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디오 라니에리

2016-17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클럽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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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그 셰익스피어
(레스터)
위르겐 클롭
(리버풀)
펩 과르디올라
(맨시티)
주제 무리뉴
(맨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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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애그뉴
(미들즈브러)
션 다이크
(번리)
에디 하우
(본머스)
클로드 퓌엘
(사우스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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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모예스
(선덜랜드)
폴 클레멘트
(스완지)
마크 휴즈
(스토크)
아르센 벵거
(아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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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날드 쿠만
(에버튼)
발테르 마차리
(왓포드)
토니 풀리스
(웨스트 브롬)
슬라벤 빌리치
(웨스트 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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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콘테
(첼시)
샘 알라다이스
(크리스탈 팰리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토트넘)
마르코 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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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터 시티 FC 감독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Claudio Ranieri)
생년월일1951년 10월 28일
국적이탈리아
출신지로마
포지션수비수
신장182cm
소속팀AS 로마 (1973~1974)
FC 카찬차로 (1974~1982)
칼치오 카타니아 (1982~1984)
US 팔레르모 (1984~1986)
지도자캄파니아 푸테올라나 감독 (1987~1988)
칼리아리 칼치오 감독 (1988~1991)
SSC 나폴리 감독 (1991~1993)
ACF 피오렌티나 감독 (1993~1997)
발렌시아 CF 감독 (1997~1999)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감독 (1999~2000)
첼시 FC 감독 (2000~2004)
발렌시아 CF 감독 (2004~2005)
파르마 FC 감독 (2007)
유벤투스 FC 감독 (2007~2009)
AS 로마 감독 (2009~2011)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감독 (2011~2012)
AS 모나코 감독 (2012~2014)
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4)
레스터 시티 FC 감독 (2015~ )
발렌시아 CF 역대 감독
호르헤 발다노
(1996~1997)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1997~1999)
엑토르 쿠페르
(1999~2001)
라파엘 베니테스
(2001~2004)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2004~2005)
안토니오 로페스
(2005)[1]
키케 플로레스
(2005~2007)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역대 감독
라도미르 안티치
(1999)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1999~2000)
라도미르 안티치
(2000)
첼시 FC 역대 감독
지안루카 비알리
(1998~2000)
그레이엄 릭스[2]
(2000)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2000~2004)
주제 무리뉴
(2004~2007)
유벤투스 FC 역대 감독
디디에 데샹
(2006~2007)
지안카를로 코라디니
(2007)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2007~2009)
치로 페라라
(2009~2010)
AS 로마 역대 감독
루치아노 스팔레티
(2005~2009)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2009~2011)
빈첸초 몬텔라
(2011)
레스터 시티 FC 역대 감독
나이젤 피어슨
(2011~2015)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2015~)
현직
팀 리빌딩의 달인.
레스터 시티의 감독 생활을 통해 현대 축구에서 감독의 비중이 얼마나 큰 지 보여주는 산 증인

1 소개

2015/16 시즌 전까지는 전형적인 이탈리아 감독으로 알려져 있었다. 국내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좋게 말하면 긴급 소방수, 리빌딩의 귀재, 나쁘게 말하면 실컷 팀 만들어놓고 후임 감독 좋은일만 시키는 호구 감독으로 통했다. 졸장은 아니지만 B급 명장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평가는 비슷하여, 영국 언론에서 붙여준 그의 가장 유명한 별명은 "the Tinkerman". 이 어휘는 들여다보면 journeyman과 repairman이 합쳐진 뜻으로 위기에 처한 구단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닌 라니에리의 경력을 더할나위 없이 명징하게 보여준다.

축구팬들에게는 첼시와 발렌시아 1기 때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항상 후임 좋은 일만 시킨 감독은 절대 아니며 로마, 인테르, 유벤투스 등의 빅클럽에서 임시 감독을 맡아 좋은 모습을 보인 적도 있다. 지나 온 클럽들을 살펴보면 트로피를 차지하는 임팩트가 조금 부족할 뿐 결코 저평가받을 감독이 아니다. 그럼에도 한 구단에서 커리어를 지속하지 못한 데에는 그 자신의 책임도 분명히 있는데 발렌시아 2기라든가 바로 그 로마, 인테르, 유벤투스의 정식감독으로 부임 후 삽질을 거하게 한 바 있다.

그럭저럭 밍숭맹숭한 평가를 받던 그의 입지를 완전히 뒤집어 놓은 계기는 레스터 시티 감독 부임. 2015/16시즌 현재 프리미어리그에 돌풍을 넘어서 폭풍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냥 14-15소튼 급이 아니라 만년 2부리그 팀이였던 레스터 시티로 2015/16시즌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그의 별명도 좋은 쪽으로 바뀌어 "the Godfather"로 칭송받고 있다. 사용하는 전술 자체는 한 점 싸움을 즐기는 이탈리아식 4-4-2에 잉글랜드의 빠른 역습을 가미한 형태로 경기 중 비대칭 상황을 인위적으로 형성하여 이점을 누린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크게 특이할 것이 없으나, 선수들의 특징을 극한까지 끌어내어 잘 조율해냈다.

2 선수 시절


콜린 퍼스? 리암 니슨?? 말론 브란도다

고향팀인 AS로마에서 1973년 22살의 나이로 데뷔하였으나 고작 6경기 뛰고 1974년 당시 세리에 B클럽인 카탄자로로 이적 후 9시즌동안 225경기에 나오며 시즌당 평균 25경기 정도 출장하며 주전선수로 활동했다. 카탄자로가 비록 2부리그 클럽이었지만 1977년에는 1부리그 승격을 하기도 했고 라니에리가 이적한 후 한시즌만에 다시 세리에 B로 강등되어 지금까지 1부리그 승격은 없으니 타이밍 좋게 이적한 셈.

1982년 당시 세리에 B에 소속돼 있던 카타니아로 이적하여 한 시즌만에 1부리그로 승격을 시켰고 1984년에는 카타니아의 지역 라이벌인 팔레르모로 이적하여 2시즌동안 활약한 뒤 35살의 나이로 은퇴했다.

3 감독 시절

3.1 초창기

은퇴후 1986년에는 라메치나, 1987년에는 푸테올라나 같은 아마추어 리그 소속팀 감독을 경험한 라니에리는 1988년 당시 3부리그(세리에 C1)팀인 칼리아리 감독으로 부임하고 2년만에 연속 승격(3부리그->2부리그->1부리그)시켜 1990/91시즌 세리에 A에 올라가고 첫 1부리그 시즌인 1990/91 시즌 리그 14위를 기록한다. 나폴리는 이런 괄목한 성적을 기록한 라니에리를 주목하였고 1991/92 시즌 라니에리를 나폴리의 감독으로 임명한다. 첫 시즌인 1991/92 시즌에는 리그 4위를 기록하며 좋은 출발을 보였으나 그 다음시즌 리그 11위를 기록하며 성적 부진으로 사임한다. 다만 이 당시 지안프랑코 졸라라는 나폴리의 레전드를 발굴하기도 하였고 당시 19살의 어린 수비수인 파비오 칸나바로를 1군으로 승격시켜 경험을 쌓게 해주기도 하였다. 남 좋은일 시키는 호구 스러움은 이때부터 시작

3.2 피오렌티나 감독

곧바로 2부리그로 강등되어있던 피오렌티나의 감독으로 부임하였고 1993/94시즌 세리에 B 우승을 차지하여 그 다음 시즌 바로 팀을 1부리그로 승격시켰다. 그리고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의 11경기 연속골로 94/95시즌은 중위권에 안착한다.

3시즌동안 10위-4위-9위로 중위권 성적을 꾸준히 유지하였고 1995/96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컵 우승을 차지하였다. 재임시 후이 코스타와 프란체스코 톨도를 영입하여 주전으로 발돋움 시키기도 하였다.

3.3 발렌시아 감독

1997/98 시즌에는 발렌시아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부임 후 곧바로 미구엘 앙굴로, 가이스카 멘디에타, 프란시스코 파리노스를 1군으로 승격시켰고 산티아고 카니자레스를 영입하여 팀의 기반을 다지기에 들어간 라니에리는 첫시즌에는 리그 9위를 기록했지만 두번째 시즌인 1998/99 시즌에는 리그 4위를 기록하며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획득했고 코파 델 레이컵 우승을 차지 했다. 라니에리가 만들어놓은 발렌시아는 후임 감독인 헥토르 쿠페르가 그대로 이어 받아 1999/00, 2000/01 두 시즌 연속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이라는 기록을 남기게 되고, 뒤 이어 라파엘 베니테즈감독의 리그 우승까지 이어진다.

3.4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감독

1999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감독으로 감독직을 옮기지만 그 전 클럽에서의 좋은 모습과는 달리 썩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2000년 3월에 해임당했고, 종국에는 세군다리가로 강등을 당했다. 솔라리, 바라하, 하셀바잉크, 호세 마리, 발레론 같은 선수들이 포진되어 있었지만 선수들을 잘 융합시키지 못한 면도 있고 1999년 12월에 헤수스 힐 회장과 이사진이 방만한 팀 운영으로 영업 정지령을 받고 팀 자체가 재정적인 문제를 겪으면서 혼란스러웠던 부분, 프런트 진과의 불화 또한 강등의 이유 중 하나.

그나마 이 시기에 이룬 유일한 업적은 1999년 10월 29일에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원정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3-1 승리를 이끌어낸 것이었는데, 이는 2013/14 시즌 전까지 AT 마드리드가 승리한 마지막 경기로 기록되어 있었다.

3.5 첼시 감독

곧 바로 2000년 9월에 첼시의 감독으로 부임한다. 당시 영어를 쓰는데 제한이 있었던 라니에리지만 운 좋게도 이탈리아와 스페인 출신의 선수와 코칭 스태프들이 있어서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고 2000년과 2001년에 프랭크 램파드, 엠마누엘 프티, 바우더베인 젠덴, 예스퍼 크론카르, 윌리엄 갈라스 등을 영입하며 팀의 기반 다지기에 들어갔고 기존에 첼시에 머물면서 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맡았던 지안프랑코 졸라를 중심으로 팀을 운영한다.

2000/01, 2001/02 시즌 연속 6위를 기록하며 중위권을 꾸준히 유지하였고 2002/03시즌에는 극적으로 리그 4위를 기록 챔피언스리그 진출 티켓을 따낸다. 리그에서의 꾸준한 성적과는 달리 팀은 재정적인 문제로 빚이 많았었는데 이 당시에 축구에 흥미를 가진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첼시 FC의 인수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고 인수 후 수많은 빚은 해결이 되었다. 그리고 로만의 재정을 바탕으로 스콧 파커, 클로드 마켈렐레, 에르난 크레스포, 조 콜, 아드리안 무투, 글렌 존슨,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웨인 브리지, 데미안 더프 등을 영입하였고 2003/04 시즌엔 리그 준우승과 챔피언스리그 4강이라는 호성적을 거두지만 로만이 기대했던 챔피언스리그 우승에는 미치지 못하자 라니에리를 경질시킨다. 하지만 라니에리가 첼시 시절 영입하였던 램파드와 조 콜, 마켈렐레, 브리지, 더프, 갈라스 등은 이후 주제 무리뉴 감독 체제 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로만 체제 이후 첼시에도 상당한 공헌을 한 셈이다. 게다가 현재 첼시의 주장인 존 테리가 본격적으로 1군에서 활약을 한 것도 라니에리 감독이 부임하기 시작한 2000/01 시즌 때 임을 감안하면 첼시에서도 라니에리의 리빌딩 후임 감독 좋은 일 시키는능력은 발휘된 셈.

먼 훗날 2016년 라니에리는 레스터 시티의 감독으로 첼시에서 이루지 못한 우승을 일궈내는데, 공교롭게도 라니에리의 우승은 첼시가 2위 토트넘과 무승부를 거두면서 확정되었다. 이날 스탬포드 브리지의 첼시 홈관중들은 경기 종료 직전 오랫동안 불리우지 않았던 라니에리의 응원가를 부르면서 라니에리의 쾌거를 축하해 주었다. 또 재미있는 점이라면 레스터 시티 우승의 숨은 주역 중 하나인 센터백 로베르트 후트가 라니에리가 첼시 감독을 할 때 1군으로 승격시켰던 유망주라는 것이다. 어린 유망주였던 제자를 어느덧 30이 넘은 노장으로 다시 만나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룬 것.

3.6 발렌시아 감독 복귀

해임된지 1년도 안 돼서 발렌시아의 부름을 받고 5년만에 발렌시아로 복귀한다. 이탈리안 커넥션을 구축하려는 의도로 당시 세리에 A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준 마르코 디 바이오, 베르나르도 코라디, 스테파노 피오레, 에밀리아노 모레티 등 이탈리안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였다. 시즌 초반에 UEFA 슈퍼컵에서 FC 포르투를 꺾고 우승을 차지, 그 후 초반 6경기에서 승점 14점을 얻는 등 순항을 보였으나 그 이후 팀이 급격히 무너져 리그 막판에는 리그 7위로 추락하였다. 한 시즌만에 발렌시아에서 물러난다. 발렌시아에서의 급격한 부진의 이유는 전 시즌인 2003/04 시즌 리그 우승과 UEFA 컵 우승을 하며 더블을 차지할 정도로 완성된 스쿼드를 가지고 있었는데 여기에 라니에리가 이탈리안 커넥션을 구축하고자 데려왔던 이탈리아 선수들이 기존 발렌시아 선수들과 융화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더블의 결정적인 공헌을 한 플레이메이커 파블로 아이마르를 내쳤으며 이탈리아 선수들이 약속이나 한 듯 제대로 리그에 적응하지 못하고 부진에 빠지면서 팀 자체가 무너져버렸다는것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3.7 이탈리아 시절

2005년 이후로 감독직을 시작한지 19년만에 백수생활을 즐기게 된 라니에리는 1년 반뒤인 2007년 2월에 파르마 FC의 감독으로 10년만에 세리에 A로 복귀한다. 파르마 부임 당시 파르마의 승점은 겨우 15점으로 강등권이었다. 그런 파르마를 라니에리는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서 임대 중인 주세페 로시를 내세워 남은 10경기에서 17점의 승점을 따내 극적으로 1부리그 잔류에 성공한다. 그 뒤 풀럼과 맨체스터 시티, 팔레르모와 연결이 되었으나 모두 무산되었다.

라니에리는 그 후 2007년 6월에 유벤투스의 부름을 받아 유벤투스 감독에 임명된다. 이 때는 유벤투스 팬들 사이에서도 찬반이 심했는데 2006년 칼치오폴리사태로 2부리그로 강등된 유벤투스를 (비록 델 피에로, 다비드 트레제게, 지안루이지 부폰 같은 에이스들이 남아있었지만) 재빠른 팀 수습으로 2006/07 세리에 B 우승으로 1년 만에 승격시킨 디디에 데샹 감독이 프런트와의 불화로 한 시즌만에 경질되었기 때문. 프런트와의 불화는 그렇다쳐도 능력 자체는 팬들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데샹의 후임으로 라니에리가 임명된것에 의구심을 품는 팬들도 있었다. 유벤투스 감독직 부임 이후 빈첸초 이아퀸타, 즈네덱 그리게라 등을 영입하며 첫 시즌에 리그 3위를 기록하며 곧 바로 챔피언스 리그 티켓을 거머쥔다. 2008/09 시즌에는 애증의(?) 관계인 주제 무리뉴 감독이 인테르의 감독으로 부임되어 상당한 화제거리가 되었다. 2008/09시즌에도 순항 중이었으나 리그 막판 두달 동안 리그 7경기에서 6무 1패를 기록하는 부진에 빠져 리그 우승컵을 인테르에게 넘겨준 라니에리는 결국 시즌 종료 후 유벤투스 이사진에 의해 경질된다.

경질된지 4달도 채 되지 않아 2009년 9월 고향팀인 AS 로마의 감독으로 부임한다. 시즌 초반 제노아와 유벤투스에게 패배하며 중심을 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팬들의 비난을 받았으나 그 후 25경기 무패행진을 기록하며 무리뉴의 인테르와 리그 우승 레이스를 벌였으나 승점 2점이 부족하여 준우승에 머무른다. 코파 이탈리아에서도 인테르에게 패배하여 리그와 FA컵 모두 준우승을 차지했다. 리그 무패행진과 FA컵 준우승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그 다음 시즌은 2010/11 시즌에서는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FC 샤흐타르 도네츠크에게 패배하였고 리그에서는 중반 이후 계속되는 부진 끝에 2011년 2월 이사진에 의해 경질된다.

2011년 10월 가스페리니의 뒤를 이어 시즌 중반에 인테르 감독으로 부임한다. 초반에 리그 8연승을 기록하며 네라주리의 재건을 이끄나 싶었지만 귀신같이 7연패를 당하며 이도저도 아닌 모습을 보여주며 부임한지 1년도 안되어 2012년 3월 해임된다.[3]

3.8 AS 모나코, 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시절

해고된지 두달도 안되어 곧바로 AS 모나코 감독으로 부임했다. 당시 모나코는 2부리그에 있었는데 공개된 재산만 11조원이 넘는 러시아 갑부의 구단주 취임으로 강팀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리빌딩 전문가 라니에리를 선임한것. 첫시즌에 곧바로 2부리그 우승을 하며 팀을 1부리그로 승격시켰고 2013/14시즌에는 리그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구단주의 성에 차지 않았는지 아니면 리빌딩은 다 되었다 싶었는지 2014년 5월 경질되었다.

그 후 2014년 6월 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유로 2016 예선에서 4경기 연속 무승에 유럽 최약체인 피파랭킹 187위 페로 제도에게 안방에서 0-1로 패하는 수모를 당하며 조 꼴찌로 추락, 결국 전격 경질당했다.

2015년 2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제의를 받았으나 고사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3.9 레스터 시티 감독

3.9.1 15-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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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 2부팀이였던 레스터로 EPL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더 말이 필요한가?
Claudio "The Godfather" Ranieri

아르센 벵거가 13년, 리버풀 FC이 27년간 못 한 리그 우승. 라니에리는 9개월만에 해냈다.[4]

라니에리의 최고의 감독 경력
명장 입증
중환자 유벤투스를 살려내고 그에 이어서 레스터 시티를 EPL 최고 구단에 올려놓은 대기만성형 감독

2015년 7월 전임 감독인 나이젤 피어슨이 프리시즌 선수단의 성추문 사건으로 인해 사임하자, 후임으로 레스터 시티 감독으로 확정되어 11년 만에 프리미어 리그로 돌아왔다. 나이젤 피어슨 전 감독이 팀의 EPL 승격 및 잔류에 이바지했던 터라 라니에리의 감독 임명 소식에 서포터들은 반발을 보이기도 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근 10년 만에 프리미어 리그로 복귀한 라니에리는 초반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전에는 팀이 그저 리그 잔류만 해도 감지덕지이던 상황에서 누구도 예상 못 할 리그 1위 달성을 이뤄냈다! 이젠 레스터 서포터들에게 라니에리느님이라고 찬양받기에 바쁘다. 그도 그런 것이 해축 역사상 너무나도 경이로운 기록을 연일 세워주고 있다. 그만큼 라니에리는 놀라운 지도력과 전술을 보여주며 2015년 12월 15일 첼시에게 2:1로 이기며 무리뉴 당시 감독이 경질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것은 라니에리 지도력이 정말 큰 관련도 하였지만 제이미 바디리야드 마레즈, 은골로 캉테 등이 터져주면서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가볍게 언급하자면, 지난 시즌 로테 자원이었던 제이미 바디는 4R~14R까지 꼬박 11경기 연속골을 넣으면서 뤼트 반 니스텔로이가 보유하고 있던 EPL 10경기 연속골을 한 골 차이로 앞서며 EPL 신기록을 세웠다. 마레즈는 모든 득점에 관여를 할 정도로 무서운 공격력을 뽐내고 있다. 나이가 많은 편도 아닌데 공격 템포 조절 능력이 베테랑 급이다. 캉테는 한마디로 EPL 중원을 씹어먹고 있다. 그 외에 캉테의 파트너인 대니 드링크워터의 활약상 및 백업 선수진의 조화, 최후방 4백 라인의 견고한 수비력까지 더하면서 단단하면서도 치명적인 파괴력까지 지닌 팀으로의 진화에 성공한다. 물론 선수의 활약도 감독의 능력이 어느 정도 받쳐줘야 되는건데[5] 여기서 라니에리의 역량은 굉장히 잘 드러난다.

16R 첼시전을 기점으로 박싱데이가 시작된다. 많은 해축 팬들은 늘 항상 그래왔듯이 EPL의 DTD는 어김없을 것이다.라는 예측이 9할 이상이였지만 일각에선 첼시전 이후 어쩌면 상승세를 타서 승승장구 할 것이라는 예측도 심심찮게 들려왔다.

그런데 16R 이후 EPL 5경기에서 승-패-무-무-승 이라는 경이적인 기적을 해냈다. 더 놀라운 것은 당시 경기 일정이 에버튼(원정)-리버풀(원정)-맨시티(홈)-본머스(홈)-토트넘(원정) 이였다는 것이다. 리버풀전 빼곤 거의 평타 이상은 한 셈. 따라서 순위도 유지됐다.

17R 에버튼전에선 3-2라는 펠레스코어로 레스터가 원정에서 승리를 따낸다. 서로의 화력대결이 기대되는 경기였는데 당시 득점순위 1, 2, 3위[6]가 모두 있는 팀의 경기였다. 에버튼에서는 루카쿠와 미랄라스가 각각 1골씩 넣었지만 마레즈의 멀티골과 오카자키의 결승골로 승리했다.

18R 리버풀 원정 경기에선 아쉽게 1-0으로 졌다. 특히 시몬 미뇰렛의 선방이 컸다.

19R 맨시티전에선 0-0으로 비겼다. 홈이었지만 그래도 맨시티를 잠재웠다는 걸로도 충분히 찬사 받을만 했다. 그리고 이 경기에선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급 연기가 폭발했는데.....백번 말해 뭐하나 들어가서보자.

20R 본머스전에서도 골은 없었다. 마레즈가 PK를 실축한 게 아쉬웠다. 그리고 해축팬들은 이제 DTD가 시작된다면서 레스터를 까기 바빴다. 그런데....

21R 토트넘전. 굉장히 중요한 경기였지만, 토트넘의 홈 화이트 하트 레인이었고, 또한 무서운 상승세였기 때문에 7번 빼고 승리예측은 약 2-8. 그러나 이 경기는 레스터의 색깔을 한껏 보여주었다. 선수비-후역습. 물론 토트넘도 이런 전술이었지만 선수 결속력에서 또 라니에리의 능력이 드러난 경기였다. 두 팀 다 매서운 공방전을 펼쳤지만 경기 후반 로베르트 후트의 결승골로 결국엔 1-0 토트넘 원정에서 승리하였다.

22R 아스톤 빌라 원정 경기에선 1-1로 비겼다. 각각 게스타드와 오카자키가 골을 넣었다. 마레즈가 PK를 실축한 게 아쉬웠다.

23R 스토크 시티를 홈으로 불러들여 3-0으로 박살냈다. 스토크도 이번 시즌에 맨시티, 맨유를 잡는 등 만만치 않은 전력이었지만, 결국 라니에리의 역량이 이번에도 발휘됐다.

24R 리버풀전. 리그 1차전에서 설욕을 당했던 만큼 이번엔 홈으로 불러들여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고, 바디의 원더골과 멀티골을 앞세워 2-0으로 클롭의 영혼을 탈탈 털었다. 클롭이 요즘 급 늙어보인다

25R 맨시티전. 최근 2연승을 달리고 있는 1위 레스터와, 오늘만을 위해 칼날을 갈아온 맨시티의 대결이였다. 결과는 3-1, 원정에서 시원하게 털었다. 특히 이날 경기는 후트의 세트피스가 참 인상적이었는데, 라니에리가 독을 품고 세트피스 연습을 하였는지 후트가 헤딩으로 멀티골을 넣었다. 이날은 후트뿐만 아니라 레스터의 모든 선수가 다 잘해주었는데, 슈마이켈피는 못 속이는 선방으로 레스터의 실점 하나를 덜어줬고, 마레즈는 자신의 클래스를 보여주는 수비수&키퍼 농락골을 넣었다. 바디는 뒷공간을 몇번이나 파고들며 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줬고, 캉테는 야투페르난두가 버티는 중원을 압도했다.

레스터-토트넘의 돌풍, 핵심은 '압박+역습'

EPL 팀 챔스 출전 확률, 레스터 98%-맨유 15%-리버풀 0.2%

BBC 진행자 리네커 "레스터 시티 우승 땐 팬티만 입고 방송하겠다" 선언 눈갱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26R 아스날전. 우승의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경기에서 1차전처럼 제이미 바디가 PK를 얻어내 득점함으로써 분위기를 좋게 이어나갔지만 심슨의 퇴장으로 인해 수적 열세에 몰렸다. 그래도 잘 버티다가 시오 월콧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더니, 대니 웰벡에게 후반 94분에 극장골을 선물받으며 웰레기에게도 골을 선사하는 외질의 택배 크로스 아스날에게 더블을 허용했고 우승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경기 후 라니에리는 선수단에 1주일간의 휴가를 주었다.[7]

29R까지 마친 현재, EPL 최초로 승점 60점을 달성하면서 여전히 선두에 위치해있다. 2위 토트넘과는 승점 5점차. 우승 경쟁 후보인 토트넘과 아스날이 미끄러지는 와중에 레스터는 착실히 승점을 쌓아갔다.

32R 홈에서 소튼을 상대로 승리하여 리버풀 원정에서 비긴 2위 토트넘과의 격차를 승점 7점차로 벌리면서 점점 더 우승을 향해 가고 있다.

33라운드 선더랜드를 2-0으로 이기면서 맨유를 3-0으로 대파한 토트넘과 격차를 여전히 7점을 유지했다. 이로써 33R기준 레스터가 자력우승에 필요한 승점은 단 9점.

34라운드에서 웨스트햄을 상대로 2:2 무승부를 거두긴 했으나, 다음경기인 35라운드 스완지전에서 4:0승리를 거둠으로써 매직넘버를 2로 줄였다. 그리고 2위 토트넘이 WBA와 비기면서 자연스레 매직넘버=1이 되어 남은 3경기에서 1승만 거두면 자력 우승이 확정된다.

36라운드 맨유전. 최근 맨유가 아무리 못하고 있더라도 EPL의 성지는 당연히 올드 트래포드이다. 레스터 시티는 팀의 역사적인 우승을 이 곳에서 기록하고 싶었다. 하지만 맨유도 4위 싸움을 위해서 반드시 승점 3점이 필요한 상황. 역시 홈팀 맨유가 전반 7분 앙토니 마르시알의 선제골로 앞서나갔다. 그 후 계속 맨유의 파상공세에 밀리는 듯 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은 전반 15분에 웨스 모건이 바로 동점골을 넣으며 1-1을 만든다. 하지만 계속해서 맨유는 레스터 시티를 밀어붙였고 85분에는 동점골을 어시스트했던 수비의 핵심 드링크워터가 퇴장당하며 매우 불리한 경기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라니에리의 레스터 시티 특유의 실리 축구가 어김없이 나타나며 경기를 그대로 1-1 무승부로 끝냈다. OT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한 아쉬움을 남긴 채로 여전히 매직넘버는 1이다.

하지만 라니에리의 친정 팀이라고 할 수 있는 첼시가 토트넘의 승리를 막는 활약을 함으로써, 레스터 시티는 다음 게임에 관계없이 우승을 확정지었다. 팀의 에이스 제이미 바디는 동료 선수들을 집에 초대해 이 경기를 함께 시청하였고, 경기 종료와 동시에 자신들의 우승이 확정되자 동료들과 함께 크게 환호하였다. 라니에리는 첼시의 경기를 본 뒤에 거스 히딩크 첼시 감독에게 전화해서 고맙다는 말을 다섯 번이나 했다고 한다.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치러진 시즌 최종전 첼시 원정 경기에서, 첼시 선수단[8]과 히딩크 감독 및 팬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그라운드에 입장했다. 이때 첼시팬들이 라니에리의 첼시 감독 시절 응원가를 부르기도. 그야말로 12년 만의 금의환향이다.

이러한 기적과도 같은 행보에 구단주는 라니에리 감독에게 특별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했다고 한다. 원래 리그 17위일때 170만 파운드를 지급하고, 1등수씩 올라갈 때마다 10만 파운드가 추가되는 계약이었고, 이에 의하면 총 330만 파운드를 지급받아야 하지만 레스터의 행보를 본 구단주가 500만 파운드를 지급하기로 했다.500만 파운드면 스몰클럽 선수이적료값인데 ㄷㄷ

이런 기적이나 다름 없는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상상을 현실로 만들었기에 라니에리와 레스터 시티의 15/16시즌에 대해서 실제 영화화를 진행한다는 루머도 있다. 만약 영화화가 진행된다면 라니에리에게 딱인 배우는 로빈 윌리엄스가 최고의 적임자였을테지만 아쉽게도 이미 고인이 되셨다. 더구나 라니에리와 나이가 동갑이라서 더더욱 아쉬울 따름.

3.9.2 16-17 시즌

시즌 개막이 2달이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주전급 전력 이탈 조짐이 심하다. 캉테가 첼시로 이적했으며 마레즈까지도 첼시 수뇌부들과 비밀 회동을 가졌다고 한다. 라니에리 스스로도 골치 아프다고 이야기 한 부분. 하지만 레스터 시티 역시 알짜배기 영입으로 빈 전력을 매우고 있다. 특히 하노버 96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줬던 론-로베르트 칠러를 영입하고 캉테의 대체자로 빅토르 완야마등을 영입 대상으로 낙점하는 등 레스터도 이적시장에서 가만히 있지는 않고 있다.

한편 바디는 고심끝에 아스날의 제안을 거절하고 레스터와 4년 재계약을 맺었다

3.10 기타

라니에리는 무언가 자신만의 전술적인 철학이 있다기 보다는 그 때 그때 상황에 맞게 팀을 운영하는 편이다. 주로 4-4-2를 사용하고 전술적 유연성이 떨어지며 교체에 소극적이다 라는 단점이 있지만 이것이 라니에리의 전술이다 라고 불리는 전술은 없는 편. 해외에서도 라니에리의 전술을 분석한 칼럼을 찾기 힘든 점도 있다.
대부라고 불리지만 실제로는 샌님 신사의 이미지가 강하고 실제 성격도 퍼거슨 등의 감독과 다르게 굉장히 조용하고 차분하다고 한다.

라니에리는 백수생활이 길지가 않고 여기저기 많은 클럽을 오가는데 그게 A급 감독에 비해 몸값이 1/7수준인것도 한 몫한다(...).

감독 경력 초창기에는 특이한 선수 교체로 유명했다. 경기가 안 풀린다 싶으면 3명을 동시 투입하는 일이 많았다. 요새는 잘 안하시는듯?

현 레스터의 전술은 경기장을 극도로 좁게 사용하면서 부분부분 수적 우위를 통한 토탈 사커이다. 공격시 대부분의 선수들이 경기장 한쪽으로 편향되게 위치하는데 상대가 레스터의 선수들을 마크하기 위해 움직이면 수비 진형에 불균형이 생기기 쉬워진다. 상대 수비가 자기 자리를 잃은 틈을 타 마레즈나 바디 등이 프리하게 마무리하는게 기본 공격 형태. 물론 이런 전술을 사용할 경우 자기네 진영도 한쪽 공간이 비게 되어 역습에 취약해 지는데 이를 은골로 캉테가 중심이 되서 단단하게 막아주고 있어 정말 날카로운 역습을 하지 않는한 노리기도 쉽지 않다.[9][10] 강팀들도 대처하기 어려운 공격 전술에 왠만한 수준이 아니면 약점을 노리기도 힘든 까다로운 전술을 완성해낸것. 물론 마레즈가 있기에 더 위협적이지만 작년과 별반 다르지 않은 팀을 강등권에서 우승으로 끌어올린것은 라니에리의 업적이 분명하며 진정한 의미의 명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애초에 프리미어리그는 선수 한두명이 잘한다고 1등을 차지할 수 있을만큼 만만한 리그가 아니다.

맨시티를 압도하는 경기력에서 그가 얼마나 리빌딩으로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확실하게 주는 감독인가는 반증이 되었다.맨유-반할/무리뉴-첼시의 위기가 있다한들 레스터와는 전력적으로 훨씬 우위에 있는 팀들을 모두 압도하는 모습은, 그의 능력이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말하기 어렵다정도가 아니라 그냥 라니에리의 능력이다. 반할이 레스터에 있다고 생각해보자

레스터에서와 이전 구단에서 크게 달라진 점으로 휴식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을 꼽았다. 레스터의 선수들은 이 이탈리아 감독이 진행할 혹독한 전술 훈련을 우려했으나, 라니에리는 부임 후 선수단 면담에서 1주일에 2회 휴식을 선수진에 약속했다고. 1주일 동안 경기 1회, 강훈 2회, 회복/가벼운훈련 2회, 휴식 2회를 갖는 것을 루틴으로 가능한 시즌 내내 반복하였다고 한다. 특히 경기 다음 날은 선수들이 뭘 해도 터치하지 않는 휴가일이라 한다.

아르센 벵거 아스날 감독과는 무리뉴와 벵거와의 관계처럼 천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극상성이다. 프리미어 리그에 있는 동안 14번을 붙어서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하지만 챔스에선 이겼다 레스터 시티가 돌풍을 일으키는 2015-16시즌에서 2패를 기록하며 시즌 상대전적 더블을 헌납한 유일한 팀이 아스날이다. 하지만 벵거의 이미지에 먹칠을 한 것도 라니에리이다. 이렇다 할 대형 이적 하나 없이 하위권 팀을 이끌고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벵거와 경기에선 지고 성적에서 탈탈 털어버렸다.벵거는 2승 하지만 트로피는 내꺼. 벵거 속이 더 아플것이다.

2015/16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함으로써 1부리그 :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2015/16, 레스터 시티), 2부리그 : 프랑스 리그 되(2012/13, AS 모나코), 이탈리아 세리에 B(1993/94, 피오렌티나), 3부리그 : 이탈리아 세리에 C1(1988/89, 칼리아리) 우승으로 1, 2, 3부리그 모두 기록한 감독으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3개 리그(잉글랜드, 프랑스, 이탈리아) 정규리그에서 우승한 감독으로 기록되었다.[11] 1995/96시즌 코파 이탈리아, 1998/99, 코파 델 레이 우승기록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레스터시티에서 FA컵도 우승을 한다면 3국가에서 모두 FA컵 우승을 기록한 감독으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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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GQ 올해의 남자 상 부문 중 올해의 뛰어난 성취(Outstanding Achievement of the Year) 상을 수상했다.

3.11 우승 경력

3.11.1 선수 시절

  • US 팔레르모 (1984/85 - 1985/86)
    • 이탈리아 세리에 C1 (1) : 1984/85

3.11.2 감독 시절

  • 칼리아리 (1988/89 - 1990/91)
    • 이탈리아 세리에 C1 (1): 1988/89
    • 코파 이탈리아 세리에 C[12] (1): 1988/89
  • ACF 피오렌티나 (1993/94 - 1996/97)
    • 이탈리아 세리에 B (1): 1993/94
    • 코파 이탈리아 (1): 1995/96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1): 1996
  • 발렌시아 (1997/98 - 1998/99, 2004/05)
    • 코파 델 레이 (1): 1998–99
    • UEFA 인터 토토 컵 (1): 1998
    • UEFA 슈퍼 컵 (1): 2004
  • 첼시 FC (2000/01 - 2003/04)
    •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준우승 (1)  : 2003/04
  • 유벤투스 (2007/08 - 2008/09)
    • 이탈리아 세리에 A 준우승 (1)  : 2008/09
  • AS 로마 (2009/10 - 2010/11)
    • 이탈리아 세리에 A 준우승 (1)  : 2009/10
    • 코파 이탈리아 준우승 (1)  : 2009/10
  • AS 모나코 (2012/13 - 2013/14)
    • 프랑스 리그앙 준우승 (1) : 2013/14
    • 프랑스 리그되 (1)  : 2012/13
  • 레스터 시티 FC (2015/16 - )
    •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1) : 2015/16
  1. 감독 대행
  2. 잔여 1경기 임시 감독
  3. 사실 이건 라니에리 탓을 하긴 좀 그런 게 티아구 모타를 미드필드 핵심으로 놓는 플랫 4-4-2를 통해 상당한 호성적을 거뒀으나, 보드진에서 모타를 겨울 이적 시장에서 파리 생제르맹에 팔아넘기면서 추락하기 시작했다.
  4. 출처는 네이버 뉴스 기사의 베스트 댓글.
  5. 13/14 시즌의 바르샤반 할 강점기(...)의 맨유처럼, 준수한 선수들을 갖춰도 전술 잘 못 짜면 성공할 수 없다.
  6. 1위-제이미 바디 2위-리야드 마레즈 3위-로멜루 루카쿠
  7. 타 팀은 유럽대회와 FA컵을 치르는 주간인데, 유럽대회는 해당사항이 없고 FA컵은 이미 탈락했다.
  8. 특히 라니에리 시절 멤버 중 유일하게 아직 첼시에 남아 있는 존 테리의 미소가 인상적이다.
  9. 덕분에 아스날 FC 같이 스피드로는 만만치 않은 팀에 되려 털리기도 했다. 물론 아스날의 뒷공간은 좋은 먹이였지만.
  10. 대부분 축구팬의 관심이 경이적인 골행진을 기록한 바디에 쏠렸지만, 상당수 축구 전문가들은 15-16시즌 레스터의 핵심으로 캉테를 꼽았다. 캉테가 중원에서 버텨주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고 역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 유럽축구 전체를 돌아보면 바디와 비슷한 공격수들은 여럿 있지만, 은골로 캉테는 그야말로 유일무이한 유형이다.
  11. 2,3부리그도 엄연히 프로 정규리그이다.
  12. C1(3부리그), C2(4부리그)팀만 참여했던 FA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