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호/선수 경력

1 고교 시절

파일:ScfSis1.jpg

영남중 시절부터 타고난 파워 만큼이나 타구가 강력하다는 평가가 있었다. [1] 메이저리그 구단에서도 입단 제의가 왔던 듯. [2]

성남고에서 뛰어난 성적을 기록하고, LG 트윈스의 1차 지명을 받아 데뷔하였다.

2 선수 생활

2.1 LG 트윈스 시절

파일:/image/076/2011/06/11/2011061101001058800086501.jpg
구리본즈였던잠실에선 바보 LG 트윈스 시절, 추억이 되어버린 사진탈쥐는 과학입니다.

%25EB%25B0%2595%25EB%25B3%2591%25ED%2598%25B8_1%25ED%2595%25A0%25EA%25B1%25B0%25ED%258F%25AC.JPG
1할거포, 디지털타자 홈런밖에 모르는 바보

LG 팬들의 애증의 학교 성남고등학교 시절에는 포수를 맡으며 고교야구 최초로 4연타석 홈런을 쳐 냈다. 이러한 이유로 LG의 영원한 숙제이자 염원인 우타 빅뱃의 해결책이 되어줄 수 있을것이란 기대감에 2005년 1차 지명을 받아 계약금 3억 3천만원을 받고 LG와 사인했다. LG 팬들의 많은 기대를 받았으나 프로에 와서는 리듬이나 타격 기술이 부족해 2할 초반이나 1할대를 쳤다. 그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성적으로 인해 병신이라는 별명을 붙인 애증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심지어 자신도 이 별명을 알고 있다!

%25EB%25B0%2595%25EB%25B3%2591%25ED%2598%25B8%25EB%25B0%2595%25EB%25B3%2591%25EC%258B%25A0%25EB%25B0%2595%25EB%25B3%2591%25EA%25B0%2591.gif
친형 이름이 박병갑인건 안 비밀
20100102.jpg

연도타율출장경기타수안타홈런타점볼넷삼진
20050.19079163313211248
20060.1624813021513942
2007 ~ 2008 상무(군복무)
20090.21868188419252070

박병호의 데뷔 초창기 3년 성적.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의 타율과 타점, 볼넷/삼진[3] 비율로 수많은 LG팬들을 뒷목 잡게 했다. 심지어 동기였던 정의윤보다도 타율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니 제대로 된 출장 기회도 없었다.[4] 그래서 2006년 시즌 후 상무에 입대해서 퓨처스리그에서는 상당히 활약했지만, 군 복무를 마친 첫 시즌도 별로 나아진 것이 없었다. 이 시기 LG 팬들은 박병호의 전형적인 레파토리를 뫼비우스의 띠에 비유했다.

2군에서 대활약 → 1군 콜업 → 1군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홈런 → 감독이 기회를 주겠다고 함 → 삽질 → 타순이 7~8번까지 내려감 → 다시 2군행 (...)

2010년 6월 10일부터 13일까지 연속 홈런과 호수비로 주간 MVP까지 선정되는, 그야말로 전미를 울린 그의 아름다운 일주일이었지만 딱 일주일짜리였다. 성적은 그 뒤에도 제자리를 맴돌며 트레이드되기 전까지 최강의 2군 멤버로 군림했다. 2010 시즌 막바지에는 나주환과 정면 충돌했고, 이 사고로 결국 왼쪽 팔꿈치 부상을 당해 수술을 받게 되어 시즌을 마감했다.

그 와중에 2010년에는 서용빈 코치에게서 대놓고 따귀를 맞기도 했다는 얘기가 후일 안준모의 아프리카방송에서 폭로되었다. 동영상 윤세호 기자가 직접 확인사살.[5]

넥센 이적 전까지 그에 대한 평가는 2군 본즈. 2군을 씹어먹는데 정작 1군에 오면 그 기대를 저버리는 게 매년 연례행사였다. 또한 1루 자리에 최동수, 로베르토 페타지니, 이택근이 있던 상황이라 제대로 된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던 것도 LG에서 실패한 원인이었다. 그리고 박병호 육성 실패는 결과적으로 LG의 타자 유망주 수집과 육성 정책에 변화를 가지고 왔는데, 2012년도 드래프트 이후 수집한 타자 유망주들은 거포 스타일보다 잠실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컨택 위주의 유형이 많다.[6] 즉, 정의윤트레이드 이후 우타거포 육성 실패를 스스로 인정한 꼴. 최훈 카툰

2.2 넥센 히어로즈 시절

2.2.1 넥센으로의 트레이드, 2011 시즌

만년 유망주라는 평가를 깨기 시작한, 야구 인생 터닝 포인트의 시작. 트레이드 직후의 소감 인터뷰 심재학 코치의 트레이드 당시 회상 등번호도 LG시절 줄곧 써왔던 25를 뒤집은 52번을 쓰기 시작했다. 트레이드 당시 박병호의 마음가짐과 절치부심을 보여주는 장면.

김시진 감독의 신의 한 수

"50타석 삼진을 먹더라도 내가 감독으로 있는 동안에는 너는 4번타자다"

김시진 감독이 트레이드 된 박병호를 불러놓고 처음으로 한말

[7]

트레이드로 박병호가 살아났고, 넥센 히어로즈 팀도 살아났다. 덤으로 트레이드 상대 중 한 명사망했다. 거기에 한국프로야구의 역사가 바뀐 것도 덤.

박병호/2011년 문서 참조.

2.2.2 2012 시즌

넥센 히어로즈의 4번 타자. 리그의 손꼽히는 오른손 강타자. 2011년의 탈쥐효과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처음으로 풀 타임 시즌을 맞이한 박병호는 넥센 히어로즈의 막강한 중심 타선의 한 축을 이루며 크게 활약했다. 2011년에 비해 더 발전된 모습을 보였으며, 홈런과 타점 부문에서 선두권을 달리며 넥센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선수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데뷔 후 처음으로 전 경기에 나와 20-20클럽에 가입했고 2012년 홈런과 타점, 장타율 1위에 오르면서 타자 3관왕에 등극, 2012년 프로야구 MVP에 올랐으며, 데뷔 첫 골든글러브(1루수 부문)를 수상했다. 넥센 히어로즈가 타격의 팀으로 팀 컬러를 확립하는 데 기여한다. 넥센 히어로즈의 선수 트레이드 논란은 이로서 끝.

박병호/2012년 문서 참조.

2.2.3 2013 시즌

파일:Attachment/박병호/IMG 6535 사본.jpg

하늘이 내려준 4번타자

SBS ESPN 김정준 해설위원[8]

2군 본즈에서 리그 최고의 우타거포로, 넥센 히어로즈의 간판이 되다!!!
이승엽 이후 10년만의 MVP 2연패!, 그리고 결혼기념일에 받은 2년 연속 골든 글러브!

박병호/2013년 문서 참조.

2.2.4 2014 시즌

"사람 맞죠?"

9월 4일 1경기 4홈런을 날리자 이용철 해설위원이 한 멘트

"사람이 아니다."

위의 경기 후, 수훈선수 인터뷰에서 동료들이 뭐라고 말했냐는 질문에 대한 박병호 본인의 대답

불멸의 전설을 향한 위대한 도전.
진정한 파괴신 강림의 해

10월 14일에 사직 롯데전에서 역대 3번째 50홈런 이상을 기록한 타자가 되었다. 등번호랑 똑같은 박병호의 52홈런한국프로야구 한 시즌 최다 홈런 4위에 랭크되었다.

하지만 데뷔 후 첫 출전하였던 한국시리즈에서는 크게 부진하였다.

박병호/2014년 문서 참조.

2.2.5 2015 시즌

파일:/image/421/2015/08/11/1496724 article 99 20150811220406.jpg
[9]

"이 타구의 결과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2015년 6월 18일 21호 홈런 때 정우영 캐스터의 멘트.

전설을 넘보다
4년 연속 30홈런 - 100타점 달성
KBO 최초 2년 연속 50홈런 달성[10]
한 시즌 최다 타점, 최다 루타 경신
2년 연속 100타점-100득점 달성
KBO 최초 4년 연속 홈런 - 타점왕 달성
그야말로 완전체
개인 통산 200홈런 달성레알 파괴신 각성
자신의 꿈이었던 무대에 발을 디디게 된 시즌 정호야 기다려라 형이 곧 간다

박병호/2015년 문서로.

2.3 LG 트윈스시절과 넥센 히어로즈시절의 기록 비교

LG시절에 통산 657타수 125안타(2루타 25개, 홈런 25개 포함) 타율 0.190 84타점 85득점 9도루 68볼넷 장타율 0.375 출루율 0.277을 기록했다.
넥센시절에 통산 2091타수 648안타(2루타 112개, 3루타 5개, 홈런 185개 포함) 타율 0.310 520타점 450득점 50도루 364볼넷 장타율 0.634 출루율 0.419를 기록했다.

2.4 메이저리그 진출

박병호/메이저리그 진출 문서로.

2.4.1 2016 시즌 : 장타력만 보여준 아쉬운 시즌

파일:박뱅호.jpg

"Jim Thome would be proud!"

4월 17일, 타깃 필드 역사상 최장거리 홈런을 목도한 트윈스 전속 해설위원 버트 블라일레븐 옹의 탄성.

미네소타 팀 역사상 30경기만에 9홈런을 때려낸 타자
미네소타 트윈스에서 맞는 첫 시즌. 4월까지는 좋은 성적을 보였으나 5월부터 주춤하기 시작하더니 규정 타석을 채운 타자들 중 타율 최하위가 되버리는 바람에 많은 팬들을 걱정하게 했고 결국 한국시간 기준 7월 2일에 마이너리그로 강등되었고, 여기에 손목 부상으로 인해 수술을 받게 되며 8월 26일 시즌 아웃이 확정되고 말았다.

박병호/2016년 문서로.
  1. 후술하겠지만, 영남중학교 야구장 쪽에 철조망이 쳐져있는 이유는 바로 박병호 때문이였다고 한다. 곧잘 강한 타구를 날려, 학교의 창문을 깨는 일이 잦았다고... 특히, 교무실 창문을 많이 깼다고(...)
  2. 훗날 인터뷰하길, 보스턴 레드삭스미네소타 트윈스였다고 한다.
  3. 김태군보다 낮은 타율이다.(!)
  4. 정의윤 또한 우타거포 자원으로 주목받았지만, 드넓은 잠실 야구장에 살아남기 위해 파워를 일정 부분 희생해야 했다. 그래서 둘 다 이적하고 커리어 첫 두자릿수 홈런 달성.
  5. 이 사실이 알려지고 나서 박병호가 매우 난감해 했다고. 아무래도 야구계가 선후배 관계가 엄격한 편이다 보니 그런듯 한데, 이후 서용빈에게는 (맞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과 받았고 이미 지나간 일이니 이 내용을 언급 안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6. 반면에 두산은 이미 2000년대 초중반부터 이런 스카우트 전략을 가져가고 있었다. 2004년 김경문 감독이 부임한 직후에 김현홍 스카우트 팀장한테 했다는 말이 "잠실구장이 크니까 가능한 발 빠르고 수비 잘하는 애들로 뽑아줘요. 타격은 내가 어떻게 만들 테니까"였다고 한다.관련기사.
  7. 박병호는 LG시절 1군에서 지속적인 기회를 얻지못했기 때문에 1군에 올라가서 타석에 설때 조급했다고 털어놓았다. 1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무조건 쳐내야겠다는 압박감으로 제대로 된 스윙을 못했다. 그 부분을 파악한 김시진 감독은 박병호에게 믿음을 주겠다는 처방으로 한 말이라고 한다. LG 박병호와 넥센 박병호의 차이는 단 하나다. 감독이 그 선수를 믿고 안믿고의 차이였다. 박병호는 넥센 트레이드 20일만에 끝내기홈런을 치는 등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었다.
  8. 이 멘트에서 파생된 별명이 '하내사'뭔가 별로다
  9. 실제로도 정말 친하다고 한다. 인터뷰에서 서로의 장점을 인정할 정도로 겸손하다. 오히려, 박병호는 테임즈의 빠른 배트스피드가 부럽다고 할 정도. 하지만, 본인은 한국인 타자 중에서 배트 스피드가 가장 빠르다는 사실을 모른다. 실은 가위바위보 중이라더라 근데 테임즈가 이겼다
  10. 동시에 한 시즌 50홈런을 2차례나 기록한 유이한 타자다. 다른 타자는 바로 이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