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Sam Sims Walker
샘 심즈 워커
세대에 걸쳐 대한민국을 지켜준 전쟁 영웅, 호부호자의 대표적 사례. 이분의 아버지가 한국전쟁 최고의 전쟁 영웅 중 한 명인 월튼 워커이고, 샘 워커 본인도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미8군사령관이었던 아버지와 같이 낙동강 방어선의 최전방에서 공산군과 맞서 싸웠다.
2 생애
1925년에 미국 뉴욕 웨스트포인트에서 월튼 워커의 외아들로 태어났는데, 그의 아버지인 월튼 워커가 37세 때 태어난 늦둥이였다. 샘 워커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군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아버지 월튼 워커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단장을 맡아 유럽의 전장을 누비는 동안 그는 사관학교에 입학했으며, 대한민국이 해방된 이후인 1946년 소위로 임관했고, 한국전쟁 발발 시에는 이미 보병부대 중대장이자 대위였다.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온 샘 워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낙동강 방어선 최전방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진두지휘를 해가며 전투를 치뤘는데, 전쟁 초기에 타흐신 야즈즈 장군이 이끄는 터키군과 합세하여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하는 데에 일조했다. 이 공로로 샘 워커는 인천상륙작전 성공 이후 은성무공훈장을 수여받게 되었다. 그러나 샘 워커는 1950년의 크리스마스를 앞둔 시점에서 자신의 훈장 수여를 축하해주고 직접 훈장을 달아주기 위해 아들이 있던 부대로 오고 있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때 미국 정부에서는 샘 워커에게 부친상을 치르라고 특별휴가를 줬는데, 그는 아버지의 뜻을 자기가 대신 이뤄야 한다면서 이 휴가를 거절하고 한국에 남아서 계속 전쟁에 참여했다. 오죽했으면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이 샘 워커에게 휴가를 다녀오라고 직접 명령을 내려야 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샘 워커는 개인사유로 군의 사기에 영향을 끼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맥아더의 명령을 거부하고 계속 싸우기를 고집했다. 더군다나 샘 워커는 한국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우는 것을 효도라고 생각하고 한국전쟁이 끝나는 순간까지 한반도에 남아서 공산군과 싸웠다.
샘 워커는 한국전쟁이 끝나자 베트남 전쟁에도 참여했으며, 차곡차곡 무훈을 쌓은 끝에 1977년 미군 역사상 최연소 육군 대장이 되었다. 또한 아버지 윌튼 워커 중장이 대장으로 사후 추서되었기 때문에 미국 육군 역사상 최초로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대장을 단 군인으로 남게 되었다.[1]
1978년에 제대했으며 대한민국 정부는 워커 부자의 헌신적인 희생을 기념하기 위해 서울특별시 광진구 모처를 '워커힐'이라 명명했다.
2015년 8월 8일 별세하였다. 향년 91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