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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세아트 론다(SEAT Ronda)는 스페인의 자동차 회사인 세아트가 1982년부터 1987년까지 생산한 준중형차의 명칭이다. 피아트로부터 독립한 뒤 독자개발을 해서 처음 출시한 신차 3종류 중 하나이자, 세아트에서 공식적으로 수출한 첫 차종이다. 이름의 유래는 스페인의 도시 명칭인 론다.
2 배경
1950년대 국영 기업으로 피아트와 같이 합작 설립된 세아트는, 세아트 600과 세아트 124와 같이 피아트 차들의 라이센스 버전으로 한동안 부흥기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1970년대 중후반부터는 제 2차 석유파동과 세아트의 경영비로 인한 피아트의 부담이 커지자, 피아트는 스페인 정부에게 "세아트를 나중에 가져갈 테니, 세아트의 구조개편을 좀 도와달라"고 제안하나, 스페인 정부의 반응이 시원찮아서 결국 세아트의 지분을 몽땅 매각해버리고 만다.
하지만 피아트도 이 상태로 세아트를 놔두면 어떻게 될지가 뻔히 보였기에, 세아트에다가 자사의 차종 3종류를 생산하게 해 주고 5년간 40만대 판매를 도와줄 테니, 대신 피아트 버전과 다른 모습으로 디자인을 손보고 이름도 새로 지으라는 제안을 해 주었다. 아시아자동차와 다른 상황에서 세아트가 그동안 쌓아 둔 기술력을 활용해 디자인을 손봐 개발한 차 3종(푸라, 마르벨라, 론다) 중 하나가, 준중형차인 피아트 리트모를 개량한 세아트 론다였다.
3 출시
세아트 론다는 피아트 리트모를 손봐 만들되, 세아트가 자사의 기술 센터와 피아트 차량의 현지화를 통해 쌓은 기술력을 활용해 인테리어 디자인을 새로 진행하고, 외관 디자인은 이탈리아의 카로체리아인 레이톤 피소레와 같이 디자인했다. 엔진 역시 피아트 엔진 4종류(1.2와 1.6, 2리터 휘발유 엔진과 1.7리터 디젤 엔진)를 그대로 사용했으나, 휘발유 엔진은 스페인 사양 전용에다가 세아트가 새로 튜닝을 했고, 디젤 엔진도 단순히 이탈리아에서 가져오는 게 아니라 스페인 현지에서 직접 라이센스 생산했다. 라인업상으로도 65 CL, 75 CLX, 100 크로노(Crono)의 3개 라인업에 5단 수동변속기, 5도어 해치백 차체만 있었지만 CLX와 크로노는 기본 장비도 가격에 비해 상당히 많았고, 무엇보다도 기존의 리트모에서 발견되던 품질 문제를 잡으려는 노력도 엿보였다.
1984년에는 폭스바겐과의 기술제휴가 성사되어 포르쉐와 공동 개발한 엔진 2종류(1.2리터와 1.6리터 휘발유 엔진)를 장착했고, 홍보 역시 포르쉐와의 기술제휴를 강조하면서 뒷부분에 "P" 데칼이 추가되었다. 1987년까지 약 18만대 가까이 생산되었으며, 단종된 뒤 12년 후에 후속차종인 세아트 레온이 등장했다. 원본인 피아트 리트모와의 비교 시승기에 의하면, 리트모가 훨씬 고성능에다가 현대적인 반면 론다는 리트모보다 5~6% 더 저렴하다는 점으로 이를 상쇄했다고 한다.
3.1 론다 소송사건
- 피아트 VS 세아트: 세아트에서 론다를 출시하려는 이때, 피아트에서는 론다와 리트모가 디자인적으로 차이가 너무 없다는 불만사항을 세아트로 보냈다. 세아트에서는 피아트와 이를 상의하려고 했으나, 피아트는 오히려 국제상업회의소(ICC)의 파리 지부에다가 세아트를 고소해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당시 판사도 피아트의 이사진 출신의 이탈리아인 변호사인 프란초 그란데 스테벤스(Franzo Grande Stevens)[1]가 맡으면서 세아트에게 불리한 입장이 되어버린다. 세아트가 이 문제를 따지자 ICC에서는 프랑스, 스페인, 스위스 출신 판사 3명이 공동으로 이 사건을 맡도록 했고, 세아트도 "피아트가 수출길을 방해하려 한다"고 맞고소를 했다. 하지만 세아트가 보더라도 론다는 원본인 리트모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고[2], 어떻게든 승소를 해야 해외 수출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세아트에서는 차이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검은색 론다에다가 노란색 페인트로 리트모와 다른 부위들을 도색한 뒤, 파리와 이탈리아, 스페인 등지에 이 차를 몰고 등장했다. 결국 ICC에서는 세아트의 승소로 결론을 내렸으며, 피아트도 이 문제에 더이상 딴지를 걸지 않았다.[3]
- 혼다 VS 세아트: 세아트가 1983년부터 론다를 수출하기 시작한 순간, 이번에는 일본의 혼다기연공업이 자신들의 회사명과 "론다"라는 모델명이 너무 비슷하다며 독일 법원에 소송을 했다. 때문에 세아트의 회장이 직접 독일의 일본 대사관을 찾아가 혼다와 협상을 했고, 혼다가 자신들의 제안을 안 받아들일 경우에는 스페인의 오토바이 공장을 철수시키겠다고 협박하자, 세아트에서는 혼다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따라서 세아트에서는 론다를 매년 6만대 이상 생산하진 않을 것이며, 1985년까지만 생산하고 수출할 때도 "SEAT-Ronda"로 표기할 것이라고 합의를 보았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