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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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容萬
1924년 03월 15일 - 1996년 10월 19일

대한민국의 전 관료, 정치인이다. 1924년 경상북도 영주군에서 출생하였고 1996년 별세한 정치인이다. 9대, 10대, 12대, 13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호는 영암(嶺岩)이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 재학 중 우익 반탁 운동에 참여하였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 경무대(현 청와대)에서 근무를 한 적이 있었다. 우성 박용만과 동명이인이기 때문에 이승만이 자기를 보면서, 젊을 때를 생각한다는 말을 하였다고, 증언하였다. 그리고 자유당에 몸담았다. 제2공화국 때는 우익 정치인이면서도 의외로 사회대중당에 몸담았다.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하자 야당인 국민의 당, 신민당에 속하였다. 이후 김영삼계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경상북도 영주군-봉화군-영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권성기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김창근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는 정치규제에 묶였다가 해금되었다.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신한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성동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이세기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는 통일민주당(제13대 국회의원. 서울특별시 성동구 병)에 있었다가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 소속이 되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도 민주자유당 당적을 유지하였다.

1996년 10월 조카로부터 "정치 활동을 하느라 문중 일에 소홀하였다"(...) 리얼 조선시대 라는 이유로 흉기에 찔렸다. 이로 인해 치료를 받다가 결국 그 달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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