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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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No.3
나주환(羅州煥 / Ju-hwan Na)
생년월일1984년 6월 14일
출신지서울특별시
학력서울성동초[1] - 휘문중 - 북일고 - (배재대)
포지션유격수, 2루수, 1루수, 3루수 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2003년 2차지명 2라운드(전체 16번, 두산)
소속팀두산 베어스(2003~2006)
SK 와이번스(2007~)
응원가DJ DOC - DOC와 춤을[2]
터보 - Goodbye Yesterday[3]
슈프림팀 - Supermagic[4]

1 소개

SK 와이번스 소속의 내야수. 포지션은 유격수2루수이고 3루수, 1루수, 포수도 가능. 주 포지션은 유격수였으나 2014년 팀 사정상 2루수로 전업했다. 안정적인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3루수도 가능하다. 별명은 나좐, 유격대장, 놀부, 나로호,나불륜[5](…) 등등.

2 프로 선수 경력

2.1 두산 베어스 시절

데뷔는 두산 베어스에서 했다. 북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두산 베어스의 2차 2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입단동기가 SK의 철벽불펜 중 한 명이었던 전병두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둘 다 두산이 아닌 SK의 주력 선수로 자리잡았다.

고교 당시 고교 4대 유격수[6]를 꼽을 때 빠지지 않던 유망주 출신이었지만, 지명 당시 상당한 슬럼프 속에 있어 예상보다 낮은 3순위에 지명되었다. 어쩌면 체전에서의 감자 사건도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7].

데뷔 시즌인 2003년부터 간간히 출장하며 이름을 알렸고 2004~2006 시즌까지 적지않은 출장을 하며 나주환의 존재를 알렸다. 특히 주전 3루수 김동주의 잔부상이 부쩍 늘면서 이를 커버하기 위한 선수로 나주환이 제법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김동주가 숫제 시즌 아웃에 준하는 중상을 입은 2006 시즌에는 114게임에 출장하며 건실한 내야수 이미지를 굳히는가 싶었다.

2.2 SK 와이번스 시절

그러나 2007년 4월 이대수를 상대로 SK 와이번스에 트레이드 됐다.[8]

2008년 시즌 초반에는 평범한 내야 유틸리티의 모습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시즌이 점차 지나면서 전년도까지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부진한 정경배의 2루 자리를 꿰어찬 정근우와 함께 건실한 키스톤 플레이를 일구어내며 내야의 안정화에 큰역할을 한다.

유격수는 수비를 중점으로 본다지만 북일고 시절 슬러거[9] 로 이름을 날렸던 것과는 달리 나주환의 방망이는 프로 입성 당시에는 기대하기 힘든 편이었다. 규정타석을 채운 것도 드물고, 더군다나 규정타석을 채워도 2할 5푼을 넘긴 적이 없었다. 고교 시절 파워 히터로 이름을 날린 선수들 특유의 큰 스윙과 그에 기인한 미숙한 변화구 대처능력 등으로 인해 타석에서는 상당히 고전하게 된다. 하지만 08년도부터 확실하게 주전으로 자리잡고 2009년에는 각성. 2할 8푼 8리의 타율에 15홈런, 60타점, 21도루를 성공하면서 강정호, 손시헌과 골든글러브 후보에까지 오른다. 기본적으로 프레임이 좋은 선수라 근력과 경험이 붙으면서 타격의 질이 향상된 것.[10]

나주환의 강점은 역시 수비. 2년 연속 우승을 일궈낸 SK의 주전 유격수답게 부드러운 글러브질이나 강한 어깨, 수비범위, 준수한 발. 좋은 수비수의 자질은 갖췄다고 보면 된다. 프로에 오면서 특히 안정성이 매우 향상되었고, 송구 부분에선 강한 어깨가 빛을 발한다. 더군다나 정확하기까지 한 송구를 보여 송구실책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11] 빠른발로 도루도 심심치 않게 해대는, 말 그대로 5툴 플레이어. 최정과 마찬가지로 포수포함 내야 전포지션을 커버가 가능한 선수이다.[12] 두산 시절 포수로 출장해 정근우의 도루를 저지한 적도 있을 정도로 강견이다.[13]

하지만 아직까지 타격 스틸에서 완성되었다고 보기는 좀 어렵다. 스윙 자체가 상당히 큰 데다 뱃스피드가 제법 빨라 보기보다 장타력이 뛰어난 편이기는 하나, 아직도 유인구에 인내심이 좀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는 면이 있는 것이 아쉽다. 거기에 종으로 떨어지는 변화구에 대한 대처 능력을 좀 키울 필요가 있다.

2009년 친정 팀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크게 뒤진 두산 베어스의 투수 금민철이 고교 선배인 정상호에게 위협구를 던지고, 나주환의 고교 선배인 지승민이 자신에게 공을 맞추는 등 경기 상황이 험악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출루 후 홈으로 쇄도하는 과정에서 두산 포수 용덕한에게 거친 슬라이딩을 하게 되면서 가루가 될 정도로 까였다.[14] 희한하게도 이전의 과정은 싹 묻히고 나주환의 슬라이딩만 기억에 남으면서 그날 이후 그의 미니홈피가 쉴새없이 맹폭을 당했고, 한국시리즈 타석에 들어섰을 때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기아팬들까지 야유를 보내기까지 했다.

역시 부담이 있었는지, 아니면 기아의 투수들이 좋았는지 한국시리즈에선 하나 해줘야할 위기상황에서 찬스를 계속 날려먹질않나. 골든 글러브 후보였다는 수비실력은 어디론가 당연히 잡아줘야 할 땅볼도 에러로 진루시켜 팬들에게 대차게 까였다. 지옥훈련이 더 필요한듯. 아무래도 플레이오프 최종전에서 심리적인 타격을 많이 받았던 모양이다.

겉으로보는 외모와는 달리 상당히 한 성질한다고 한다. 천안북일고 4번타자 시절부터 꽤나 유명한 군기반장이었다고...팬들은 나주환이 중고참이 될때면 SK 야수진들은 다죽었다고 복창해야 할판이라고 한다.

팀 내에서 정근우, 박재상, 박정권 등과 함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는 듯했다. 얼굴만큼 깝죽거리는 성격도 있는듯...자신이 호수비를 했을 때나 덕아웃에서 나이스플레이를 목격하면 깨알같은 웃음을 작렬하면서 분위기를 올려놓는다. SK 와이번스 갤러리에서는 아예 '놀부웃음'이라고 부르면서 별명도 새로 '놀부'로 붙이고는 '저자식 FA돼서 딴팀에서 저렇게 웃는 꼴은 절대 못 봐준다'면서 프런트에게 꼭 잡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뭐 그것과는 별개로 공수겸장의 유격수 FA를 놓치는 프런트라면 이미 정신이 나갔다고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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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로 치는 개드립도 팀 내에선 박정권과 함께 양대산맥으로 군림하고 있다. 불타는 그라운드 시즌 1의 26화에서 튀어나온 FA드립만 봐도 알수있다.[15] 아들을 이용하여 10년에 걸친 장기 대투자계획을 밝혀 훈훈한 부성애를 자랑하고 있다. 근데 왜 딸 낳았어? 헌데 요즘 오른손거포 가치도 높아졌는데 오른손거포 시킬생각은 없나요? 그럼 아들 둘 낳아서 첫째는 좌완투수 시키면 되고 둘째는 우타거포 시키면 되겠네.(...) 그리고 2014. 11. 26 장원준이 88억을 걷어차고 FA로 나가면서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나주환은 아들이 없잖아 거기다 본인이 구단 제시액 걷어차고 나갔다가 10억을 날렸다

2.2.1 2010 시즌

2010년 5월 11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사이클링 히트 달성에 안타 하나가 부족했다. 본인도 아쉬웠는지 마지막 타석에서 볼넷으로 나가면서 지은 표정은 제대로 오묘했다.

2010 시즌 초반 연일 맹타를 휘둘르며 팬들의 기대를 모았으며 커리어 하이와 유격수 골든글러브, 광저우 국대 입성을 동시 달성하는 겹경사 가능성이 높아 보였으나 갑작스런 어깨 통증을 호소하면서 7월 4일에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그동안 유격수는 타율 1할을 벗어나지 못하는 신인 최윤석과 3:4 트레이드로 LG에서 데려온 권용관이 대신하였다. 이 시기에 박정권마저 올스타전을 앞두고 발목에 실금이 가면서 이탈해 타선에 구멍이 뚫리면서 SK 팀 상황 또한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8월 3일 부로 박정권과 동반 1군 등록하면서 컴백했으나 심리적으로 안정을 되찾은 강정호가 초반보다 에러를 줄이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면서 나주환으로서는 한 달 동안의 공백이 치명적으로 작용, 결국 광저우행 최종 명단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결국 2010 시즌 후 2년 동안 사회복무요원복무를 하게 될 듯하다. 갈굼스킬을 습득해서 돌아온다면 미래의 SK 군기반장 자리는 사실상 확정 자기 몸관리도 결국 실력의 일부라고는 하지만 부상 없이 선수 생활 끝마치는 선수가 어딨는가. 그저 시기가 안따라줬을뿐.

2010 시즌 성적은 타율 0.269 출루율 0.332 장타율 0.393, 7홈런 42타점 14도루에 유격수 최소 실책(13개), 병살타 3개의 기록으로 2009 시즌보다 성적이 하락했다. 시즌 막판 부진하며 기록을 많이 까먹은게 아쉽다. 그래도 괜찮은 컨택과 적당한 장타력, 준족으로 고르게 성적을 냈고 유격수의 본분인 수비도 훌륭했지만, 시즌 막판 부상크리로 국대승선이 물 건너갔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15타수 3안타 1볼넷 1득점, 타율&장타율 .200, 출루율 .25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으로 우승했다.

2.2.2 군복무

그리고 경찰청 합격 통보까지 받았다. 그러나 입대를 프런트 단독으로 결정한 듯했다. 김성근 감독은 사후 보고를 받은 후 상의없이 일처리 했다고 꽤나 노했다는 후문이다.(동 시기에 상무에 합격한 모창민도 그랬다.) 하지만, 어차피 곧 있으면 나이가 차니까 해외 출국 허가(스프링캠프 출국)를 더 이상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육군훈련소 입소 직전에 고관절 부상이 악화되어 결국 사회복무요원으로 전환, 병역을 해결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약혼을 한 것 같다?! 제대하면 품절남 되는가!

2011년~2012년 SK의 유격수 공백이 커 와이번스 갤러리에서 재평가(?)가 일어나기도 했다. 2010 시즌 후 고향 팀으로 이적한 박진만은 늙어 가고 있고, 최윤석김성현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상황이라 가교 역할을 할 유격수가 없었으니...그렇다고 최정이나 정근우가 유격수를 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리고 최윤석은 2013 시즌 후 떠났다

그런데 뜬금없이 복무지가 광주광역시 광산구청으로 알려졌다.뭐지?

2.2.3 2013 시즌

2013년 2월 14일에 소집 해제되었고, 2월 18일 SK 2차 캠프에 참가하기 위해 오키나와로 출국했다. 기존 유격수 후보인 박진만, 김성현, 최윤석과 경쟁하게 될 전망. 하지만 본인은 성급하지 않고 천천히 몸을 만들어 올라오겠다는 각오.

이후 시즌 중 1군 합류에 성공했지만 1군 복귀전에 출장하자마자 햄스트링 부상으로 김성현으로 교체된 후, 2군에 내려갔다 올라왔다. 가끔씩 출전하고 있지만, 타격 능력이 완전히 상실된 듯 타율이 0.059에 그치고 있다. 2군에서도 타격이 2할대에 못미치는 극도의 부진에 빠져 있다.

9월 17일 LG 트윈스전에서는 유격수로 출장하였는데, 박재상과 더불어 실책성 플레이를 함으로써[16] 팀의 패배에 일조하였다. 싸이는 홈런이라도 쳤지... 이러한 영 좋지 않은 모습 때문에 이날 경기 후 박진만같은 선수는 왜 안 쓰고 저딴 듣보(...)를 쓰냐이만수를 까는 나주환 입대 후 야구를 접한 뉴비들도 있었다.

9월 20일 한화 이글스전에서는 박진만의 유격수 대수비로 출장했는데, 10회말 2사 1,3루 상황에서 이재영이대수를 유격수 땅볼로 잘 유도했는데, 1루수 키를 훌쩍 넘어가는 끝내기 수비실책으로 경기를 내줬다. 어디로 보나 쉽게 처리할수 있는 타구를 실책을 내줬고, 결국 SK가 한화 이글스에게 시즌 첫 끝내기 승리를 조공하게되었다. 한번도 아니고 계속해서 쉬운 플레이를 처리하지 못하는등 유격수 수비가 안정되지 못한데다 타격도 타격대로 23타수 2안타라는 8푼이의 타격을 보여주며 공수 양면에서 어이없는 플레이가 계속되고 있다. 군대 가기 이전의 안정된 수비는 어디로 가고 부정확한 송구에 유격수 플레이 자체를 고전하는 모습을 보이며 팬들의 속을 태우고 있다. 그리고 이 사건을 도원아재들의 후예들은 나주환이 쏘아올린 작은 공, 일명 나쏘공 사건이라며 나주환을 대차게 조롱했다.

팬들 사이에서는 상무에 입단하여 계속 야구를 했던 모창민이재원과 달리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마쳐 펑펑 논 운동 능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을(2013년의 김태완도 그랬다) 나주환을 2군에서 급하게 올린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냐는 말이 종종 나왔다. 실제로 루키군 김원형 코치는 나주환의 콜업 직전에 아직 몸이 다 만들어지지 않았다며 몸이 다 만들어지면 직접 올려 보내겠다는 말을 했다.

결국 1군과 2군을 오가며 타율 8푼 7리라는 역대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이만수 감독의 지시로 2013 시즌 종료 직전 미국 애리조나에서 열린 교육 리그에 참가하는 굴욕을 맛보면서 시즌을 마감했다. 그것도 후발대로....[17]

야구 시즌이 진행 중이어서 미뤘던 결혼식을 12월에 했다. 한 살 연하인 아내 사이에선 이미 4월에 딸 채빈 양을 본 상태.

2.2.4 2014 시즌

교육리그에서 돌아온 나주환은 2013 시즌 후 FA를 선언한 2루수 정근우한화 이글스로 이적하자, 본래 포지션이었던 유격수 자리를 김성현에게 넘기고 2루수로 전향했다. 타격감이 살아난 건 덤. 팬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활약을 보였다. 유격수를 맡은 박진만이나 김성현과의 키스톤 연계도 준수해 울프같은 땅볼 유도형 투수들에게도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며 정근우의 공백을 충분히 메워 줄 것으로 기대받았다.

4월 1일 경기에서 3안타 5타점을 기록하는 등 최정-스캇-박정권을 잇는 하위타선의 공격을 주도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 기세라면 병역이행 전에 보여 준 모습은 충분히 다시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딸이 태어났으니 자기가 FA로이드 빨고 직접 빌딩 살 기세

4월 29일 한승혁의 공에 손등을 맞았다. 하지만 카메라상으로 봤을때 배트에 맞고 손등에 맞은것 처럼 보여 연기한거 아니냐며 까였다. 결국 다음날 본인이 기자들을 찾아가 진짜로 맞은 거였고 통증까지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결국 이 부상 때문에 4월 30일 경기에서는 선발출장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진짜로 맞았는데 연기한 거냐며 손가락질까지 받았으니 해당 기자를 직접 찾아갈 만큼 정말정말 억울했던 듯. 나주환마저 제외되면서 당분간 2루수는 신현철이 맡게 될.. 줄 알았으나 다음날인 1일에 2루수로 선발 출장했다. 그리고..

시작은 좋긴 했지만 이후 타격부진에 빠지면서 4월 한달동안 1할 8푼 7리라는 극악의 타격을 보였다. 이후 5월에 약간씩 살아나는 중.

2014년 7월 2일 3회초에 친 타구가 담장을 넘어가면서 시즌 2호 홈런을 기록하나 했으나 비로 인해 게임이 없던 일이 되면서 홈런 역시 날아갔다.

8월 15일에는 놀랍게도 연타석 홈런[18]을 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후반기 버닝으로 타율도 2할 8푼대로 많이 끌어올린 모습. 팬들 사이에서 나주환을 fa 때 잡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평가가 지배적이었는데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의 대활약으로 평가를 뒤집고 있다. 빌딩 살수 있을듯

2009년 자신의 시즌 최다 안타 기록을 넘어섰다. 역대급 타고투저 시즌임을 감안하면 잘 한 성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발이 빠르다는 점, 2루수로 전향하여 정근우의 공백을 나름 잘 메워 줬다는 점에서 칭찬받을 만했다.

FA 원소속구단 협상 마지막 날인 11월 26일, SK와 재계약 우선 협상은 결렬되었다는 보도가 올라왔다. 최정김강민의 계약이 최우선이었던 구단 입장에서 박계현을 비롯한 대체 요원이 충분히 있는 2루수 자리에서 나온 FA를 굳이 오버페이하면서까지 붙잡을 필요성은 적었던 만큼 나주환과의 결별은 어느 정도 예견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타 구단 협상기간 마지막 날인 12월 3일까지 이적할 팀을 찾지 못하며 헐값에 유턴할 상황(…)이 되어버렸다. 유력한 후보였던 KT는 박경수박기혁을 영입하며 갈 가능성이 사라졌고, 대부분의 팀이 주전 2루수들이 확보되어 있는 상태였기에 주전 키스톤 두 명이 모두 군입대한 KIA 타이거즈를 제외하면 딱히 갈 곳이 없어진 상황인데, 이쪽 김기태 감독은 외부 영입은 없을 것이라 못을 박았다.

본인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내야수 외국인 선수를 구하려던 SK에서 외야수 제이슨 프라이디와의 계약이 임박했다는 후속 보도가 나오면서 복귀하면 최소 주전 경쟁은 해볼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약물 복용 전력으로 이 계약이 백지화되었다. SK 프런트는 이렇게 된 김에 내야수 포지션의 외국인 선수를 다시 알아보기로 하면서 상황은 여전히 나주환에게 극도로 불리하다. 정말로 2루수 외국인 선수 영입이 현실화되면 유턴으로 인한 헐값 계약+주전 박탈이란 최악의 시나리오를 마주하게 된다. 빌딩은 하늘나라로

뒤늦게 나주환과 구단이 우선 협상 기간 교환했던 서로의 제시 금액들이 밝혀졌는데, 구단은 초반에 10억 후반대의 금액을 제시했고 마지막에 20억 초까지 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나주환은 그보다 최소 10억은 더 받고 싶어 했다고.

이에 구단에서는 단장 회의때 사인 앤 트레이드를 타구단에 문의 해보았으나, 반응이 없었다. 결국 헐값 계약 아니면 선수 생활 지속도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하였다.

국립자유계약고등학교 솩실고라는 나주환의 현 FA 상황을 간단히 요악한 만화가 SK 와이번스 갤러리에 올라왔다. 제목에서 보이듯이 국립자유경제고등학교 세실고를 패러디하였다. 이륙이 SK 구단 역, 서다미주환오빠라는 단어를 쓰는 것 보면 나주환 얼빠 역이다. 무엇보다 SK와이번스 엠블럼 때문에 이륙의 얼굴이 가려졌다. 안습

게다가 구단이 첫 제시한 액수보다 80%이상 차감되어 제시되었는데. 총액 4년 15억에서 1년 2억으로 사실상 연봉 동결수준으로 제시 받은 것으로 정황이나왔다.

결국 1년 옵션 계약을 더 얹어서 1+1 총액 5억 5,000만 원의 조건으로 SK와 재계약하였다. 선수 본인으로선 단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10억이 날아간 셈. 물론 자신의 가치를 너무 과대평가한 나머지 구단과 팬을 등지고 당당하게 나갔다 들어온 것이라 동정 여론은 적지만, 그와는 별개로 FA 제도에 손을 봐야 한 다는 주장에 힘을 싣는 사례로 평가하는 사람도 많다.

2.2.5 2015 시즌

패동렬이재영과 더불어 올 시즌 FA의 가성비 종결자하지만 시즌 후 이재영은 방출당했다

4월 중순까지 박계현과 번갈아 선발 출장하였으나 타율 .167 0홈런 2타점 3득점으로 부진했다. 김주환 결국 최정민이 대신 1군에 올라오면서 2군행.

5월 14일 두산전을 앞두고 다시 1군에 콜업되어, 경기 도중 실책을 범한 김성현과 교체되어 유격수로 출전, 4타수 2안타 1타점으로 좋은 모습을 보였다. 특히 1타점은 7대0으로 지고 있던 상황에서 역전으로 갈 수 있는 발판이 된 첫 득점이기에 더 의미가 있다.

박진만과 함께 대타 및 내야 백업요원으로 활약하다가, 최정이 엔트리에서 말소된 이후에는 꾸준히 주전으로 나오고 있다. 더불어 본인의 타격감도 점점 올라오는 상태.

6월 6일 LG전에서는 4타점을 올리며 팀의 8대5 승리에 크게 공헌했다. 특히 9회초 5대5 상황에서 봉중근을 상대로 끈질기게 10구까지 끌고가며 쓰리런을 친 장면은 이날의 백미.

드디어 9월 29일 kt전에서 4타수 4안타(2루타 2개, 홈런 1개 포함) 1홈런으로 맹 활약하며 SK를 승리로 이끌었다. 이날 마지막 타석 전까지 사이클링히트에 3루타 하나만 남겨놓고 있었는데 우측 담장을 때린 장타성 타구에 3루에서 아웃되면서 생애 두 번째 사이클링히트 기회를 날려먹었다. 그리고 깨알같은 인터뷰는 덤

10월 3일 NC와의 정규 시즌 최종전, 8회 말 3:3상황에서 솔로포를 치며 팀의 승리와 동시에 삼성 라이온즈페넌트레이스 우승을 이끌었다.5강가면 특별 보너스 줘야 이 날 지면 기아가 올라갈 가능성이 컸기에 굉장히 값졌던 한 방. 이후 KIA가 두산에 연패를 당하며 SK가 5위를 지켜 와일드카드전에 진출 성공.

2.2.6 2016 시즌

뜬금없이 스프링캠프 명단에서 제외되었고 당연히 시범경기에도 나오지 못했다.야구 팬들은 성폭행 관련이 있어서 못나오는 것이라고 생각중이다.

야덕일지의 SK 와이번스 전력분석 편에서 잠깐 2루수로 올라왔으나 몇시간 뒤 김성현으로 교체되었다.

정규 시즌이 시작했으나 4월 10일까지도 출장기록이 전혀 없다.

선수 등록은 되어있으나 1군 2군 모두 출장기록이 전혀 없고 근황기사도 전혀 올라오지 않는중. 4월 13일 자로 독립야구단인 연천 미라클3군에서 경기하는 장면이 촬영되었다.

4월 28일 기준 시즌 시작한지 거의 한달이 다 되어가는데도 1군은 물론 2군조차 출장 기록이 없다.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5월 7일에 퓨처스리그에 대타로 출장해서 2타수 2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큰 사고를 친건지 6월이 다 되가는데도 1군 소식이 없다. 2군 성적은 준수하기 때문에 못올라 올리가 없고, 핫성현과 [[헥터 고메즈|]]의 눈이 썩는 수비 때문에 못 올라올리가 없는데 시즌이 시작한지 2달이 되가는데 소식조차 없다. 솩갤에선 트레이드 설이나 징계설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6월 22일 박정권과 1군에 전격 콜업되었다.그러나 팬들의 시선은 곱지 못하다. 그 후 슬라이딩 중에 부상을 당했다.
나주환을 콜업한 것이 최정에게 휴식을 주려고 데려온건데 정작 자기가 먼저 다쳐서 최정이 경기에 나와야 한다(...)

9월 1일 확대 엔트리를 통해 1군 엔트리에 등록되었다. 선발 출장은 하지 않고 대타로 출장해 시즌 마수걸이 투런홈런을 때려냈다. 팀이 8대0으로 지고있는 9회에 첫득점을 만들어낸 홈런. 은근히 쓸모있다 시즌 성적은 6경기 출장 8타수 3안타 1홈런 3타점. 남은 시즌 동안 경기 후반 대타로 요긴하게 쓰일 전망이다.

9월 25일 문학 한화전에 1번타자로 선발출장해 4타수 3안타 2홈런 5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9연패를 끊어냈다. 경기종료 후 데일리 MVP에 선정되었다.

1군 콜업 후 나주환의 타격감은 그야말로 최절정을 달리고 있다. 9월 열린 15경기에서 0.486(37타수 18안타)로 거의 5할에 가까운 맹타다. 최근 고메즈, 이명기 등 테이블세터진이 부진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서 1번이나 2번타자로 출장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선구안이 굉장히 좋아졌다. 기본적으로 공 3개 이상을 보고 들어가기 때문에, 유리한 카운트에서 좋은 타격을 선보이고 있다. 비록 9연패의 수렁에 빠지며 가을야구의 가능성이 희박해진 SK지만, 최정과 함께 그나마 숨통을 트이게 만드는 존재 중 하나.

2.3 총평

발은 빠른 편이지만,주루플레이나 도루능력은 평범하다. 그렇다고 장타력이나 컨택이 좋은것도 아니지만,수비로서는 검증된 내야수다. 왕조 시절에는 발빠른 박경수라는 평도 있었으나, 박경수는 장타포텐이 터진 반면 나주환은 군복무 이후 폼이 망가져서 잘못된 비교가 되었다.

김정준이 해설자 시절 강정호의 수비를 안정감이 없다고 폄하하면서, 대신 나주환이 수비를 잘한다고 추켜세운적이 있다. 그 이후 강정호는 메이저리거, 나주환은 FA미아가 되었다. 근데 이게 수비랑 무슨 상관이지

3 역대 성적

역대기록
년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2003두산 베어스9699.15215120321115.202.263
20046459.3051860191413.458.333
200599174.270479011921814.339.321
2006114233.232548233020224.322.299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2007SK 와이번스117284.2436913222730326.324.301
2008118361.24789163346431432.332.303
2009118382.2881101301565602148.440.364
2010100305.26982132742491430.393.332
2011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2012
20131523.08720000000.087.087
2014127422.273115250751641039.382.332
201596246.2686615052231314.390.307
통산10642588.258667119114431435377245.363.319
  1. 리틀야구단 출신.
  2. 나~주환~안타~나주~환~×2
  3. 난나나나~ 안타 나주환 헤이!×3 안!타! 나주환! / 경찰청 복무와 2차 드래프트로 이적한 최윤석의 응원가였다.
  4. 두 손 머리위로 흔들어 봐봐 미친듯이 흔들어 봐봐 미치기로 한 우리 모두 발악해 S!K! 나!주!환! | 나나~ 나나나~ 나나나~ 나주환!×4
  5. [1]꽃뱀이든 아니든 부인이 있는데도 다른여자와 엮인다는것 자체는 까일만 하다
  6. 그러나 4대 유격수들 중에서는 평가가 높지 않았다. 당시에는 박경수가 나주환보다 훨씬 더 평가가 좋았었다(…). 그런데 그 4대 유격수들 중 국가대표 예비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것은 나주환 단 한 명뿐. 아 유망주 몰라요!
  7. 이에 대해 박경수 나비효과의 영향이라고 보기도 한다. 원래 두산은 박경수를 1차 지명하려고 했는데, 박경수가 LG로 가는 바람에 다급해진 두산은 나주환을 지명한 것. 감자 사건은 전국 체전 동산고 전에서 편파판정과 빈볼시비 속에 나주환이 동산고 관중석을 향해 감자를 먹인 것. 본인은 감자가 아니라 단순히 손을 흔든 것이라 주장했다.
  8. 당시의 나주환은 툴은 좋지만 아직 안정성이 떨어지는 수비를 보여주는 내야 유틸리티 플레이어였다. 그 전해까지 안정감 있는 내야를 구축하는 데 핵심이었던 손시헌의 상무 입대로 인해 내야에 공백이 생긴 두산은 나주환으로 그 공백을 메우려 했으나 실패, 내야 라인이 덜덜거리게 된다. 김경문 감독은 어떻게든 나주환을 써보려 하였으나 나주환이 범하는 클러치 에러에 두손을 들고 말았다. 결국 건실한 수비를 보여 주는 동시에 SK에서 사실상의 잉여 전력이던 이대수와 교환하게 된다. 결론적으로는 양 팀 모두에게 윈윈이 된 트레이드. 두산은 이대수를 잘 써먹으며 당시 상무에서 복무 중인 손시헌/김재호가 제대하기 전까지의 공백을 메울 수 있었고, SK는 나주환을 빡세게 굴려 좋은 유격수로 만들어 냈다.
  9. 진짜 슬러거였나? 동창의 증언에 의하면 그때도 6번 타자였다던데? 김현수가 6번 치던 시절이 있었다고 김현수를 고교 시절 6번 타자로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소리다. 저학년 때 부상을 겪으면서 타격감이 떨어진 나주환이라면 모를까, 3학년 나주환은 클린업 트리오의 선봉에 들어가는 3번 타자였다.
  10. 그러나 잔부상으로 팀을 이탈하는 경우가 잦았던 걸 보면 기본적으로 그다지 몸이 튼튼한 것 같지는 않다.
  11. 2008년에 범한 송구 실책은 나주환의 송구가 잘못 되었다기보다는 1루수로 출장한 이진영의 미숙한 포구에 기인한다. 2009년에 박정권이 1루수로 고정 출장하면서 송구 실책기록이 많이 줄었다.
  12. 실제로 제대로 된 활약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유격수와 2루수 쪽, 키스톤 쪽이 제일 적합할 것이다.
  13. 팀을 옮기고 나서는 정근우를 놀려먹는 소재로 썼다고 한다(…).
  14. 하지만 이는 오히려 용덕한의 잘못이 더 크다. 2009년 두산 베어스 포수들이 홈으로의 쇄도를 막는 과정 중에서 주자의 진로 자체를 막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는데, 이는 상당한 논란거리가 되었다. 충분히 홈플레이트에서도 블로킹할 수 있는 것을 선상까지 나가 주자의 진로 자체를 막는 것은 룰을 어기는 짓이다.
  15. 야구팬들 사이에 나주환의 인지도를 높이는데 기여했다.
  16. 이날 정상호도 누의공과를 하였다.
  17. 그 전에 내야수 박승욱이 교육 리그에 참가했다가 어깨를 다쳐 SK 쪽 야수진이 부족해 박승욱의 대타로 나주환이 참가하였기 때문이었다.
  18. 데뷔 첫 연타석 홈런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