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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시상식 감독상 | ||||||
마틴 스콜세지 (디파티드) (2007) | → | 코엔 형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008) | → | 대니 보일 (슬럼독 밀리어네어) (2009) |
왼쪽이 동생 이선 코엔(Ethan Coen) 오른쪽이 형 조엘 코엔(Joel Coen)
둘이 판박이다
Coen brothers
다르덴 형제 등과 더불어 세계 최고의 형제 감독
1 소개
1984년 《분노의 저격자》(Blood Simple)로 데뷔한 이래 유수의 작품들을 만들어 낸 예술영화, 독립영화 감독(들?) 이다. 그 이전에는 샘 레이미의 호러 걸작 《이블 데드》 각본 및 편집을 맡기도 하며 꾸준히 영화 관련 일을 하던 경력도 있다. 칸 영화제 대상 및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감독상과 골든글로브 각본상을 모두 석권해 천재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 초기 영화 크레딧에는 형인 조엘 코엔(1954년생)이 감독으로 올라가 있고, 동생인 이선 코엔(1957년생)이 제작자로 구분되어 있지만 공동 감독을 허용하지 않는 미국감독협회 규정으로 인해 크레딧을 나눈 것이며 비공식적으로는 공동으로 감독을 하였다. 레이디 킬러 이후로는 규정이 바뀌어 공동감독으로 올라간다. 편집도 둘이서 하는데 로더릭 제인스(Roderick Jaynes)라는 가명을 사용한다. 이 로더릭 제인스는 《파고》로 아카데미 편집상 후보로 오를 때까지는 미스테리의 인물이었는데 말런 브랜도의 수상거부 사건 이후로 대리 수상을 허용하지 않는 아카데미의 규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이라는 것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 규정을 알기 전까지는 앨버트 피니를 대신 보내려 했다나...
데뷔작인 《분노의 저격자》는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의 제임스 M.케인 풍의 작품이다. 시나리오를 영화로 만들기 위해서 3분 예고편을 촬영하여 그 다음에 그들의 고향인 미니애폴리스의 유대인 자선단체 '허대서' 사무실로 가서 그 지역의 부유한 유대인 100명의 명단을 부탁했다. 이름을 봐도 알겠지만 이들은 유대인이기에 이게 가능했다. 그들에게 예고편[1]을 보여주고, 모두 68명에게서 거금 85만 5천 달러를 모아 형제는 8주 만에 영화를 완성했다.
2 성향
코엔 형제의 작품색은 상당히 뚜렷해서 사전정보가 없는 사람도 코엔 형제의 작품임을 쉽게 눈치챌 정도이다. 어딘가 엇나가 있는 등장인물들의 오해가 겹치고 겹쳐 블랙 코미디적인 파국을 보여준다. 그 냉랭하고 건조한 대사처리나 시선은 타란티노나 로드리게스 같은 악동 감독과도 겹치는 면이 있지만 그렇게 막나가진 않고(...) 꽤 절제되어 있는 편이다. 특히 느린 호흡 속에서 긴장을 끌어내는 실력은 최고급으로, 소리나 조명, 소품, 상황조성에 영상미 등 하나도 빼놓을 것이 없다. 이제는 개봉된 지 20년이 훨씬 넘는 데뷔작부터 이미 연출이나 작품색이 어느 정도 완성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이들의 무서움을 알 수 있다. 촬영시에 스토리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필요한 신만 정확히 찍고 끝낸다고 하며, 배우들의 애드립을 허용하지 않아 완성된 영화와 각본과의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다고 한다. 여기서 절정인 건 배우 존 터투로인데 《위대한 레보스키》에서 그는 작은 장면에밖에 나오지않지만 개그씬이라 배우가 하고 싶은 거 다해줬다. 볼링공을 혀로 핥는 행위나, 매니큐어, 춤사위 등 코엔 형제가 연출한 게 아니라 터투로 본인이 제안한 거였던 거. 배우도 이걸로 "나 코엔형제에서 애드립 한 사람이야"라고 주변에 자랑하고 다니는 듯. 그리고 배우 본인이 작중 굉장히 활약하긴 했다.
같은 배우, 스태프들을 계속해서 기용하는 편인데 주로 스티브 부세미, 프랜시스 맥도먼드, 존 굿맨, 존 터투로가 초기 코엔 사단 배우들이며 이후에는 조지 클루니를 자주 기용하는 듯. 다만 클루니가 출연한 영화들은 약간 평이 갈린다. 스태프로는 촬영감독인 로저 디킨스가 《번 애프터 리딩》[2], 《인사이드 르윈》[3]을 제외하면 《바톤 핑크》 이후의 모든 작품을 맡았으며 그 외에도 의상담당자나 음향편집 등을 비롯하여 많은 스태프들이 지속적으로 기용되고 있다. 그 덕분에 영화 촬영장은 가족같은 분위기이며 스태프들이 기계처럼 알아서 하기 때문에 효율적인 촬영이 가능하다고 한다. 배리 소넌펠드가 《분노의 저격자》, 《애리조나 유괴사건》, 《밀러스 크로싱》의 촬영감독을 맡기도 했다. 조엘과 뉴욕대 영화과 동기인 인연인 듯. 조엘이 뉴욕 대학교 영화과를 다니면서 그렇게 크게 배운 건 없고 졸업해서 소규모 영화에서 편집일을 하면서 배운 것이 대학에서 4년동안 배운 것 보다 많다고 한다.(...) 동생 이선은 프린스턴 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는데 그 시절부터 연극 각본을 쓰며 보냈다고 한다.
3 트리비아
칸 영화제가 사랑하는 감독이기도 한데 《밀러스 크로싱》으로 가장 먼저 초대된 이후, 《바톤 핑크》[4] 때 황금종려상, 감독상, 남우주연상을 동시에 수상하였고, 《파고》,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인사이드 르윈》이 감독상을 받으며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가장 많이 수상한 감독이 되었다. 하지만 국제 영화제의 수상과는 달리 아카데미 시상식은 《파고》의 각본상 수상 말고는 수상실적이 없었는데 2007년 드디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로 드디어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각색상을 받았다. 그 이후 2010년에는 《트루 그릿》으로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는 영광을 누렸으나 하나도 수상하지 못하는 굴욕을 맛 보기도.(...)
인터뷰 모음집도 출간되었는데, 제목은 《코언 형제 부조화와 난센스》. 무덤덤하고 흥미 없어 보이는 태도로 인터뷰하기 힘든 대상으로도 알려져 있다. 덧붙여서 두사람이 인터뷰 때 가장 듣기 싫은 질문은 "둘이 얼마나 싸우나?". 하지만 두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거의 싸우지 않았으며, 의견이 불일치하는 경우도 적다고 한다. 반대로 DVD 등지에서는 굉장한 개드립을 날려대기로 악명높다. 블러드 심플 DVD가 나왔을땐 한 배우가 가상의 제작사 포에버 영 필름스 소속의 감독 케네스 로링으로 출연하여 엉터리 정보를 늘어놓는 본편 음성해설을 집어넣어 사람들을 여럿 뒤집어놨으며 [5] 위대한 레보스키 10주년 상영회때도 복원관련 개드립을 날렸다가 네이버 기자가 낚이기도 했다. [6]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만큼 인지도는 높은 편이지만, 흥행은 그에 비하면 다소 저조한 편이다. 2008년 개봉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어느 정도 인기를 끌었지만, 그외의 작품 흥행은 그야말로 안습. 그나마 한국 개봉작에서 가장 대박이 《파고》로 서울관객이 9만 6천 명이라 전국관객이 적어도 20만 정도로 추정된다. 이게 그나마 가장 대박이니 말 다했다. 이건 코엔 형제 영화가 국내 관객들 취향과 다르고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코엔 형제 영화는 항상 비수기 시즌에 개봉하고[7]...덕분에 흥행할 만한 영화도 잘 안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우린 안될거야 아마... 그렇긴 해도 엄청나게 적은 상영관 속에서도 선전한다. 비흥행 감독이니 그렇게 치지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전국에서 겨우 16개 극장(그것도 주말은 교체 상영)에서 상영했음에도 전국 6만이 넘는 상당한 선전을 펼쳤다. 문제라면 이건 독립영화 흥행 범위 2014년 《인사이드 르윈》도 적은 상영관에서도 10만 명을 동원하며 다양성 영화 중에서 상당히 흥행한 영화가 되었다.
한국에선 이들이 미국에서 활동해서인지 그냥 할리우드 감독으로 치부하는 면도 보인다. 이들은 유럽에선 꽤 거장급 예술영화 감독으로 인정받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뭐 아주 할리우드 시스템 바깥에서 활동하는 게 아니어서 칼자르듯이 구분하기도 애매하긴 하다.
2016년 2월에 개봉할 영화 《헤일, 시저!》 촬영 중. 조지 클루니, 조시 브롤린, 레이프 파인스, 틸다 스윈턴, 조나 힐, 스칼렛 조한슨, 채닝 테이텀, 프랜시스 맥도먼드 등 출연진이 화려하다.
4 기타
데뷔작부터 함께 해온 배우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형인 조엘 코엔과 결혼하였으며, 이후 6편의 작품을 함께했다. 그중 《파고》의 경찰서장 역은 그녀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 주었다. 《분노의 저격자》가 개봉한 후 코엔 형제, 샘 레이미, 프랜시스 맥도먼드, 홀리 헌터[8], 캐시 베이츠 등이 LA에서 한 동안 함께 살기도 하였다. 동생 이선은 동료 편집 기사와 결혼했다고.
5 영화들
블러드 심플 국내 비디오 제목은 분노의 저격자(1984)
애리조나 유괴사건 (1987) 니콜라스 케이지가 이름없던 시절 나온 영화. SBS 금요시네마로 더빙 방영한 바 있다.
밀러스 크로싱 (1990)
바톤 핑크 (1991)
허드서커 대리인 (1994)
파고 (1996)
위대한 레보스키 (1998)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 (2000)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2001)
참을 수 없는 사랑 (2003)
레이디 킬러 (2004)
사랑해, 파리 (2006)
그들 각자의 영화관 (2007)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007)
번 애프터 리딩 (2008)
시리어스 맨 (2009)
트루 그릿 (2010)[9]
인사이드 르윈 (2013)
스파이 브릿지 (2015)[10]
헤일, 시저!(2016)[11]
- ↑ 그 트레일러
- ↑ 촬영감독은 에마누엘 루베스키
- ↑ 촬영감독은 브루노 델보넬
- ↑ 정은임라디오 해설 94.12.14-박찬욱-바톤 핑크
- ↑ 차내 장면은 차와 배우들을 거꾸로 매달고 찍었다느니, 영화에 나오는 개는 애니매트로닉스 로봇이라느니, 사립탐정 캐릭터는 원래 불가리아 독재자 지브코프의 아들이라느니 따위의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만 골라서 해댔다.
- ↑ "10주년 기념판을 위해 리마스터링작업을 하려 했지만 이 영화의 네거 필름은 사고로 사라졌다. 수소문 끝에 이탈리아의 한 수집가가 가지고 있는 이탈리아어 더빙판을 찾게 되었지만, 필름 상태는 최악이었다고 한다. 알칼리 용액으로 꼼꼼히 씻은 후 초음파 광선으로 건조시켜서 필름은 어느 정도 상태가 개선되었지만, 문제는 대사가 이탈리아였다는 것! 결국 출연했던 배우들이 다시 녹음했는데 존 굿맨이 바빠서 성대모사 달인을 데려와 녹음했다."라는 거짓말이였다. 당시 코엔 형제의 명성과 연도를 생각해보면 그렇게 쉽게 사라질 네가티브가 아니였다는게 함정.
- ↑ 대부분이 3,4월 아니면 9,10월 새학기 시즌에 개봉
- ↑ 《분노의 저격자》에 가장 먼저 캐스팅 되었으나 스케줄로 하차하였고, 당시 룸메이트였던 맥도먼드에게 역을 추천하여 맥도먼드가 캐스팅되었다. 이후 《애리조나 유괴사건》, 《오 형제여 어디있는가》에 출연하였고 《애리조나 유괴사건》의 에드 역은 처음부터 홀리 헌터를 모델로 삼아 만든 캐릭터이다.
- ↑ 소설 원작으로 국내에서는 소설은 제목 그대로, 코엔 형제의 영화는 "더 브레이브"란 제목으로 수입했다.
- ↑ 감독을 맡은 건 아니고 각본을 맡았다. 감독은 스티븐 스필버그
- ↑ 《인사이드 르윈》 이후 3년 만에 연출 복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