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습격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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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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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주조정실 난입 모습과 개판 10분 경과 대체 방송된 다큐멘터리 동물의 왕국.

광신도들이 미치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사건.

1999년 5월 11일(화) 만민중앙교회(이재록 목사)가 일으킨, 국내 방송 역사 중 최악으로 꼽히는 사건이다.

여담으로 방송 중지 후 동물의 왕국이 방송된 것 때문에 이 사건을 MBC 동물의 왕국 사건으로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2 사건의 배경

이재록 목사는 1990년 10월 이단성의 문제로 예수교대한성결교단에서 제명처분 당한 후 1998년 8월 하나님이 자신의 교회에 임재한다고 하여 교계에 커다란 물의를 일으켰다. 만민중앙교회와 만민기도원을 중심으로 이재록 목사는 직통계시를 앞세워 자신이 신유의 은사, 물질의 축복 등의 권능이 있다고 교인들에게 인식시켰다.

1998년 12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서 이재록 목사와 만민중앙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한 데 이어 이재록 목사에게 피해를 보았다는 이탈 신도들의 주장이 늘어나고, 이재록 목사가 도박, 음주소동, 여교역자와의 젊고 어린 무용수들과 성추문 등을 밥 먹듯 벌이는 데다, 자신의 교회에만 신의 권능이 내렸다고 선전하며 촬영 중 일어난 분진을 가지고 하늘에서 금가루가 내렸다고 하거나, 교회 하늘에 무지개가 핀 것을 가지고 주님의 권능이 만민중앙교회를 통해서만 일어났다고 선동하는 등 크고 작은 병크를 일으켰다. 심지어 라스베이거스에서 도박을 한 것에 대한 변명이랍시고 한 말이 "내가 좀 재정 좀 해결해야겠다. 그래서 갔습니다!" 였다. 양원경 수준이다 이로 인해 사회적 문제가 일파만파 커지자, 1999년 5월 11일 화요일 MBC 시사 고발 프로그램인 PD수첩에서는 이 사건을 가지고 '이단파문! 이재록 목사! 목자님! 우리 목자님!' 이란 제목으로 당일 저녁시간에 방영하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다만 방영 전날 법원은 성추문 등 목사의 사생활은 방영하지 말라고 판결했기에, 우선은 사생활 부분만 편집한 채로 그대로 내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생활이 엄청 문란하네

3 때 아닌 밤중에 급습

이재록: 수십여 명의 방송국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는 또다른 방송국, 곳곳에 신도들을 배치한 뒤 PD수첩이 한창 방송 중인 주조정실 방송장비들을 순간적으로 모두 부숴 봤습니다

그런데... 방송 당일 밤 10시 30분부터 만민중앙교회 신도들이 여의도 MBC 본사 앞에 구름 떼같이 몰려들더니[3] 방송국 안으로 난입해 난리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광신도들은 자신들의 교주님인 이재록 목사의 실체가 방영되자마자, 이재록 목사를 지켜내겠다는 일념으로(...) 방송국 주조정실을 점거하고 장비를 만지고 부수는 등 방송사상 초유의 사태를 일으켰다. 한술 더 떠서 신도들 중 몇 명은 당시 당직과 야근으로 방송국에 남아 있던 직원들[4]에게 폭력을 가하기도 하는 등 여러 도발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8분만에 PD수첩의 방송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고, 방송이 중단되자 당시 남산 송신소가 보관 중이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자연은 살아있다' 중 아프리카 얼룩말의 생태를 다룬 에피소드 '줄무늬의 충돌'을 송출했는데, 원 방송과 남산의 방송이 섞여서 신호도 끊기고 난리도 아니었다.

이때 "줄무늬의 충돌"을 방송한 것은 서울 기준이고, 대구의 경우는 블랙스크린 하단에 "방송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로 시작되는 자막이 뜬 화면과, 당시 MBC 마스코트였던 엠비스가 나오는 화면이 떴고 여기에 당시 화면조정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것도 개그콘서트 씁쓸한 인생의 배경음악으로 쓰였던 것으로 유명한 유키 구라모토의 '로맨스'의 피아노 버전이(...) 이거 참 씁쓸하구만 그리고 요즘 같았으면 엠비스 대신 엠빅이 떴겠지? 그 외의 지역이 어땠는지는 추가바람.

4 왜 문제였나?

이 사건은 대한민국 방송 역사상 최악의 방송사고 1위로 기록되었다.[5] 대한민국 방송 역사상 특정 단체의 물리력에 의해 방송이 중단된 최초의 방송사고이며 유일한 사례로 심지어 5.16 군사정변이나 12.12 군사반란 등 군사독재정권 때에도 이런 일은 없었다. 한마디로 독재자들도 벌인 적이 없는 막장 병크를 왠 사이비 광신도들이 대뜸 이룬 것이다.

물론 서슬 퍼런 군사정권도 만만치는 않았는지라, 군사독재시절엔 군이 방송국을 통째로 강제장악하고 앵커들에게 혁명 공약을 낭독하도록 강요했었다. 그러나 적어도 만민중앙교회처럼 직원들을 폭행하고 방송을 가로막을 정도의 주제넘은 폭력은 휘두르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군사정권의 언론 통제가 면죄되진 않겠지만[6], 확실히 만민중앙교회가 습격한 사건은 군사정권의 언론 탄압이 양반으로 보일 정도의 중범죄다.

국가 중요 보안시설인 방송국 주조정실을 민간인들이 쉽게 탈취했다는 점에서 보안의식 허술에 대한 의문점이 제기되기도 했다. 방송국 건물은 범죄자나 적군에게 쉽게 점거되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미로에 가까운 복잡한 구조로 설계되어 있는데 그런 건물의 핵심 시설이 고작 민간인들에게 점거당했던 것이다. 다만 MBC 여의도 사옥은 지금의 일산 MBC처럼 예능이나 드라마 등을 촬영하는 스튜디오로 78-79년 즈음에 시공되었던 건물이었고, 이후 언론통폐합으로 인해서 스튜디오로 설계되었던 여의도 MBC가 예상치 못하게 방송 송출 등을 담당하는 본사로 지정되었기에 기지방어의 한계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경찰들이 허겁지겁 도착했을 때는 신고가 접수된 지 1시간이 훌쩍 넘어서였고 최종적으로 해산된 시간은 새벽 1시 30분이었다는 것. 경찰청 정보처와 경비처간 의사소통도 안 되고 방송국 관할인 영등포경찰서와 교회 관할인 남부경찰서(현 금천경찰서)간에 신도들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교환도 제대로 안 되어서 저런 병크가 나왔다. 당시 만민중앙교회 신도들이 야간 예배 직후 바로 버스와 승용차 여러 대를 타고 나감을 남부경찰서에서 인지해 이를 막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영등포경찰서나 경찰청 쪽에 전혀 통보를 안 했다고 한다.

다만 만민중앙교회 측의 폭탄드랍 인해전술과 MBC 내부에 만민중앙교회 신도가 있어서 쉽게 털렸다는 기사가 나오긴 했다. 이러한 이야기가 신빙성이 있는 것이, 내부 협력자가 주조정실의 상세한 위치를 미리 알려주지 않는 이상 곧바로 주조정실로 직행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 또한 몇몇 만민중앙교회 신도들은 경찰로 위장(!)하기도 했다. 사건 다음날 방영된 MBC 뉴스데스크에서도 이런 만민중앙교회 신도들의 치밀함이 일부 보도되었다. 사례 중에선 신도 일부가 경찰로 위장했다는 사실까지 보도되었다고.

5 사건 다음날

관련 뉴스는 4분 5초부터 시작된다.

처음 광고백지연 앵커도 나온다
참으로 엄처구니가 없는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7]
해당 영상 댓글엔 광신도의 궤변과 이에 대한 일베드립의 병림픽도 있으니 댓글 볼 때 주의
깨알 95년산 암행순찰차

피해자인 MBC는 다음날 뉴스데스크에서 가히 방송의 쓴맛을 보여주었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해당 소식을 약 50분 가량의 분량 중에서 22분 동안 14개 꼭지로 편성했고, "폭도와 다름없이", "쳐들어왔다" 등의 다소 강한 어조의 용어를 쓸 정도. 프롬프터의 존재를 고려한다면 이는 앵커 개인의 멘트가 아니라 보도국 차원에서 사전에 확정한 멘트라고 보아야 하며, 평소 점잖은 이미지의 이인용 앵커가 이 날만큼은 굳어진 표정+깊은 빡침이 드러나는 표정으로 기사를 전했다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8] 특히 언론의 자유를 강조하는 부분[9]에서 이인용 앵커의 목소리가 유난히 비장해진다. 또한 이 사건을 일으킨 만민중앙교회에 대해서도 가루가 되도록 질타했으며, 뒤늦게 대처한 경찰의 병크에 대해서도 여과 없이 비판했다. 그 결과 KBS 뉴스 9에 밀리던 뉴스데스크가 이날만큼은 20%가 넘는 시청률로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이 뉴스데스크 방송 직후 PD수첩 해당 화가 다시 온전한 채로 방영되었고, 이때 시청률은 PD수첩 역사상 가장 높은 39.6%를 기록했다. 스트라이샌드 효과 근데 앵커는 기자와는 관련이 없는가?

급히 만드느라 그런 점도 있겠지만 제작진도 어지간히 빡쳤는지 기초적인 편집 실수를 한 게 곳곳에 보인다. 자막이 있는 부분이 읽을 틈이 거의 없이 바로 지나가버리거나, 13:20 부분에서 명예훼손을 명예회손이라고 써서 내보낸다든지...

6 그 후

검경은 5월 13일 사무국장을 포함한 교회 신도 6명을 구속하였고, 이 중 만민중앙교회 부목사, 사무국장, 안전실 차장을 전파법위반죄로 기소하였다. 8월 28일 부목사와 사무국장에게는 징역 3년을, 안전실 차장에게는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

검찰 수사와는 별개로 MBC는 만민중앙교회를 상대로 방송 기재 파손, 광고료 손실 등에 대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였고, 일부 승소하여 만민중앙교회 및 그 신도 61명으로부터 6억 9천여만 원을 배상받게 되었다. # 목자님! 노이즈 마케팅과 신도들의 돈으로 방송국을 살리셨습니다!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한국방송협회, 한국기자협회,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언론 관련 이익/시민단체들은 사건 다음날인 5월 12일 일제히 성명을 내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려 한 만민중앙교회를 규탄하였다. #

하지만 만민중앙교회의 병크 행각은 여기서 그치치 않았으며, 나중에 나타난 대국민 사기가 바로 무안단물. 이쯤 되면 확실한 사이비 광신도다.

2014년 8월부로 MBC 사옥이 여의도에서 상암동으로 옮겨갔는데, 상암동 사옥은 여의도 사옥보다 구조가 더 복잡해졌고 CCTV도 여의도보다 상당히 많아진 데다, 크기도 축구장 21개에 맞먹을 정도로 커서 제2의 MBC 습격 사건은 일어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건물은 전부 분리가 되어있고 엘리베이터 하나만 믿고 가면 막다른 길이 나온다. 주조정실까지 타야 할 엘리베이터가 한두 개가 아니니 더 이상 습격당하는 것은 웬만한 국가 막장 테크가 아닌 이상 불가능할 듯하다.

여담으로 해당 사건 당시 방영되었던 PD수첩 방송분은 다시보기가 불가능하다. 이 사건이 정보화시대 이전에 벌어진 일이다보니 당연한 일이긴 한데, 심지어 MBC의 고대유물을 찾으려면 반드시 찾아야 할 MBC 영상자료에 문의를 넣어도 퇴짜를 맞았다! MBC의 말이 만민중앙교회와 법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에 영상 제공을 해줄 수 없다고... 해당 영상이 본 문서의 가장 유용한 출처가 될 수 있는 만큼 상당히 아쉬운 일.

파일:Ru1d0YHh.jpg

이 사건을 바탕으로 디시위키에서 틀이 만들어졌다. 사진은 틀:개독 반달.
  1. 다만 예수를 믿는 게 아니라 이재록을 믿는 상또라이들이다......
  2. 이 경우는 자의적으로 방송을 중지한 사례이다.
  3. 각자 교회 버스들과 자가용에 나눠 탔으며 이중 일부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MBC 여의도 사옥으로 갔다.
  4. PD와 방송기기 기술자를 포함한 방송 진행을 맡던 주요 직원들이었다. 이런 중요한 인원들이 갑자기 폭행을 당했으니 방송이 중간에 끊어짐은 당연한 일.
  5. 참고로 2위는 음악캠프 카우치의 하의 탈의 사건, 3위는 내귀에 도청장치 사건이다. 어째 죄다 MBC다. 하지만 1983년 KBS 젊음의 행진 생방송 도중에 일어났던 배철수 감전사고를 2위로 보는 견해도 있다.
  6. 사실 총을 들고 있으면 대다수의 경우 굳이 물리적인 폭력을 휘두르지 않아도 된다(...)
  7. 참고로 점잖은 인상의 엄기영 앵커도 삼풍백화점 사태 때의 이준 회장의 병크를 전달하는 내용에서 아래의 이인용 앵커처럼 깊은 빡침이 드러나는 태도로 보도했다.
  8. 참고로 이인용 앵커의 종교는 개신교이다. 결혼 후 1994년에 세례를 받았다고. 출처
  9. 4:25, 19:16, 24: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