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훤(태조 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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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심술궂은 이미지다.[1]
이봐! 왕건이! 올테면 와봐! 강펀치를 날려주겠어!
또졌어!

사극 <태조 왕건>의 등장인물. 전반부의 진 주인공이라고 불렸던 궁예가 퇴장하고 난 뒤 후반부부터 왕건의 대항마로서 그 입지가 부각되었다. 실제 역사에서나 극중에서나 고려를 세우고 난 뒤의 왕건의 최대 라이벌이었고 최고의 맞수였다. 즉 왕건 입장에서는 삼한 통일을 위한 최종 보스. 배우는 중견 연기자 서인석 씨가 맡았다.

1 등장 및 전반부

최초에 견훤은 각간 위홍 밑에 있는 휘하 장수로 등장한다. 본격적으로 처음 활약한 것은 태조 왕건의 5화 말미, 서라벌로 가는 왕륭 일행이 습격을 받은 것을 구원하면서부터였다. 그러다 보니 만일 이 때 구하지 않았다면 삼한의 주인이 바뀌었을 거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2] 등장 당시부터 도적들을 상대로 언월도와 칼을 들고 거의 소드마스터급 활약을 보여주면서 임팩트 있게 등장으며 이어서 6화에서는 견훤이 모시고 있는 위홍을 만나기 위해 마음대로 집에 쳐들어 온 궁예와 맞짱을 떴으나(!!)절대 만나서는 안되는 두 사람이 만났다. 서로 비등한 무예를 보이며 승부를 내지 못했다. 이후 각간 위홍이 죽은 뒤 8화에서 서남해로 떠나라는 영을 받고 서라벌을 떠나게 되며, 왕융 부자와도 작별하게 된다.

서남해에 도착한 다음에는 군사를 이끌고 서남해 일대의 호족과 능창을 위시한 해적의 무리(해상무역을 기반으로 삼고 있던 호족, 군진 세력)들을 공격하러 나섰고, 수달을 제압하고 그가 진심으로 견훤에게 항복해 충성을 하자 이것을 시작으로 종례를 비롯한 서남해의 호족들과 수천 명의 무리가 뒤따르게 되어 군사력을 손에 넣자. 견훤은 마침내 군주가 되려는 야망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능창이 항복하기 전 견훤을 제압하려고 미다부리정의 태수와 짜고 친 술수로 아자개를 빌미로 견훤을 압송하러 왔던 신강을 매를 치고선 신라와의 결별을 선언한 것이었다. 이후 세력을 넓혀간 뒤 무진주를 공략해 스스로 왕을 칭하며 세력을 본격적으로 일으키기 시작하였고, 900년 완산주[3]에서 백제의 뒤를 잇겠다고 선언하며 비로소 황제의 위에 오른다.

완산주를 수도로 삼아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은 연호를 정개(正開)로 하는 등 왕권을 강화하고 신라와 차별화된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으며, 901년에는 첫 번째 대야성 공략을 진행하여 실패하였으나 주변 읍성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던 신라와는 달리 견훤의 세력권은 점점 넓어졌다. 그러나 903년 왕건이 주도한 나주 공방전과 이에 내응한 토착 세력들의 배반, 그리고 밀약에 따라 움직인 신라의 협공으로 인해 금성(나주)이 마진에게 함락당하고, 강주성도 신라에 빼앗기는 등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그리고 이 이후 역사에서나 드라마 안에서나 나주는 견훤의 아킬레스건이 되고 만다. 특히 88화부터 묘사된 두 번째 나주 공방전에서는 의형제인 수달이 적에게 사로잡혔다가 궁예에게 보내져 불태워져 죽고 장군 방희도 신숭겸에 의해 목숨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진도 등의 제해권까지 모조리 상실하는 결정적 타격을 받았고 이후에도 나주를 되찾는 데에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4]

나주 공방전에서의 실패를 만회하고자 최승우의 계책을 받아들여 태봉에 첩자[5]를 보내고 궁예와 왕건을 비롯한 태봉의 신하들 사이를 이간질시키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후 다시 신라를 도모하기 위해 벌인 2차 대야성 전투에서 또 하나의 의형제이자 맹장인 추허조까지 전사하였고[6] 견훤은 분노해 신검과 양검 등을 매질한 뒤 군령을 적용해 죽이려 하나 신하들의 만류로 겨우 그만두게 된다.

2 후반부 최종 보스

2.1 고려와의 혈전

918년 역성혁명으로 궁예가 죽고 그 자리를 왕건이 대신하며 고려를 건국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견훤은 초반에는 고려와 화친하고 세력 확장을 시도하였지만 곧 충돌하게 되어 조물성 전투가 벌어진다.[7] 양 국의 태자들끼리 맞붙은 제 1차 조물성 전투에서는 비슷한 승부가 났지만, 제 2차 조물성 전투에서 전장에 돌림병이 돌아 큰 피해가 발생했을 때 치료약을 찾은 백제와는 달리 고려는 치료약을 찾지 못해 군사 태평이 전장에서 죽고 제대로 싸울 수가 없게 되자, 이를 이용하여 견훤은 왕건과 형제의 예를 맺고 서로 인질을 교환하여 신라를 고립시키게 되었다. 이 작전으로 고려와 백제 사이는 잠깐의 평화를 얻었지만, 고려와 백제와의 관계는 백제가 고려에 볼모로 보낸 진호가 죽게 되고[8] 왕신도 그 소식을 듣자 스스로 죽음을 택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이했고, 이 이후는 후백제의 멸망까지 전쟁이 계속 이어지게 된다.

고려와의 대결 초반은 후백제가 유리했다. 대야성 공략에 성공한 뒤 두 번의 조물성 전투에서도 결과적으로 우위를 점한 것은 물론이고, 서라벌에 쳐들어가 경애왕을 죽게 만드는 한편 경순왕을 즉위시켜 신라를 강제로 자신의 영향력 안에 넣었다. 신라를 구원하기 위해 달려온 고려군을 맞아 벌어진 공산 전투에서는 신숭겸을 비롯해 고려의 공신 여덟을 죽이고 1만여 명의 병사를 전멸시켰고, 왕건을 행방불명 상태까지 몰아넣는 한편 약 20여 년 동안 점령당했던 나주를 잠시나마 다시 되찾았다. 또한 삼년산성 전투에서도 호족들을 항복시켜 승리하는 등, 고려와의 세력 다툼에서 후백제는 약 몇 년 간 우위를 점해 간다.

그러나 고창 전투에서 경애왕의 죽음으로 후백제를 증오하고 있던 고창의 토착 세력인 김선평, 권행, 장정필, 즉 삼태사들의 완강한 저항과 고려의 맹장 유금필 등의 활약에 의해 본대의 절반 정도인 8천 명 이상의 병력이 죽거나 항복하면서 크게 패했고, 이 패배를 기점으로 견훤과 후백제는 내리막길을 타게 된다. 특히 작중에서는 고창 전투에서 협공을 하기로 되어 있던 신검의 부대가 별의별 핑계[9]를 대면서 협공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크게 졌다고 묘사하며, 이 전투가 후백제 내부 분열의 결정적 빌미를 제공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고창 전투의 패배 이후로 견훤의 마음은 더욱 금강에게 기울어졌으나, 최승우의 간곡한 청으로 결국 신검에게 최후의 기회[10] 를 주기로 한다. 개경공략전에 대한 지휘권을 신검에게 맡기면서, 이 작전에 성공해 고려 왕의 목을 가져올 수 있다면 옥좌를 넘겨주겠다고 한 것이다. 만약 작전에 실패한다면 너의 모든 권리는 금강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말과 함께. 이 때 견훤은 신검에게 '아무리 그래도 자식인 너를 내가 미워할 리가 있겠느냐' 며 장남에 대한 애정어린 말을 해 주었고, 정말 오랜만에 '부자지간의 정'이라는 것을 느낀 신검은 감동한 나머지 울먹이기까지 했으며, 작전 성공에 대한 의욕을 더욱 불태운다.

이때 견훤의 대사는 다음과 같다.

"너는 나의 아들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미워하는 이유 중에는 그 근본에 부자 간의 정이 있기 때문이야. 아느냐? 내가 너를 미워한다고? 아니다... 미워한 것은 네가 아니라, 바로 너의 허약함과 부족함 때문이었어. 내가 너를 그 동안 때리고 채찍질한 것은 너의 그 많은 단점들을 덜어주기 위함이었어..."

"이 애비는 지금도 너를 사랑한다. 네 그 많은 증오를 이번 전투에다 불태워 보거라. 그리고 진정으로 이 나라의 태자로서 거듭나거라. 그리고 보이거라! 내게 보이거라! 그리하여 볼 것을 내게 보인다면... 나는 약속대로 너에게 이 옥좌를 줄 것이다. 다음 보위에 관한 일을 종지부를 찍을 것이야! 알겠느냐 신검아. 이 애비의... 약속이다!"

최승우까지 동행하여 해군을 통해 송악 황궁을 직접 쳐들어가 고려의 수군을 무력화시키는데는 성공하지만 때마침 왕건이 서경으로 갔기 때문에 왕건을 잡지 못한다. 비록 왕건을 잡지 못했지만 큰 전과였다. 하지만 유금필이라면 이를 가는 애술의 말을 듣고 신검이 교만하게 곡도로 갔다가 절반 이상의 수군을 잃는 바람에 이번에도 기세를 반전시키지 못했다.[11] 이는 견훤의 조급함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운주 전투를 무리하게 강행하는 원인이 되었다.[12] 때마침 앓던 등창이 원정 중에 더욱 심해져서 진군도 후퇴도 못하는 사이에 고려군이 먼저 운주에 도착한다. 그런 상태에서 총사인 신검이 무리하게 견훤을 적진으로 이끌고 가다가 오도가도 못하는 사이에 고려군에게 포위된다.[13] 서둘러 온 탓에 겨울 준비도 잘 되어있지 않아 병사들이 쓰러지고 사기도 낮아 견훤의 군대는 이번에도 대패하고 만다. 장군 최필은 견훤을 지키다가 전사했으며, 술사 종훈은 포로가 되고 의사 훈겸은 살해당했다.[14] 결국 후백제는 이 패배로 더욱 기세가 기울었으며, 견훤도 건강이 악화되어 운주 전투를 마지막으로 전투에 더 이상 출전할 수 없게 된다.

2.2 금강이가 죽었어, 파진찬이 죽었어!!

운주 전투에서 패하고 돌아온 견훤은 뒤를 이을 후사를 결정하기로 마음먹었고 평소에 자신이 총애하던 금강을 자신의 후계자로 삼으려 하였다. 최승우는 견훤에게 금강이 후사를 잇게 하려면 신검, 양검, 용검을 불러 죽이라 하였으나 견훤은 그래도 자식이라며 이를 따르지 않았고, 차선책으로 양검과 용검을 강주와 무주로 내려보내고 신검을 순행 명목으로 먼 곳에 보낸 뒤 금강을 보위에 올리려고 하였다. 이를 위해 이찬 능환에게서 최승우에게 모든 실권을 넘기고 박영규에게 군권을 넘기는 등, 황제의 권력을 이용해 사전 작업을 하였지만 신검이 한 발 빠르게 이를 알고 양검과 용검을 지방에서 불러들이는 한편, 견훤의 형제에 해당하는 능환, 능애는 물론 신덕, 파달 등과 더불어 반역을 꾀하게 된다.

그리고 935년 3월, 파진찬 최승우금강을 죽인 신검 일당에 의해 후궁 고비 등과 함께 금산사에 유폐되었다. 유폐된 이후에는 신검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유폐까지 당한 정신적 충격에다가, 금강과 파진찬 최승우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까지 겹치며 술로 세월을 보낸다. 심지어 등창을 치료하면서까지 병나발을 불 정도로 술에 쩔어 사는 모습을 보이지만 이런 경악할 만한 모습마저 애처롭게 보일 만큼 안습한 대우를 받은 셈이다. 이렇게 하루하루 죽음을 기다리던 와중에 후백제의 왕사인 경보대사가 방문한다. 능환은 경보대사가 견훤을 만나는걸 반대했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돌려 정식으로 황제 자리를 물려받고 싶던 신검은 경보대사의 방문을 허가했고, 덤으로 경보대사에게 견훤을 잘 구슬려보라고 편지까지 써준다. 그러나 도선대사의 수제자였던 경보대사는 오래전부터 후백제와 견훤의 운명을 예측하고 있었고, 견훤한테 간 것도 사실은 후삼국시대를 끝내 백성들의 고통을 끝내기 위한 것이었다.

경보대사는 견훤에게 최승우와 금강을 위한 천도제를 지낼것을 권하는데, 이를 통해 견훤의 마음의 상처를 달래는 동시에 견훤이 일생동안 이룬 모든 것은 다 수많은 백성들의 희생덕분이었다는걸 일깨워준다. 그리고 194회에 이르러선 왕건과 함께 삼국을 통일하라는 엄청난 발언을 한다. 견훤은 처음엔 화를 내지만, 사실 견훤 역시 신검은 왕건의 상대가 될 수 없으며, 이로 인해 결국 고려가 삼국을 통일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때 고려에서 아자개의 편지를 보내 견훤의 마음을 더욱 흔들었고, 거기에 후궁 고비 역시 '어자피 고려에게 무너질 제국이라면 차라리 견훤 자신의 손으로 후백제를 거두는게 낫다'고 설득하여, 결국 견훤은 .자신이 세운 왕국을 자신이 거두기 위해 고려로 귀순하기로 결심한다. (195회).

견훤은 경보대사에게 연통을 넣어달라고 부탁하여 이를 사위 박영규에게 전하게 하고, 관직을 빼앗기고 승평에서 향리로 지내고 있던 박영규는 국대부인의 뜻을 받아들여 집사 등을 보내어 탈출을 돕기로 한다. 금산사의 낙성법회가 있던 날. 약을 탄 술에 취해 버린 파달 장군과 후백제 군사들을[15] 뒤로 하고 견훤은 도망쳤고, 고령의 나이에다 등창(종기)이 뼈까지 닿아 제대로 일어서기도 힘든 와중에도 무사히 탈출한다. 나주에서 고려군의 호위를 받아 도주할 때 후백제의 장수 상귀가 배를 이끌고 길을 막았지만, 호령 하나로 추적병들이 감히 활을 쏘지 못하게 할 정도의 카리스마를 보여주었고 견훤과 고려군은 우왕좌왕하는 후백제 수군들 사이를 유유히 지나가 무사히 고려로 도주할 수 있었다. 이 견훤의 고려 귀순은 후삼국시대 최고의 전환점이자 클라이막스로, 이 사건으로 인해 태조왕건은 극이 종결되기 2~3화 전까지도 극적 긴장감을 충실히 유지할 수 있었다. 견훤의 탈출극 이후에는 왕건과 견훤이라는 당대의 두 영웅이 나란히 앉아 백제 정벌을 논하는 모습이 그야말로 백미.

2.3 고려에 귀순하다

나주를 출발해 무사히 고려에 다다른 뒤, 견훤은 예전 조물성 전투에서 형제의 예를 맺었을 때처럼 상보로 대우하는 왕건에 대해 아우님이라며 존대를 한다. 이를 부담스러워 하는 왕건에게 이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일이라 하며 왕건이 사양하는데도 패주를 자처하며 한사코 절을 하면서 앞으로 삼한의 주인이 왕건이고 자신도 고려 사람이 되었음을 알린다, 그리고 후백제와의 일전을 준비하는 왕건에게 간청해 일리천 전투에 선봉으로 참여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대 고려국 황제 상부 견훤'의 수기를 내걸고 선봉으로 나선 견훤은 또 다시 강력한 카리스마를 드러낸다. 일단 입고 나온 갑옷부터가 황금색에 용까지 새겨져서, 왕건의 갑옷보다도 더 화려해 오히려 왕건보다 더 황제처럼 보일 정도였고, 호령 하나로 일리천 전투에 참여한 수만 명의 후백제군 병사들과 장수들이 전장에 나타난 견훤의 일갈에 그대로 데꿀멍하며 혼란스러워하며 예봉이 꺾였을 뿐만 아니라 애술, 김총 같은 중요 장수들과 병사들에게 '나의 백성들아. 무기를 버리면 살려줄 것이다'라고 말하며 이들이 대부분 항복하도록 이끄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당연히 이로 인해 후백제군은 완전히 와해되고 만다. 지못미 신검(…),

항복한 애술과 김총이 알려준 정보로 황산벌에서 후백제군이 포위당하며 고려의 승리로 싱겁게 전쟁이 끝나고, 후백제는 망하게 된다. 투항한 신검과 일당들을 처벌하려 하자 견훤은 나라를 들어서 바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항복한 것이라고 말하며 항복한 자들을 엄벌할 것을 요구한다. 반란의 수괴로 담담히 죽음을 맞이하는 능환, 능애나 파달 등과는 달리 자기의 친아들들인 양검과 용검이 투항하면서 더럽게 목숨을 구걸하는 모습을 보이자 견훤은 안타까워하면서도 더욱 기가 막히고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그래도... 백제 황실의 태자들이 아니더냐...! 내가 보고 있는데... 더럽게 목숨을 구걸한단 말이더냐!"

신검은 두 형제와는 달리 목숨을 구걸하지는 않았으나 부자 상봉 자리에서 결코 담담할 수는 없었고 평생 동안의 회한이 끓어넘치는 표정으로 아우들 옆에서 아버지를 응시하는 신검의 표정이 백미. 반란의 수괴에 해당하는 장수와 신료들을 다 죽인 왕건이 자비를 베풀어 양검, 용검은 진주에 유배하고 신검은 살려둘 것을 명하자 분노로 이성을 잃고 노발대발하다가 뼈까지 이른 등창이 악화되어 쓰러진다. 그리고 이를 본 왕건은 결정을 번복하여 세 사람 모두 처형했다. 내레이션을 통해 설명되는 바로는 실제 역사상으로 용검과 양검은 귀양을 갔다가 곧 처형당하고 신검은 이 항복 이후로 정사에 등장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신검 역시 두 아우들의 처형 직후에 처형당했으리라는 설도 있다.[16]

2.4 최후

견훤은 급하게 근처에 있는 절에 옮겨져 시름시름 앓다가 왕건이 마음을 바꿔서 세 아들 모두 목을 베었다는 말을 듣자 그토록 원망했던 아들들이지만 처형되었다는 소식에 안타까워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뒤 '완산주가 그립구나'란 말을 남기고 쓸쓸히 눈을 감는다. 아우와 아들들은 모두 처형되고 자신의 나라는 끝나며 등창이 터진 이후 완산주로 상징되는 후백제 왕으로서 군림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면서 절간에서 사망하는 모습은 그 동안의 위용과 전성기를 생각하면 상당히 서글픈 최후.

실제, 드라마에서는 결국 부자간에 쌓인 원한으로 갈등 해소 그런 거 없고 서로 적이 되어 너 죽고 나 죽자 식으로 끝나기 때문에 안타까워한 시청자들도 있었지만 드라마 방영 당시 출간된 소설 버전에서는 견훤이 죽기 직전 꾸는 꿈에서 신검, 양검, 용검 태자들과 만나는 장면이 있다. 여기서 세 태자들은 "저희가 그렇게 미우셨습니까? 저희도 금강이처럼 그저 아바마마로부터 따뜻한 말 한 마디가 듣고 싶었을 뿐입니다." 라고 울며 하소연하고 견훤이 이에 대해 뉘우치면서 간접적으로나마 화해를 하게 된다는 식으로 눈을 감았다. 드라마에서 궁예에 맞설 정도로 포스있는 캐릭터가 초반에는 견훤밖에 없었기 때문에 사실 태조 왕건에서 초반,후반 스토리 담당은 궁예와 견훤이 주인공이고 왕건은 들러리가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실제로 태조 왕건은 궁예와 견훤이 순서대로 퇴장하고 이후에 통일한 왕건이 군사들에게 환호를 받으면서 끝난다(…).

3 작중 특징

3.1 출중한 무력, 영웅의 기질

후삼국 시대의 황제이지만, 출중한 무력으로도 볼만한 장면이 많았다. 작중 힘이 장사인 것으로 설정되어 있어서 그런지 실제로 드라마 속에서 견훤이 무력의 화신인 항우에 비견되는 장면도 여럿 있었다. 적진 한가운데로 난입해 통나무를 들고 빙글빙글 휠윈드를 돌거나 자기 몸의 반 정도 되는 청동화로를 맨손으로 종잇장처럼 우그러뜨리기도 했다.[17][18] 꽤 비현실적인 장면이지만, 중장년층에서는 "나라를 세울 만한 호걸장사라면 저 정도는 해야지"라는 감상도 있었다... 흠좀무

수달과의 회담 장면에서 수달이 견훤에게 '용맹은 있으나 그것은 필부의 것이다' 라고 일갈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또한 항우에 대한 한신의 평과도 같으니 결국 패권을 차지 하지 못한 견훤에 대한 복선인 듯 하다. 태조 왕건은 작가가 삼국지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은 드라마지만 극 중 견훤의 이미지는 초한지의 항우와 많이 겹친다. 물론 항우처럼 사람을 마구 죽인 학살자는 아니지만.[19]

또한 궁예를 이은 왕건의 라이벌진 주인공답게 그냥 닥치고 무력만 강한 단순무식 캐릭터들과는 일선을 긋는 묘사가 여러 군데에서 나타난다. 무력 못지 않게 성품도 뛰어나 서라벌에 가는 길에 도움을 받은 왕융은 그를 보고 장수 중의 장수라고 평가했으며, 능환도 말하듯 밑바닥에서부터 일어나 나라를 세운 창업자이다 보니 자잘한 법도나 체면에 얽매이지 않고 배포가 큰 모습을 여러 번 보여 준다. 서라벌 공격 작전에서는 위장 작전을 위해 일반 서라벌 군졸의 옷을 입기도 했고,[20] 최승우를 등용하기 위해서는 몸소 찾아가 무릎을 꿇기도 했고 도선대사의 수제자인 경보대사를 왕사로 삼기 위해 몸소 찾아가는 성의를 다하기도 한다.[21] 또한 내레이션을 통해 종종 설명되는 것처럼 후삼국 중 유일하게 오월, 후당 등의 중국과의 외교도 신경쓰는 등 무력 이외의 정치감각과 식견도 상당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3.2 성격적 과오

다만 꼭 중요한 순간에 욱하는 성격으로 인한 과오가 발목을 잡았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성정 자체가 괄괄한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신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한 차별 대우와, 아들들에 대해 박정한 태도가 큰 문제였다. 견훤이 비록 욱하는 성질은 있었으나 물론 어디까지나 왕건에 의해 상대적으로 성질이 있다는 것이지 마치 관심법으로 아무나 두들겨 패 죽이던 궁예처럼 아무 상황에서나 닥치고 날 위해 죽어라를 외치는 막장은 아니었다. 경계를 소홀히 하여 나주를 빼앗긴 의형제 수달이 죽음을 청했을 때 끝내 용서해 준 일이나 군법을 적용해 달라던 장수들 및 전쟁에 실패한 아들들을 죽이려 하다가도 다른 신료들의 청을 받아들여 결국 살려준 일, 그리고 최승우를 등용할 때나 수달, 추허조, 최필 등 의형제 또는 아끼는 수하들에 대한 태도를 보면 아들들에게는 박정해도 전체적으로는 사람의 목숨을 아끼는 군주에 속한다.

견훤이 전쟁에 패한 장수들(특히 태자들)에게 살아 돌아왔다고 갈군다든지, 매질을 한다든지, 자기 아들임에도 처형하라고 명령한다든지 하는 묘사가 많이 보이지만, 이것은 견훤이 아주 큰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왕건이 일반인들이 보기엔 답답할 정도로 인의와 법도를 내세우는 면모를 보이기 때문이다. 고창 전투에서 무려 8000명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워하거나 적병들이라도 목숨은 소중한 것이라며 공격을 말리거나 생포된 수달을 살리려고 분투하거나 신숭겸 등이 죽기를 자처하고 나설 때 "이건 한 나라의 황제가 할 짓이 아니야!"라며 울부짖는 등, 어떤 경우에도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사람의 목숨을 지나치리만큼 소중히 여기는 묘사가 많이 나오는 것이 왕건이니[22] 후삼국 시대 같은 전쟁이 일상화된 시기에선 비현실적으로까지 보이고, 자연히 비교가 될 수밖에 없다. 적어도 말년이 되기 전엔 성격 자체의 문제가 컸다고 보기는 어렵다.[23]

고창 전투에서 돌아와 대노해서 신료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 황제를 위해 목숨을 내놓아 봐라."고 대놓고 강요(...)하고 황태자의 일에 대해 누구도! 누구도!! 누구도!! 말하지 마라고 일갈한 것 역시 어느 정도는 변호의 여지가 있는 것이, (극중 설정이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기 자식들이 고의적으로 안 도와줘서 군사가 전멸하고 자신도 죽음의 위기에 놓인 전투 후에 한 말임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24] 어쨌든 견훤의 작중 행적 중에서 극 후반부 이전에 사람의 목숨을 경박하게 여긴 사례는 서라벌 침공 때 목숨을 구걸하는 경애왕에게 구역질이 난다며 자살을 강요하여 결국 자진을 빙자해 살해하고, 황도를 유린하고, 황후를 자살하게 만든 것이다. 다만 그 잘못이 너무 큰 악평을 듣는 원인이 되어서 발목을 잡았을 뿐.

하지만 극 후반부에는 그나마 잘 조절되고 있던 밸런스가 무너지며 나쁜 면이 심해졌고 실책도 늘어났다. 고창 전투와 운주 전투에서의 패전,자신의 건강(등창), 후사 문제 등으로 점점 조급해지며 최승우나 박영규 등의 일부 신료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인물들을 거의 믿지 못하게 되고, 그 결과 아들들 및 신료들과 대립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작중의 모습만 봐도 고창 전투를 기점으로 나이가 들어가고 몸이 약해지면서 성격이 더욱 조급해지고 사나워져 신료들에게 면박을 주는 경우도 늘어나는 것으로 그려진다. 의형제로서 평생을 함께 한 이찬 능환은 언제부턴가 나올 때마다 면박을 주었다. 특히 금강에게 왕위를 넘겨주기 위해 이찬을 사실상 은퇴시키면서도 또 늙었다고 면박을 주었는데 그 때는 능환이 인상을 쓰고 몸을 부르르 떨며 분노와 모멸감를 참아야 했을 정도였고 친동생 능애를 비롯한 신검을 지지하는 신료들에게는 '네가 뭔데 감히 지껄이느냐'[25] 라는 식으로 대놓고 면박을 주면서 무시하는 장면도 늘어난다.

하지만 신료들에 대한 대접과 달리 아들들에 대해서는 늘 엄격하고 극단적이었다. 특히 맏아들 신검에 대해서는 자기 마음에 차지 않거나 잘못을 저지르면 신료들이 있는 자리에서도 서슴없이 심하게 면박을 주거나 매우 심한 꾸중을 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고 이것이 신검이 비뚤어지는 원인이 되었다. 흔히들 극중 중후반부에 금강이 두각을 나타내며 신검, 양검, 용검을 차별대우하던 때부터 문제가 발생했다고 오해하기 쉬운데, 가만 보면 그렇지만도 않은 게 아래와 같이 첫 대야성 정벌 당시 무사히 똑같이 살아돌아온 친아들 신검의형제로 삼은 부하 추허조에 대한 격렬한 반응의 차이를 보면 아무리 국가간 전투라는 공적인 일임을 감안해도 해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며, 실제로 당시 시청자들조차 평가가 엇갈렸다고 한다.

신검이 살아 돌아왔을 때의 반응(태조 왕건 38화 후반부~39화 초반부)

(견훤) 함께 간 지휘 장수가 쓰러졌는데 네 놈 혼자 도망을 치다니. 네가 그러고도 이 견훤이의 아들이란 말이더냐!! 그러고도 네가 대 백제국의 태자이더냐!! (마구 매질하며) 이놈아!! 이놈아!! (칼을 빼들고) 너는 나라의 명예를 더럽혔다!! 이 칼로 목숨을 끊어라!! 어서!!! 이 애비의 말이 들리지 않느냐. 이 칼로 너의 명예를 지키라 하였다.!!
(견훤) 함께 간 장수가 쓰러졌는데 혼자만 도망쳐 오다니!!
(신검) 아바마마. 그런 것이 아니옵니다. 적군의 공격이 워낙 심하였고 아군의 패색이 짙어 추 장군이 소자를 보고 먼저 전선에서 빠지라고 하여...
(견훤) 그래서...... 그래서 네 놈 혼자 도망을 쳤단 말이더냐!!
(신검) 그러하옵니다. 아바마마. 신은 추 장군의 영을 받았나이다. 아바마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신이 다시 나가 추 장군을 찾아보겠사옵니다!!
(견훤) 그만 물러 가거라. 이 못난 놈아. 네 놈 이름에 검(劍)자를 쓴 것이 부끄럽도다. 신검. 신검이라... 하... 하...... 기가 막힐 일이로다. 썩 물러가거라. 이놈아!!

추허조가 살아 돌아왔을 때의 반응(태조 왕건 39화 초반부)

(견훤) 허조로구나! 네가 살았구나!! 살았어. 살아 돌아왔어!!
(추허조) 폐하. 죽여 주시오소서... 용맹한 폐하의 군대를... 모두 잃었습니다. 군법으로 다스려 주시오소서!!
(견훤) 아... 아니다. 모든 것이 다 짐의 판단이 잘못된 탓이었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 고맙구나. 살아줘서 고맙구나.
(추허조) 폐하. 참으로... 참으로 머리 둘 곳이 없사옵니다. 폐하....
(견훤) 어떻게 살아왔느냐. 다들 네가 죽었다고 했는데 어찌 살아왔느냐.
(추허조) 어쩌다 목숨을 건졌사옵니다. 허나 살아있는 것조차 부끄럽사옵니다
(견훤) 아니다. 잘 와 주었다. 자. 다시 해 보자꾸나!! 저 신라의 조무래기들을 우리 철기군으로 하여금 쑥대밭을 만들어 버릴 것이로다!! 남은 군사들을 다시 한 번 재정비하도록 하라! 이대로 주저앉을 수도 없는 일이오. 전 장수들을 다 모이라고 해!!

이렇게 의형제들이나 부하 장수들에게는 관용을 베푼 반면, 처음 출전한 큰 전투에서 패전하고 돌아온 친아들에게 칼을 던지며 목숨을 끊으라 하고 있으니 반응이 엇갈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처음부터 이런 식이니 벽진군에서 대패한 신검을 책망하며 맨 먼저 한 말이 네가 잃어버린 수천의 군사는 내가 보물처럼 아끼는 대백제국의 백성들인데 네가 허망하게 다 잃어버렸다라는 말이나 고창 전투 후 백제의 일길찬 염흔이 고려로 귀부한 일을 놓고도 신료들이 보는 앞에서 견훤이 신검에다가 대놓고 "너 때문에 갔다는구나. 너를 황태자를 안 시켜줘서 갔다는 게야!!"라고 갈구는 말은 양반으로 들릴 정도다. 물론 추허조는 의형제였기도 했고, 자기 아들들보다 신하의 목숨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대의멸친(大義滅親)[26]의 행보는 신하들에게는 큰 감동과 충성심을 얻을 수 있는 일이며, 이런 대접이 당시 사회상에서는 충분히 용인될 수 있는 일이지만, 그것이 가정교육의 문제점까지 덮어주지는 못하는 것이다.

즉, 주변 사람들과 척을 본격적으로 지기 시작한 것은 고창 전투 후였지만, 아들들에 대해서는 시작부터 엄격하기만 했지 제대로 된 칭찬 한 번 해주지 않았고 금강이 태어나면서 차별이 더 심해진 것이니 가정교육에서는 변호할 만한 구석이 거의 없다 . 물론 작중에서 신검이 고의적으로 아버지가 죽기를 바라는 속내를 드러낸 고창 전투를 비롯하여 작중에서 신검이 헛짓거리를 한 일이 한두번이 아닌 건 사실이고 앞뒤 가리지 않고 신검을 옹호하는 신료들의 태도도 적장자 우선의 원칙만으로 설명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료들과 척을 지고 아들들의 사이를 갈라놓는 원인을 제공한 것은 분명히 견훤이다. 이런 문제는 그가 폐위되어 금산사로 쫓겨나는 빌미가 되었고, 결국 그가 삼한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결정적 원인이 된다.

다만 가정교육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추허조 등의 장수들과 신검을 다르게 대한 건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게 애초에 기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추허조 역시 고위직 장군이라곤 하나 왕의 수하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신검은 자신의 후계자로서 피땀흘러 세운 나라를 물려줄 인물이었다. 단적으로 장군이 실책을 저지르면 전투에서 패하지만 왕이 실정을 하면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
즉, 미래의 왕인 만큼 자신과 똑같은 높디높은 기준을 적용해서 대하는데 당연히 신검의 능력치가 한참 딸리니 까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자식들을 미친듯이 갈궈서 아버지에게 등을 돌리게 만든 점까지 변호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3.3 콩가루 가족사

또한 이 드라마에서는 아자개신검, 금강을 이용해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풀어내며 견훤의 가족사에 얽힌 문제로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계모 때문에 아버지 아자개와 갈등을 빚고 있었는데 먼저 문제를 만든 것은 성을 갈고 갈라져 나온 견훤이었을지 모르지만 아버지가 계속 화해를 거절하고 나중에는 적국의 장수인 왕건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등 뒷목을 잡게 만들면서[27] 결국 생부인 아자개와도 원수 같은 상황이 되었다. 문제는 자신도 맏아들 신검 때문에 속을 썩이다가 계비의 말을 들어 마음에 드는 넷째 아들 금강을 후계자로 세웠는데 신검과 몇몇 신하들에게 재대로 뒷통수를 맞아서 아버지보다 훨씬 더 처참하게 자식들에게 불효를 당하는 꼴이 되고 마는 것.

이런 견훤의 가족사는 호족과 친하게 지내기 위해 정략결혼으로 30명에 가까운 부인을 둔 것을 제외[28]하면 비교적 특기할 게 없는(?) 왕건 쪽의 가정사에 비하면 그야말로 막장 드라마 같은 가정사인지라 시청자들의 흥미를 자극했다. 다만 나중에 아자개가 견훤에게 고려로 오라는 서찰을 썼을 때를 보면 아자개가 견훤과 척을 진 것은 견훤이 성을 갈아버림으로써 아자개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을 부정했기 때문임을 알 수 있으며 아자개는 백 살이 다 되어 마지막 등장할 때까지 마음 속으로는 견훤에 대해 일말의 애정을 가진 것으로 나온다.

3.4 작중 인물들의 평가

태조 왕건이 왕건을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에서 적국의 왕으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작중의 평가는 신라 및 신라를 숭상하는 이들을 제외하면 대체로 좋은 편이다. 처음 등장할때 부터 왕건의 아버지인 왕륭에게 장수 중의 장수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비범한 모습을 보인데다가, 조물성 전투에서 어쩔 수 없이 굴욕적인 화친을 맺어야 했고 공산 전투를 비롯해 여러 번 죽음의 위기를 넘긴 왕건도 견훤을 보고 평하길 "적국의 왕이나 그야말로 영웅이라 할 만 하다고 할 정도. 노구를 이끌고 일리천 전투에 선봉으로 출전한 모습을 보고는 "삼한을 호령했던 영웅이시오, 당연한 일이 아니오"라고 말하는 등, 왕건은 견훤에 대해서 일관되게 후한 평을 내린다.

고려의 인간병기이자 작중에서 견훤을 구해내는 유금필도 견훤에 대해 그 위엄이 성성하게 살아계셨다고 극찬을 하고, 복지겸도 "평생을 걸쳐 뵈었지만 엄청난 분이시다"라고 말하며 담력을 칭찬하는 등 견훤에 대해서는 작중의 평가가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모두 좋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경보대사가 당나라에서 귀국 후 옥룡사에서 있을 때 서로 비슷한 시기에 고려에서는 최응이 직접 앞으로의 상황에 대해 알아보고자 찾아오고, 백제에서는 경보대사를 국사로 모시고자 견훤이 최승우능환 등 신하들을 거느리고 직접 찾아왔던 일이 있었는데 경보대사에게 때가 되면 돕겠다는 말을 듣고 견훤이 떠난 뒤 경보대사가 최응에게 견훤이 어떻느냐는말을 하자 최응이 대답하길, "과연 인물이 비범하고, 도량과 그릇이 큰 사람 같다. 역시 희대의 영웅이라 할 만한 사람이다."고 평을 내렸으며 경보대사도 "나 또한 그리 보았습니다. 고려국 황제와 견주어 조금도 모자라거나 지나침이 없으니 그야말로 희대의 호걸이라 할 만합니다"라며 후한 인물평을 내렸다. 의형제이자 함께 창업의 주역이었던 능환은 "밑바닥에서부터 일어선 분이다 보니 자잘한 법도에 얽매이지 않는 분"이라고 평하였으며, 고창 전투에서 함께 죽을 고비를 넘긴 최승우는 만신창이가 되어 숨어 도망치는 와중에도 한 가닥 여유를 부리는 견훤을 보면서 "신은 이런 폐하의 모습을 뵐 때마다 참으로 놀라곤 하옵니다" 하며 감탄한다.

물론 신라와 그 신라를 따르는 호족들의 평가는 당연히 최악이다. 경애왕을 시해하고 황후가 자살하는 원인을 제공했으니 고창 전투에서 나오는 김선평 같은 인물은 전령에게 대놓고 패륜의 무리를 증오한다고 말할 정도지만 이건 견훤의 업보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이런저런 한계를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 국가를 건설한 영웅 호걸인 만큼, 당연히 작중 인물들의 평가를 좋을 수 밖에 없다.. 말년의 궁예와는 달리, 왕건의 대척점이 아니라 진정한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나레이션으로 나온 바처럼 후삼국시대는 후백제의 건국에서부터 시작하여 후백제의 멸망으로 끝난다. 비록 리즈시절은 2부 잠시 동안에 그쳤지만, 견훤은 이 드라마와 후삼국시대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대단히 상징적인 인물이다.[29] 다만 번외로, 신검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기 직전 악몽을 꿀 때는 왕건에게 살려달라고 싹싹 빌고 애원하면서 잠시 포스가 추락하기도 했다(...)[30] 물론 꿈 속이기는 했지만 나이 들어 목숨을 구걸하는 행위를 극히 혐오하는 견훤의 성격과는 상반된 장면이라 할 수 있다.[31] 그래서 그런지 그도 깨어난 직후 "내가 이런 꿈을 다 꾸다니..." 하고 자괴감에 기가 막혀하면서 절망하는 대사가 나온다.

4 모든 인간 감정을 다 보여준 캐릭터

견훤은 드라마상에 볼 수 있는 모든 인간 감정을 보여주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왕건은 그야말로 돌부처 같은 인물이고, 궁예에 경우 인간을 초월한 성인군자와 인간과 미륵 사이에서 갈등하는 자, 그리고 미치광이 폭군이라는, 어느 방향이든간에 보통사람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 반면에, 견훤에 경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인간적인 모습을 상당히 많이 보인다.

희노애락은 기본이고, 호걸답고 대범한 면모에서부터 꿈속에서 간혹 보여주는 구차한 목숨구걸(...)씬까지 소화했으며 또 한편으로는 불 같은 성미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으로는 자식들을 깊이 사랑하면서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애절함도 품고 있다. 게다가 노년기에는 그야말로 연기의 물이 올라 코믹에서부터 처절함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드물기는 하지만, 그 외에도 가끔 개그씬을 보여주기도 했다.

5 배역의 의의, 주요 대사

태조 왕건의 견훤 역은 배우인 서인석 개인에게도 매우 큰 의의가 있다. 서인석이라는 연기자를 잘 모르던 젊은 시청자들에게도 그 이름을 확실히 알린 계기가 되었을 정도로 견훤 역은 명연기로 칭송을 받았다. 실제로 드라마가 종영된지 10년이 훨씬 넘었음에도 아직도 사극에 서인석이 나오면 견훤 얘기가 꼭 따라나올 정도다. 그럴법한 것이 서인석의 견훤은 사극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인간 감정을 다 보여주었고 연기의 색깔도 매우 강렬했다. 또한 배우의 이미지가 장수나 왕 같은 이미지에 어울리는 편이다 보니 장수와 왕 모두 중첩되는 견훤이 떠오를 수 밖에 없다. 이는 2014년 정도전에서 최영 역할 초기까진 '견훤의 재림'이 아니냐는 우려 아닌 우려가 퍼질 정도였지만 견훤과는 다른 최영 특유의 연기를 선보이면서 그 우려를 벗을수 있었다. 태조 왕건이 종영된 지 무려 12년이 지난 뒤인 것이다.

작중에서의 명대사로는 "수달이가 죽었어!!"[32]"또 졌어! 또 졌어! 신검이가 또 졌어!"가 유명.

여담이지만, 이윤열이 질때 써먹는 동영상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에서 일이 안 풀릴 때 치욕에 떠는 건 궁예도 왕건도 마찬가지이지만, 애초에 궁예의 경우에는 왕건 덕분에 전쟁에 패한 적은 거의 없다시피 했고 왕건은 전쟁에 패해도 혼자 분을 삭이며 부들부들하는 스타일인데 반해 견훤의 경우에는 패배 소식을 접할 때 유독 격하게 반응을 하다 보니 여러 가지 패배에 반응 예시로 사용되기도 한다. 첫 부분만 빼고는 전부 견훤의 안습 행진만 모아놔서 더더욱 안습 악마의 편집

이 대사들을 포함한 인상적인 장면 또는 대사 몇 가지를 들어 보면 이렇다.

글쎄올습니다. 이 난세에 누가 장담을 할 수가 있겠사옵니까. (어린 왕건을 보면서) 자, 공자님. 이. 만나뵙자마자 이별이로군요.

(왕건) 섭섭하옵니다. 견훤 장군님.
(견훤) 장군... 허허허허... 그렇습니다. 이제 명색이나마 장군이 되었사옵니다. 하하하하. 공자님은 분명 훗날에 큰 인물이 되실 겝니다. 그때 꼭 뵐수가 있기를 바랍니다. (8회)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능창이라는 대장군을 나의 아우로 맞았노라. 따라서 이 순간 이후로 이미 나의 형제인 그대들과도 한 형제가 되었음을 천지신명께 고하노니 영원히 삶과 죽음이 함께 할 것이고 오로지 정의의 길만을 갈 것임을 맹세하는 바이니라. 모두 잔을 들라. (12회)
군사들은 들으라! 여기 이 칙사의 말처럼 처음에 나는 신라 조정의 영을 받아 왔느니라. 그러나 세상이 어지럽고 관리들은 썩어서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 있음을 알았느니라. 이제 나는, 백성들을 위해서 이 곳에 남기로 하였느니라!! 이 곳에 새로운 법을 세우고 새로운 희망을 꾸밀 것이니라! 우리는 이제 대의를 좇아 일어섰으니, 우리의 땅을 지키고, 옛 땅을 되찾을 것이니라!! 장졸들은 모두 힘을 모아 새로운 법을 따라야 할 것이니라!! (13회)
그렇소이다. 이 시대에 도적이 아닌 자가 세상에 어디 있겠소. 도적은 도적이되, 나라를 훔치려 하는 도적이올시다. 그것을 훔쳐서 옳게 쓰고 아니 쓰고는 바로 그대들 같은 대학인들이 할 일일 것이외다. 날 좀 도와주시구려. 내 이렇게 진심으로 청하는 바이오. (무릎을 꿇으며) 최 학사. 이렇게 간절히 청하오. 부디 이 사람에게 가르침을 주시오. 최 학사... (18회)
아우야. 일어나거라! 우리는 형제가 아니더냐. 그까짓 금성 고을 하나가 우리 형제의 우애보다 더 중요하단 말이더냐!! 너는 내 아우. 내 영원한 아우 수달이니라!! 성과 영토는 얼마든지 잃었다가 다시 찾을 수가 있지만, 인재를 찾기는 어려운 일이니라. 일어나거라. 자. 어서!! / 뭣들 하느냐. 대장군 수달에게 갑옷과 투구를 갖다 주어라!! (60회[33])
방장군이 죽었어어어어!! 내 아우 수달이가 저들에게 잡혀 있어... 저들에게 말이야!! 꺼이쿠....... 꺼이쿠. 속이 탄다 속이 타... 저들을 구해야 하네. 구해야 해... 수달이 말야. 내 아우 수달이 말야!! 다른 전선에 나가 있는 장수들도 다 오라고 하였어, 난 다시 공격을 할 것이야. 그리고 수달이를 구해 올 것이야!!! (91회)
아니!!! 뭐어어어야!!......죽었어!!! 수달이가 죽었어!! 수달이가!! 보았는가?! 수달이가 죽었다는 것이야. 수달이가 말이야!!!!(최승우 : 고정하시오소서 폐하.) 궁예왕이 수달이를 보자마자 불에 태워 죽였다는 것이야...!!! 보았는가!! 지금 올라온 이 장계를 보았어...!!(최승우 : 예, 폐하..... 신도 억장이 무너지옵니다.) 아...... 아.... 아니. 이럴 수가 있는가!! 아니 궁예왕 그 자가 미...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수달이를 그렇게 참혹하게 죽일 수가 있단 말인가아아아아...... (최승우 : 이미 마진국의 궁예왕은 이성을 잃은지도 꽤 오래 되었다 하옵니다. 자신의 신하를 관심법인가 뭔가로, 짐승처럼 때려 죽이는 정신이상자이옵니다.) 그~↘래↗도 그렇지!!!... 아....! 아니... 적군의 장수라지만 이렇게...이렇게 죽일 수가... 이이이있느으으으은가....(능애 : 폐하, 지금 밖에는 신료들이 폐하의 영을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더 망설이실 것 없습니다. 수달 장군의 복수를 해야 하옵니다, 출전의 영을 내리시오소서!) 으아아아아..... 허허허헝... 그 불 속에서 죽다니... 얼마나 뜨거웠겠는가... 아우야.. 수달 아우야...... 아! 아우야아아아아!!!!!! 이힉......흐윽....하아아아...(94회)
죽었다고... 했느냐...? 추허조가 죽었다고 했어...? 이런... 이런... 못난 놈들... 네 놈들을 살리려고 앞장을 섰다가 그렇게 벌집이 되어서 죽었다고? 추허조가 죽었어!! 네 놈들 때문에 추허조가 죽었어!! 내 아우 추허조가 죽었어!!! 못난 놈들. 못난 놈들!! 이번엔 아주 내 아우들을 죽게 만들어버렸구나. 네 놈이 그러고도 내 아들이냐. 네 놈들이 그러고도 대 백제국의 태자이더냐. 이 놈들아. 못난 놈들!! 네 놈들 목숨을 살리려고 추허조를 죽게 만들었더냐!! (중략) 부끄럽다. 참으로 부끄럽도다!! 여봐라!! 두 태자를 끌어 가라. 가서 목을 베어라!!! 어서 끌고 가서 형을 집행하지 않고 무엇 하는 게야!! 목을 베어라!! (109회)
이게 무슨 소리야!!(두루마리를 흔들며)또졌어!!! 이젠 아예 전멸을 했다고!! 꺼이쿠... 아니. 그러고도 어떻게 저희들만 살아 있어!! 저희들만 어떻게 뻔뻔하게 살아 있어!! 부상? 수천의 군사가 죽었는데 그까짓 화살 한 대 맞은 것이 뭐가 그렇게 대단해!! 꺼이쿠 이런... 이렇게 부끄러울 데가 있는가!! 이젠 아예 다 죽었다는구만. 그러고도 지들만 살아 있다는거야. 지들만!! (중략) 나 같았으면 그 자리에서 할복을 했을게다!! 멍청한 것들 같으니라고!! 결코 용서할 수가 없는 일이야!! (136회)[34]
아 아 아... 되었네 되었어. 절이라니!! 이미 나를 보고 상보라 불러 주었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나는 그대의 형이 되었네. 아니 그런가, 아우님? 하하하하... 과연, 과연 대 고려국의 황제일세!! 아우님... 하하하하. 아우님. 이미 예는 다 끝이 났네!! 아우님도 황제가 아니신가. 같은 황제들끼리 그만하면 충분히 예의는 되었네. 경들은 들으라!! 지금부터 고려국의 황제는 짐의 아우가 되었느니라!! 그러나 여전히 아우님은 고려국의 황제가 분명하니라!! 털끝만큼의 결례도 용서치 않을 것이야. 알겠는가? (149회)
허허. 거 사람 하고는. 왕후장상이 따로 있다던가. 허허허허... 나도 처음에는 시골 호족의 아들이었고 또한 신라의 군관이었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인들 못 하겠는가? 우리는 지금 한 나라의 황도를 점령하러 가는 길일세. 저 서라벌은 신라의 천년의 역사를 담고 있는 곳이야. (154회)
하하하하하... 고생하였도다. 참으로 고생들 하였도다!! 하하... 이것이 왕건 아우의 수급이란 말이지. 왕건 아우의 수급이야!! 암... 얼마나 보고 싶었던 얼굴인가. 아우야. 형이 여기 있노라.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되었는고?? 그래. 간밤에는 잘 주무셨는가. 아우님? 어디 이 형과 얘기를 좀 해 보세. 하하하하... 아... (신숭겸의 수급을 보고 놀라며) 아...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이게 누구인가?[35] (161회)
2만의 군대가 다 당했어!! 그 중에서도 전사자만 8천이야. 8천!! 8천!! 8쳔!!! 이런... 아무리 생각해도 용서할 수가 없어!! 이해를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어!! 더군다가 그 중에 내 아들이, 내 맏아들이 총사로 지휘하는 군대가 그 모양이었어!!! 이 백제군의 명장들이란 장수들이 다 그 모양이었어!! 다!! 다!!! 이런... (중략) 또 이르노라!! 황태자의 문제는 누구도 입에 올리지 마라. 내 소신대로 할 것이야!! 입에 올리는 자는 불문곡직하고 그 목을 벨 것이야. 알겠느냐!! 다시 한 번 이르노라!! 황태자의 문제는 누구도 거론하지 말어!!! 누구도!! 누구도!! 누구도!! 누구도!!! (171회)
허나 황제의 자리는 서열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백성들의 앞날을 책임진 자가 황제이니라. 나라를 책임지고 백성들의 목숨을 책임지고 만년 기업의 앞날을 책임진 자가 황제이니라. 아느냐? 백성들의 배고픔을 덜어주고, 백성들의 잠자리를 살펴주고 저들의 근심과 걱정을 덜어주고 편히 먹고 쉬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황제의 의무야! 아느냐?! (175회)
(위 대사에서 이어지며. 신검을 다독이며) 너는 나의 아들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미워하는 이유는 그 근본에 부자간의 정이 있기 때문이야. 아느냐? 아느냐고 물었다. 내가 너를 미워한다고.....? 아니다. 미워한 것은 네가 아니라 바로 너의 그 허약함과 부족함때문이었어. 내가 너를 그 동안 때리고 채찍질 한 것은 그 많은 단점들을 덜어주기 위함이었어. 이 아비는 지금도 너를 사랑한다. 이번에 너의 그 많은 증오를 모두 이번 전투에 태워보거라.[36] 그리하여 진정으로 이 나라의 태자로 거듭나 보거라. 그리고 보이거라. 내게 보이거라! 그리하여 볼 것을 내어 내게 보인다면 나는 약속대로 너에게 이 옥좌를 줄 것이다. 다음 보위에 관한 일은 종지부를 찍을 것이야. 알겠느냐, 신검아...? 아비의 약속이다.[37] (175회)
나를 보고 밥을 먹으라...?? 기운을 차리라...?? 나라를 도둑맞고 생떼같은 자식을 죽였어!! 평생을 함께 살아 온 파진찬이 죽었어!! 금강이가 죽었어... 파진찬이 죽었어......!! 흐허허헝.... 이 백제가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 신검이 놈이 다 망치는구나. 이 놈이 다 망치는구나. 이 놈이... 이 놈이... 이 미친 놈이......!!! 그렇게 돼 가는구나... 결국은 이... 이렇게 해서 백제가 망하는 것이로구나... 이렇게 해서 왕건 아우가 삼한을 거머쥐는구나... 왕건 아우가... (191회)
그래. 짜거라... 상처는 고통스러운데 마음 한쪽은 시원하구나!! 나는 마실 것이니 너는 짜 보거라!! 이놈의 등창이 이기는가, 술이 이기는가 보자꾸나!! / 이 놈아. 네가 할 일은 고름을 짜는 일이고 내가 할 일은 마시는 일이야!! 우리는 서로의 소임에 충실하면 되는 일이야. 짜거라 이놈아!! 으흐흐흐흐.... 으으으.... 이놈들... 이놈들!!! (193회)
빠르고 편히 간다...? 무엇이 그렇게 빠를 일이 있단 말이더냐. 백제를 떠나는 일인데... 뭘 그리 서둘 일이 있단 말이냐... 으흐흐흐흐... 이 제국을 버리고 떠나는 일인데... 뭘 그리 빠르고 편히 갈게 있다는 말이냐... 뭘... 다시는 오지 못할 길인데... 뭘...... 그리... (197회)
네 이놈 상귀야!! 황제가 부르는데 귀가 먹었느냐, 이놈아!! 그리고 거기 장수들은 들으라! 너희들은 다 낯이 익구나. 나를 알아보겠느냐? 이놈들!! 너희들이 나를 쏠 수가 있단 말이냐!! (198회)
고려국 황제 폐하. 패주 알현이옵니다!! 절 받으시오소서... (199회)
그래도... 백제 황실의 태자들이 아니냐... 내가 보고 있는데... 더럽게 목숨을 구걸한단 말이더냐... 죽이시오. 황제!! 죽이시오. 황제...!!! 백제국을 훔친 놈들이올시다. 나의 제국을 훔쳐서 이렇게 한 놈들이올시다!! 죽이시오!! 죽이시오!! 우선 저 신검이 놈부터 먼저 죽이라고 명하시오!! (200회/제국의 아침 2회)[38]
완산주가... 그립구나... 완산주가... 완산주가... 그립구......[39] (200회)
  1. 복장으로 볼때 조물성 전투, 145화~148화 때로 보인다.
  2. 일행에는 궁예와 종간, 변사부, 장수장 등이 있어서 도적들을 제압하긴 했지만 수적으로는 열세였다.
  3. 오늘날의 전북 전주
  4. 아이러니한 것은 이렇게 계속 발목을 잡았던 나주가 폐위된 이후 견훤이 고려로 무사히 탈출하게 되는 통로가 된 것이다.
  5. 특히 백제의 승려 도우가 여러 가지 의미로 가장 큰 활약을 했다. 나주 공방전에서 형제들이 모두 죽어서 왕건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임춘길의 휘하에 들어가 왕건을 참소하도록 꼬드기고 고경참문을 조작해 왕건을 궁예가 제거하는 빌미를 만들려 하였으며 결국 역성혁명 이후 어설프게 반역을 시도하던 임춘길과 같이 죽고 말았다.
  6. 다만 이는 실제 역사와 다르다. 자세한 내용은 추허조 항목 참조
  7. 실제 역사에서도 작중에서도 왕권 즉위 초기 고려 내부가 어지러울 때 공격을 가히지 않고 오히려 화친한 건 두고두고 견훤의 오판이 된다.
  8. 태조 왕건에서는 최응과 홍유, 박술희 등이 암살을 모의하고, 왕식렴이 그들의 설득을 받아들여 이를 실행한 것으로 묘사되었다.
  9. 절반도 안 되는 유금필의 군대에게 길이 막혔다던가, 돌아갈 수도 있는데 돌아가면 이미 전쟁은 끝나있다던가 등
  10. 실제로는 신검이 아니라 상귀, 상애 장군이 활약한 전투다.
  11. 이 때문에 견훤은 신검을 후계자로 삼는데 또 한번 망설인다. 애당초 송악 공략전이 신검의 힘이 아니라 최승우의 덕이라는 것도 한몫했고.
  12. 견훤의 병을 아는 훈겸이나 신중한 최승우는 말렸지만 무리하게 출전했다.
  13. 운주로 가기 전 금강, 최승우, 박영규, 김총 등은 견훤의 병을 이유로 돌아가자고 했으나 신검 형제나 다른 장수들은 싸우자고 하는 탓에 무리하게 이끌려온다. 비록 자신의 명으로 운주로 가자는 말은 했지만 다 죽어가는 자신을 전쟁터로 데려가려는 신검의 모습에 견훤은 또 한번 실망하게 된다.
  14. 그러나 의사 훈겸과 장군 최필 등은 실제 기록에 의하면 술사 종훈처럼 고려군에 사로잡혔다.
  15. 여담으로, 유폐된 견훤의 처소를 지키다가 탈출계획에 낚인걸 알게 되고 뒤늦게 파달에게 보고하는 병졸 (197화 중반부)이 있는데 이 병졸 역을 맡은 엑스트라 배우는 견훤이 초창기 미다부리 정에 부임해올때 수달의 세력에 매수된 채 견훤에게 깐족대다가 처형당하는 수문장 (9화 후반~10화 초반) 역을 맡았다. 드라마의 극초반과 극후반 모두 견훤에게 뒤통수 맞는.
  16. 방송분에서 편집된 대본을 보면 신검 삼형제가 끌려가는 것을 잠시 바라본 왕건이 박술희에게 '내가 잠시 잘못 생각했고 상부 어른의 한도 풀어드려야 하니 모두 죽여라' 라고 명령하는 부분이 있었다.
  17. 이 통나무 휠윈드도 그냥 바닥에 쓰러진 통나무를 주워 쓴게 아니라, 금성 공방전때 패퇴하던 도중 고려군의 두 기병이 장수들을 낙마시키기 위해 양쪽에서 통나무를 말에 매달고 달려드는 것을 이걸 붙들고선 되레 그 기병들을 낙마시키고 달려드는 보병들을 상대로 무쌍을 펼친 것이다. 즉, (드라마인지라 소품이긴 하지만) 말 두마리로 끌고가던 100kg가 족히 넘는 통나무를 맨손으로 들고 휘두르고 던지면서 병사들을 도륙한 것이다. 임업을 하거나 통나무를 다뤄본 사람들이라면 저정도 통나무의 무게가 가늠이 될 것이다.
  18. 이것은 본래 임꺽정 같은 조선시대 장사들의 이야기에 흔히 나오는 레퍼토리다.
  19. 극중 견훤이 직접적인 전투 외에 사람들이 마구 죽는걸 방조한건 서라벌 기습때가 유일하며 병졸들이 약탈해 신라 궁궐의 내관이나 신하들을 학살할때 최승우가 '학살과 방화를 말려야 한다'라고 하자 '그냥 내버려 둬라'라고 했고 이 경우를 제외하면 포로나 백성 등에 대한 지나친 학살은 없었다.
  20. 이때 최승우가 일반 군졸의 옷을 입은 기분이 어떠냐고 묻자 웃으면서 "나도 원래는 서라벌의 말단 군관 출신이었는데 무엇이 대수이겠는가"라며 자신의 올챙이 시절을 잊지 않고 소탈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상황이 엄청 다르긴 하지만 공산 전투에서 왕건이 살아서 도망치기 위해 백제 군졸의 옷을 입고 좌절하는 모습과 비교해 보면 영(...).
  21. 경보대사가 견훤을 시험해 보기 위해 스님에겐 절을 세번 해야 한다고 하자 능환이나 신검은 발끈했지만, 견훤은 조금의 동요도 없이 웃으며 절을 올렸다. 경보는 이걸 두고 '가장 높은 자리에 있지만 스스로를 낮출줄 안다'고 감탄한다.
  22. 더욱이 그런 왕건조차도 호족들에게 배신당해서 패배한 삼년산성 전투 후 배신한 호족 가족들을 철퇴를 들어 끔살시키면서 충성을 바치지 않으면 죽음이다 라고 일갈한 적이 있을 정도다.
  23. 그러나 왕건의 이런 유비적(...) 캐릭터가 그렇게까지 크게 비판받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견훤. 그래, 숙적인 적국의 황제가 의탁할 정도면 저 정도 인격은 되어야지 라고나 할까....
  24. 물론 극의 원활한 진행을 위한 작가의 설정이겠지만 공교롭게도 이때 고창 전투에서 견훤과 함께 죽을 고생을 한 금강, 최승우, 박영규는 모두 나중에 신검 일파에게 제거되거나 반대편에 서게 되는 인물들이다.
  25. 물론 171화에서 나온 영순 같이 전령의 보고를 받고도 신검을 무리하게 실드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경우도 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편애와 조급함이 버무려지며 견훤의 실책이 더욱 크게 드러난다.
  26. 국가나 사회의 큰 일을 위해서는 부모형제와 같은 혈육의 정도 돌보지 않는다는 뜻의 고사성어
  27. 아자개가 자기와 척을 진 상황들과 고려로 귀부하였다는 소식을 계속 접해 어찌나 격노했는지 가끔 각혈을 할 지경에 이르렀다.
  28. 그나마 드라마 상에서는 시청자들의 관점을 고려했는지 대부분의 부인이 제국의 아침을 포함해 엑스트라로만 등장하고 딱 3명만 중점으로 나왔다.그리고 한명은 중도하차.
  29. 견훤이 나라를 세울 당시 궁예는 아직 기훤과 양길의 수하에 머물러 있었다.
  30. 태조왕건과 작가가 동일한 연개소문(SBS)에서 당 태종역을 맡은 서인석씨는 악몽을 꾸면서 연개소문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여기서도 포스가 추락하기는 마찬가지(...)
  31. 이는 당시 작중 견훤의 불안한 상황을 표현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늘 두려울 것 없던 정복왕인 그가 이런 꿈을 꿀 정도로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감을 보여준 격.
  32. 변형 버전으로 "지난 번에는 수달이가 죽더니 이번에는 허조가 죽었어!"(110화에 나온다), "금강이가 죽었어! 파진찬이 죽었어!"(191화에 나온다)가 있다. 모두 실제로 나오는 견훤의 대사들이다. 참고로 이 죽었어라는 대사는 91화에서도 잠깐 나온 적이 있었으나 유명해진건 94화 이후이다.
  33. 간신히 금성에서 탈출한 수달은, 무견훤의 군대가 무진주에 도착할때 머리를 풀어헤치고는 길가에 꿇어앉아서는 견훤에게 자신의 죄를 물어 처형해달라고 빈다. 이에 견훤은 수달의 뺨을 치고선 위의 대사를 하며 수달을 다독여준다. 그리고 견훤은 훗날 다시 금성을 되찾아 불명예를 씻자고 말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훗날 수달은 금성을 되찾는데 실패했을 뿐더러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리고 견훤은 그 금성을 통해 고려로 간다.
  34. 이 부분은 연전연패에 빡친 한화 이글스 팬으로 빙의된 견훤의 모습(...)으로 패러디되기도 했다.
  35. 이 대사 이후 최승우의 대사에 "왕건 아우(...)가 아니옵니다. 왕건의 의제 신숭겸이옵니다." 라고 하는 깨알같은 말실수가 나온다.
  36. 예성강을 기습해서 개경을 공격하는 작전이었다. 신검이 총사였다.
  37. 견훤이 신검에게 그동안 쌓인 마음을 털어놓는 씬이다. 견훤에 대한 불만이 있던 신검도 그런 아버지의 마음에 울음을 터트린다.
  38. 제국의 아침 2회에서 죽기 직전 왕건의 회상에서 나왔는데 태조 왕건과 후속으로 방영된 제국의 아침 둘다 이환경 작가가 작업한것이라서 가능한것이다.
  39. 유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