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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린시절
조선 제 17대 왕인 효종의 딸로 1636년에 출생했다. 효종의 첫아이 숙신공주가 2살 때 사망해서[1], 숙안공주는 원래 둘째딸이지만 사실상 장녀로 자랐다. 효종의 뒤를 이어 조선 제18대 왕으로 즉위한 현종의 누나이기도 하다.
어릴 적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효경, 내훈[2], 소학(小學)에 능통하였다고 한다.
2 혼인
인조 23년 큰아버지 소현세자가 급서하여 이해 윤 6월에 아버지 효종이 왕세자로 책봉되자, 다음 해인 인조 24년 왕세자의 적녀에게 내려지는 작위인 군주(郡主)로 봉작되어 숙안군주가 되었다. 부마 간택령이 내려져 다음 해인 현감 홍중보의 아들인 홍득기가 부위(副尉)[3]로 간택되었다. 그러나 다음달인 5월 8일에 인조가 사망하여 혼례가 미루어졌다.
아버지 효종이 왕으로 즉위하자 효종 즉위년 왕의 적녀에게 내리는 작위인 공주로 책봉되어 숙안공주가 되었다.
인조의 3년상을 마치기 전까지 혼례가 마땅히 미루어져야 했지만 효종 1년, 조선의 공주를 비(妃)로 맞이하겠다는 청나라의 섭정왕 아이신기오로 도르곤의 구혼이 있자 혼기의 미혼인 공주가 없다고 거짓말을 한 효종은 간략한 절차로 숙안공주와 홍득기를 은밀히 혼례토록 했다.
3 불행과 비난
효종의 딸, 현종의 큰누나, 숙종의 고모라는 입장을 앞세워 횡포를 부리고 백성의 땅과 세금을 갈취하여 세 왕의 노골적인 비호에도 불구하고 탄핵과 소송이 끊이지 않았다[4]
또한 조카인 숙종에게 정치에 관여하여 불만을 토로했다
현종 14년에 남편 홍득기가 39세의 나이로 급작스레 사망하였다. 당시 그녀의 나이 38세였다.
그 후 기사환국이 터졌는데, 숙안공주의 아들 홍치상이 선왕의 딸이자 현왕의 고모인 어머니의 뒷배를 믿고 악행을 거듭하다가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때 홍치상은 같은 동서이자 사촌인 숙명공주의 아들 심정보에게 누명을 쓰웠는데 결국 연루되어 심정보 역시 폐서인된다[5]
홍치상의 처조카이자 숙종의 후궁 영빈 김씨는 기사환국이 터지고 1달이 안 된 시점에서 왕의 동정과 궁중 기밀에 관한 정보를 친정에 빼돌리고 이모부 홍치상[6]과 작당하여 희빈의 친정 어머니에 관한 유언비어를 날조한 혐의가 적발되어 홍치상은 처형되고 영빈 김씨는 폐출됐었다.[7]
기사환국 후엔 아들 홍치상을 잃은 원한을 갚기 위해 서인에게 자금을 대어주고 환국과 인현왕후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체포된 한중혁, 이시도 등의 자백으로 발각되어 극형을 피하기 어려웠지만 다음날 숙종이 일으킨 갑술환국으로 무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현왕후와 영빈 김씨는 복위되였지만 영빈 김씨에 대한 악감정때문인지 결국 홍치상의 명예회복은 영원히 금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