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공찬전

薛公瓚傳
파일:SeolgonchanjeonJoseon.jpg


1 개요

조선판 엑소시스트[1]

조선 초기, 중종 때에 쓰여진 고전소설. 작가는 당대의 문신 채수. 채수는 유불선 가리지 않고 공부를 했으며, 그 덕에 유학자임에도 불구하고 불교도교, 무속에 조예가 깊었다. 당대에 지어진 소설들 중에서 흔치 않은 괴담형 소설이다.

2 줄거리

순창에 설충란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고, 자식으로 남매를 두고 있었다.[2] 그런데 딸은 시집을 가자마자 얼마 안 되어 죽고, 아들인 설공찬마저 병에 걸려서 죽게 된다. 그리고 설충란은 남매의 위패를 어떤 곳에 묻는다.

그런데 무슨 업보인지 얼마 안 있어 자기 딸의 혼령이 조카 설공침에게 빙의해서 병에 걸리게 만든다. 설공침의 아비이자 설충란의 동생인 설충수는 주술사 김석산을 불러서 충란 딸의 혼령을 물러나게 만든다. 그녀는 물러나면서 남동생 설공찬을 데려오겠다는 엄포를 놓는다. 아니나다를까, 얼마 안 있어 공찬의 영혼이 자기 사촌인 설공침의 몸에 다시 빙의.

설충수가 다시 김석산을 불렀지만 설공찬은 순순히 물러나지 않고 "이렇듯이 나를 괴롭히시면 숙부님의 형용을 변화시키겠습니다!!"라며 설공침을 마구 지지고 볶는 만행을 저질러, 이에 겁먹어 버린 설충수가 다시는 주술사를 데려오지 않겠다고 약속을 받고서야 원래대로 되돌렸다.

이후로는 중간 중간마다 설공침의 몸에 빙의해서 저승에 대한 얘기를 해 준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남존여비 문제 등 사회 비판을 가한다.

마지막으로 염라대왕뇌물로 매수해 수명을 늘리려는 중국 황제를 염라대왕이 도리에 어긋난다며 잡아오라고 명을 내리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3 당대의 골칫거리

이 소설이 쓰여졌을 무렵, 조선에는 엄청난 파장이 일어났다. 소재 자체도 당대로서는 너무나 충격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로 당대 사회를 직접적으로 비판한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문제가 되었던 부분은...

바로 반역자는 임금이라도 지옥에 간다는 구절. 여기에 "주전충과 같은 사람은 다 지옥에 들어가 있었다"라는 말을 붙여서 주전충이 절도사의 난을 일으켜 당나라를 멸망시킨 일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지만, 당시의 왕이었던 중종이 바로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좌를 차지한 인물이었으니 사실상 중종의 정통성을 직접 공격한 셈이다. 이 때문에 작가인 채수는 사형을 당할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책은 금서가 되어 불태워졌다.

사실 재미있는 점은, 채수는 원래 중종반정에 참여해 정국공신(靖國功臣) 4등에 봉해진 반정공신이었다는것.(...) 그러나 박원종, 성희안 같은 반정공신들이 중종을 둘러싸고 국권을 농단하는 모습을 보여 실망하여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쓴 소설이 바로 이 소설이었다. 채수가 보기에 중종반정은 폭군을 몰아내서 백성들을 이롭게 한 게 아니라, 그저 자신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 벌인 것에 불과했다는 것.

실상 중종이 즉위했어도 반정공신들은 박원종을 필두로 사치와 재산 증식에만 몰두했고, 중종은 즉위 초반에는 무기력한 존재에 불과했으며, 이로 인하여 백성들의 생활은 나아질 기미조차 안보였던 시절이었다. 단적인 예로 연산군이 유흥비용 마련을 위해 내수사를 초법적으로 이용하던 것을, 중종 시기에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백성들 입장에선 연산군이 쥐어짜나 중종이 쥐어짜나 별 다를게 없었다.

문정왕후는 내수사를 불교 진흥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였고, 문정왕후의 비호 속에서 내수사는 심지어 소속된 종들마저도 어께에 힘을 주고 다녔으며, 그 이후의 왕들도 국가재정이 어렵고 관행이란 핑계로 내수사의 패악질을 더 장려했으니 할말이 없다(...). 오죽하면 훗날 송시열이 내수사 혁파를 외칠 정도였겠나. 채수는 이런 현실에 분노했고 그런 결과로 중종반정의 정통성까지도 부정하는 결론에 도달했던 것이라 볼 수 있다.

후에 남명 조식단성소를 올리면서 "명종은 고아이고 문정왕후는 뒷방 과부다!!"라고 대놓고 깠다. 그런 사태가 이미 이전에 좀 다른 형태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채수나 조식이나 용자들이었네

4 그 외

작가가 작가인 만큼 원래는 한문 소설이지만 한문으로 쓰여진 판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한글로 언해한 판이 있는데 이는 <홍길동전>보다도 훨씬 이전에 한글로 언해된 소설이라는 데서 의미를 가진다. 발견된 국문본도 후반부가 없어진 채 13쪽까지만 남아 있다.

'금서'임에도 불구하고 금서가 가진 매력에 당시 선비들도 까면서도 몰래 보는 축이 존재했던듯하다. 실제 몇몇 관료들은 이 책의 내용을 다과회의 토론용으로 쓰곤 했다. 채수보다 조금 뒤에 인물로 명종 대에 이문건이 자신의 저서인 <묵재일기>의 종이 뒷면에다가 몰래 필사한 것이 1997년 우연히 발견되어, 그 동안 이름만 전해진 <설공찬전>이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스펀지 80회 방송분에서 '이 소설은 영화 엑소시스트와 유사하다'는 명제를 통해서 소개되었으며, 이 때 공침의 역할을 이혁재가 맡았을 때 특히 "저승에서는 모두들 왼손으로 밥을 먹느니라!!" 하는 장면은 백미.

2008년 전설의 고향 시리즈 중 <귀서> 편에서는 설공찬전에 묘사된 죽음들을 모방한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진다는 설정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부분에는 이런 죽음을 묘사한 부분들이 없어, 지금은 사라진 부분에 묘사되어 있는 것이라고 설정한 듯하다.
  1. <스펀지> 80화에 나왔던 소개. 그런데 그 이전인 2002년 SBS <깜짝! 스토리랜드> 제5화에서도 <설공찬전>이 소개되었다. <설공찬전>이 발견된 것은 1997년.
  2. 참고로 <설공찬전>에 등장하는 설충란과 설충수 그리고 설공찬의 조부 설위 모두 순창 설씨 족보에 존재하는 실존인물이다. 한때 설공찬의 이름이 없어 가상인물로 여겨졌으나, 다른 족보에 설공찬과 설공침의 모델로 추정되는 설공양과 설공심이 발견됐다. 일찍 죽었다는 설공찬의 누이 또한 "설충란이 딸 셋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어 그 중의 하나로 추정된다. 다시 말해, 채수가 소설의 현실성을 높이기 위해 실제 존재하는 인물과 가문을 차용한 것으로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