 마구 공격하고 조군은 방어만 하니까)오옷? 저 자식들, 우리 공격에 쫄았나보네? 우리 좀 센 듯?"이라고 생각해 사기가 첫날과는 비교조차 불허할 정도로 상승했다.
- ↑ 이에 몽의는 전쟁을 결정하는 것은 군략이지만 어쩔 때는 개인의 무력만으로 결정이 날 수 있고 이것이 가능한 사람은 몽무정도가 있을 거라는 창평군의 말을 생각했고, 왕의는 창평군과 함께 성장해서인지 의외로 몽무가 전술의 이해가 깊다며 감탄한다.
- ↑ 사실 왕의가 함정 등을 우려해서 전군을 맡길 때 조건으로 진영이 설치 된 후방의 산이 시야에 인식되는 정도까지만 진군하라고 했으나, 조군의 총대장인 방난(실제로는 가짜)을 발견하고는 이를 쫓은 것.
- ↑ 염파와의 전투 전에 신에게 왕의의 창이 무겁다면 자신이 대신 쓰게 넘기라고 하거나 함곡관 전투 직전에도 등이 어울리지 않게 왕의 흉내를 내자 전혀 안 닮았으며 악취미가 따로 없다고 짜증을 낸다. 몽염도 동생 몽의에게서 왕의의 죽음 이후 많이 변했다는 이야기만 들었는데 한명과의 전투에 나서는 그를 보며 굉장히 이전과는 달라졌다는 것을 실감한다.
- ↑ 이때 아들이 눈 앞에서 베여 쓰러지자 아주 잠깐 정신줄을 놓은 것처럼 멍하니 서 있다가 그대로 한명을 죽여버린다. 눈을 핏발이 설 정도로 부릅 뜬 모습이 압권. 평소 성격 상 내색을 안 해서 그렇지 소중한 자식을 건드렸으니 이 때 한명은 몽무의 역린을 건드린 격이다.
- ↑ 아직 한명과의 일기토에서 입은 부상도 다 낫지 않은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