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석(범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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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동학대 대물림의 최악의 사례
가정 환경이 왜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지 보여주는 좋은 예

2000년 친부모를 토막살해한 범죄자이자 아동학대의 피해자. 현재 무기수로 복역 중. 1994년에 부모를 살해한 패륜아인 박한상과 세트로 묶어서 패륜아의 대명사로 여기는 경우가 있는데, 아래 설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동정의 여지조차 없는 정진정명 패륜아인 박한상과는 경우가 전혀 다르다. 게다가 이쪽은 가정과 학교, 군대까지 그가 거쳐온 사회 전체가 가해자였다.

연세대 이훈구 교수가 쓴, 이은석의 방대한 일기와 성장과정을 세밀하게 분석한 책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에서는 심지어 이은석의 '무죄'를 주장할 정도다. 미국같은 경우였다면 정당방위로 판결되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물론 실제로 정당방위가 되기엔 이은석은 당시 군대까지 제대하고 충분히 독립할 수 있는 어엿한 성인이었다는 점, 당시 부모의 공격을 방어하다가 우발적으로 살해한 게 아닌, 자고 있는 부모에게 접근해 살해했다는 점, 게다가 범행 이후 자수하지 않고 토막살해로 범행을 은폐하려 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무죄'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정당방위는 정말 살해 아니면 답이 없을 정도로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서 제한적으로 적용된다는 것을 감안하자. 물론 지금에 비해 유교적 정서가 훨씬 강했던 2000년에 부모살해범이 사형을 선고받지 않고 이례적으로 무기징역 선고를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당시 법원에서 최대한 정상참작을 해준 것이였다.

2 배경

이은석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장교[1][2] 출신인 아버지와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출신인 어머니를 둔, 경제적으로는 풍족한 가정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공과대학[3]에 진학한, 겉보기엔 매우 훌륭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모범생이었다. 하지만 부모를 비롯한 이은석의 가정은 전혀 행복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군인이자 엄격한 원칙주의자였기 때문에 부하 병사를 다루는 것처럼 자식들에게도 군대식 교육을 시켰으며, 자신이 장교로서 자수성가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이 강하다 못해 자기중심적인 성격이었고, 여기까지는 그렇다 쳐도 자신은 가족들에게 무관심하면서도 가족들이 자신에게 다정하게 대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용서를 하지 않는 등 굉장히 나르시시즘적인 경향을 보인 사람이었다.

어머니 황모씨 또한 기독교에 지나치게 심취한 여성인데다 자존심이 매우 강한 완벽주의자였으며[4] 히스테릭 증상이 심해 특히 아들들에게는 아버지보다도 훨씬 엄격한 스파르타식 교육을 시켰다. 부부 사이도 매우 좋지 않아 자식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미 각방을 쓰고 있었으며[5] 부부싸움이라도 했다 하면 한 달 이상 서로 말 한 마디도 오가지 않는 일이 예사였다. 겪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부부싸움의 여파가 단 며칠만 간다고 해도 집안의 그 쌩한 분위기를 견디기 어려운데, 그 기간이 한 달 이상이라면 어땠을지 상상하기도 끔찍하다. 게다가 이 부부는 단순히 부부싸움 문제가 아니라 금슬 자체가 파탄이 난 상태로 실로 사이가 최악이였는데, 99년 11월에 쓴 부인의 수첩에 "저 자(남편)는 양의 탈을 쓴 이리며 사탄과 친한 자, 악의 업보다"라고 기록한 내용이 나올 정도였다[6]

당시에 보도되었던 사실에 기초해서 적자면 이은석의 어머니가 군인 장교인 이은석의 아버지와 결혼한 이유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처럼 영부인이 되어보겠다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증언이 있었다. 원래는 정치외교학과를 나온 만큼 자신이 최초의 여자 대통령이 되겠다는 원대한 꿈이 있었지만 시대 상황상 불가능한 일이었기에[7] 대신 영부인을 꿈꾸는 것으로 선회한 것이다.[8]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남편이 일찍 군대에서 전역하는 바람에 남편에게는 기대를 끊어버렸고 그것이 남편에 대한 반감으로 나타났다. 남편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포기한 대신 아들의 출세에 더욱 매달렸다고 한다. 그런데 애초에 남편은 해군이라 그럴 일은 없었을 것이다.[9]

그리고 부모 양쪽 모두 아들들, 특히 둘째아들인 이은석에게 항상 불만을 표시했고 말도 안 되는 잔소리를 자주 퍼부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엄청난 신체적, 정신적 가정폭력에 시달려 왔다. 유치원생한테 신발끈 못 묶는다고 체벌을 하거나 초등학교 4학년짜리에게 밥을 늦게 먹는다고 젓가락을 집어던지고[10] 만화를 그린다고 머리카락을 잡아뜯는 식의 폭력이었다. 그의 부모는 늘 남들과 비교했고 성적,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광적인 히스테리와 폭력을 행사했다. 뭔가 못하면 당연히 혼나고 잘해도 왜 더 잘하지 못하냐며 혼이 났다. 이은석이 어릴 때는 만약을 대비해 야구방망이까지 숨겨 놓았다고 할 정도로 부모, 특히 어머니는 그를 매번 심하게 질책하고 구박하고 모욕을 주기만 했다. 그에 딸려오는 폭력은 덤. 그리고 어떤 일이든 이렇게 심하게 때리고 혼을 낸 후에는 항상 회개 기도를 강요했다. 하지만 정말 회개해야 할 사람은 누구였을까?

이 때문에 시간이 지나갈수록 그는 내성적으로 변해가고 대인 기피증이 생기게 되었으며 학창 시절에는 이러한 성격에 작은 키[11] 때문에 놀림까지 받으며 속칭 왕따가 되었고 그를 집중적으로 괴롭히는 급우까지 있었다. 어찌나 그 급우를 증오했는지 사건 후에도 언젠가는 그 급우를 죽여버릴 거라며 이름을 되뇌일 정도였다. 또 고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도시락도 싸주지 않았다고.

사실 이은석이 폐쇄적인 성격으로 변하여 방에만 틀어박히게 된 것은 이 학창시절에 급우들에게 괴롭힘당한 것이 가장 크게 작용했을 수도 있다. 책에 괴롭힘 당한 내용이 자세히 나와있는데, 이 자체만으로 성격파탄이 되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 [12]

당시 키 180cm에 몸무게 100kg가 넘는 육중한 체격의 급우가 이은석을 썩탱이, 썩은자지 등의 멸칭으로 부르며 장난감 취급하고[13], 반 친구들 앞에서 '원숭아 끼룩끼룩 울어봐' 라고 놀리는 등 심하게 괴롭혔다고 한다. 이런 모멸감은, 특히 정서적으로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길 수 있다.[14] 결국 그 급우 때문에 다른 친구들마저 자신에게 별명을 부르고 무시하는 듯 해서 괴로웠다고 토로했었는데, 이런 상황이면 아무리 부모님과 사이가 원만하고 활발한 성격의 아이일지라도 점차 성격이 어두워지고 폐쇄적으로 변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자아가 형성되는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때 저런 일을 겪게 되면 말이다.

사실 사춘기땐 학교에 있는 시간이 많고 부모님과는 어차피 집에 가도 공부한다고 방에 들어가니 크게 접촉할 일은 없기에 학교에서의 급우관계가 정말 중요한데, 이은석이 만약 정상적인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면 부모에게 학대를 당하더라도 친구들에게서 위안을 받으며 정상적인 성격을 형성했을 수도 있고, 그렇다면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괜찮은 친구가 있었다면 형처럼 친구집에 방문하거나, 혹은 친구를 관찰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가정환경이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자각할 수 있었을 것이며, 형처럼 대놓고 부모와 대립하지는 못하더라도 조용히 자립을 준비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헌데 학교에서도 극심한 상처를 받은 판국에 집의 부모님마저 살갑지 않다못해 지독한 성격이니 어디에서도 힐링을 받지 못한 이은석의 분노가 결국 터져버렸던 것이다. 괜히 책 제목이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인 게 아니다. 실제 이은석은 법정에서 "부모님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만 했어도 다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라고 말을 했었는데, 남들은 하나도 견디기 힘든 가정폭력, 학교폭력을 동시에 지독할 정도로 겪었으니, 성격파탄이 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지경. 이은석이 당했던 가정폭력의 수준이 너무 충격적인 것이었기에 가정폭력의 피해자로 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는 지독한 학교폭력의 피해자이기도 했다.

대신 그나마 학업 성적은 탁월했고[15], 상기한대로 고려대학교 산업공학과에 진학하게 된다.[16] 그러나 이은석이 성인이 되어도 부모의 학대와 폭력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공군 입대 후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어두운 성격 탓에 군대에서는 기수열외급 대우를 받아왔으며, 후임병들에게도 무시를 당하기 일쑤였고, 심지어 그의 한달 후임이 그에게 바락바락 대들고 있는 상황인데도 그 광경을 목격한 선임들이 오히려 이은석 쪽을 나무랄 정도였다.

하지만 부모는 아들의 고통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아버지는 군인이라는 직업상 한 달에 한 번 집에 들어오면서 아들을 본 체 만 체 했고 그런 아버지를 기피하면 "사내놈이 왜 그러냐", "굼벵이 같은 자식" 이라고 쏘아붙였다. 그가 군대에 가 있는 3년 동안 부모는 면회를 단 한 번도 가지 않았으며[17] 군대에서 전역한 후에도 인격적 모욕과 멸시는 계속 이어졌다. 이은석은 부모로부터 "네가 뭘 잘 하냐? 공부나 해라, 공부도 못하면 사회에서 낙오한다", "너 같은 놈은 사회생활 못한다", "너 같은 자식 필요없다" 는 식의 상처를 주는 말을 일상적으로 들으며 살았다.

이은석에게는 형이 한 명 있었는데 이 형[18]은 이은석과는 달리 꽤 과격하고 불같은 성격이라 부모의 막장 행동에 염증을 느끼고 사춘기에는 이은석과 달리 계속 반항하면서 부모와 충돌하곤 했다.[19] 부모는 이러한 형을 골칫거리로 여겼지만, 그 형은 그런 방식으로라도 자신의 스트레스를 발산했기 때문에 동생 이은석에 비해 부모로부터 받은 정신적 데미지는 훨씬 적은 셈이다. 그래서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지 않고 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반대로 이은석은 모든 것을 그저 꾹 참고 넘기기만 했기 때문에 형에 비해 부모와의 직접적인 충돌은 없는 편이었지만 그만큼 속으로 쌓인 것이 형보다 훨씬 컸다.

결국 형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집을 나가버렸다. 어머니는 이에 당황이라도 했는지 형에게 화해를 청하며 독신자 아파트를 마련해주고 나름대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아파트를 마련할 돈을 이은석의 명의로 대출받을 것을 요구했다. 이 일로 이은석은 안 그래도 마음이 틀어질 대로 틀어진 상태인데 형의 아파트 이사를 도와주고 온 후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20] 어머니가 또 혼을 내자 결국 참았던 것들이 모두 폭발하면서 어머니와 무려 4시간에 걸친 말싸움을 했다. 이 때가 살해를 저지르기 열흘 전이며 이은석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어머니에게 한 제대로 된 반항이었다.[21] 말싸움을 하면서 그동안 쌓이고 쌓인 이야기들을[22] 모두 쏟아냈지만 어머니는 "옛날 이야기를 갑자기 꺼내면서 부모를 놀라게 하는 것이 자식의 도리냔 말이냐?" 라며 오히려 이은석을 못된 자식으로 몰아갔다.[23]

그리고 사건 일주일 전 어머니로부터 그 사실을 모두 전해들은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자신을 야단치기 시작하자 다시 한 번 그 동안의 분노를 울면서 모두 쏟아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여전히 "그런 건 그때그때 이야기해야지그때그때 이야기했으면 그때그때 때렸겠지 왜 이제 와서 꺼내느냐, 사내놈이 한심하게도 이 모양이니" 이라는 멸시와 모욕 뿐이었다.

이 마지막 대화에서 단절을 느낀 이후 이은석은 6일 동안 화장실을 갈 때를 제외하고는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식사 등은 어떻게 해결했는지 놀라울 따름.[24]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부모가 그런 이은석을 보고도 아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진짜 개념은 안드로메다로 보냈나 보다 6일간 방에서 혼자 지내면서 그는 부모와 잘 지내기는 틀렸다는 결론에 도달했는데, 차라리 형처럼 집을 나가는 게 나았겠지만 자존감이 극도로 떨어진 상태에서 그런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선택을 하게 된다.

3 사건 발생

2000년 5월 21일 새벽, 이은석은 양주[25]를 연거푸 마신 후 어머니를 망치로 때려 살해하고 약 4시간 후 아버지도 같은 방법으로 살해했다. 어머니를 먼저 살해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막상 어머니를 죽인 후 자신이 살인을 했다는 생각에 너무 무서워서 아버지는 죽이지 못하고 4시간 동안이나 방 앞을 왔다갔다하며 안절부절했지만 날이 밝아오자 아버지가 잠을 깨서 이 광경을 보고 "혼낼 것"을 걱정한 나머지 결국 아버지도 살해한다. 둘을 한번에 죽이지 않고 4시간의 시간차를 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고 무려 이틀에 걸쳐 시신을 토막내 여러 곳에 유기하고 청소 및 뒷처리를 했다.[26]

이후 시신을 청소부가 발견하였고 사체의 지문을 토대로 신원을 확인하였다. 이 후 이은석은 경찰의 가택수사 과정에서 검거된다.[27] 사건 직후 경찰서 진술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 라며 울먹였다. 여기서 더 놀라운 것은 이은석의 형이 했던 말인데 부모를 죽인 동생을 원망하기는 커녕 "그럴 수도 있다. 나는 동생을 이해한다"는 말을 하면서 공범이 아니냐는 의심까지 받기도 했다. 물론 동생이 잘못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인정했고, 공범 역시 아닌 것으로 밝혀지긴 했지만 부모를 죽인 동생을 두둔하고 나선 것을 보면 같은 집에 살아오면서 자신이 당해오던 멸시와 동생이 당해오던 폭력을 보며 자신도 느낀 것이 많았던 모양이다.[28] 항소심 법정에서 형이 이은석을 변호하면서 말하기를, "우리의 부모가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갖는 만큼의 애정만 우리에게 줬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이 말에 법정은 눈물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가장 친밀하고 서로를 아끼고 사랑해야 할 친부모자식 관계가, 완전히 남남에 철저하게 업무관계로 만나 서로의 이해관계만을 따지는 사회생활과 비교될(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보다도 못했을) 정도라니 이 가정의 황폐함이 어느 정도였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이은석의 고등학교 동창들 역시 그를 두둔했는데 "체육시간에 옷을 갈아입을 때 은석이의 몸을 보면 언제나 피멍 투성이였다."라고 말하며 가정폭력을 암묵적으로 증언했다.

그리고 이은석의 부모가 자식들에게 가혹한 학대를 자행한 것도, 사실은 이들도 가정폭력의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이들의 성장 환경을 살펴보면 놀라운 점이 발견되는데 우선 어머니의 경우 자신의 성깔을 아득히 능가하는 홀어머니(즉 이은석의 외할머니)로부터 더 심한 스파르타식 교육을 받고 자랐다. 소설책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맞았을 정도로... 그리고 아버지는 알고 보면 성격이 놀라울 정도로 이은석과 유사하며 어린 시절 형(이은석의 큰아버지)만 편애하는 아버지(이은석의 할아버지)[29]밑에서 굉장히 많은 상처를 받고 자랐기 때문에 성인이 된 후에도 아버지와 형을 증오했다.[30] 가족들이 자신에게 다정하게 대하기를 강요하고 자신은 가족들에게 다정하게 대하지 않은 이유도 바로 어릴 때 받은 상처를 보상받기 위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들 부부의 정신나간 학대행위가 정당화 될 수는 없지만.

이러한 모습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이은석 사건은 결코 행복하지 않은 가정 환경에서 자란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룸으로써 생긴 비극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한 사람에게 있어서 제대로 된 가정환경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건이고 극단적인 아동학대의 대물림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이은석의 부모는 그들 자신이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했기에, 자식에게 사랑을 베푸는 방법도 몰랐던 것이다. 물론 아동학대 피해자라고 모두가 사랑을 줄 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이은석 형제에게는 불행하게도 이들은 그런 부모가 되지 못했다.

그나마 이은석의 형은 스스로 도망쳐서 살 길을 찾았지만, 이은석은 도망치지 못하고 패륜아에 중범죄자가 되어서 남은 인생을 감옥에서 보내게 되었으며, 부모들 역시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가 낳은 친자식 손에 끔찍하게 살해당한 후 시신마저 토막토막나 유기되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으니 비극이라는 말 외에 다른 말이 필요하지 않을 듯 하다.

4 재판

이후 재판에 회부된 이은석에게 법원은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내렸지만 2심은 그동안 당해온 가정 폭력을 참작해야 한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대법원에서 형량이 확정되어 현재도 교도소에서 복역중이다. 현재처럼 사형이 거의 사문화되어 어지간해서는 무기징역으로 대체하는 시절이 아니라 사형이 매우 적극적으로 내려지던 2000년대 초반이니까 존속살인범, 그것도 양 부모를 살해한 경우는 사형을 피할 수 없었는데도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것은 가정 폭력이 감형 사유로 인정되었기 때문이었다.

토막살인에 시체 유기까지 했음에도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당시 시대상으로 봤을 때 엄청 많이 봐줬다고 볼 수 있다.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서 다르겠으나 그런 가정환경에서 자란 이들이 결코 평범한 삶을 살기 어려운 것을 감안하면 보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즉 뒤늦게나마 사회로부터 보호를 받는 결과로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봐야하는 판결일 수도 있다.

사실 제 아무리 토막살인이라 하더라도 이은석이 어머니라는 종자에게 당한 수준을 생각하면 무기징역도 가혹하고 징역 10년 이하로 형량을 조정하든가 심하면 정당방위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지경이다. 물론 부모를 살해하는 것은 천인공노가 극에 달할 짓이지만 이은석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선택지는 거의 없었다. 부모를 죽이지 않는다 외의 다른 선택지가 있다면 '그대로 괴롭힘당하다 죽는다' 뿐.

어쨌든 이 사건은 부모의 차별과 아동학대로 인한 피해가 큰 사건으로 이어질수 있다는 것을 알렸으며 사건 이후로 많은 사람들도 아동학대의 심각성을 알리고 그 피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게다가 군대식이나 스파르타식 강압적 교육이 훗날 집안의 큰 화를 부르게 된다는 것을 알수있다.

5 기타

『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 』는 이 사건을 주제로 한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이은석이 자신의 허락 없이 책을 출간하였다며 저자와 출판사 대표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냄에 따라 일찍 절판되었다. 그는 돈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출간이 문제였다고 밝혔고, 이후 법원의 조정 내역에 따라 피고가 1천만원을 부담하되 이를 원고인 그와 피고 공동의 이름으로 천주교 교정사목위원회에 기부하게 되었다. 기사 현재는 절판되어 열람을 원하는 위키러는 인근의 도서관을 이용해야 할 듯. 짧게나마 이 책에서도 다루고 있었고 "살인자는 말한다" 라는 방송에서 이은석을 주제로 한 이야기가 나왔다(단 작중에선 가명을 사용했다).
  1. 해병대 중령이었다는 말도 있다.
  2. 원래의 꿈은 서울대학교 진학이었지만 입시에 낙방하면서 군인의 길을 갔다고 한다.
  3. 전공은 산업공학이었다고 한다.
  4. 참조 이 성격 때문에 주위사람에게 아는 척과 있는 척을 많이 하여서, 즉 허영심이 강한 성격이었기에 따돌림을 당했다고 한다.
  5. 이 때문에 이은석의 형은 초등학교 2학년 시절 친구 집에 놀러가서 친구 부모가 한 방을 쓰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기 전까지는 부부는 원래 각방을 쓰는 것인 줄 알았다고 증언했다. 친구는 같은 방을 쓰는 부모님을 보고 놀라는 형을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았는데, 형은 이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집이 뭔가 비정상적인 곳임을 인지하게 되었고 이후 부모의 막장행동과 충돌하면서 싸우는 계기가 되었다고.
  6. 출처 주간동아 2001년 8월 9일호 기사
  7. 결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은 2012년에야 선출된다.
  8. 출처 주간동아 2001년 8월 9일호 기사
  9. 자세한 것은 해군 또는 국방부 항목 참조
  10. 이 젓가락에 직접 맞지는 않았지만 어찌나 세게 던졌는지 유리창에 금이 갔다고 한다.
  11. 이런 극심한 가정폭력으로 인한 심각한 스트레스가 키를 크지 않게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12. 최근 왕따 자살도 보면 부모님과는 원만하나 학교에서의 갈등으로 결국 자살까지 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추적60분에서 은둔형 외톨이 사례에서도 부모님과의 문제가 아니라 학창시절 친구들에게 괴롭힘당해 정신적 상처를 심하게 받아 자퇴하고 7년간이나 방에 틀어박히게 된 사연도 나왔을 정도였다.
  13. 옆자리로 와서 하루종일 같이 있었다고 한다.
  14. 게다가 혈서를 쓸 것을 강요한 급우도 있었다.
  15. 사실 이은석이 당한 가정폭력과 학교폭력을 생각하면 저 정도로 학업 성적이 우수했던 것도 용할 지경이다.
  16. 참조 하지만 부모는 이은석이 "서울대"를 반드시 가기를 원하였고 "서울대"에 들어가지 못해 "실패한 자식" 이라며 "너처럼 멍청한 자식은 필요 없어 나가 죽어" 라고 폭언을 하였다.
  17. 물론 집이 부대에서 지나치게 멀다든지 형편이 어려워 365일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면회 갈 시간을 낼 수 없는 등 특별한 사정 때문에 면회를 가지 못하는 부모들은 많이 있다. 이러한 경우 어쩔 수 없이 전화로 목소리라도 듣거나 휴가 나온 아들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게 된다. 하지만 위에 서술했듯이 이 집 부모는 형편이 어려운 집도 아니고 직업이 그렇게 바쁜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은석은 이 일로도 굉장히 큰 상처를 받았던 듯 하다. 사실 이 정도면 군 생활을 계속 하는 것 부터가 기적인 수준이다.
  18. 형은 서울의 중위권 대학을 다녔다. 그러니 형을 대하는 부모의 행동은 불을 보듯 뻔한 일. 정말 형이 부모를 안 죽인 게 더 대단할 지경이다.
  19. 각종 문헌에서 형한테는 너그럽고 자상하게 대했다고 나오는데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편애는커녕 이 형에게도 이은석처럼 폭력을 가하고 악담을 퍼부었다. 만약 진짜 형을 편애했었다면 형이 동생을 이해한다는 말은 꺼냈을 리도 없다. 아니, 애초에 편애하는 수준의 정신머리라도 지닌 부모였다면 이런 참극은 빚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20. 형의 아파트가 어땠는지 어머니한테 제대로 설명을 못하고 어물거렸다는 이유라고 알려졌다.
  21. 반항 자체가 처음은 아니지만 이전에는 그저 조용한 반항일 뿐이었고 이 정도로 적극적인 반항을 한 것은 처음이다.
  22. 무슨 말이냐면 "왜 형하고 나를 이렇게 괴롭히냐? 우리가 대체 뭘 잘못했냐?"는 말이었다.
  23. 이 상황에서 옛날 이야기를 꺼낸다며 되려 자녀를 다그치는 타입들은 전문가가 개입하지 않는 한 정말 답이 없다. 아니, 이은석의 부모 정도면 전문가가 나서도 안될 것 같다 자녀의 심정을 이해하려는 마음 대신 훈육하고 통제할 욕심만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잊지도 못하고 있었다는 것은 부모와 소통이 없었고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다는 반증인데 이를 모르는 것이다. 만약 정상적인 부모였다면 이 때 조금이라도 미안한 감정을 느끼는 게 보통이다.
  24. 부모가 잠깐 외출한다든지 둘 다 잠든 시간을 이용해 해결했으며 굶는 일도 예사였다. 어떤 경우에도 부모와는 전혀 마주치지 않았다. 밖에 부모가 있어서 화장실 가기도 뭣같았던 상황에서는 소변 정도는 아x나민 골드 빈 상자를 요강 대용으로 썼다고 한다.
  25. 아버지가 생전에 애지중지 보관해오던 양주였다.
  26. 시체를 오븐에 넣어 태우려 했지만 부피가 줄어들지 않는다고해서 하질 않았다.
  27. 당시 이은석은 집에 있었다.
  28. 애초에 형제간의 우애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형이 동생을 많이 지켜주어서 이은석이 버틴 것이다. 만약 형이 나가지 않았다면 계속 버텼을지도 모를 일.
  29. 큰아들은 사업하다가 집안을 말아먹을 지경이 되어도 혼내지 않고 감싸주기만 하는데, 다른 자식에겐 그런 애정을 보이지 않고 무조건 의무만을 강요했다고 한다.
  30. 이런 뒷배경 때문에 이은석의 집에는 단 한번도 친척들이 방문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