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검(태조 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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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 태조 왕건의 등장인물. 배우 이광기가 맡아 열연했다. 당시에 예능 등에 코믹한 이미지로만 나왔던 이광기의 정극 연기를 볼 수 있으며, 명대사는 "으이그으으으!", "이 일을 어이할꼬...!" 또는 "아아버님!"(...)

견훤의 장남으로 처음에 등장했을 때만 해도 나름대로 견훤의 기대를 받았던 듯 했지만 처음 대야성 공략에 실패한 것을 기점으로 견훤의 끊임없는 질책을 받게 되고, 이후에도 실패만 거듭하다가 자연히 이복동생인 금강에게 계속 비교당하는 안습한 처지로 굴러 떨어진다. 오죽하면 견훤의 명대사 중 하나가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또 졌어!! 이젠 아예 전멸을 했다는구만!"해냈다 해냈어 신검이가 또 해냈어!일 정도. 특히 두 번째 대야성 공략시에는 신검 형제들을 구하려다 추허조가 전사를 하자, 견훤은 제대로 빡친 나머지 장수들과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너네들보다 몇 배 몇십 배 더 소중한 아우였다'라는 말과 함께 신검 형제들에게 채찍질을 했고,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태자들을 끌고 가 목을 베라는 명을 내리기까지 했다.[1] 첫번째 대야성 공략시에는 좀 실망한 정도였지만 이 두번째 대야성 공략때부터 견훤이 태자들을 눈 밖에 난 자식들 취급을 하기 시작한 것.

그가 패한 전투들이 완전히 방심하다 김락과 신라군의 협공에 당한 대야성 상실을 제외하면 유금필이나 신라 백전노장들[2] 같은 견훤도 어찌 못한 강자들을 상대한 것이었고, 조물성 전투 이후 신검과 능환, 능애가 신라 영토를 쳤을 땐 순탄하게 진군할 수 있었으며 개경기습전에서 유금필에게 패하기 전까진 잘 싸운 걸 보면 신검 역시 장수로서 기본 이상의 능력은 있는 것으로 나온다.[3] 하지만 늘 마지막에 과욕을 부려서 전부 말아먹거나, 견훤이 아끼는 장수를 전사하게 만들거나[4], 장수끼리의 1대 1 대결에서 불문율을 깨 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등[5] 난세의 시기에서 창업군주의 후대를 맡기기엔 어딘가 못미더운 모습으로 그려진다. 실제로도 훗날 고려 편에 선 견훤으로부터 신하들 통제도 제대로 못 한 걸 보면 범용한 인물이긴 한 듯하다(그 전에 견훤이 너무 대단한 인물이라 비교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사서에서는 신검이 싸움에 나섰다가 졌다는 기록은 없는데 대신 아우 용검 등은 고려와의 싸움에서 패배한 기록이 남아 있다. 그 싸움이 드라마에서는 처음엔 고려 vs 후백제의 태자 매치로 각색되었는데 마지막에는 결국 고려의 태자 왕무가 이겼으나 1차전에서는 놀랍게도 용검이 이겼고 고려 측 장수도 한 명 전사하였다. 일명 용검의 리즈 시절.

신검의 이런 과욕은 대야성 전투의 실패 이후 계속 아버지에게 질책만 받고 거기다 매번 승승장구 하던 금강과 비교당하면서 계속되는 압박감과 초조함 등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견훤의 노골적인 금강에 대한 편애로 인해 신검이 잘 해낸 일도 평가절하당하기도 하였다. 삼년산성 전투에서 금강은 싸움 없이 그 지역 호족들의 항복을 받아내자 견훤은 금강에게 '싸우지 않고 이긴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니 정말 잘했다'며 크게 칭찬했지만 이후 신검이 문소성 일대로 군사를 이끌고 가서 싸움 없이 호족들의 항복을 받았다는 보고를 받자 잘했다고 칭찬하면서도 '하지만 별 싸움도 없이 성을 얻었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발언을 하기도 하였다.[6] 다만 견훤도 나름대로 신검을 강하게 단련시켜 주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종종 최승우에게 이런 마음을 털어놓기도 했었고, 웬만한 큰 일에는 신검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그래도 '명색이 장남인 신검이 좀 잘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 그 기대에 못 미치니 갑갑해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 감정적인 문제로 인해 백제에 결정적 타격을 준 원인이 된 고창 전투에서 신검은 일부러 견훤과 금강을 전쟁 중 죽게 하기 위해 핑계를 대며[7] 원래 예정되어 있던 협공을 포기하여 백제군이 처참히 패배하게 만드는 엄청난 일까지 저지른다. 물론 이 내용은 후백제의 후계자 문제를 부각시키기 위한 드라마의 각색이지만.[8] 결국 자기 의도와는 달리 견훤도 금강도 살아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들은 신검은 아우 양검과 용검에게 아버지를 마중 가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자... 가서 또 욕도 듣고, 매도 맞자꾸나!"(...) 이쯤 되면 실로 안습의 극치.

고창 전투 이후 견훤의 마음은 더욱 금강에게 기울어졌으나, 최승우의 간곡한 청으로 결국 신검에게 최후의 기회를 주기로 한다. 개경공략전에 대한 지휘권을 신검에게 맡기면서, 이 작전에 성공해 고려 왕의 목을 가져올 수 있다면 옥좌를 넘겨주겠다고 한 것이다. 만약 작전에 실패한다면 너의 모든 권리는 금강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말과 함께. 이 때 견훤은 신검에게 '아무리 그래도 자식인 너를 내가 미워할 리가 있겠느냐' 며 장남에 대한 애정어린 말을 해 주었고, 정말 오랜만에 '부자지간의 정'이라는 것을 느낀 신검은 감동한 나머지 울먹이기까지 했으며, 작전 성공에 대한 의욕을 더욱 불태운다.

이때 견훤의 대사는 다음과 같다.

"너는 나의 아들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미워하는 이유 중에는 그 근본에 부자 간의 정이 있기 때문이야. 아느냐? 내가 너를 미워한다고? 아니다... 미워한 것은 네가 아니라, 바로 너의 허약함과 부족함 때문이었어. 내가 너를 그 동안 때리고 채찍질한 것은 너의 그 많은 단점들을 덜어주기 위함이었어..."

"이 애비는 지금도 너를 사랑한다. 네 그 많은 증오를 이번 전투에다 불태워 보거라. 그리고 진정으로 이 나라의 태자로서 거듭나거라. 그리고 보이거라! 내게 보이거라! 그리하여 볼 것을 내게 보인다면... 나는 약속대로 너에게 이 옥좌를 줄 것이다. 다음 보위에 관한 일을 종지부를 찍을 것이야! 알겠느냐 신검아. 이 애비의... 약속이다!"

40여 평생 처음으로 아버지의 정을 느낀 아들은 복받쳐 오르는 감정으로 아버지에게 다음과 같이 답한다.

"예, 아바마마. 참으로 그 동안 미욱하고 어리석었사옵니다. 이처럼 큰 기회를 주시고, 자식으로서 자애하여 주시니 눈물이 날 것 같사옵니다. 반드시... 아바마마의 크신 자애함을 갚겠사옵니다."

"참으로 오늘의 이 자리가 소자에게는 크고도 너무나 의미가 깊은 자리이옵니다. 반드시... 아버님의 뜻을 이루겠사옵니다. 참으로...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이후 신검이 이끄는 백제군은 기습전으로 고려의 수군을 궤멸시켰고, 고려의 황궁에 침입하는 데 성공한다. 비록 왕건은 때마침 서경으로 내려가 있었기 때문에 그의 목을 취할 수는 없었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전과였다. 하지만 신검은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또다시 과욕을 부리고 마는데, 유금필이 유배를 가 있는 곡도를 치기로 한 것. 최승우는 이득이 될 게 없는 전투라며 간곡히 만류하지만, 신검은 그대로 밀어붙였다. '이미 고려 수군은 전멸했는데 천하의 유금필이라고 해도 별 도리가 있겠느냐' 라는 생각이었는데, 결국 50척이 넘는 백제군의 함대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던 유금필의 소수 정예부대에게 박살이 나고 말았고, 기껏 세워놓은 전과도 크게 깎아먹게 된다. 결국 시청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 예성강 기습 전투는 신검이 왕이 되었을 때의 모의전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는데,[9] 결론은 온갖 버프를 다 받은 100% 만전의 상태라도(파진찬 직접 참여 + 아버지의 생전 첫 응원 + 옥좌에 대한 약속으로 막강한 동기부여) 어쨌든 신검은 후삼국시대의 패자로는 안 될 인물이라는 것을 재확인했을 뿐이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실보다 득이 큰 작전이었기에 어느 정도의 전공은 인정받게 되었고, 왕위 계승에 대한 희망은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벌어진 운주 전투가 신검에게는 치명타가 되는데, 견훤의 눈 앞에서 전과를 올려 후사 결정에 쐐기를 박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등창과 감기로 인해 고생하는 견훤을 억지로 전장에 데리고 갔다가 결국 전투는 전투대로 말아먹고 아버지의 신망까지 잃게 된다. 이 때 신검의 이복동생 금강은 아버지의 건강이 염려된다는 이유로 전투를 포기하고 돌아가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견훤의 입장에서는 심히 대비가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견훤은 왕위를 금강에게 물려줄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그래서 신검의 아우인 양검과 용검을 지방 도독으로 임명하여 신검과의 연계를 끊으려 했고, 신검은 지방 순행이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수도 완산주에서 추방하도록 결정했다. 위기에 몰린 신검은 마지막까지 갈등을 하다가 결국 이찬 능환을 비롯한 신료들이 권하는 대로 쿠데타를 일으켜 견훤을 몰아내고 말았다.

비록 신검의 그 동안의 실적이 부족하기는 했지만, 일단 장자인데다 계속 여러 전투에 참여해왔기 때문에 신검의 두 아우를 비롯한 중신들 대다수는 신검을 지지하고 있었기에 인맥 면에서는 꽤 탄탄한 입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견훤은 말년으로 갈수록 신검을 후계자로 결정해 줄 것을 요청하는 신료들과 갈등을 빚고 있었는데, 결국 이러한 점을 무시하고 취약한 지지 기반을 가진 금강을 후계자로 정하였던 것이 견훤의 치명적인 실수로 나타났다. 견훤이 금강의 후견을 맡긴 박영규 장군과 최승우는 원래 중립에 가까웠기에, 금강은 자파 신료세력들이 전무하다시피했다.

그래도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 작은 아버지인 능애를 보내는 등 노력은 다 했지만, 결국 견훤은 금산사를 탈출해 고려로 망명하였다. 비록 조정에서는 금강보다 신검 쪽의 지지 기반이 월등히 높았으나 그 이상으로 지지를 받던 견훤의 자리를 찬탈함으로써 신검 본인의 지분을 깎아먹었다는 것이 함정(...). 결국 신검은 이 불안한 기반 때문에 반역을 일으킨지 몇 개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왕위에 정식으로 오르게 된다.

하지만 신검이나 그 지지세력은 견훤의 잔존 세력이나 백성들의 인심을 간과하여 결정적으로 파멸의 길로 가게 된다. 견훤 개인이 작중 표현을 빌리자면 천년에 한번 나올까 하는 호걸이다보니 후백제라는 국가보다는, 견훤 그 자체에게 충성을 바치는 이들도 많았던 것. 견훤은 고려군 유금필의 전함에 승선한 망명길에 후백제의 전함과 대치했는데 전함 내 장수 상귀를 제외한 휘하 부장들과 후백제의 병사들은 견훤을 보고 동요하기 시작하더니 모두 사기를 잃고 견훤에게 길을 내주게 된다. 거기다 마지막으로 일리천 전투에서 고려군 선봉에 선 견훤을 본 후백제 병사들이 모조리 투항한다. 그 과정에서 고려군이 장군 애술과 김총을 사로잡는 것이 결정타가 되었고 고려는 황산으로 후퇴하는 후백제군의 경로를 파악하여 미리 매복을 하였고 결국 이 전투를 끝으로 후백제는 멸망하고 말았다.

망국 후에는 동생 양검과 용검은 유배 후 처형되지만 신검은 남의 권유에 의해 왕위 찬탈을 한 것이므로 두 동생보다는 죄가 가볍다 하여(응?) 왕건이 용서해주고 벼슬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10]. 하지만 그 이후의 신검에 관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때문에 학계에서는 끝까지 고려에 대항한 신검이 좋게 최후를 맞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도 이 설을 채용하고 있다. 드라마에서는 신검이 처형되는 장면을 지나가듯이 보여주면서, 나레이션으로 위 망국 후의 행적에 대해 설명하는 식으로 처리한다[11]. 참고로 신검이 처형되는 이 신은 드라마의 실제 마지막 장면은 아니지만(드라마에서는 신검 처형 이후에 왕건이 통일 후 말을 타고 개선하는 장면까지 다룬다.) 드라마 촬영시에는 가장 마지막에 촬영한 신이라고 한다. 당시 촬영장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보면 이 장면을 찍은 후 배우들이 샴페인을 터뜨리며 200화 대장정의 끝을 자축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비록 아버지에게는 죽을 때까지 미덥지 못한 자식이라고 미움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외 주변 사람들에게는 꽤 인망이 두터운 것으로 묘사된다. 전투에 참전할 때마다 모든 것을 거하게 말아먹었고 왕인 견훤이 대놓고 싫어하는데도 불구하고 주변 신료들이 일만 터졌다 하면 그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 한 증거. 그 자신도 비록 부자지간에 독은 올랐을지언정 사람들끼리의 정과 도의라는 개념에 신경을 쓰는 묘사가 여러 번 등장하고, 엄하고 무서운 아버지를 둔 반동인지는 몰라도 주변 사람들의 청은 웬만하면 다 들어주고 인간적으로 잘 지내고자 노력한다. 문제는 전쟁터에서 병졸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겠다고 술잔치를 벌이기도 하고 부하들의 말도 안 되는 땡깡까지 오냐오냐 하고 다 받아들여 주다가 그간의 전과를 다 말아먹는다는 것(...). 어느 군부대에나 있을 법한 '인덕은 있으되 무능한 간부'

그리고 태조 왕건진 최종 보스가 된 인물이다. 물론 드라마 캐릭터성은 충분하지만 최종 보스치고 위엄이 떨어지니 약간(...)

드라마에서는 파탄난 부자 지간은 결국 회복되지 못하며 견훤까지 죽고 끝나지만 드라마가 방영할 당시 나왔던 소설에서는 견훤이 죽기 직전 꿈에서 신검이 양검과 용검과 함께 나타나 견훤에게 그저 아버지의 따뜻한 한마디가 듣고 싶었다며 자신들이 그렇게나 미웠냐고 섭섭함을 토해내자 견훤이 뉘우치며 숨을 거두는 걸로 간접적인 화해를 묘사한다.

한가지 아이러니컬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삼년산성에서 동생 용검과 양검이 유금필에 의해 패배하고(164화) 성을 빼앗겨 신검의 본진으로 도망을 오는데 동생들이 신검에게 군대를 돌려야 한다며 퇴각을 종용한다. 동생들이 성도 빼앗기고, 도망치고, 게다가 신검 본인은 왕건의 본대를 궤멸시켰음에도 군을 물려야 하는 상황에 그저 도망가자며 한심한 언행(...?)을 보여주는 동생들의 모습에 열이 받았는지 "너희들이 그러고도 태자들이냐! 못난 놈들!" 이라며 소리를 지르며 동생들을 총채로 때리는데 마치 그 모습이 패전하고 돌아온 신검을 두들겨 패는 견훤의 모습과 오버랩 된다.(때리는 신검 = 견훤, 맞는 두 동생 = 패전하고 돌아온 신검)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주는 두 동생 때문에 혈압이 올라 "으이구 못난 놈들!" 하며 혈압오르는 모습까지 판박이. 그야말로 실로 아이러니.[12]

요약하자면 신검은 황소고집 + 부하들과의 소통부재 및 의견무시(이게 가장 큰 이유)[13] + 무능을 달리는 지도력 + 금강에 대한 열등감 + 아버지 견훤에 대한 억하심정 + 성급한 판단으로 자폭(...)한 걸로 보이고 있다.

이후 몇 백년 지나환생하여, 아버지의 환생이 지키려 한 국가를 무너뜨리는데 일조했다 카더라. 그리고 쿠테타에 성공하여 이복동생의 환생을 허수아비로 만들어버렸다 카더라.
  1. 의형제이던 수달을 잃었는데 같은 의형제라고 생각한 추허조마저 죽자 그 원인이라 할법한 태자들에게 제대로 빡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최승우와 장수들의 간곡한 만류로 결국 죽이지는 않았지만.
  2. 작중 견훤은 3차례 대야성을 공격하는데 첫 번째는 김효종, 두 번째는 (이름은 따로 명시되지 않은) 신라의 노장들에게 수천의 병사를 잃고 격퇴당하고 그들이 너무 늙어 전장에 나오지 못한 세 번째에야 성공한다.
  3. 그런데 개경기습전은 신검이 최승우의 계책대로 잘 따라줘서 된 거였고, 조물성 전투 이후 신라를 공격할땐 전투씬조차 나오지 않았다. 물론 지휘관으로서 참모의 계책을 잘 수용하여 움직이는 것도 중요하기는 하다.
  4. 대야성을 두 번째로 공략할 때 전공을 세웠으나 무리한 추격으로 복병을 만나 추허조가 전사하였다. 역사 기록에서는 사로잡혔다고 나오나 이후 기록이 없다보니 견훤과 신검의 사이가 더 악화되는 장치로서 당시 배우 마찰도 있었던지라 추허조는 이때 일찍 전사하는 걸로 처리된다.
  5. 박술희애술이 일기토를 벌이는데 애술이 밀리는 기색을 보이자 부달과 소달을 보내 3대1로 공격하게 한다. 그러자 고려군에선 유금필이 달려나와 부달과 소달을 눈 깜짝할 새에 베어버렸고 사기가 완전히 떨어진 백제군은 참패한다.
  6. 보고 있으면, 안습을 넘어 불쌍의 극치. 예성강 기습전 직전에는 능환과의 술자리에서 '나는 철이 든 이후 단 하루도 '맑은 머리' 를 가져본 적이 없소이다. 늘 눈치나 보면서 어떻게 하면 혼이 나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아버님 마음에 들 수 있을까. 그렇게 살아왔지요. ' 라고 하기도.
  7. 물론 전 백제군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유금필이 앞을 가로막고 있어 예정된 시각을 지키기는 힘들긴 했지만 이를 구실로 합류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게다가 유금필은 신검의 군대를 막은 뒤 박술희에게 수비를 맡기고 견훤의 본대로 병력을 기동하였는데 이조차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그 유금필은 견훤 앞에 떡하니 나타나 신검의 보고를 무색하게 만들어 버렸다.
  8.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다면 장자고 뭐고 군령에 의해 즉결 처형되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사실 작중에서도 예성강 기습전을 앞두고 총사령관을 결정하는 문제를 최승우와 논의할 때, '그나마 아들이니까 가만 놔 둔 거지 그놈은 군법을 적용해서 죄를 물을 수도 있었다' 라는 대사가 나오긴 한다. 참고로 극중에선 항상 신검과의 비교대상인 이복동생 금강이 이 때 도주하는 아버지를 열심히 호위하고 있었다. 이러니 견훤의 마음이 금강에게 가는게 이상한 일이 아닌 셈.
  9. 고려 황궁을 장악한 뒤 왕건의 옥좌에 실제로 앉아보기까지 한다. 착잡한 심경으로 "이 자리에 앉기가 이렇게도 힘이 든단 말인가." 하고 탄식하는 대사가 백미.
  10. 당시에 왕건이 신검에게 이런 결론을 내렸다면 예측 가능한 이유는 하나 뿐이다. 바로 견훤에 대한 견제이다.
  11. 생략된 대본에는 능환, 능애 등이 처형되고 신검 형제가 끌려간 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왕건이 박술희에게 명령을 내려 잠시 생각을 잘못한데다 상부 어른의 원한을 달래드려야 하니 모조리 제거하라고 명령하는 장면이 있다.
  12. 나중에 두 동생도 형에게 직접 "그러고 보면 형님도 아버님의 급한 성정을 많이 닮지 않으셨습니까" 라고 하자 신검도 "하긴 그 피가 어디로 가겠느냐" 하면서 체념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
  13. 그런데 작전을 실패로 몰아넣을 의견은 귀신 같이 잘 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