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경(축구선수)

전북 현대 모터스 No.13
김보경 (金甫炅 / Kim Bo-Kyung)
생년월일1989년 10월 6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전라남도 구례군
포지션공격형 미드필더, 왼쪽 윙어
신체조건178cm, 73kg
소속팀세레소 오사카 (2010~2012)
오이타 트리니타 (임대) (2010~2011)
카디프 시티 FC (2012~2015)
위건 애슬레틱 (2015)
마쓰모토 야마가 FC (2015)
전북 현대 모터스 (2016~)
국가대표32경기 3골

1 개요

전북 현대 모터스의 축구선수.

대한민국 유소년 축구의 산실인 용인시축구센터 산하 원삼중학교(U-15팀)와 신갈고등학교[1](U-18팀)를 거친 꿈나무 가운데 하나다. 당시 축구센터 총감독이던 허카우터가 김보경의 재능에 대단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청소년대표팀(U-20) 시절에는 2009년 이집트 U-20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을 대회 8강으로 이끈 주축으로 좋은 활약을 보여서 축구팬들 사이에서 장래가 촉망되는 유망주로 평가받았으나, 성인이 되고 드래프트 제도로 인해 자신이 원하는 팀에서 뛰기 어려워지자 J리그로 발길을 돌린다.

세레소 오사카와 계약을 맺었지만 당시 세레소 오사카의 외국인 용병 쿼터가 가득 차있던 관계로 J2리그오이타 트리니타로 1년간 임대를 가있다가 2011~2012 시즌이 되어서 세레소로 복귀한다. 이 때 서서히 대표팀에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는데, 청소년 대표팀 시절을 기억하던 축구팬들 사이에서 평가는 바닥을 쳤다. 한 마디로 "고작 이것밖에 못 컸냐?"는 반응이다. 카디프 시티 FC로 이적한 뒤 국내팬들의 평가는 J리그 가서 멀쩡한 기량을 버렸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리고 실제로 2012 런던 올림픽,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2 클럽

2.1 오이타 트리니타 (2010~2011)

출전하자마자 골 폭풍을 몰아쳐서 5경기 동안 6골을 넣는 쾌조의 출발을 보였다. 당시 한국의 남아공 월드컵 대표로도 선발되었는데, 이것은 오이타 사상 최초의 월드컵 대표(…). 다만 실제 경기에서 뛰지는 못했다. 그러나 월드컵 종료 후 팀에 복귀하고서는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딱히 활약하지는 못했다. 이렇게 오이타에서의 선수 생활은 종료. 리그전 기록은 27경기/8득점.

2.2 세레소 오사카 (2011~2012)

세레소로 복귀 이후 곧바로 주전 스타팅 멤버로 기용. 15경기에서 7골을 넣는 놀라운 활약을 보이며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시즌 도중 2012 런던 올림픽 멤버로 차출되었고, 동메달을 획득한 후 여름 이적 시장에서 밀레니엄 스타디움이 있는 동네가 홈인[2] 잉글랜드 2부리그카디프 시티 FC로 이적이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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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전 기록은 41경기/15득점. 당시 올림픽독도 문제, 대통령의 일왕 사죄 발언 등으로 인해 일본내 혐한감정이 극도로 높았음에도 불구하고[3] 서포터들의 성원 속에 훈훈하게 송별회가 치러지기도 했었다.

2.3 카디프 시티 FC (2012~2015)


많은 유럽구단들의 러브콜을 받았으나, 막상 풋볼 리그 챔피언십의 카디프 시티가 행선지로 결정되자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영국 언론에서마저 "왜 거길 가?"라는 반응을 보였을 정도(…) 에이전트의 농간이라느니 이래저래 말이 많지만, 일단 본인은 만족하는 모양이다.

냉정히 말해서 김보경은 한창 성장 중인 선수라 클래스라 할 것도 없고, 당연히 프리미어 리그에서 살아남느냐는 점을 고려한다면 몹시 회의적이다. 때문에 돈이나 명예보다 경험치, 즉 주전 출장 기회가 많은 팀을 택한 것은 합리적인 판단이다.

그리고 카디프 시티가 2013년 1월에 리그에서 2위와 승점 10점 차이로 단독 1위를 유지하고 있어 내년 EPL 승격이 거의 확실시되는 상황이라 김보경의 선구안이 칭송받고 있다. 아마도 QPR이랑 자리가 바뀔 듯

카디프 시티에서의 데뷔전은 2012년 9월 중순경으로 점쳐지고 있었다. 실제로 첫 선발출전은 10월 27일이고, 팀은 4:0 대승을 거뒀다. 그리고 한국시각으로 8일 새벽 치러진 블랙번 로버스와의 엔파워 챔피언십 리그 21라운드에서 13경기만에 첫골을 기록했다.

2013년 4월 16일, 카디프가 찰턴과 0:0 무승부를 거두고 승격을 확정지었다. 12번째 프리미어리거 탄생. 2013~14시즌 챔피언쉽에서의 최종 기록은 28경기 2골이다.

2013년 8월에 열린 맨체스터 시티와의 홈 경기에서 뛰어난 돌파 능력과 크로스로 팀의 3:2 역전승에 아주 커다란 공헌을 했으며,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다시끔 주목을 받게 되었다.

9월 23일 토트넘과의 프리미어리그 5라운드에서는 경기 도중 엉덩이를 노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플짤 및 노모를 원하면 이쪽으로

11월 25일 프리미어리그 12라운드 맨유를 상대로 교체로 출전해 종료직전 극적인 버저비터 동점골을 넣으며 리그 데뷔골을 터트렸다.# 이 골은 2012년 1월 2일에 지동원이 맨시티 전에서 터뜨린 골로 1:0으로 승리한 결승골 이후로 오랜만에 한국 선수로 프리미어리그에서 터뜨린 골이다.

그러나 팀의 부진과 같이 그도 부진에 빠졌으며 결국 팀은 승격 1년만에 도로 챔피언쉽으로 강등당했다. 최종 기록은 28경기 출전 1골. 윤석영과 리그 동료가 되었네 근데 윤석영의 큐피알은 승격 1년만에 또다시 로테이션

그리고 2014~15시즌이 시작한 이후 아예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리그에서 고작 2경기 교체출전이 전부.

2.4 위건 애슬레틱 FC (2015)


결국 2015년 1월 25일부로 구단과 상호합의하에 계약해지한다는 공식 발표가 났고, 스코틀랜드 셀틱 FC위건 애슬레틱이 관심을 보이고 있던 와중에기사 2월 6일 챔피언십 위건과 6개월 단기계약을 체결했다. 얘는 여기서도 못 하면 큰일날텐데... 하지만 당시에는 갓 강등되어 어수선한 분위기에다 2부에서 조차 강등권에 허덕일 정도로 부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전의 카디프 입단과 마찬가지로 "거길 왜가?" 이런 반응이었을 정도. 하지만 그로서는 출장이 보장되는 팀이 필요했고, 카디프 시절 그를 영입하고 자주 중용하던 말키 멕케이[4][5] 감독이 지휘하고 있었기에 주전은 거의 따놓은 당상이었다. 더욱이 앞서 서술한대로 단기 계약이라는 보험도 들어놨고...

그리고 2015년 3월 2일, 상당히 오랜만에 골을 넣었다! 기사 경기 후에는 MOM으로까지 선정된 것을 보면 어느 정도 감을 되찾은 것일지도. 이후에도 2호 골을 넣고 꾸준히 주전으로 출장하는 등 예전에 비하면 그럭저럭 살아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만 팀 자체가 2부리그 소속인지라 다른 해외파들에 비하면 그의 활약상이 그다지 크게 이슈가 되진 않는 듯. 결국 팀의 3부 리그 강등을 막지는 못했고, 여름 자유계약 대상자가 되었다. 그래도 위건에서의 활약을 통해 다시 실전 감각을 되찾은 것, 다시 태극 마크를 달게 된 것은 긍정적인 측면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위건에서의 활동이 끝난 후에는 기초군사훈련을 위해 잠시 귀국했으며, 이후의 거취는 훈련소 생활이 끝난 후에 결정될 것으로 보였다. 이렇게 된 이상 FC 서울로? 그리고 6월 말부터 서정원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의 허락 하에 수원 선수단들과 함께 훈련을 받았다. 기사 김보경 측에서도 K리그 활동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고, 수원 팬들 사이에서도 김보경의 영입을 원하는 여론이 많았기에[6] K리그 진출 여론이 돈적이 있었으나 의외로 무수한 팀의 러브콜을 받으며 이는 무산되었다. 결국 2016년에 오긴 왔지만.

영입전을 벌인 팀을 나열하자면 꽤나 놀라운데 (...) 셰필드 웬즈데이, 레딩 FC, 블랙번 로버스, 노팅엄 포레스트까지 무려 4개의 팀이 김보경을 영입하고자 영입전에 가세했다는 것. 일찍이 이렇게 많은 팀들이, 비록 2부 리그인 풋볼 리그 챔피언쉽이기는 하지만 한국 선수를 영입하고자 영입전을 펼친것이 언제였을까 싶을 정도로 챔피언쉽 내에서는 높이 평가받는 듯 하다.

2.5 마쓰모토 야마가 FC (2015)

2015년 7월 17일, 블랙번 로버스 FC로 이적이 확정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영국 노동청이 발급해주는 워크 퍼밋의 발급 조건이 강화되면서 노동 허가[7]를 받지 못해 이적에 실패했다. 능력이 있었음에도 시기를 잘못 만나 이적이 불발되어 그로서는 불운이었던 셈. 트랜스퍼 마크트에 따르면 뜬금없이 키프로스 리그에 있는 아노르토시스 파마구스타에 입단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었고, 8월 18일 PSV 아인트호벤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며칠 간 선수들과 훈련을 했지만, 결국 필립 코쿠 감독으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지 못했다. 결국 8월 25일 J리그로 U턴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올 시즌 J1리그로 승격한 마쓰모토 야마가 FC로 이적한다는 소식이다.

9월 9일, 결국 마쓰모토 야마가 FC로 이적했다.# 후반기에 합류해서인지 출전이 많지는 않았지만, 4경기 1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였는데 결국 이 팀도 강등당했다 (...) 결국 12월 마쓰모토와 결별한다는 기사가 떴다.

그리고 12월 14일 전북 영입설이 돌았으나, 전북은 접촉을 가졌던 것은 맞지만 일본 중국 등에서도 제안이 있었기 때문에 아직 영입은 불확실하다고 밝혔다. 기사 그리고 그의 친정 팀이었던 세레소 오사카로 선회한다는 여론도 돌기 시작했다. 다소 급이 낮더라도 출전을 보장하는 팀을 선호했던 행보를 보면 그쪽에 무게가 제법 쏠리는 듯.

12월 22일 감바 오사카 입단설이 떴다. 기사

2.6 전북 현대 모터스 (2016~)

12월 27일 감바 결렬설과 전북 입단설이 떴다. 기사 러브콜의 제왕 혼다 케이스케를 계승한 자

12월 28일 전북 현대 모터스 이적이 확정됐고 세부 조율중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결국 2016년 1월 3일 전북은 김보경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기사 등번호는 카디프 시절 달았던 13번.

2월 23일 FC 도쿄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 리그 경기에서 선발 출전하며 전북 선수로서의 데뷔전을 가졌으며, 중원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며 팀의 2-1 승리에 기여했다.

3월 1일 장쑤 쑤닝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원정 경기에서 하미레스와 충돌하여 왼쪽 발목 인대 부상으로 2-3주 결장이 확정되어 K리그 데뷔전은 연기 되었다. 때문에 12일, 20일 경기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없었다. 최근 울산전을 보고 전북팬들이 김보경을 애타게 찾고있다

4월 10일 포항 원정에서 중원 플레이 메이커로써 준수한 모습으로 데뷔전을 치렀고 체력 안배를 위해 후반 58분 김신욱과 교체 되었다.

4월 12일 인천과 홈경기에서 풀타임을 소화했다. 그게 끝이다

4월 16일 홈에서 치르는 성남전에서 K리그 데뷔골이자 결승골을 기록하여 팬들이 보멘을 외치게 만들었다. 당시 전북이 한점 리드하면 성남이 한점씩 따라오는 2-2 상황이었는데 후반 85분에 좋은 움직임으로 골을 기록하고 경기 MoM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해당 라운드 MVP에 선정됐다.

성남전 기세를 이어 4월 20일 도쿄 원정에서 선제골을 기록했다. 결과는 0-3. 이후로도 리그 8라운드 수원 FC전에서 한교원에게 1도움을 기록, 이어진 9라운드 수원 삼성에서는 한교원, 루이스에게 2도움을 기록하는 등 연계 플레이의 중심이 되고 있다.

3 국가대표

2010년 1월 잠비아와 친선 경기를 통하여 A매치에 데뷔했다. 이 때 허정무 대표팀 감독이 대표팀에 함께 픽업한 영건들이 바로 김신욱, 구자철, 이승렬. 물론 이 듣보잡들은 뭐냐고 까였고, 그 중 구자철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못 갔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합류했다. 당시 부진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대표팀의 붙박이 공격수였던 이근호가 탈락하고 김보경은 남은 데 대해서 말이 많았다.

조광래 감독이 이끄는 2011년 아시안컵 최종 엔트리에 합류했다. 이후 박지성이 대표팀에서 은퇴하고, 그 공백을 메울 선수로 주목을 받았다.

레바논 쇼크의 여파로 조광래 감독이 해임되고 최강희 감독이 대표팀을 맡은 뒤 변함없는 신뢰를 받고 있다. 다만 이청용이 부상에서 복귀하면서 측면 공격수 자리에 한바탕 대격변이 몰아칠 예정이다. 지금껏 최강희 감독은 특별히 잘쓰는 발을 따지지 않고 상대팀에 따라 측면 공격수를 그때그때 바꿔가며 배치했기 때문에 사실상 좌우 측면 공격수 전원이 경쟁 상대가 이근호, 이청용 외에 지동원, 손흥민, 남태희 등 해외파 경쟁자도 많은데다 상황에 따라서는 박주영도 측면으로 돌릴 수 있고 김형범, 송진형, 황진성 등 호시탐탐 대표팀 승선을 노리는 K리그 정상급 선수들의 추격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결국 2014년 들어 평가전과 월드컵 조별 예선에서 무리한 드리블을 하다가 공을 빼앗기는 모습을 비롯해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이며 겉멋만 들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사실 가물에 콩나듯 전해지는 프리미어 리그에서 활약상도 팬들 입에서 절로 OME 소리가 튀어나올 한심한 것들 뿐이었다. 상대 수비수와 1:1 경합에서 이기질 못하니 볼을 끌고 들어가는 족족 끊길 뿐이고, 개인 능력으로 할 수 있는게 없으니 신나게 다이빙만 하지만 워낙 어설퍼서 주심의 관심조차 끌지 못한다. 또한 이렇게 볼을 빼앗기면 수비 태세로 전환하는 것조차 굼떠서 그냥 공수 양면에서 민폐일 뿐이다.

더구나 리그에서 출장 시간조차 줄어들면서, 한참 K리그 클래식에서 주가를 올리던 이명주와 대비되면서 실전 감각 논란이 불거졌다. 하지만 엔트으리에 무사히 승선했고, 월드컵 조별예선 첫 경기인 러시아전과 마지막 경기 벨기에전에 교체로 투입되었다.

그리고 두 경기 교체 투입을 지켜본 전 국민의 감상은 딱 한마디로 WTF.

러시아전 후반 40분 교체 투입은 남은 시간 버티기로 승점 1점을 따겠다는 홍명보 감독의 선택인 만큼 투입된 선수 본인은 잘못이 없겠지만, 문제는 불과 5분을 뛰면서도 마치 박주영을 연상케 하는 썩은 경기력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많은 이들이 진작부터 우려했던 실전 감각이 떨어진 문제를 그대로 노출했던 것.

또한 벨기에전에서는 한국영을 빼면서 동원 가능한 모든 공격 자원을 쏟아부었지만, 그 자원이란 게 실전 감각이 바닥까지 떨어진 지동원과 김보경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 위치 선정, 패스, 드리블, 슈팅 뭐하나 제대로 해내는 게 없으면서 움직임까지 무거워서 교체 선수가 저 따위로 축구할 바엔 뭣 하러 김신욱을 뺐냐며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한 때 박지성의 후계자라는 극찬을 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안타까울 따름.

결국 포르투 알레그리 대참사 등 브라질에서 광탈당하고 귀국한 그는 인터뷰에서 월드컵에서의 경험으로 아시안컵에서 활약하겠다아시안컵에 책임을 느끼고 있다라며 의지를 불태웠는데, 뭐 저런 말 한 것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소속팀에서도 자리를 못 잡고 나오지도 못하는 중이라 신임 국가대표팀 감독인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부름을 받지 못했고, 결국 2015 오스트레일리아 아시안컵 명단에 포함되지 못했다.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도 화가 나는데 벌써부터 아시안컵 대표로 뽑힌 마냥 인터뷰하는 바람에 축구 팬들에게 까이고 있는 중.

이후 꾸준히 주전으로 출장했던 게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눈에도 들어왔는지, 아시안컵 이후 3월 평가전을 앞두고 지동원과 함께 상당히 오랜만에 대표팀에 합류했다. 그리고 두 차례의 평가전에서 공수를 넘나드는 활동량과 빨라진 발을 무기로 그라운드를 누비고 다니면서 월드컵에서 만든 비호감 이미지를 어느 정도 깎아냈다. 특히 뉴질랜드전에서는 막히긴 했지만, 경기 종료 직전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을 시도하기도 했다.

2015년 8월 월드컵 2차 통합예선 라오스전 레바논전 대표 선발에서 탈락했다. 일각에선 홈 국내파, 원정 해외파 대표팀 2원화 전략까지 제기했으나 슈틸리케 감독이 기각하고 국내파와 해외파를 한데 아울러 홈과 원정 경기를 모두 치뤘다. 그런데 기성용을 비롯해 구자철, 김진수, 박주호, 석현준, 손흥민, 이청용, 홍정호, 지동원 등 팬들에게 친숙한 해외파 선수들이 다시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유독 김보경은 빠진 것으로 볼 때 감독의 의중에서 좀 멀어진 듯 싶다. 게다가 손흥민, 이재성 등등 넘사벽급 경쟁자도 즐비하고...

4 플레이 스타일

왼발잡이로 2선 왼쪽 윙어 또는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주로 출전한다. 드리블이 화려한 편은 아니지만 기술적이면서도 깔끔하게 볼을 다루면서 상대를 벗겨내는 편으로, 전반적으로 기술적으로도 지능적으로도 준수한 수준. 신체적 유연함도 어느정도 갖추고 있어 야야 투레와의 경합장면에서 야야 투레를 벗겨내고 드리블을 이어가는 한국의 모드리치(보드리치) 명장면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롱킥도 은근히 정확도가 높아 2선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 후방 플레이메이킹까지 맡아도 무리가 없다. 이러한 멀티플레이어적인 능력과 전반적으로 준수한 특징들은 한참 부진했던 와중에도 많은 팀들의 백업, 로테이션 멤버로서 러브콜을 받는 이유이다.

단점이라면 전반적으로 준수한 기술, 지능에 비해 부족한 신체적인 능력. 주력이 윙어치고는 빠른 편도 아니고 힘은 EPL의 강력한 바디체크를 견뎌내기엔 부족한 수준. 특별히 특정 능력이 빼어난 것이 아닌 이상 신체적 유연함을 갖추고 있다고는 해도 중앙공격형미드필더 자리는 강한 압박을 견딜 힘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도 챔피언십에서는 들어오는 강한 몸싸움을 벗겨내고 플레이메이킹을 해낼 수 있는 수준의 기술을 갖추고 있었지만, EPL로 넘어오면서 주전으로 자리잡기에는 그 기술조차 애매한 수준이 되어버려 활용 가치가 다소 떨어졌던 상황이 되었다. 그렇다고 왼쪽 윙어로 배치시키자니 강팀을 상대로 빠른 측면 역습이 필수적인 EPL의 카디프 시티에게는 그닥 빠르지 않은 김보경을 주전으로 기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즉 스킬은 탁월한 편이지만 피지컬이 그 장점을 가리는 케이스.

전북 이적 후에는 2선 뿐만 아니라 3선에서 후방 플레이메이킹을 하는 모습도 자주 선보이고 있다. 워낙 전북이 수비 리스크를 짊어지고도 2선 공격수를 많이 배치하는 스타일이라 김보경의 단점이 상쇄되는 면이 크다. 일단 이재성이 단짝으로 받쳐주고, 전방에 김신욱 이동국 에두, 좌우에 고무열 레오나르도 로페즈이종호 한교원 등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김보경만 콕 찝어서 피지컬로 누를 수가 없다. 강요받고 있는거다

5 기타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강등 전도사라는 영 좋지 않은 별명이 있다. 물론 선수 본인의 의도와는 관계없겠지만, 농담이 아니라 실제로 그가 거쳐간 팀들은 모두 하위 리그 강등을 경험했다. 오이타, 세레소, 카디프, 위건, 마쓰모토까지 여태 거쳐온 구단 전부 다. 그리고 전북에서도 전북 현대 모터스 심판매수 사건이 터지면서 팀이 위기에 처해버렸다 (...)

사실 J리그에서 활약할 때까지만 해도 주목을 받던 선수는 아니었는데, 2012년 6월 브라질 월드컵 지역예선인 레바논 전에서 2골을 몰아넣은 후로 주목받았다. 한때 박지성이 자신의 후계자로 김보경을 지목했을 정도. 김보경과 박지성은 포지션이 같고, 키와 몸무게까지 완벽하게 동일한데다 프로 생활을 J리그에서 시작했다는 점도 유사하다. 그리고 전남 출신이지만 일찍이 경기도로 이주했다는 것까지. 거기다 여드름 많은 얼굴도 유사하다[8] 또한 남아공 월드컵 당시 두 사람은 같은 방을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지성이 후계자로 지목한게 아니라, 기자들과의 인터뷰 당시 자신의 공백이 생기면 대체자원으로 다른선수들을 말한것인데, 딱히 후계자 지목이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형식의 대답이었을 뿐인데 그걸 기레기들이 후계자 계승인 마냥 설레발 친 것이다. 본인은 박지성의 후계자라는 호칭에 대해 다소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감사하다는 입장.

비슷한 시기에 유명해진 동명의 가수 김보경과 같은 이름으로 새삼 화제를 모으기도 한다. 가수 김보경 측에서 축구선수 김보경을 응원하는 글을 먼저 미투데이에 먼저 올리고 김보경(축구선수)도 화답한 적도 있으니 둘도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듯. 관련 기사 그리고 네이버 프로필에도 김보경(축구선수)의 활약상에 따라(특히 올림픽이나 월드컵 시즌) 프런트를 주고받는 진광경(...)이 펼쳐지기도.

K리그 팀들 중엔 FC 서울의 팬이었다고 한다. K리그에서 뛰지 못한게 못내 아쉬운지 인터뷰 등에서는 언젠가 꼭 K리그에서 뛰어보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리고 전북 현대에 입단하면서 그 꿈을 이루었다.

뇌가 청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SNS에 오랜만에 서울 왔는데로 시작해서 몰랐는데 지갑에 현금이 없어서 택시도 못 타고 터덜터덜 걷다 물어물어 버스 타다 다시 터덜터덜하며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는데 사촌 여동생이 오빠 요새는 택시도 카드 되는데? 라는 치명적 반전으로 대단원을 그리는 서울 방랑기를 진짜 a부터 z까지 주절주절 써놓기도 했고, 외국에서 뛸 때 어떻게 생활했는지 궁금하다 윤석영이 최강희를 겨냥해서 세계 최고의 o형 수비수들 - 런던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비롯해 02년 4강 멤버들을 이름을 쫙 나열해 놓은 트윗을 올리자 아니 그럴 수가... 신기신기... 등의 뉘앙스로 리트윗을 했다가 팬의 지적에 바로 삭제했다. 이런 일화들로 보아 인간성 자체는 좋게 보면 꽤 천진난만하고 순박한 편이고, 나쁘게 보면 눈치가 없고 어벙한 듯.
  1. 김진수의 3년 선배이다.
  2. 카디프 시티는 이 경기장이 홈은 아니다.
  3. 같은 시기 FC 서울에서 시미즈로 임대가 결정된 김현성의 경우 시미즈 프론트에 항의전화가 빗발칠 지경이었다(…).
  4. 카디프를 1부로 승격시킨 장본인으로 각광받는 감독이었으나, 인종차별 논란으로 경질된 경력이 있었다. 그래도 이듬해 2부리그 위건으로 감독직 복귀는 성공했으나, 강등권으로 추락하자 다시 짤렸다(...)
  5. 참고로 카디프 시절 유색인종에게 독설을 퍼붓는 인종차별 논란으로 구설수에 올라 경질당했고, 피해자 중에서는 김보경도 있었다. 김보경으로서는 은사와 동시에 차별받은 대상이라는 미묘한 인연이었던 셈. 그래도 은사로서 역할은 컸는지 위건 이적에는 감독의 부름이 컸다고...
  6. 비록 월드컵에서는 부진했지만, 공격형 미드필더로서의 기본적인 능력치는 전부 준수하게 갖춘 편인데다가 당시 수원의 주력 2선 자원들이었던 고차원, 서정진, 조지훈 등이 상당히 부진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
  7. 2015-2016 시즌부터 FA에서 외국인 선수에 대하여 규정을 강화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50위 이내의 국가대표팀 선수가 최근 2년 간 A매치에 75% 이상 출전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으며, 이적료가 1,000만 유로(약 130억 원)를 넘으면 FIFA 랭킹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김보경은 A매치 출전 미달로 이 규정에 걸렸지만, 손흥민은 이적료가 2,200만 파운드(약 3,000만 유로/한화로는 약 409억 원)를 불렀기에 랭킹 규정을 피해서 토트넘으로 이적이 가능했다.
  8. 다만 외모에 관해서는 박원재라는 박지성 클론이 존재해서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