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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본 정보
이름 | 신영균(申榮均) |
출생 | 1928년 11월 6일 황해도 평산군 |
본관 | 평산 신씨[1] |
가족 | 배우자 김선희 슬하 1남 1녀 친손주 3명 외손주 2명 |
학력 | 서울대학교 치의학과 학사 서강대학교 문학과 명예박사 |
데뷔 | 1960년 영화 '과부' |
2 상세
주로 60~70년대 영화에서 활동했던 배우. 일본의 대배우 미후네 토시로를 모티브로 선이 굵은 남성적인 캐릭터를 내세웠기 때문에 사극이나 시대극, 혹은 가부장적인 남성 역할로 활동했는데, 신상옥 감독의 연산군이나 대원군 등의 역할로 유명했고, 6.25 당시 대한민국 공군을 소재로 한 빨간 마후라의 주인공을 맡기도 했다. 그 외에도 '미워도 다시 한번' 시리즈 등으로 거의 300여 편에 달하는 영화에서 열연했던 다작 배우.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 3회 수상. 그러나 5공 이후 후술할 개인사업과 정치활동으로 인해 잠정적으로 영화계에서 은퇴했다.
20대 때 학업과 연기에 모두 두각을 보여 진로를 두고 고민하다가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을 지원해 합격하면서 잠깐 연기를 접었다고 한다. 이 후 군의관으로 복무하며 현재의 배우자를 만나고, 개인병원을 개업해 많은 돈을 벌었지만 연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연극무대에 섰고, 이어서 영화에 출연해 오늘날의 레전드가 되었다고 한다. 남성적이면서 지적인 이미지 덕분에 주인공으로 감독들이나 제작자들 사이에서 선호도가 높아 다소 무리를 감수하면서도 다작을 하게 되었다고. 선이 굵은 미남형 얼굴에다 당대의 인기 배우로서는 드물게도 거의 스캔들을 일으키지 않았지만,
195-60년대 홍콩 최고의 여배우였던 임대(林黛, Linda Lin Dai)[2]가 1967년 가스중독으로 사망했을 당시 신영균과의 불륜으로 인해 괴로워 하다 자살했다는 도시전설이 있었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이는 사실무근이다. 임대와 신영균은 홍콩의 쇼브라더스와 한국의 신필름의 합작 영화 달기 에서 같이 연기했던 적이 있다.
사업수완도 뛰어나 1977년에는 명동의 랜드마크 격인 명보극장을 인수했고, 1991년에는 맥도날드의 한국법인인 신맥을 설립하는 등 현금으로만 500억을 상회하는 개인재산을 보유하고 있고[3], 원로 배우 상당수가 그러했듯이 예총 회장을 거쳐 연예계 몫으로 신한국당, 한나라당 전국구 국회의원을 두 차례 지내기도 했다. 다만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성동구 병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통일민주당 박용만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10년, 명보극장과 제주도 신영영화박물관을 영화계, 예술계의 공유재산으로 기증해 화제를 모음과 함께 모처럼 영화계의 좌우합작을 이끌었고, 2012년에는 이순재, 정형돈심양홍 등 서울대 연극동아리 출신 후배들과 함께 '하얀 중립국'이라는 연극에 출연해 대중들에게 모처럼 배우로써의 존재감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