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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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바렌 나가사키 No.33
백성동 (白星東 / Baek Sung-dong)
생년월일1991년 8월 13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전라북도 전주시
포지션윙어, 공격형 미드필더
신체조건171cm / 66kg
등번호주빌로 이와타 - 8번
사간 도스 - 9번
프로입단2012년 주빌로 이와타(일본)
소속팀주빌로 이와타 (2012~2014)
사간 도스 (2015~ )
V-바렌 나가사키 (2016.7~, 임대)
국가대표1경기

1 소개

완주중학교, 금호고등학교, 연세대학교를 거쳐 주빌로 이와타에 입단하였고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축구 국가대표로 활약한 바 있는 축구선수.

금호고 시절 1991년생 동갑내기인 김경중, 정석화와 함께 전국대회를 휩쓸며 금호고 3인방으로 유명했고 연세대학교에 스카우트되었다.[1] 연세대학교에서도 저학년임에도 많은 출전 기회를 얻었고, 2학년이던 2011년엔 이미 팀 전술의 핵심이 되어 있었다.

이와 같이 청소년대표 시절 뛰어난 기본기와 볼터치, 드리블, 플레이센스를 보여주며 팬들의 기대치가 상당히 높았고 K리그 팬들은 '우리팀으로 와라'고 러브콜을 보냈으나 J리그 주빌로 이와타와 뜬금 입단계약을 발표해서 K리그 팬들을 벙찌게 만들었다. 자기가 추구하는 플레이스타일과 잘 맞을 것 같아서 J리그행을 택했다고... J리그에서의 활약을 교두보삼아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로 진출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그러나 그 이후 j리그로 진출한 유망주의 함정에 빠져서[2] 실력은 청대 때랑 고만고만한 수준이다. 2014년 AFC U-22 축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해서 보여준 것도 딱 그 정도. 청대 때는 주위를 압도하는 스타플레이어로서 나이가 많은 올대 선수들 사이에서도 출중했으나 14년 대회에서의 활약은 평범한 최고참급. 육체적 능력의 향상을 생각해 보면 축구적 능력의 향상은 대단하지는 않다.

2 클럽

청소년 대표팀 시절 뛰어난 기본기와 볼터치, 드리블, 플레이 센스를 보여주며 팬들의 기대치가 상당히 높았고, 이에 많은 K리그 팬들도 우리팀으로 오라며 러브콜을 보냈으나, 정작 J리그 주빌로 이와타와 계약했음을 발표해서 K리그 팬들을 벙찌게 만들었다. 이게 다 드래프트 때문이다 자기가 추구하는 플레이 스타일과 잘 맞을 것 같아서 J리그행을 택했다고. J리그에서의 활약을 교두보 삼아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로 진출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그러나 2013년 부상 이후 폼이 회복되지 않아 주전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주빌로 이와타에서 최종적으로 3시즌 동안 총 66경기 5골을 기록했고, 2015년 1월 9일 사간 도스로 이적하였다. 그러다가 2016년 7월 출장 기회를 얻기 위해 V-바렌 나가사키로 임대되었다. #

3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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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약에 힘입어 이광종 감독이 이끌던 청소년 대표팀에도 선발되어 AFC U-19 선수권과 2011 U-20 월드컵 대표로 뛰었다. 또한 올림픽대표팀 감독이었던 홍명보의 눈에 띄어 두 살의 격차가 있음에도 올림픽 대표팀에 선발되어 지역 예선에서 크게 활약했다. 런던행 본선 진출을 확정짓는 오만과의 경기에서 쐐기골을 직접 넣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올림픽을 앞두고는 부상에 시달리면서 런던행의 꿈은 날아가는가 했으나 올림픽이 다가오자 귀신같이 부활하여 J리그 경기에서 갑자기 스탯을 막 찍기 시작했다. 결국 올림픽 대표팀 최종 엔트리 18인에 포함되어 올림픽에 참가했고, 거의 준주전급에 가까울 정도로 중히 기용되었지만 부상 후유증인지 상당히 무딘 모습을 보여주었다. 혼자 부진했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박주영, 김보경, 남태희 등 공격진이 동반 부진하는 바람에 세트로 묶여서 많이 까였다. 여러 차례의 득점찬스를 무산시키며 성남 일화 천마 소속이었던 요반치치에 빗대어 백반치치라는 별명이 붙기도... 뭐 어쨌든 결과적으로 동메달이라는 위업 달성에 일익을 담당했다.

2013년에는 홍명보호에도 발탁되어 페루와의 평가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가졌고 2014년에는 AFC U-22 축구 선수권 대회에 주전으로 출전하였다.
  1. 참고로 3인방 중 나머지 두 명은 손잡고 고려대학교로...
  2. 환경이 달라지고 명확한 각오가 없는 상황에서 대학생, 고등학생 선수가 갑자기 용병으로 바뀌면서 겪는 문제점이다. 왜 J리그냐면 이 당시 유망주들은 EPL이 방송되기 시작하면서 꿈이 높아졌는데 K리그는 드래프트제 때문에 원하는 팀을 선택하지 못하고, 또 제아무리 유망주라도 당시 K리그가 1부리그밖에 없어 팀수가 비교적 적던 시절이라 드래프트에서 확실히 선택받을지도 불확실하고, 첫 해 연봉협상이 어렵기 때문에 두각을 드러내던 유망주들이 J리그로 엄청나게 진출했다. 이들은 K리그와 비슷한 실력 혹은 환경이면서 기술적이라고 약간 J리그를 얕잡아보는 경향도 있었다. 2부 리그나 실업리그까지 치면 J리그의 팀수는 엄청나며 J리그 역시 청대 유망주였던 박지성 영입의 신화와 더불어 그동안 한국 국대급 선수가 쌓아놨던 좋은 인상이 있었고, 결정적으로 J리그는 용병이 아시아쿼터까지 해서 4명이 아니라, 4명 출장 5명 보유이기 때문에 부상을 대비해 보험급으로 박지성 신화를 바라며 싼맛에 하나 구입해 놓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런 탓에 각 팀마다 K리그 유망주 하나 정도의 자리가 있었지만 이들 대부분은 출장도 제대로 못했다. 백성동은 물론 알짜 유망주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물 다르고 음식 다르고 말도 다른 곳에 혼자 덩그러니 떨어져 용병으로 살아남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용병은 즉시전력이어야 하고, 용병도 숙소에서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정 문화 위주의 한국과는 달리 일본은 연습시간도 짧고 끝나면 다 헤어져 개인숙소에서 생활한다. 이 때 얼마전까지 학생이었고, 코치들이 욕하고 갈구더라도 나름대로 알뜰살뜰 훈련과 챙김을 받던 한국 유망주들은 일본 선수들이 집단훈련 끝나고 개인훈련이나 피지컬 트레이닝을 한다는 사실 자체도 잘 모르고, 알고 나서도 훈련 장소나 방법 물색에 어려움을 겪고, 외로움에 몸부림치면서 밥 지어먹고 빨래하고 청소하며 생활하기 일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