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금동대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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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국보
National Treasures Of Korea
공식명칭한글백제금동대향로
한자百濟 金銅大香爐
영어Gilt-bronze Incense Burner of Baekje
분류번호국보 287호
소재지대한민국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5, 국립부여박물관
분류유물 / 불교공예/ 공양구/ 공양구
시설1점
지정연도1996년 5월 30일
제작시기백제, 520~534년(추정)
백제미술의 정수(精髓)

1 개요

백제 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爐)는 1993년 12월 23일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된 백제향로.

향로가 제작된 시기는 520~534년 사이로 추정되며 7세기, 고구려에게 한강유역을 빼앗기고 신라에게도 뒷통수를 맞은 백제가 다시 안정을 되찾고 꽃피운 문화를 상징하는 유물이다.

부처는 물론이거니와 도교에서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 혹은 신선이 조각되어 도교불교적 요소가 들어가 있다. 무엇보다도 그 조각 솜씨가 워낙 놀라운 수준이라 백제 문화의 정수로 꼽히고 있다. 일반인들에게도 신라의 금관처럼 백제하면 떠오르는 멋진 상징적 유물이 없던차에 그 빈 자리를 채우게 되었다.

2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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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금동대향로는 능산리 고분군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한 주차장 건설 현장에서 주차장 공사가 임박한 때 물웅덩이 진흙 속에서 발견되었다.
자세한 이야기.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향로가 거의 완벽하게 보존될 수 있었던 연유는 바로 금동향로가 진흙에 잠겨 산소가 차단된 환경에 처해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바닥에서는 기와 조각과 토기 조각등이 함께 발견되었다. 나아가 주변에서는 섬유 조각도 발굴되었는데, 이 섬유 조각은 백제금동대향로를 감싸던 천이 세월이 지나 삭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발굴 결과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된 곳이 원래 사찰 내에 부속되어 있던 대장간이 위치해있던 자리였음을 알게 되었다. 보물 제 288호 부여능산리사지석조사리감(扶餘陵山里寺址石造舍利龕)에 새겨진 명문으로 미루어보아, 해당 사찰은 백제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왕실에서 세운 사찰이었던 듯하다.

3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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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금동대향로의 디지털복원도 (by 문화유산기술연구소)
홈페이지

충격적인 세련미

백제금동대향로는 전체 높이가 61.8cm이며 크게는 네 부분으로 구성 되어 있다. 용 모양의 향로 받침, 연꽃이 새겨져 있는 향로의 몸체, 산악도가 솟아있는 향로 뚜껑, 뚜껑 위의 봉황 장식이다.

향로에 뚫린 구멍들은 0.6 cm 정도지만, 개중 몇 개는 1 cm 정도로 조금 더 넓게 확장되어 뚫려있다. 처음 제작되었을 때 생각보다 향이 잘 타지 않아서 구멍 몇 개를 더 크게 만든 듯하다. 구멍은 모두 열두개인데 향로 제일 위에 있는 봉황의 가슴에 두개, 향로 뚜껑 상부에 다섯개, 그리고 중부에는 다섯개씩 뚫려 있다. 이중 중부에 있는 구멍은 향의 연기를 배출하는 용도가 아니라 바깥에서 공기가 들어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뚫린 구멍이다. 이렇게 바깥 공기가 들어옴으로써 향로 안에서 대류가 일어나 향의 연소 시간이 길어지도록 한다.

향로 본체의 가운데 테두리의 구름 문양 아래에는 연꽃이 핀 연못이 있고, 그 위인 뚜껑에는 봉우리가 세 개 있는 여러 산이 있다. 이 산에는 말을 타고 사냥하는 사람, 신선으로 보이는 사람들, 호랑이, 사자, 원숭이, 멧돼지, 코끼리, 낙타 등 많은 동물들이 조각되어 있다. 또한 곳곳에 폭포, 나무, 불꽃 무늬, 귀면상 등이 있다. 제단 모양으로 꾸며진 정상에는 봉황이 날개를 펴고 춤추고 있다. 이 새가 봉황이 아니라 이라는 학문적 소견도 일부 있다. 물론 보통 닭은 아니며, 백제 왕실을 상징하는 천계(天鷄)라는 것이 그 의견이다. 불교 및 도교의 영향을 다수 받은 것이 백제 후기 유물들인데 여타 신수와 영물에 비해 이러한 조류 조각이 많다는 점과 더불어 그중 다수의 조류 조각에서 며느리 발톱으로 추정되는 묘사가 보인다는 점 등이 주된 이유다.

그 아래에는 다섯악사가 있어 소, 피리, 비파, 북, 현금과 같은 악기를 연주한다. 그 주위의 다섯 봉우리에는 각각 기러기로 보이는 새가 봉황과 함께 춤추는 형상이 있다. 향로의 몸체에는 연꽃이 있는데, 그 위에 갖가지 새와 물고기가 새겨져 있다. 또 한쪽에는 무예를 하는 인물도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 발가락이 다섯 개 있는 용이 위의 연꽃을 물고 하늘로 날아가려는 듯 용틀임을 하고 있다. (표현에 대한 묘사는 객관적인 것이고 따라서 원전에서 따온 후 출처를 명시. 출처 : 서정록, 백제금동대향로, 도서출판 학고재)

또, 당시 한반도에는 없었던 원숭이나 코끼리 등등이 조각되어 있고, 연꽃이 나타나는 등 불교적 요소와 더불어 봉황이나 신선같은 도교적 요소가 조각으로서 공존하여 당시 국제교류가 활발했음을 시사한다. 나아가 이러한 다양함은 여러 사상이 공존했던 해상국가 백제의 문화적 면모를 증빙한다. 보통은 중국 북위 쪽의 영향을 받았다고 여겨지지만, 서정록은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4 여담

  • 발견 이후 너무 아름답고 유명한 유물이라 어느 박물관이 소장할지 신경전이 거셌다. 결국,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가 고향인 국립부여박물관으로 돌아갔다. 따라서 오늘날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는 향로는 모조품이며, 국립부여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는 것이 진품이다. 이거 없으면 부여박물관 망해요. 부여박물관의 밥줄이자 존재이유. 조금 더 과장하면 부여군의 밥줄. 부여박물관의 알파이자 오메가.
  • 해외에서도 화제가 되었는데, 일부 중국 사학자들은 이것은 중국의 유물이다!라고 주장했다. 물론 중국 사학계나 고고학계에서는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면 모를까, 대향로가 중국의 유물이라는 소리는 어불성설이라며 무시했다.[1]
  • 백제금동대향로 발굴 20주년을 맞아 문화유산연구소 지교에서 향로를 정밀 3D레이저스캔하여 15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벗겨진 도금을 복원하여 만든 결과물을 국립부여박물관에 전시하였다. 그 결과물 중 일부가 위에 있는 금빛으로 번쩍이는 향로를 찍은 사진이다. 전체 사진, 클릭 시 확대.
  • 이름 그대로 향로는 향을 피우기 위한 물건으로, 뚜껑을 열고 안에 향 재어 넣은 뒤 불을 붙여 뚜껑에 있는 열두개에 구멍에서 향이 피어나게 만든 물건이다. 이 물건은 그냥 전시되었을 때보다 향이 탄 연기가 구멍에서 피어오를 때 가장 향로답고 아름다운 물건이다. 그래서 부여박물관에서는 복제품에 향을 피워놓고 전시하는 기획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박물관측에 국립박물관에서 특정종교의 의식을 재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항의가 들어와 중단됐다(...)
  • 왕실에서 제사용으로 사용되던 물건이 천에 곱게 쌓인채 매장된 것은 사비성이 함락시 약탈과 방화가 이루어지는 순간에 어느 백제인이 이를 피해 급히 숨긴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 백제 마지막 공주 부여주의 이야기를 다룬 판타지 SBS 드라마 '천년지애'에선 부여주가 현재 시간대에서 이 향로를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보고 '이딴 향로가 남부여(백제)를 상징한다니'라며 씁쓸함을 내보인다. 뭐 현대의 우리 입장에서는 귀한 유물임이 틀림없지만 당대의 인물에게는 그래봤자 한낱 향로에 불과했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안타깝게도 무지의 소산이다. 백제는 은제관식 조차 육관등인 나솔(奈率)이상만 사용이 가능했고, 금제관식과 금으로 만든 공예품은 오로지 왕과 왕족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 더불어 향로에 정섯껏 가미된 화려한 기교는 우리로 하여금 당대인들에게도 이 금동항로가 평범한 향로가 아니었음을 추측하게 한다. 참고로 고려시대의 향로(향완, 몸체부분)로 현존하는 것과 비교해 보면, 백제금동향로는 그 양식이 매우 뛰어남을 알 수 있다.#
  • 아이어 지하에 있다
  1. 일단 백제금동대향로의 원형은 중국에서 유행하던 박산로(博山爐)라는 향로로, 박산로의 영향을 받은 것은 맞다. 그러나 중국의 박산로들은 백제금동대향로의 정교함을 따라오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