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희

320px-Nam_Tae-Hee.jpg
25번이던 시절

110096_123191_1416.png
레크위야 SC No. 10
남태희 (南泰煕 / Nam Tae-hee)
생년월일1991년 7월 3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경상남도 진주시
포지션윙어,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1]
신체조건175cm / 73kg
등번호10번
프로입단2009년 발랑시엔 FC(프랑스)
소속팀발랑시엔 FC (2009~2011)
레크위야 SC(2011~ )
국가대표30경기 3골

1 개요

경상남도 진주시 출생으로 진주 봉래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울산 현대의 U-15 유소년 팀인 울산현대중학교와 울산 현대의 U-18 유소년 팀인 울산현대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했다. 이후 대한축구협회에서 주최한 해외 유학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레딩 FC에서 1년간 교육을 받은 후[2] 프랑스발랑시엔 FC에 입단하였다.

2 플레이 스타일

볼을 다루는 기술, 특히 드리블 수준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에서 견줄 선수가 없을 정도로 빼어나다. 주력 역시 굉장히 좋은 편이며 경우에 따라 플레이메이킹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경기를 보는 시야와 패스 실력이 준수하다. 남자르 또 종종 2대 1 패스를 통해 수비진을 순식간에 무너뜨리는 플레이를 보여준다.

단점이라면 대부분의 드리블러가 그렇듯, 다소 탐욕적인 플레이가 잦다는 지적을 받는다. 또, 몸싸움과 헤딩 경합에서 약점을 보이다보니 상대팀 감독들은 몸이 단단한 수비형 미드필더로 하여금 비비도록 지시하여 풀백들과의 2:1 협력 수비를 통해 남태희를 저지한다고 한다.

3 클럽 경력

현대고등학교 중퇴 후 2007년 대한축구협회의 주도 하에 추진한 '유소년 축구 유학 프로젝트' 5기에 선발되어 레딩 FC 유소년 팀에 입단하였고, 2008년 레딩 FC U-20 팀과 입단 제안을 받기도 하였다. 레딩 FC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쳐 잠재력을 인정받았으며, 레딩 FC의 핵심 선수인 스티븐 헌트는 "지금껏 지켜본 어린 선수 중 가장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라고 호평하기도 하였다.

2009년 1월 프랑스 리그 1의 발랑시엔 FC와 아마추어 선수 계약을 맺었고, 리그 규정상 만 18세가 되는 그 해 7월 발랑시엔 FC 1군과 입단 계약을 맺어 대한민국 축구 선수 사상 최연소로 유럽 리그 1군 무대에 진출한 선수가 되었다. 2009-2010 시즌 AS 낭시와의 홈 개막전 경기를 통해 리그 1에 데뷔하여, 대한민국 축구 선수 사상 최연소[3]로 유럽 리그 1군 무대에 데뷔한 선수가 되었다.

하지만 감독 교체 이후 발랑시엔에서 출전 기회가 줄어들기 시작하자, 보다 많은 경기에 뛰기 위해 카타르 스타즈 리그 팀인 레크위야 SC로 이적하였고, 이적 후 첫 시즌에 10경기 5골을 기록하며 순조롭게 카타르 스타즈 리그에 적응하였다. 2012-2013 시즌에는 19경기 6골을 기록하며 주전 자리를 차지하였다. 2013-2014 시즌에는 24경기 12골을 기록하며 팀의 핵심 선수로서 레크위야의 리그 우승에 공헌하였다.

2014-2015 시즌도 리그 및 컵대회에서 12골을 기록했으며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에서 3골 2도움을 기록하며 주전으로 맹활약 중이다.

그런데, 2015년 5월 7일에 원정 경기로 치뤄진 알 나스르와의 경기가 끝난 후 상대 선수인 파비앙 에스토야노프에게 마구 구타당하고 말았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았어도 보란듯이 먼저 마구잡이로 때리는 장면이 생생하게 방송으로 나왔고, 알 나스르 구단주인 파이살 빈 투르키 왕자는 협회 징계랑 상관없이 자발적으로 구단에서 에스토야노프의 급여를 절반 삭감하겠다고 발표했다. 덤으로 협회에서도 벌금 및 출전 금지 징계를 내렸다.

2015년 10월 2일, 레크위야와의 4년 재계약에 합의하였다. 이후 리그에서 3경기에서 5골을 넣는 대활약을 하며 팀 주전으로 완전하게 자리잡았다. 그리고 해가 바뀐 2016년 6월 다시 1년 재계약을 체결하면서 2020년까지 레크위야에 남게 되었다.

4 국가대표 경력

U-13 대표팀, U-15 대표팀, U-17 대표팀 등 각급 청소년 대표팀을 거쳐 현재 U-20 대표팀에 소속되어 있다. 2011년 1월 31일 조광래 감독이 터키전을 앞두고 남태희를 차출해 대표팀에 발탁됐다. 2월 9일 터키전에서 풀 타임을 뛰었지만, 이 날 경기는 0:0 무승부로 끝났다. 2012년 2월 22일 런던 올림픽 축구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오만과의 경기에서 경기 시작 15초만에 선제골을 넣어 대한민국 대표팀 역대 최단 시간 득점을 기록했다. 대한민국오만을 3:0으로 꺾었다. 2012 런던 올림픽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대한민국에서 올림픽 사상 축구 종목 첫 동메달을 획득하였고 남태희는 병역 특례를 받았다.

하지만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홍명보호 승선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홍명보호가 보여준 처절한 경기력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안 뽑혀서 다행일 지경. 그 후 홍명보 감독의 후임인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첫번째 대표팀 명단에 포함됐는데 슈틸리케 감독이 카타르에서 알 사일리야 SC의 감독을 맡고 있었을 때 남태희가 근처에 살았었다고...[4][5] 슈틸리케 감독은 남태희가 항상 성실하게 경기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한민국 선수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고 대한민국행을 결심하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남태희는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데뷔전인 파라과이전에서 A매치 데뷔 골인 2번째 골을 넣으면서 슈틸리케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슈틸리케호에서는 윙뿐만 아니라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도 뛰고 있다.

여러모로 조금 안습한 선수이다. 경기를 읽는 눈과 탁월한 시야, 그리고 폼도 다른 선수들과 비교하면 수준급인데도 인지도는 손흥민과 구자철에 묻혔고 국대 경기도 몇 되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선수였는데[6]슈틸리케호에 승선하고 이어 파라과이전에서 자신의 데뷔골을 기록하자 그제서야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연이은 평가전에서도 좋은 모습과 기량을 보여줘서 슈틸리케 감독의 믿음을 한없이 받고있다. 축빠들도 턴동작에만 빠진 구자철말고 남태희를 아시안컵 최종명단에 포함시키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둘 다 승선했다.

하지만 1월 4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평가전을 통해 남태희>>>>구자철임을 확실히 인식시키는데 성공. 구자철이 전반전에 답이 없는 경기력으로 팀 전체의 마이너스가 되버린데 비해 후반에 구자철을 대신해 교체투입된 남태희는 시종일관 전방에서 위협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며 공격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고, 후반 종료직전엔 기가막힌 헛다리 개인기로 상대 수비를 제껴내며 이정협의 쐐기골에 큰 공을 세웠다.

1월 13일 쿠웨이트와의 2015년 AFC 아시안컵 조별예선 2차전에서 결승골을 넣었다. 본인의 A매치 2호골. 팀을 8강에 올린 주인공 중 한명임에도 불구하고 패스보다 드리볼 돌파를 하려고 들다가 메시가 아닌 타랍이 되려고 든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손흥민도 네티즌으로부터 같은 비판을 받는 걸 보면 대표팀 드리블러들의 운명인 셈. 메시도 드리블 성공률이 100프로가 아니고 볼을 가끔은 뺏길 때가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안타까운 상황. 인터뷰에서는 비가 많이 와서 볼컨트롤 실수가 있었다고 말했다.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는 드리블 비판을 의식한 듯 전방 돌파를 지나치게 자제하면서 오히려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손흥민까지 돌파를 지나치게 자제하며 공격은 더욱 답답해졌다. 부정확한 중거리 슈팅과 프리킥 부정확한 코너킥으로 기회가 다 날아갔는 데도 불구하고 정규시간 기성용의 패스를 슈팅으로 연결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혼자 욕을 먹은 케이스. 이근호는 인터뷰에서 공이 남태희 선수에게 오기 전 한 번 튀는 바람에 슈팅하기 어려운 공이었다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파라과이전 이후 2015년, 사실상 남태희는 자신의 진가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좋은 패싱 능력과 시야를 가졌을 땐 펄펄 날아다녔는데 지금은 폼이 조금 떨어졌다. 점점 중동스타일에 중독된 건지 드리블이 상당히 길어졌고 공을 질질 끄는 습관이 계속되서 나오고 있다. 구자철? 3월 평가전 이후 결국 대표팀에서도 멀어졌다. 그 사이 이재성권창훈이 급부상하여 재승선 가능성도 낮아졌다. 다만 2015년 하반기부터 이재성이 소속팀과 국대를 수시로 오가게 되면서 체력적인 부담이 상당히 커졌고, 권창훈도 가끔 과욕을 부려 흐름을 끊는데다가 상황에 따라서는 성인 대표팀이 아닌 올림픽 대표팀으로 차출되어 공백이 생기는 등 여러 변수가 발생함에 따라 남태희도 다시금 중용되고 있다.

2015년 11월 12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미얀마와의 2018 러시아 월드컵 2차 예선 경기에서 후반 31분경에 교체 투입되었고, 후반 40분 경에는 손흥민과의 연계에 이은 마무리로 팀의 네 번째 골을 기록했다. 오랜만에 남태희다운 번뜩임이 돋보이는 장면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선수 본인에게 꽤나 의미가 큰 득점일 듯 하다.

3월 27일 태국과의 평가전에서는 지나치게 드리블 돌파를 고집해 팀의 공격 전개를 말아먹는, 그렇다고 드리블이 날카로운 것도 아닌 OME급 플레이를 선보였다. 경기장의 잔디와 습도가 매우 열악했던 탓에 선수들이 전체적으로 좋지 않은 경기력을 보여주었지만 그 중에서도 정우영과 더불어 돋보일 정도로 못했다.

4.1 통산 국가대표 기록

2016년 6월 16일 기준

연령출전
U - 1740
U - 2000
U - 2392
A 대표303
종합기록435

4.2 여담

2016년 6월 결혼[7]과 기초군사훈련을 위해 잠시 귀국하여, 4일 결혼식을 올린 후 13일에 53사단 신병교육대대 입소하여 훈련을 마치고 다시 레크위야로 합류했다. 생활관 동기들의 증언에 따르면 안에서는 장기와 알까기, 족구의 1인자였다고 한다. 그리고 국가대표라는 이미지보다 친한 동네 형이라는 느낌도 있었다는 의견도 있었고, 훈련이 끝난 후 자기 생활관 동기들에게 밥도 사주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훈련소 내에서도 동기들과 붙임성 좋게 지냈던 듯.
  1. 파라과이 전에서는 기성용-이청용과 함께 삼각편대로 뛴 바 있다. 즉, 중앙 미드필더로 뛴 것. 본 포지션이 아니니,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우려가 많았으나 전반에는 그야말로 갓태희였다. 후반에 지쳐서인지 조금 플레이가 쳐져 있었지만.
  2. 이때 함께 유학갔던 선수들이 지동원김원식.
  3. 18세 36일.
  4. 그것도 그냥 근처가 아니라 바로 옆집이었다고 한다. http://footballist.co.kr/bbs/board.php?bo_table=press&wr_id=12851
  5. 그 때 올림픽을 마치고 임대 선수로 입단한 수비수 김기희도 한때 슈틸리케와 한솥밥을 먹었다.
  6. 올림픽에서 골을 넣었을 때는 잠시 주목받긴 했다.
  7. 이 결혼식으로 인해 6월 평가전은 6월 1일 스페인전만 소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