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愼鏞頊. 일본식 이름: 眞原勝平
1901년 ~ 1961년 7월 16일
대한민국의 친일반민족행위자, 기업인, 정치인이다. 동생 신용남은 제7대 국회의원(민주공화당-정우회-민주공화당)이다.
1901년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태어났다. 일본 오쿠리비행학교를 나와 1등조종사면허를 받았다. 이후 동아항공전문학교, 미국 실라헬리콥터학교 조종과를 졸업허하여 미국 헬리콥터조종사면허도 취득하였다.
귀국 후 비행기학교를 창립하여 교장이 되었으며, 조선의 청년들을 모집, 비행술을 가르쳤다. 태평양 전쟁 때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지원하였다. 게다가 일제에 비행기를 헌납하였다.
1945년 8.15 광복 직후에는 일본군 비행기 수백대를 헐값으로 구입하여 고철로 처리, 막대한 이익을 남겼으며, 이 해에 대한국민항공사(현 대한항공) 사장이 되었다. 1949년 2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았으나, 같은해 3월 특별검찰부 검찰관에 의하여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그의 친일행위가 일제의 강요에 의한 것이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전라북도 고창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민주국민당 백관수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후 1952년경 자유당에 입당하였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회 교통체신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8년 대한국민항공사 여객기 1대가 납북되는 창랑호 납북 사건으로 재정적인 손실을 입은 뒤 계속 사업에 실패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홍순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김상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1년 3.15 부정선거 가담, 부정축재 등을 이유로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해 공민권이 상실되었다. 같은 해 7월 사업 실패를 비관하여 한강에 투신자살하였다.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모두 선정되었으며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