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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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의 주요 교파(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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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潔敎
Holiness Church

1 개요

성결교회는 개신교의 한 분파이다. 감리회의 창시자로 불리는 성공회 사제인 존 웨슬리의 완전주의적 입장을 따라 19세기 미국에서 형성된 종파이다. 20세기 초 미국에서 활발히 진행되던 성결운동이 바로 이들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

감리회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 목사를 따르는 교회라, 감리회와 교리상으로는 비슷하다. 하지만 감리교와는 교회 시스템이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신학 노선은 감리교보다 더 하드코어한 아르미니우스주의 노선에 감리교에는 없는 전천년설까지 (감리교는 무천년설이 우세하다. 물론 감리교회에도 전천년설 믿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일단 웨슬리는 무천년설에 가까운 입장이었다.) 받아들였지만, 교회 시스템은 감리교회의 필수요소인 연회와 감독이 없고 총회에서 바로 지방회로 연결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교단의 수장도 감독회장이 아닌 총회장이라 한다.


2 교리

성결교회는 중생, 성결, 신유, 재림 4가지를 4중복음으로 내세우고, 그중 성결을 가장 강조하는 교리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정신적으로 성결한 것을 가장 중시한다. 감리회에 비해서는 신학적 입장이 더 보수적인 편이며, 성경의 정확하고 오류가 없는 권위를 중요시한다.

성결교를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중생과 성결을 강조하는 영국과 미국의 감리교가 일본을 거쳐 한국에 들어오면서, 기적에 의한 병 고침을 뜻하는 '신유'를 특별히 강조하고 기존에 무천년설이 우세했던 것을 전천년설로 못박은 재림 교리를 확정하면서 한국인들에게 맞게 변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미국인들의 감리교를 한국인들에게 맞게 로컬라이징한 것.

성결교회의 신학적 노선은 감리교회보다 더 장로교회 신학과 거리가 멀다. 예를 들어 장로교회와 감리교회 모두 무천년설이 우세한 반면 성결교회는 전천년설을 공식 교리로 채택하고 있으며, 장로교회가 은사 중지론에 따라 기적에 의한 병 고침을 부정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성결교회는 이게 주요 교리 중 하나인 신유이다. 또한 장로교회는 종말에 부활할 사람들이 남녀 구분이 있지만 결혼만 하지 않을 뿐이라는 입장이지만 성결교회는 종말에 부활할 때는 남녀 구분이 사라진다고 믿는다. 결정적으로 성결교회는 감리교회보다 더 하드코어한 아르미니우스주의를 따른다.

그런데도 장로교회와 성결교회가 유사해 보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한국 장로교회가 성결교회의 영향을 받아서 성결교화된 것. 실제로 한국 장로교회 초창기에는 장로교회임에도 전천년설을 따르는 신학자와 교역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리고 원래 스코틀랜드 장로교는 술을 금하지 않는다. 절제 있게 마시라고 가르칠 뿐.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에 나와 있다. 그러나 한국 장로교는 대체로 음주를 금기시하는데, 음주를 금하는 것의 원조가 바로 감리교이고 성결교에서는 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 아예 공식적으로 교리화하였다.[1]

3 한국의 성결교회

한국 성결교회의 모체는 미국의 카우맨(Cowman,C.E.) 부부와 킬버른(Kilbourne,E.A.)에 의하여 극동지방 선교를 목적으로 1901년에 설립된 동양선교회(東洋宣敎會, The Oriental Missionary Society)이다. 이 선교회는 1901년 일본 동경에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을 창설하고 설교를 시작함으로써 비롯되었다.

동양선교회는 처음에 교회가 아닌 전도관 전도를 주로 하였으나, 점차 교인이 많이 모임에 따라 교회가 형성되고 교역자를 양성하기 위해 전도관 내에 성서학원을 세워 하나의 교파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원래 동양선교회는 어떤 교단에 소속된 단체가 아니고 복음주의적 신앙동지들로 구성된 선교회로, 창립자들은 감리교출신이며 그 신학적 배경은 아르메니안 계통의 웨즐리안 체험주의에 입각한 복음주의에 근거하고 있다.

그들이 내세운 전도표제인 중생(重生)·성결·신유(神癒)·재림의 사중복음(四重福音)은 원래가 그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던 심프슨(Simpson,A.B.)의 사중복음, 즉 중생하게 하는 그리스도, 성결하게 하는 그리스도, 치료하게 하는 그리스도, 재림하는 그리스도라는 교리에 근거한 것으로, 이는 감리교의 창시자인 웨슬리(Wesley,J.) 사상의 유산이기도 하며, 복음주의사상의 계승으로 볼 수가 있다.

한국 성결교회는 일본 동경에서 동양선교회 소속 성서학원을 졸업한 정빈(鄭彬)·김상준(金相濬) 두 사람이 1907년에 귀국하여 서울 종로에 복음전도관을 세움으로써 시작되었다. 이 두 사람이 전도활동을 시작한 지 3년 뒤인 1910년에 두 사람의 강력한 요청으로 동양선교회는 영국인 토마스(Thomas,J.)를 초대 감독으로 한국에 파송함으로써 직접적인 선교활동을 시작하였다.

1911년 경성성서학원(서울신학대학교 전신)을 창립하였으며, 1921년에 새로운 감독인 킬보른이 부임하면서 명칭을 조선예수교 동양선교회 성결교회로 바꾸고, 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게 된다. 1936년 교단분열이 일어나 10여개 교회의 목회자들이 이탈하여 '하나님의 교회'[2]를 만들게 되며, 이후 미국의 나자렛계열 교회와 연합하여 대한기독교나자렛성회를 만들게 된다.

이후 일제의 탄압으로 선교사들이 추방되고 교회가 강제해산되게 되며[3], 1945년 재건총회가 열리게 되고 1949년 기독교대한성결교회라는 이름으로 개정된다. 이후 6.25 전쟁으로 인하여 155명의 교인이 순교하고, 교단의 목회자 다수가 납북되고, 교단의 기반이 사실상 괴멸당하지만, 신도들의 힘으로 기적적으로 재건에 성공한다.

이후 1961년, 장로회와 마찬가지로 교회일치운동에 대한 동참에 대한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되게 되며, 이후 예수교대한성결교회가 분열되어 독립해 나가게 된다. 이들은 지속적인 합동 노력을 하였으나, 예성의 진보를 배격하는 보수적인 신학적 학풍으로 인하여 번번히 실패하게 된다.

한국에서의 교세는 예성은 소속 교회 1000여 개가 있으며, 2013년 말 현재 기성의 교회 수는 2716개, 세례교인 수가 355,222명이다. [한국성결신문 보도] 다만 교인 수는 교단 차원에서 집계한 것이 아니고 각 교회의 보고를 합산한 것이라 교단에서도 교인 수가 뻥튀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나마 투명해진 것이 이정도.

기성의 신학적 노선은 웨슬리안 신학과 4중복음을 중심으로 신정통주의도 수용하는 입장이다. 반면 예성은 하드코어 웨슬리안을 표방하며, 오직 웨슬리안 교리와 4중복음만을 내세운다. 기성과 예성은 WCC 가입 문제로 갈라져 나갔는데, 기성은 예성과의 재통합을 위해 WCC에도 가입하지 않고 KNCC를 탈퇴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기성의 경우 WCC에 대해서는 지지 입장이지만, 교단 차원에서 참여하지는 않는다. 예성은 완전히 반대하는 입장. 그러나 기성과 예성의 관계는 장로교의 통합과 합동처럼 서로 적대시하는 사이는 아니고, 상당히 우호적인 편이다. 가끔씩 연합 행사도 하고 그런다. 물론 성결대와 서울신대 통합얘기 나오면 서로 자기네가 우위라고 으르렁댄다.

성결교는 충청도와 전라남도 신안군에서 교세가 강하다. 특히 신안군의 경우 주민의 90% 가량이 개신교 교인이고, 거의 섬마다, 마을마다 기성 교회가 있을 정도다. 거의가 문준경[4] 전도사의 덕인데, 1930~40년대의 18년 동안 신안 지역에 100개 이상의 교회를 세웠다.


4 주의점

MBC 습격 사건만민중앙교회가 이 분파 출신이다.(교단명으로는 예수교대한연합성결교회(예성연합)을 사용하니 쉽게 구분이 된다. 무엇보다, 만민교회에서는 이재록 담임목사를 하나님 처럼 떠받들기에, 교회 차량 등에 사진이 붙어 있어 쉽게 알 수 있다.) 아이고 맙소사 하지만 당시 성결교회 측은 MBC와의 인터뷰에서 이미 이단으로 찍혀버린지 오래인 교회라고 하며 성결교회는 사이비가 아님을 인증했다. 그런데 비기독인이 봤을 때는 성결교회의 메가처치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어째 이단 소리를 듣는 만민중앙교회가 대표적이다. [5] 여긴 커지면 흑화하나? 실제로 기성이고 예성이고 정통 성결교회 교단에 소속된 교회들 가운데는 메가처치가 거의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예성은 교단 자체가 작기도 하고...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베리칩 등 헛소리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음모론과 기독교적 세대주의 종말론을 엮어서 책과 강연을 하는 B모 목사가 이 성결교회 소속이며, 교단 측에서는 예의주시하고는 있지만 아직 아무런 법적 치리를 가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이 사람의 폐악은 매우 커서 신학적 기반이 부족한 신도들이 상당히 많이 미혹을 당하고 한 음모론이 카카오톡 네트워크를 통해 개신교와 천주교를 막론하고 주부들 사이에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인터넷에서도 이 사람의 네이버 블로그를 근원으로 하는 온갖 글들이 돌아다니고 있는 중. 물론 예장통합, 예장합동, 예장합신 등 다른 장로교 정통 교단에서는 이미 이런 헛소리를 떠드는 인물들은 신학적으로 이단 선고를 받았다. 이를 극단적 세대주의라 하는데, 합동은 2013년 총회에서, 나머지 두 교단은 2014년 총회에서 공식적으로 극단적 세대주의를 배격하는 내용의 결의를 내놓은 바 있다. 흔히 이렇게 음모론을 퍼트리는 극단적 세대주의자들이 WCC를 쿼크가 되도록 깐다는 점 때문에 이들을 WCC 반대 진영이 일원으로 취급하는 비기독인들이 많으나, 사실 WCC 반대 진영의 3대 교단인 합동, 합신, 고신은 모두 극단적 세대주의를 WCC 이상으로 혐오한다. 아니 세대주의 자체를 부정적으로 본다. 칼뱅이 무천년설을 주장하였으며 그의 노선을 계승한 다른 개혁파 신학자들도 그러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한국인터넷선교네트워크의 설립자인 안희환 목사의 예수비전교회도 기독교성결교회 소속이다.

5 성결교회 교단 목록

  1. 그러나 알아둘 것이 있다. 금주 운동은 18세기 영국의 청교도 교회들의 침체와 국교회의 부패를 지적하며 일어난 일종의 정화 운동을 주도한 methodist들의 활동에서 유래했다. 국내에서는 감리교를 흔히 methodist라고 사전은 서술하고, 한국의 교단도 그러하다. 그러나 methodist의 다수는 칼뱅주의를 따르는 청교도들이었다. 웨슬리주의자들은 그러한 methodist들 가운데 소수의 자리에 있었고 잉글랜드 북동부 일부에서만 영향력을 미쳤다. 그외의 잉글랜드 지역은 칼뱅주의 methodist들이 활동했다. 이러한 사실이 국내 영국사학회에서 번역한 『옥스퍼드 영국사』에 간략히 나온다. 그러나 국내의 한계로 이러한 칼뱅주의 methodist가 "칼빈주의 감리교"로 번역되는 병크가 터져있다.
  2. 1962년 안상홍에 의해 설립된 곳과는 다르다
  3. 손양원 목사처럼 일제 당시 개별 교회나 목사가 탄압받은 적은 많았지만, 유이하게 침례교와 더불어 교단 해체령을 받은 교단이다. 당시 동양선교회 연회록을 보면 창시개명과 국민의례(동방요배와 일제의 승전을 기원하는 기도가 들어간다)까지는 어떻게 받아들인 것으로 보이는데 직접적인 신사참배 부분에서 문을 닫은 것으로 보인다.
  4. 참고로 여성이다. 당시 사회를 생각하면 엄청난 일
  5. 전 버전에 성락교회도 포함되어 있었으나, 성락교회는 성결교가 아니라 침례교를 표방하고 있다. 물론 정통 침례교단인 기독교한국침례회와 성서침례교회에서는 이단시한다.
  6. 위의 나사렛성결회의 전신인 '하나님의 교회'소속 일부 목회자들이 미국 하나님의 교회와 연합하여 설립한 교단. 2007년에 아예 장로교로 이름을 바꿔버렸다. 정작 성결교의 근원은 칼빈주의와는 대척점에 있는 알미니안주의인데(...)
  7. 이 부분에서 교단 사유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여기를]참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