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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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에 있는 사직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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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에 위치한 공원. 원래는 사직단(社稷壇) 이라 불렸으며 지금의 공원이 아닌 조선 태조 이성계가 옛 고려왕조의 수도였던 개경(지금의 개성특급시)에서 한양(지금의 서울특별시)로 천도(遷道)한 후 궁궐과 종묘를 지을 때 1395년(태조 4) 1월 29일에 영조하기 시작해 같은해 완공한 제단(祭壇)이 있는 곳으로 인왕산 아래에 있다. 1922년 일제에 의해 공원으로 변질되었으나 일부 제단은 해방 후 복원되어 문화재 보호시설로 지정되었다.[1]

지리적으로 경복궁 근처(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근처)에 위치해 있다. 주변에 어린이 도서관[2][3]과 시립 도서관 등이 있으며, 매동초등학교, 배화여자중학교, 배화여자고등학교, 배화여자대학교 등의 학교들도 있다.

주로 노인층들이 들르고 머무르는 곳이라 하여 '실버들의 쉼터' 라는 별칭도 붙었다.[4] 이 외에도 단군(檀君)의 영정과 모형상을 모셨다는 단군성전(壇君聖殿)과 본래 경희궁에 있었다가 인왕산 아래로 옮겼다는 국궁(國弓)터인 황학정이 있다. 공원 광장에는 율곡 이이와 그의 어머니 신사임당 동상이 세워져 있다.

조선 때까지는 신분제도상 임금과 왕족, 관료들만이 들릴 수 있는 성역(聖域)이었기 때문에 양반 이하의 자는 출입이 엄금된 곳이었다. 그러나 1922년 일제가 이 곳을 모두에게 개방된 공원으로 조성하면서부터 성역으로서의 분위기가 저하되고 제단 일부도 훼손되는 등 수난을 겪었으며 심지어는 지금의 단군성전이 있는 자리에 신사(神社)를 지어서 일본인들은 물론 일제의 지독한 협박과 강요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신사참배를 해야만 했던 조선인들이 왕래하기도 했다. 해방이 되고나서는 지금의 사직로 포장공사 등으로 인해 고종이 세웠다는 사직문(社稷門)이 본래의 위치에서 밀리기도 했다. 후에 일제가 세웠던 신사는 해방 후 철거되었으며, 그 자리에는 지금의 단군성전이 세워져 매년 10월 3일 개천절이 되면 이곳에서 단군에 대한 차례의식이 열리기도 한다.

사직단으로의 복원을 위해 서울시와 종로구가 복원계획을 마련하기도 했으나 담을 설치하는 등 일부만 손을 보는 데 그쳤고, 문화재청이 2012년 종로구로부터 관리 권한을 인계받았다. 현재 문화재청은 사직공원을 다시 본래의 사직단으로 복원하는 사업을 2027년까지 완료할 예정이다.

1.1 주변 및 근린시설

1.1.1 단군성전(檀君聖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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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공원 북서쪽 인왕산 등산로 입구 부근에 위치해 있는 단군왕검의 숭모시설로 원래는 사직단의 성역(聖域) 중 일부였지만 1922년 일제가 사직단을 공원으로 변질시키게 됨에 따라 조선총독부의 훈령에 의해 일본식 신사(神社)가 지어지기도 했다. 당시 일본인들과 일제의 모진 강요와 협박 등으로 한국인들은 강제적 신사참배를 하기도 했다.

해방 후인 1945년에 신사가 철거되면서 일제가 뿌린 잔재를 청산하는 뜻에 따라 1960년대 후반 일본식 신사가 철거된 자리에 지금의 전통 한옥으로 지어졌으며 현재 사단법인 현정회가 관리운영하고 있다.

성전 안에는 단군왕검의 영정과 모형상이 설치되어 있으며 매년 10월 3일 개천절에 기념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안내판에서는 단군성전이 있던 자리에 있던 일본식 신사가 이라고 표시하였는데 불교를 배척한 조선왕조의 상징인 사직단 내에 절이 존재한다는 것도 그렇고 실질적으로 추측한 결과 일제 때 사직단을 공원으로 개조한 조선총독부에서 지어놓은 일본식 신사였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창경궁도 아주 동물원으로 개조한 놈들인 걸 뭐

1.1.2 황학정(黃鶴亭)

황학정 문서 참조

1.2 사직단의 중요성

사와 직이시여, 풍년 들게 해주시옵소서.

사와 직이시여, 비가 오게 해주시옵소서.

조선 시대를 다룬 사극을 보면 조정 회의가 벌어지는 장면에서 왕이 옳지 못한 행동을 할 때마다 신하들이 "종묘와 사직을 잘 모시어..."하는 드립 대사가 자주 나오는데, 여기서 나오는 사직이 바로 사직단이다. 종묘가 역대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라면, 사직은 토지의 신(사社)과 곡식의 신(직稷)을 위해 제를 지내는 곳이다. 토지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국사단은 동쪽에, 곡식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국직단은 서쪽에 배치하였으며, 신좌는 각각 북쪽에 모셨다. '농자천하지대본야(農者天下之大本也)'라는 기치를 내운 조선 왕조답게 농업에 있어서 땅과 곡식은 조상을 모시는 것만큼이나 중요했다. 그 정도로 아주 중요한 성지이기도 하다. 보통 도읍을 건설할 때 좌묘우사(左廟右社)의 원칙[5]에 따라 (우/서)사직-(중)정궁-종묘(좌/동)로 종묘와 사직을 배치하는 것도 도읍지를 건설하는 데 매우 중요한 특징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일본은 1922년 공원을 만든다며 제단 주변 13개 주요 전각들을 심하게 훼손하거나 철거했다. 해방 후에도 경제 개발 논리에 밀려 부지가 축소되고 각종 근대 시설물이 들어서 옛모습을 찾기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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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문화재청은 사직단의 상징성과 역사성을 회복하기 위해 복원 정비 계획을 마련해 제례 공간인 전사청 권역 등 핵심영역 발굴 조사를 시작으로 2027년까지 주요 전각 13동을 복원하고 3동은 보수할 계획이다. 복원은 사직단 권역을 셋으로 나눠 진행한다. 핵심은 안향청과 전사청 등이 있던 제례 공간인 Ⅰ영역이다. Ⅱ영역은 후원 공간으로 현재 어린이도서관, 종로도서관, 단군성전 등이 있다. Ⅲ영역은 사직단 대문과 전면 도로 등의 진입 공간이다. 중ㆍ단기 계획으로Ⅰ영역부터 복원을 마친 후에 나머지 두 영역은 지역 주민, 관계기관, 관계 전문가, 문화재청 등으로 협의체를 구성해 사업 추진 여부 결정할 예정이다. 또한 인근 인왕산과 어울리게 지형과 수림을 복원하기로 했다. 총 사업비는 164억 8,000만원을 예상하고 있다.

국가에 의해 보전되던 사직대제는 1908년 일본의 강압에 의해 폐지됐고 1988년에서야 전주이씨대동종약원(현 사직대제보존회)에 의해 복원됐다. 현재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11호로 지정돼 매년 9월 첫째 주 일요일 사직단에서 거행되고 있다.

사직단은 비단 서울에 있는 사직단 뿐만이 아니라 전국 곳곳에 지어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을 기렸다. 항목 2와 항목 3 등 "사직"이 붙는 동네는 그 밖에 예를 들자면 꼴리건의 성지라든가, 청주 쿠어스필드가 소재한 동네라든가 과거에 사직단이 있었던 곳이다.

1.3 기타

드라마 욕망의 불꽃에 나오는 대서양그룹 회장 김태진(이순재) 회장댁으로 촬영되었던 한옥이 이 공원 부근에 있기도 하다. 참고로 드라마에서는 종로구 가회동으로 설정되었지만 실제 촬영장소는 종로구 사직동 사직공원 입구 부근에 있는 이 한옥에서 촬영되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서도 주요 배경으로 등장한다.

사직공원 근처에 조선 선조의 잠저였던 도정궁이 위치했었다.

2 광주광역시 남구 사동에 있는 사직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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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충북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에 있는 사직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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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현재 제단 부분은 통제구역으로 지정되어있다. 제단 밖 부분은 공원으로 활용.
  2. 어린이 도서관 이전에는 서울시립 아동병원으로 사용됐다. 현재 시립 아동병원은 강남구 내곡동에 있다.
  3. 이 어린이 도서관은 1990년대 말 전까지만 해도 국내에 몇 안 되는 대표적인 어린이 도서관이었다. MBC의 <느낌표>의 꼭지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캠페인에서 국내 도서관 실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도서관으로 많이 인용되기도 했다.
  4. 공원 광장에 게이트볼장이 있다. 그 주변으로 농구 골대와 작은 축구 골대도 있는데 여기는 젊은이들이 모여 운동을 하기도 한다.
  5. 여기에서는 정궁인 경복궁에서 숭례문 방면으로 바라봤을 때를 기준으로 '좌 종묘-우 사직'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