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스파르타의 교육 제도를 뜻한다. '아고게'라고 부른다.
현대에 흉내내고 싶어서 "나는 스파르타식이다."라고 하는 사람이 많지만, 역사 교양에 무식한 사람이 많아 "진짜 스파르타식"을 모르기 때문에 제대로 된 스파르타식 교육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 문서에서는 제대로 된 진정한 스파르타식 교육에 대해서 서술하도록 하겠다.
스파르타의 어머니가 전장으로 나가는 아들에게 방패를 건네주며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오고 있다. "이 방패를 들고 돌아오거나, 아니면 이 위에 누워서 돌아오거라.(Τάν ή επί τάς)" 당시의 방패는 무거웠기 때문에 싸움터에서 달아나려면 방패를 버려야만 했다. 또한, 전사자의 시체는 방패에 눕혀서 가져오는 관습이 있었으므로, 어머니의 말은 싸움에서 이기거나 싸우다 죽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이야기다.[1]
스파르타가 유명해진 이유는 이들이 실제로 그리스 도시국가들 중 가장 혹독하고 무자비한 훈련을 통해 전사를 길러내며, 한명 한명의 전투력과 근성이 그야말로 일당백이었기 때문. 전투에서 절대 물러나지 않고, 전장에서의 죽음을 명예로운 죽음으로 모두가 선망하는 무리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전사를 기르려고 스파르타가 택한 방법을 보면 이건 완전히 사람사는 나라가 아니며 똥군기. 어?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거 같다? 보면 알겠지만 나치 독일이나 일본 제국, 북한도 양반으로 보일 정도이다. 물론 비과학적이었던 고대라서 더더욱 그렇기도 했지만.
당연하지만 스파르타식 교육은 아이들의 생명이나 정신건강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러니까 애를 잡고 싶지 않다면 당장 때려쳐라. 안그러면 큰 화를 부를지도 모른다. 이토록 독하게 훈련시키던 스파르타도 결국 민주주의 체제인 아테네에게 졌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그래봐야 상처뿐인 승리다 그리고 결국 스파르타는 망했다 카더라
2 교육 방식
2.1 출생
스파르타의 혹독한 교육은 태어날 때부터 시작된다. 사내아이나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다섯명의 검사관들이 ' 레세' 에서 꼼꼼한 검사를 거친다. 남자아이는 골격에 이상이 있거나 기형, 혹은 지나치게 작게 태어나면 절벽에 떨어뜨려 죽였다. This is Spartaa!![2]
여성의 경우는 강인한 전사를 낳는 근원이었으므로 귀중하게 생각되었다. 생식기 부위가 이상이 없는지 하체부분이 빈약하지 않은지를 보았다. 그러나 여성 또한 16세 이후 2차성징 징후가 나타나지 않으면 절벽에 떨어뜨려 죽였다. This is Spartaa!! 빈유는 절벽행 그야말로 우생학의 기원들 중 하나라 할 수준.
2.2 합숙 시작
7살까지 집에서 아버지에게 기본적인 전투상식과 소양, 철학 , 예절을 배운 뒤 남성들은 7살이면 전사가 되기 위해 아고게(Αγόγε)를 시작한다.
사내 아이들은 이때부터 집을 떠나서 집단 합숙을 하면서 교육을 받게 된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7살부터 30세까지 군대에 복무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동네보다 더 막장이다. 그런데 그 동네는 현대에 그런짓을 하고 있다는점에서 스파르타보다도 못하다 즉, 스파르타식 교육에서 부모와의 접촉과 가정의 따스함은 사치에 불과하다.
입소 즉시 벌거벗겨서 채찍질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무려 채찍질을 당하는 동안 비명을 참는 아이들만이 합격이라는데 그렇지 못한 아이는 계속 채찍질을 때렸다고 한다아래 생활방식을 보면 짐독으로 안죽는게 이상해보일 정도다(...)
합숙지에서 아이들의 침대는 풀을 뜯어 모아서 만들어야 했다. 겨울에도 이불을 주지 않았으며 오히려 풀 안에 가시를 섞어놓았다. 겨울에 푹 잠들면 얼어죽으므로 자다가 찔려서 깨어나게 하기 위해서였다. 목욕은 1년 중 단 몇 번밖에 할 수 없었다. 이런 비 위생적이고 가혹한 환경 때문에 부상과 질병에 수시로 노출되었음은 물론이다.
2.3 전투 훈련
합숙 일주일동안 적응이 끝나면 곧바로 우리가 '스파르타식 훈련'이라고 부르는 훈련에 돌입한다. 하루 24시간 중 거의 10시간을 군사훈련으로 보내며, 기초체력 훈련, 창술, 방패술, 방진, 검술, 근접전, 박투, 레슬링 등을 배웠다. 하루에 평균 7시간의 수면시간과 1시간의 식사시간이 주어졌다.
이 전투 훈련은 음악에 맞춰서 집단으로 춤을 추듯이 행해졌는데, 행군은 물론 창술, 방패술, 검술 등 각각의 분야에서 일정하게 정해진 동작 대로 음악에 맞춰서 움직이는 훈련을 했다. 이렇게 설명하면 뭔가 기묘해보이는데, 중국권법에서 흔히 하는 투로 수행, 태권도의 품새와 비슷한 무술 수련 방식이 있었다고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음악에 맞춰서 일정한 체조를 하면서 체력과 무술 기술을 동시에 단련했던 것이다. [3]
2주일에 한번씩 훈련생들을 모아놓고 둘로 무리를 나눠 배운 것들을 시험했다. 시험에서는 정확한 대열유지, 신속한 대형교체, 방패술의 팀워크 등이 시험되었다. 또한, 1:1 레슬링을 벌이기도 하였다.
훈련생들은 식용초와 독초에 대한 구분법을 엄격하게 암기해야 했다. 또한, 실제로 독초에 대한 면역력을 키운다는 미명하에 이들은 이틀에 한번씩 소량의 독초를 복용해야만 했다.[4]
2.4 학문 교육
하루 2시간씩 총 6시간 동안 수학, 문학, 철학을 배웠다. 다만, 이들의 교육은 글을 읽고쓰고, 간단한 계산을 하는 것 정도로 끝났다. 생각많은 전사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무식하면 용감하다 영웅은 공부 따윈 안 한다네
아테네인들의 기록에 의하면 스파르타인들은 수사법의 달인으로 꼭 필요한 말만 가끔 가끔 하지만 그때마다 치명적인 언변을 보여주었다 한다. '과묵한' 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laconic'의 어원이 바로 이 스파르타가 있던 라코니아 지방의 이름.
일례로, 알렉산드로스 3세의 아버지인 필리포스 2세가 스파르타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만약에 내가 라코니아로 진입한다면, 나는 스파르타를 쓰러뜨리겠다.'라는 서신을 보냈는데, 스파르타인들로부터 돌아온 답장의 내용은……
'만약에'
……딱 이것 뿐이었다. 이 말은 두가지 뜻을 내포 하고 있는데 즉, 필리포스 2세에게 '네가 만약에라고 한대로 말로만 떠들지 말고 진입할테면 해봐라!' 또는 '너희의 말은 단지 만약(if)일 뿐이다.' 라는 함축적인 의미로 전달 한 것. 이 편지에 쫀 필리포스 2세는 이후 스파르타를 정복할 생각을 버렸다고 한다.
2.5 인내심 단련
스파르타인들은 맞으면 맞을수록 피부가 단단해진다고 생각했다.(...)굉장히 오래된 속설이란 뜻 15세 이전에 일년에 한번씩 훈련생들을 나무 형틀에 묶어놓고 회초리나 채찍으로 온몸을 피멍이 들어 터질 정도로 때렸다. 그 다음, 뜨거운 물을 수차례 몸에 끼얹어 피부를 연하게 한 다음 자갈밭에 굴렀다. 그렇게 하면 피멍이 든 곳이 약해져 터지는데, 그때 차가운 강물에 재빨리 몸을 담가 몸을 식혔다.담금질?? 그렇게 하여 전신의 피부를 단단하게 단련시켰다. 단련법을 시행하다가 견디지 못하고 죽는 아이들도 있었다.스파르타 식 금강불괴 수행은 터프하다
당연하지만 이런다고 피부가 단단해지는건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굳은살이 박혀서 두껍고 뻣뻣해지긴 할건데, 그렇다고 칼이나 창을 맞아도 버티는 금강불괴가 되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으니... 물리적인 효과보다는 차라리 정신적인 효과, 그걸 효과라고 부를수 있다면 그러니까 지속되는 고통으로 개개인의 정신을 망가뜨려서 고통에 둔감하게 만든다던지 죽음의 공포에 보다 무감각하게 만든다든지 하는 원시적인 인격 말살 효과는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고게의 일환으로 스파르타에서는 소년들을 대상으로 채찍질을 하고, 소년들은 채찍질을 버티는 것을 겨루는 대회가 있었다. 이 대회는 로마 제국 시대까지 지속되었는데, 로마 제국 시대에는 그냥 관광용 퍼포먼스였다.그러니까 로마 시대에는 그냥 SM...
2.6 전사로의 인정
12세가 되면 자신이 입던 셔츠를 반납하고 붉은색 망토를 지급하는데, 이것이 스파르타의 군복역할을 했다. 12세가 된다는 것은 어엿한 '전사'로 취급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영화 300에서처럼 거추장스럽게 망토를 두르고 알몸으로 싸우지는 않았다. 전신을 중갑옷으로 두르고 나서[5] 망토를 걸치고 있다가 전투가 시작되면 망토를 벗어던지고 전투에 임했다.
16세가 되면 하루에 두 끼는 알아서 구해먹어야 했다. 알아서 구해먹는 방법은 단 하나, 마을로 내려가서 음식을 훔쳐먹는 것이었는데 상대가 노예 계급인 헤일로타이라면 살인도 마다하지 않았다.[6] 시민 계급에게 음식을 훔치다 걸리면 죽도록 두들겨 맞았는데, 두들겨 맞은 이유는 음식을 훔쳐서가 아니라 '들켰기' 때문이다.
전설처럼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어떤 소년이 여우를 훔쳤다가 죽었는데, 품 속에 안겨있던 여우가 소년의 내장을 물어 뜯어서 그렇게 됐다고 한다. 소년이 여우 주인에게 붙잡혀 심문받는 중이였는데, 들키지 않기 위해서 아픈 척도 안하고 태연히 내가 아니라고 대답하고 있다가 갑자기 쓰러졌다고 한다.
도둑질과 살인은 심지어 권장되어서, 최후까지 살아남는 사람이 강자라는 그야말로 스파르타다운 약육강식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들키지 않으면 범죄가 아니라구요. 최후까지 살아남는 사람이 강자라는 개념은 약육강식보다는 적자생존에 가깝다는 것은 제쳐두고라도…
2.7 통과의례
10년 이상을 보내고 20살까지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전사로 인정받기 위해서 또다시 목숨을 건 훈련과 선발과정을 거친다. 스파르타의 노예계층 마을, 그러니까 메세니아 지방을 습격하여 노예로 삼은 헤알로타이들을 죽이는 것. 게다가 살해행위가 들키면 법에 의해 처벌을 받는다…
아고게를 끝낼 20세가 되면, 최후의 통과의례 혹은 졸업시험으로 산에 창을 들고 홀로 올라가 야생동물을 잡아와야만 했다. 영화 300에서처럼 육식동물을 잡은 경우는 드물었고 대부분 산양이나 사슴같은 초식동물을 잡아왔다. 그러나 훈련생들은 늑대나 멧돼지를 사냥하려고 부단히 노력하였는데, 이유는 강한 동물을 잡아올수록 자신이 강한 전사임을 입증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 참고로 이 관용구는 훗날 오스만 치하에서 독립운동을 벌이던 마니오트인(Maniots)들의 구호로 사용되기도 했다.
- ↑ 약간의 골격 이상이나 미숙아로 태어났음에도 성장기 영양 섭취와 운동의 정도에 따라 오히려 우량아로 크는 경우도 적지 않은만큼 필요 이상으로 엄격함이 있었다. 특히 항상 인구부족에 시달렸던 스파르타 입장에서라면 이건 그야말로 삽질.
- ↑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페르시아의 전사 양성 체육프로그램인 주룩하네도 타악기를 곁들여 음악에 맞춰 동작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 ↑ 문제는 이게 가장 큰 병크짓인데 독초는 소량이더라도 죽거나 병신될수 있을 정도로 독성이 강하다. 이런데 독초를 소량 먹는다고 면역이 되기는 커녕 명줄만 앞당기는 꼴이 된다. 애초에 그정도 비율로 독초를 섭취한다고 자신 세대에게 독초에 대한 면역력이 생기기는 어렵다. 그런 급격한 자연 면역력 향상은 진화 레벨에서 토의되야할 문제이기 때문에 면역력 키운답시고 쌩으로 독초 먹는짓은 삽질에 불과하다.(...)
- ↑ 하지만 스파르타는 가난했던 도시국가라서 흔히 생각하는 그리스식 갑옷으로 무장한 중장보병은 매우 적었다고 한다. 대부분은 철로 만든 중갑옷보다는 가죽으로 만든 경갑옷을 입고다녔다. 그리스 전역에서 그랬듯 천으로 만들어졌던 린넨 갑옷도 각광받았을 것이다.
- ↑ 일부러 건장하고 힘센 헤일로타이들을 죽이게끔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살려두면 혹시나 반란의 주동자가 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