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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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安大熙
1955년 3월 31일 ~

대한민국의 법조인이다.

2 생애

1955년 경상남도 함안군에서 태어났다. 부산교육대학교 부속초등학교, 서울 숭문중학교,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리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재학하다 중퇴하고 1975년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참고로 사법시험 동기가 노무현대통령이다. 이후 검사로 근무하였다. 2000년대 제16대 대통령 선거 기간에 일어났던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과 노무현 대통령 측근 비리 등을 수사하면서 칼잡이 검사로 유명하였다. 2006년부터 2012년까지 대법관을 역임하였다.

3 정치

2012년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며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의 당선에 기여하였다. 이후 법무법인 평안 소속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2014년 5월 정홍원의 후임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되었으나 전관예우 등의 논란으로 지명 6일만에 사퇴하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 에 입당하여 같은 해 1월 지명직 최고위원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새누리당 후보로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쪽 선거구에 출마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김무성 대표 등 일부 지도부가 험지차출론을 제기하였고, 이에 따라 서울특별시 마포구 갑 선거구에 도전하기로 결정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과연 마포가 험지냐는 논란이 있었다.

해당 지역구에서 제18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비박(친이)계인 강승규와 경쟁 끝에 공천을 받았으나 강승규는 새누리당의 결정에 반발하여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다. 공천 전에는 충분히 당선 가능하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많았으나 정작 공천 이후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후보에게 크게 뒤지는 상황이 되었고, 결국 큰 표 차로 낙선하하였다. 원하던 방식은 아니겠지만 마포가 험지라는 주장이 사실로 입증되었다. 안대희(33.2%)와 강승규(4.26%)의 지지율을 합쳐도 노웅래 후보(51.92%)에게 한참 모자랐다. 표 분산으로 인한 패배 책임을 강승규에게 돌리기 힘들 정도의 표차.

2016년 5월 정운호 게이트와 관련하여 비리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전관예우로 거액을 착복해오던 홍만표 변호사에게 부동산회사 대표 김 모 씨를 소개한 것으로 알려진 것이다. 관련 기사 해당 부동산회사의 계열사인 출판사 '글길나루'에도 안대희 전 대법관이 연루된 정황들이 포착됐다.[1] 이에 대해 안대희는 MBN과의 통화에서 "홍만표 변호사와 전혀 관련이 없다"며 모든 의혹을 부인했다.

국무총리 후보 사퇴후 보여준 여러가지 정치적 선택이 대부분 무리수 [2]였기 때문에 정치적 재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다.
  1. 건물은 홍만표 변호사의 소유로 확인됐지만, '글길나루'를 처음 설립한 사람은 안대희 전 대법관으로 알려졌다. '글길나루'를 세운 이유 자체가 안대희 전 대법관의 법률 서적을 출간하기 위해서 세웠다는 것. '글길나루'는 2015년 사재기 소송에 휘말리며 '도서출판 평안'으로 이름을 바꿨고, 안대희 전 대법관의 법률서적을 계속 출판했다. 참고로 '평안'은 현재 안 전 대법관이 대표변호사로 있는 로펌 이름이기도 하다.
  2. 수도권 험지출마는 사실상 정치적 자살행위였다. 물론 그 당시만 해도 여론조사 결과가 여당에 우호적으로 나왔기 때문에 수도권에서 대패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