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리그 MVP | |||||
후지무라 후미오 (오사카 타이거즈) | → | 벳토 카오루 (마이니치 오리온즈) | → | 야마모토 카즈토 (난카이 호크스) |
다이마이 오리온즈 역대 감독 | |||||
와카바야시 다다시 (1953) | → | 벳토 카오루 (1954~59) | → | 니시모토 유키오 (1960) |
긴테쓰 버팔로즈 역대 감독 | |||||
치바 시게루 (1959~61) | → | 벳토 카오루 (1962~64) | → | 이와모토 요시유키 (1965~66) |
다이요 훼일즈 역대 감독 | |||||
미하라 오사무 (1960~67) | → | 벳토 카오루 (1968~72) | → | 아오타 노보루 (1973) | |
아키야마 노보루 (1975~76) | → | 벳토 카오루 (1977~79) | → | 도이 쥰 (1980~81) |
히로시마 카프 역대 감독 | |||||
네모토 리쿠오 (1968~1972) | → | 벳토 카오루 (1973) | → | 모리나가 카츠야 (1974) |
이름 | 벳토 카오루(別当 薫) |
생몰년일 | 1920년 8월 23일-1999년 4월 16일 |
출생지 | 일본 효고 현 니시노미야 |
투타 | 우투우타 |
포지션 | 외야수 |
학력 | 구제 고요중학- 게이오대학 |
프로경력 | 오사카 타이거즈(1948~1949) 마이니치 오리온즈(1950~1957) |
지도자 경력 | 마이니치 오리온즈 감독 권한대행(1952) 마이니치 오리온즈 선수 겸 감독(1954~1957) 다이마이 오리온즈 감독(1958~1959) 긴테쓰 버팔로즈 감독(1962~1964) 다이요 훼일즈 감독(1968~1972/1977~1979) 히로시마 카프 감독(1973) |
일본프로야구의 선수, 지도자, 해설가.
1 학창시절
코요 중학교-게이오 대학을 졸업했다. 중학시절 고시엔 출장경력이 있으며, 게이오대 재학중엔 도쿄 6대학 리그를 대표하던 강타자였다. 1942년 춘계리그 때 당시 6대학 리그 사상 최고타율 이던 5할을 기록하며 수위타자를 수상하기도 하였다. 1946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최초로 게이오대가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공헌을 세웠다.
2 프로시절
대학 졸업 후 당초 가업을 잇기로 했지만, 1947년 일본의 사회인야구팀인 전오사카에 입단, 그해 도시대항 야구대회에서 팀을 우승시킨 것을 계기로 야구선수로 전업을 결심했고 이듬해 오사카 타이거즈에 입단하며 본격적으로 프로 세계에 발을 들였다.
오사카 타이거즈 시절의 벳토
후지무라 후미오(우측)와 한신 타선을 이끌던 시절
데뷔 첫해인 1948년엔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출장하지 못했지만 타율 0.328, 13홈런으로 가능성을 보였고, 이듬해 후지무라 후미오와 함께 중심타선을 구축하며 39홈런에 126타점(타율 0.322) 이란 무시무시한 성적을 올렸다. 특히 우락부락한 호걸형의 외모를 가진 선수들이 대부분이던 당시 야구계에서 곱상한 외모에 호리호리한 몸매로 홈런을 펑펑 쳐내는 미남 슬러거로 큰 인기를 끌었다.
마이니치 오리온즈로 이적한 벳토
그러나 1950년 2리그 분열 소동에 휘말리며[1] 퍼시픽리그의 마이니치 오리온즈로 트레이드 되었고[2] 그 해 타율 0.335, 43홈런, 105타점을 기록하며 삼관왕에 가까운 맹활약을 보였다.[3] 또한 그해 마이니치가 2리그 분리 이후 처음으로 일본시리즈를 제패하는 데 일조한 선수중에 하나가 바로 벳토였다. 벳토는 그해 퍼시픽리그 MVP와 일본시리즈 MVP를 동시에 수상하며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1952년 헤이와다이 사건[4]으로 유아사 요시오 감독이 경질되자 팀의 감독대행을 맡기도 했고, 1954년 부터는 선수 겸 감독으로 선수단을 이끌었다. 1957년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통산 성적은 891경기 출장에 타율 0.302, 155홈런, 549타점, 186도루.
3 감독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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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다이요 훼일즈 감독 시절
1958년 부터 다이마이의 전임 감독으로 팀을 지휘하였으나 이렇다 할 결과를 남기지 못한 채 1959년 시즌을 끝으로 감독직을 콩라인니시모토 유키오 에게 넘기고 다이마이를 떠났다. 이후 킨테츠 버팔로즈(1962~1964), 다이요 훼일즈(1968~1972, 1977~1979), 히로시마 도요 카프(1973) 등의 감독을 역임했지만, 일본시리즈 우승은 고사하고 리그 우승 한번 못한 채 유니폼을 벗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 생활 통산성적은 1237승 1156패 104무승부, 승률 0.517으로, 통산 1000승을 기록했다. 우승 경험 없이 1000승을 채운 감독은 벳토가 유일하다.(...)NPB 역사상 2번째로 양대리그 꼴찌 감독이 된 건 비밀
비록 우승 경험은 없지만 풍부한 타격 이론과 코칭기술을 바탕으로 강타자들을 많이 육성한 것으로 유명하다. 대표적인 선수로 야마우치 카즈히로, 에노모토 키하치(이상 마이니치), 도이 마사히로(킨테츠)[5] , 사몬 호사쿠, 나가사키 케이지[6], 타시로 토미오[7](다이요) 등이 있다.
여담으로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프랜차이즈 역사에서 최장기간 집권 감독(8년)이자 최다 A클래스 기록(4회) 보유 감독이기도 하다(...)다른팀에서는 A클래스 4회나 집권 기간 8년으로는 명함도 못 내미는데.
4 이후
1980년 다이요 훼일즈 구단 대표(상무이사)로 재직하였고, 그 외 니혼 TV 등에서 야구해설가로 활동하였다. 만년에는 킨테츠 시절 제자인 도이 마사히로의 추천으로 세이부 소속이던 키요하라 카즈히로의 개인 타격코치를 맡기도 했다.
1988년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고, 1999년 4월 16일 심부전으로 별세했다. 향년 78세.
여담으로 코엔 형제의 1998년작 영화 위대한 레보스키에서 주인공 '듀드' 역을 맡은 제프 브리지스가 극중에서 이 사람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나온다. 왜 그랬는지는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영화가 컬트적 인기를 끌면서 그 옷을 따라 입는 팬들이 생겨났고 북미권 인터넷 쇼핑몰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