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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이름 | Allen Ezail Iverson |
생년월일 | 1975년 6월 7일 |
신장 | 182.8cm (6' 0")[1] |
체중 | 75kg |
포지션 | 포인트 가드, 슈팅 가드 |
드래프트 | 1996년 1라운드 1순위 필라델피아 76ers 지명 |
역대 소속팀 |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1996~2006) 덴버 너게츠(2006~2008) 디트로이트 피스톤즈(2008~2009) 멤피스 그리즐리스(2009) 베식타스(2010~2011) |
역대 등번호 | 3번 1번(피스톤즈) 4번(베식타스) |
주요 수상내역 | 96-97시즌 신인왕 2000-2001 정규시즌 MVP 2001,2005 올스타전 MVP NBA 올스타 11회 득점왕 4회 All-NBA 1st Team 3회 All-NBA 2nd Team 3회 All-NBA 3rd Team 1회 |
1997년 NBA 올해의 신인상 | |||||
데이먼 스타더마이어 | → | 앨런 아이버슨 | → | 팀 던컨 |
2001년 NBA 정규시즌 MVP | |||||
샤킬 오닐 | → | 앨런 아이버슨 | → | 팀 던컨 |
1999년 NBA 올해의 득점왕 | |||||
마이클 조던 | → | 앨런 아이버슨 | → | 샤킬 오닐 | |
2001년 ~ 2002년 NBA 올해의 득점왕 | |||||
샤킬 오닐 | → | 앨런 아이버슨 | → | 트레이시 맥그레디 | |
2005년 NBA 올해의 득점왕 | |||||
트레이시 맥그레디 | → | 앨런 아이버슨 | → | 코비 브라이언트 |
2001년 ~ 2003년 NBA 올해의 스틸왕 | |||||
에디 존스 | → | 앨런 아이버슨 | → | 배론 데이비스 |
2001년 NBA 올스타 MVP | |||||
샤킬 오닐 & 팀 던컨 | → | 앨런 아이버슨 | → | 코비 브라이언트 | |
2005년 NBA 올스타 MVP | |||||
샤킬 오닐 | → | 앨런 아이버슨 | → | 르브론 제임스 |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영구결번 | |
No. 3 |
"Everybody was saying we couldn't win because of our size. But it's not about the size on paper, it's about the size of your heart""다들 우리가 작아서 이길 수 없었다고들 하죠. 하지만 작은건 서류상의 키가 아니라, 당신의 마음입니다." [2]
"I don't wanna be Michael Jordan, I don't wanna be Magic, I don't wanna be Bird or Isiah. I don't wanna be any of those guys. You know, when my career is over, I wanna look in the mirror and say I did it my way."난 마이클 조던도, 매직 존슨도, 래리버드와 토마스가 되고 싶은 게 아닙니다. 전 그 누구와도 닮고 싶지 않습니다. 언젠가 내 커리어가 끝냈을때 거울속의 나를 바라보며 나대로 잘 살았어라고 말할겁니다.
목차
1 개요
농구선수로서 작은 신장이라는 최악의 약점을 가지고 있지만 실력과 인기로 그것을 이겨내고 명예의 전당까지 들어간 선수
전 NBA 선수. 단신의 키[3]로 NBA무대를 누비며 커리어 전반을 통해 많은 활약을 펼쳤다. Only the Strong survive(강자만이 살아남는다-왼팔에 새긴 글귀)
공식적인 별명은 The Answer. 또 다른 별명은 그의 성과 이름의 알파벳 첫자를 딴 A.I 가 있다. 국내에서는 그의 별명을 인용해 답횽, 답사마와 같은 애칭으로 부른다. 또 그의 간지나는 힙합패션 덕분에 아간지라는 별명도 있다. 승리를 갈망하는 그의 화려하고도 처절한 플레이, 그리고 오만함으로 비춰질 정도의 자신감이 매력인 선수이기도 하다.
2 커리어
2.1 NBA 진출 전까지
아이버슨은 그의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채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가 그를 낳은 나이가 고작 15세. 아래로는 여동생이 있다. 집이 워낙 가난했고, 또한 가족 중에 유일한 남자였던 아이버슨은 가장노릇까지 해야 했다. 그의 어머니는 가족을 부양하기위해 열심히 일했다. 아이버슨이 농구선수라는 꿈을 이루게 해주기 위해서 당시에도 엄청난 고가였던 나이키 농구화를 선물로 주기도 했다. 그래서 아이버슨은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기로도 유명했다.
아이버슨은 고등학교 시절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베텔 고등학교 재학시절. 미식축구의 쿼터백으로도 활약했는데, 미식축구와 농구로 주 챔피언을 따는 등 지역에서 엄청난 스타였다. 후에 존 톰슨 주니어가 지휘하는 조지타운 대학에 입학. 2년동안 평균 23.0점, 3.6 리바운드, 4.6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그리고 역대 최고의 드래프트 중 하나로 꼽히는 1996년 드래프트에 전체 1순위로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 지명된다. 최근까지도 최고의 NBA 슈퍼스타로 맹활약했던 코비 브라이언트, 스티브 내쉬, 레이 앨런 등을 제치고 이뤄낸 영광이다.
2.2 필라델피아 시절
그도 신인 시절에는 평범한 비주얼이었다.
필라델피아 팬들과 구단의 엄청난 지원과 성원을 받으면서 아이버슨은 맹활약을 펼친다. 50득점을 기록하기도 했고, 그의 화려한 플레이는 많은 팬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시즌중에는 마이클 조던과의 매치업으로 더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으며, 조던을 크로스오버로 멋지게 속이고 점프슛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필라델피아는 당시 하위권 팀이었다. 아이버슨이 아무리 날라다닌다고 한들, 팀 성적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또한 백코트 파트너였던 제리 스텍하우스와는 궁합이 잘 안맞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둘 다 손에 공이 들어와야 플레이를 하는 선수들인 점도 둘의 시너지 효과가 나오지 않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때쯤 아이버슨에 대한 평가도 루키시즌 초중반에 비해 많이 냉혹해졌다. 개인기량은 출중해도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선수라는 비난이 따라다녔고, 아이버슨 본인 역시도 인터뷰에서 지나치게 자신감이 넘치는 발언으로 존경심도 없는 무례한 선수라는 비난도 받았다.
96-97시즌이 끝난 후, 필라델피아는 새로운 감독으로 명장 래리 브라운을 임명하기에 이른다. 일찍이 인디애나 페이서스에서 레지 밀러를 앞세워 페이서스를 강팀으로 만든 당시 코치경력 20년의 래리 브라운은 NBA를 대표하는 지장이자 용장이었다. 평소 한 성질하는 레지 밀러에도 지지 않고 자신의 강력한 디펜스 중심 팀 철학을 유지해왔던 래리 브라운은 아이버슨의 활용에 매우 고심했다. 엄청난 폭발력과 득점력은 있었으나 키가 작아 수비력에 문제가 있었으며 스타일상 제한적일 수 밖에 없는 전술활용 때문에 아이버슨 중심의 체제를 만들기가 매우 어려웠던 상황.
래리 브라운은 아이버슨을 슈팅 가드로 돌리는 모험을 선택한다. 당시만 해도 겨우 6피트의 작은 키인 아이버슨을 2번으로 돌리는 시도를 보고 래리 브라운이 미쳤다고 생각한 팬과 전문가들이 많았으나, 브라운 감독은 아이버슨의 백코트 파트너로 2번 수비가 가능한 장신에 수비가 좋은 포인트 가드들을 배치하기에 이른다. 에릭 스노우와 애런 맥키가 바로 그들. 자신의 플레이스타일을 좀더 과감하게 펼칠수 있게된 아이버슨은 더욱더 날라다녔다. 98-99시즌엔 8년만에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다. 아이버슨 본인은 이 시즌에 평균득점 1위를 차지하면서, 역대 최단신 득점왕이라는 타이틀을 부여받게 된다.
그리고 2000-2001 시즌에는 팀을 NBA 파이널에까지 올리며 승승장구 했다. 이때 팀의 성적은 동부 전체 1위였고, 아이버슨은 올스타전 MVP, 정규시즌 MVP를 수상하는 등 최고의 시즌을 보내게 된다.[4] 파이널에서는 당시 파이널까지 올라오는 동안 단 1패도 하지 않은 샤킬 오닐과 코비 브라이언트의 LA 레이커스를 상대로 1차전을 먼저 따내는 등 선전했지만, 그 후 내리 4연패하면서 우승하는데는 실패했다. 필라델피아는 당시 동부 컨퍼런스 준결승과 컨퍼런스 결승을 모두 7차전까지 치루고, 아이버슨 역시 여러가지 크고작은 부상을 달고 사는 등 여러가지 악재도 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잘 싸웠다는 평. 게다가 레이커스는 파이널 전까지 모든 시리즈를 스윕으로 마무리하고 온 말 그대로 미친 팀이었고 모두들 파이널에서도 레이커스의 스윕을 예상했기 때문에 레이커스의 우승보다 오히려 1승을 따낸 필라델피아가 더 주목받았을 정도. 샤크에게 도전했던 아이버슨
그러나 그 후 두 시즌에서 1라운드 탈락, 컨퍼런스 준결승에서 탈락하고, 정규시즌 성적 역시 2000-2001 시즌과는 확연히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결국 래리 브라운이 사임을 하게 되면서 둘의 인연도 끝나게 된다. 그리고 이후 아이버슨의 커리어는 조금씩 내리막을 가게 되었다. 브라운 감독이 떠난 이후로 필라델피아는 아이버슨이 트레이드로 팀을 떠난 해까지 고작 플레이오프 1라운드 진출 한번만 했을 정도로 다시 내리막을 탔다. 04-05시즌에는 크리스 웨버까지 트레이드로 모셔왔지만 성적은 역시나 신통치 않았고,[5]결국 06-07시즌 초반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는 그는 덴버 너겟츠로 트레이드 된다.
2.3 덴버 이적, 그리고 몰락
덴버로 합류하면서 많은 이들은 기대를 나타내기고 했다. 당시 덴버에는 젊은 에이스인 카멜로 앤써니가 있었다. 멜로가 합류한 이후 계속 플레이오프 진출은 했지만 죄다 1라운드에서 탈락이었기 때문에 답사마의 합류가 해답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2번의 1라운드 탈락. 멜로와 아이버슨의 시너지 효과도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6] 덴버도 결국 이에 한계를 느꼈는지, 08-09시즌 마침 디트로이트와 천시 빌럽스, 안토니오 맥다이스 ↔ 앨런 아이버슨 트레이드를 단행한다. 결국 아이버슨은 08-09시즌 3게임만에 트레이드 되었다.
허나 디트로이트에서 아이버슨은 크게 활약을 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당시 디트로이트는 조직적인 농구를 하는 팀이었기 때문에 아이버슨과는 궁합이 너무 안맞았다. 그리고 당시 벤치멤버로 출장하라는 감독의 요구도 협박성 멘트로 거절하면서 팀과도 불화를 겪었다. 결국 그 시즌에 석연치않은 시즌 아웃 판정을 받으면서, 08-09시즌을 마감했다. 애시당초 디트로이트에게 아이버슨은 리빌딩을 하기위한 샐러리 비우기용 선수였던 것.
그 후 자유계약 선수가 되었으나, 기량이 하락했고 무엇보다 자존심이 너무 센, 그리고 무리하게 주전을 요구하는 그에게 계약을 제시하는 팀은 거의 없었다. 마이애미가 1년계약을 제시하긴 했지만 역시 서로의 입장차만 보인 채 무산, 한때 그의 은사이기도 했던 래리 브라운이 있는 샬럿 밥캣츠와 계약했다는 뉴스가 뜨기도 했으나 이내 오보로 판정났다. 그 후 어느 구단도 그에게 계약을 제시하지 않다가, 간신히 멤피스 그리즐리스와 1년 베테랑 미니멈 계약을 맺었다. 한때 슈퍼스타였던 그에게는 치욕스러운 계약이었다.
하지만 구단 입단 인터뷰에서 "자존심 회복을 위해서 그리고 팀의 승리를 위해서 노력하겠다."며 각오를 다진 아이버슨이었지만 트레이닝 캠프에서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고 시즌동안(3게임)벤치멤버로 출전하는 것에 대놓고 언론에 불만을 표출하는 등 불화의 표시가 보이더니 이내 방출되었다. 이대로 아이버슨이 은퇴하는거 아닌가라는 우려가 있었으나 다행히 필라델피아가 그와 잔여시즌 계약을 맺으면서 그는 친정팀으로 복귀했다. 이때 아이버슨을 여전히 사랑하는 팬들이 많아서 개인성적이 좋지 않았음에도 올스타전 투표에서 상위권에 랭크되는 등 여전한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는 딸의 병간호를 위해 구단에 휴가를 요청했고, 구단이 이를 승낙함으로써 그의 09-10시즌은 그렇게 끝났다.
그런데 그가 딸의 병간호를 안하고 도박을 하고 있다는 뉴스가 뜨면서 많은 팬들이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아이버슨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이 루머를 부정했다. 또 아내와의 불화로 이혼신청까지 했다는 뉴스가 뜨기도 했다. 루머이든 사실이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슈퍼스타의 몰락치고는 너무 잔인한 편이다.
2.4 해외리그 도전
09-10시즌 종료 후, 그는 어떠한 NBA팀으로도 오퍼를 받질 못했다. 결국 NBA시즌이 시작된 12월까지도 그는 소속팀이 없는 백수였다. 그러다가 터키리그의 베식타스 팀과 2년간 400만 달러에 계약을 맺고 터키로 떠나게 된다. 그의 팬들에게는 정말로 눈물나는 광경이 아닐수 없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그래도 농구를 할수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는 팬도 있었다. 이걸 계기로 다시 NBA에서 뛰는걸 보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저 터키팀과의 계약에 관해 또 루머가 나왔다. 아이버슨이 새로 사귀는 여친의 도박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계약을 했다는 것아이버슨, '내연녀 도박자금' 대느라 터키 행? 하지만 이 뉴스는 팬들도 거의 루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 베식타스와 결별할 것이라는 루머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버슨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역시 이 루머를 부정했다. 다른 뉴스에 따르면 베식타스팀은 다른 선수에게는 급료를 못주고 있으나, 아이버슨에게는 꼬박꼬박 급료를 지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터키에서 심각한 발목부상을 당해 은퇴발표를 할 것이라는 뉴스도 있었다. 가장 최근 뉴스로는 애틀란타[7]에서 신호위반으로 적발되었는데 경찰에게 폭언을 퍼부었다는 뉴스를 마지막으로 그에 대한 소식은 없는 편이다.
그러다가 현지시각으로 6월9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NBA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사를 적극적으로 피력했다. 트레이닝 캠프 자리라도 달라고 하는걸 보면 정말 NBA로 돌아가고 싶은 듯 보였지만 아이버슨도 30대 중반인데다 리그와 선수노조의 협상이 타결되지않아 NBA가 직장폐쇄까지 했기 때문에 전망이 밝지 못했다.트레이닝 캠프 자리라도 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ㅠㅠ
2013년 10월 30일,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홈구장인 웰스 파고 센터에서 공식적으로 은퇴발표를 했다. 이날 팀 개막전을 치른 세븐티식서스는 강력한 우승후보인 마이애미 히트를 상대로 신승을 거두며 아이버슨의 마지막을 빛냈다.
2.5 국가대표
아이버슨의 한계를 보여줬던 시리즈
아이버슨은 스테판 마버리와 팀 던컨 등과 함께 국가대표에 뽑혀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한다. 그러나 개막전에서 15득점 4리바운드 3어시스트를 기록했으나 턴오버를 4개 하고 야투를 5/14에 3점슛을 1/10을 기록했으며, 상대 가드 아로요는 24득점 4리바운드 7어시스트 야투 9/16을 기록했다. 팀 던컨 역시 15득점 16리바운드를 했으나 턴오버를 7개나 저지르면서 팀은 73대92로 말도 안되는 스코어 차이로 패배한다.
그리스와의 경기에서는 77-71로 승리를 거뒀고 본인은 팀 내 최다인 17득점을 기록했으나 야투는 4/14에 불과했다. 호주와에 경기에서는 16득점 야투 6/11로 준수한 활약을 펼치며 89-79로 승리했으나, 리투아니아와의 경기에서 11득점 야투 4/12로 죽쑤면서 팀은 90-94로 패배한다. 이어 이어진 앙골라는 89-53으로 싱겁게 이겼고 스페인 역시도 102-94로 꺾고 본인은 16득점(야투 4/10)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 때 활약한 건 스테판 마버리(31득점 4어시스트 야투 10/15)였다. 그리고 이어진 아르헨티나와이 준결승전에서 10득점 3어시스트(야투 3/12)를 기록했고 미국은 81-89로 패배, 지노빌리는 29득점(야투 9/13)을 기록하면서 팀을 결승으로 올렸다. 미국 대표팀은 동메달 결정전에서 리투아니아를 104-96으로 꺾고 아이버슨 본인은 15득점(야투 5/13)을 기록했다.
아이버슨은 아테네 올림픽에서 치뤄진 8경기에서 13.8점 1.8리바 2.5어시스트를 기록했으나 야투율은 37.8%로 초라했다. 이 올림픽은 미국 농구의 흑역사로 남게 되었다.
3 플레이 스타일
아이버슨의 게임 스타일에 대한 장문 분석
요약하면, 농구장의 마라도나라고 할 수 있다.
아이버슨의 최대 장점은 NBA 역대 최고수준을 자랑하는 스피드와 드리블링이다. 그 스피드를 살린 속공 마무리와 파울유도, 드리블링을 살린 1대1 돌파능력은 그의 다른 모든 약점을 덮어버릴만큼 강력했고 거기다 체력도 매우 뛰어난 선수였다. 반면 공격의 시작이 아이솔레이션에 이은 닥돌이고 항상 최대 스피드로 골대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스타일인 아이버슨은 필연적으로 자기 중심의 전술 배치와 드리블 돌파와 마무리를 할 공간을 받지 못하면 같은 팀원들조차 장애물이 되어(...) 필연적으로 팀 동료들을 병풍으로 만드는 난사쟁이 혹은 턴오버 대마왕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반대로 아이버슨과 같이 뛰는 팀원은 그의 1차원적인 닥돌 혹은 슛이라는 플레이 방식 때문에 항상 다음 플레이를 예측하기 힘들고 아이버슨도 그에 맞춰 움직일 의사가 전혀 없었으므로[8] 커리어 내내 이기적인 볼호그, 블랙홀 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워낙 돌파력과 테크닉이 우월했기 때문에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2001년 이후 큰 변화가 생긴다. NBA가 지역방어를 금지하던 시절엔 반드시 그를 맨투맨으로 수비해야 했기 때문에 그의 개인기 돌파가 정말 엄청났지만 지역방어가 허용되면서 굳이 그의 돌파를 정면에서 막을 필요없이 아이버슨의 도착지점인 골대 앞에 트랩을 펼쳐놓고 수비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에, 더이상 그의 돌파가 위력적일 수 없게 되면서 하락세에 가속이 붙고 말았다.
그의 플레이는 몇몇 사람들은 듀얼 가드로 보는 경향도 보인다. 듀얼가드는 포인트 가드로 쓰자니 스킬이 부족하고, 슈팅 가드로 쓰자니 애매한 신장이 발목을 잡는 포지션이다. 그런데 아이버슨은 신장도 포인트 가드 치고는 작은편이고, 슈팅 가드로써는 그야말로 난쟁이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보다 10cm이상이나 큰 선수들 앞에서 돌파를 해서 득점을 얻어내고, 망설임없이 점프슛을 던지고 성공시키기도 한다. 스피드와 드리블링의 조합은 NBA 역사를 통털어도 찾기 어려운 수준의 조합이라 그 자존심 빼면 시체인 마이클 조던도 아이버슨의 신인시절 그와 매치업을 해보고는 질려서 "만약 나에게 저 친구 나이에 저렇게 플레이하라고 하면 난 못할 것이다." 라고 발언한 바 있다.
게다가 전성기 시절엔 운동능력도 장난 아니어서 183cm라는 단신의 신장으로 엄청난 앨리웁을 성공시키기도 했고, 마이클 조던의 베스트 플레이 중 하나로 꼽히는 스카티 피펜의 자유투 실패를 갑툭튀해서 바로 탭덩크로 처박아 넣는 플레이에다 자신보다 높은 신장의 빅맨들에게 인 유어 페이스까지 먹여줄 정도였다.
또한 커리어 내내 온갖 잔부상을 달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보다 큰 덩치들과 몸을 부딪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이버슨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때 쓰는 대목 중에 하나.
4 아이버슨에 대한 비판
4.1 파이터 정신(?)
아이버슨은 상당히 많은 비판을 받는편이다. 그의 농구스타일과 농구를 대하는 가치관, 그의 언동과 행동등으로. 너무 노골적으로 주전에 대한 집착이 강해서 이것이 팀워크를 해치는 경향이 있는편이다.
실제로 2000-2001 시즌에 부상을 당한적이 있는데 부상회복기간만이라도 벤치에서 뛰라는 팀의 요구를 매몰차게 거부한적도 있다. 디트로이트에서도 그 콧대는 여전해서 벤치에서 뛰라는 요구를 거부하고 "벤치에서 뛸바에는 은퇴할꺼임. 주전 아니면 깝 ㄴㄴ"라고 말했다. 사실 아이버슨의 커리어 중반기에 아이버슨을 밴치멤버로 돌려야 한다는 떡밥이 많이 나온적이 있었고, 디트로이트로 이적한 때에는 그 강도는 높았다. 이 부분에서는 아이버슨빠와 아이버슨까가 극렬하게 대립했다. 빠측의 아이버슨의 기량은 아직까지 변함이 없으며, 주전으로 출전해도 평균18~20득점 이상은 문제없다는 의견과 까측의 나이도 많아서 예전과 같은 스피드를 낼수 없고 수비에서도 약점이 너무 많은 아이버슨이 주전으로 출전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의견이 대립하기도 했다.
그의 농구를 접하는 방식도 비판과 비난의 대상이었다. 소위 "Me First Generation" 의 우두머리 격. 여러 팀 스포츠 중에서 주전 한 명 한 명의 비중이 가장 큰 농구가 "나님 먼저고 팀은 나중임"이라는 마인드를 가진 선수들이 다른 팀 스포츠에 비해 많은 편이다. 다만 아이버슨은 조금 다르게 해석해야 하는 것이, 팀이고 뭐고 내가먼저 가 아닌 내가 곧 팀이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듯 하다. 만약 그가 팀이고 나발이고 없었다면, 그는 커리어 내내 부상을 핑계로 경기뛰기를 거부했을 것이다. 결장한 경기도 꽤 많았지만 그건 그가 큰 부상을 당한때였고, 결코 그걸 핑계로 특별대우를 받았다는 얘기는 없었다. 그가 전성기의 대부분을 보댄 필라델피아의 농구 시스템은 아이버슨이라는 팀을 중심으로 짜여진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쩌면 쉬울수도 있을 듯 보인다. 안티들이 아이버슨을 비판할때 가장 크게 비판하는 부분이며, 이는 안티들이 아이버슨에게 부르는 별명 세글자로 간단하게 요약된다. 바로 아역귀.[9]
4.2 반쪽 선수(?)
공격에 특화되어 있다보니 정작 수비에서는 비판이 많은 편이다. 그의 팬들은 그의 스틸개수와 스틸부분에서 1위를 한 것을 근거로 "아이버슨의 수비가 뭐가 나쁘냐?"라는 반론을 제기한다. 하지만 농구에서 수비의 목적은 공을 뺏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움직임을 봉쇄함으로써, 상대팀의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기본논리이다. 또 04-05시즌 래리 휴즈가 올 디펜시브 팀에 선정된 것을 두고 아이버슨의 수비도 나쁘지 않다고 반론하는 팬도 있었다. 하지만 팬들 사이에서 래리 휴즈의 올 디펜시브 팀 선정은 논란거리였다. NBA전문가인 존 홀린저는 그의 수비를 "사람을 막는게 아니고 공만 뺏는다." 혹평했고, 대개 이 평가는 다른 전문가들도 견해가 일치한 편이다. 그리고 보통 수비를 하다보면 파울개수가 많아지는 편이데, 아이버슨은 특이하게도 커리어를 거듭할수록 평균 파울개수가 줄어들었다. 이는 영리하게 스틸을 한다라는 의견도 있겠지만 반대로는 수비를 안한다라는 것도 내포될 수 있는 것. 그리고 신장이 작기 때문에 수비의 한계점도 드러내고 있다. 게다가 가드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2대2 픽앤롤이나 픽앤팝 수비 역시 안 좋은 편이다.
그가 비판을 많이 받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그의 슛 난사 논란. 이 논란은 그의 커리어동안 그의 안티들의 좋은 떡밥이었다. 그의 통산 야투성공률은 42.5%이다. 평균 한 경기당 21개의 슛을 던지고 9개를 성공시키는 편. 하지만 필라델피아 시절 그는 팀의 에이스였고, 슛을 많이 던질 수 밖에 없었던 입장이었다. 마이클 조던도 아이버슨 만큼 슛시도는 많았다. 하지만 조던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것이 조던은 아이버슨보다 신장과 피지컬이 월등했고, 조던말고도 스카티 피펜이라는 또다른 공격옵션이 있었다. 결정적으로 조던은 아이버슨보다 슛 시도가 많았지만 성공률에서 차이를 보였다. 조던의 통산 야투성공률은 49.7%이며 시카고 시절만 보면 50.5%로 가드로써는 말도 안되는 야투성공률을 기록하였다. 애초에 난사라는건 성공시키지 못했을 때 나오는 것이고 조던은 좋은 성공률로 성공시켰음으로 아이버슨과는 비교불가이다. 자유투 문제에 대한것도 볼호그라고 자유투시도가 적을 이유가 없다. 오히려 공격시도가 많아지므로 자유투가 증가할 것이다. 즉 위의 자유투 관련 내용은 적절하지 않다.
더불어 효율지수를 나타내는 2차 스탯에서도 1차 스탯의 화려함에 비해 높은 편이 아니라는 것도 크다. 선수의 효울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Player Efficiency Rating은 20.9에 불과하고, 3점슛 보정을 한 수치인 Effective Field Goal Percentage는 44.5%, 자유투, 3점, 2점 모두 포함하는 슛의 효율지수인 True Shooting Percentage에서도 51.8%를 기록한다.[10] ORtg[11]는 105, OWS[12]은 3.6이다. 또한 WS/48 수치도 0.125로 역대 1위라는 마이클 조던의 절반밖에 안되는 수치이며 다른 에이스라 불리는 플레이들과 비교해 봐도 코비의 0.181, 르브론의 0.242, 크리스 폴 0.246에 비해서 현저하게 낮은 편이다. 즉 화려하고 멋진 플레이를 하는건 분명하지만 효율적인 측면에서 봤을땐 좀 떨어지는 선수라는 것도 사실이다. 2차스탯의 신뢰도가 떨어진다 하지만 그건 수비쪽 이야기이며 공격쪽은 상당히 발전했다고 볼 만 하다. 무엇보다 효율성 수치가 낮은 선수가 높은 선수가 좋은 선수일 확률이 높은지 아니면 수치가 높은 선수가 낮은 선수보다 좋은 선수일 확률이 높은지는 쉽게 알 수 있다. 파울겟을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TS가 상당히 낮게 나온건 그만큼 야투 성공률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실제 제임스 하든의 경우는 야투율은 떨어지지만 자유투 삥뜯기가 상당히 좋아서 TS%는 높은 편이다.
아이버슨의 팀 구성상 난사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를 갖다 붙이면 변명 못할 선수가 없고 분명히 나타나는 기록에서 떨어지기 때문에 부정하기도 쉽지 않다. 그리고 코비도 난사라고 까이는 마당에 그보다 더 확률이 떨어지는 공격을 하던 아이버슨이 난사가 아니라고 하기에는 이 역시 억지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농구의 2차스탯은 수비쪽에서 허점이 상당히 많고 아직도 보완해야 할 스탯들이지만 공격쪽에서는 비교적 정확하다. 수비쪽에서는 원래 비판을 받았던 선수인데 공격쪽에서도 효율이 떨어진다면 엄청난 선수들인 조던, 코비, 르브론에 뒤처지는건 당연한 수순.[13]
팀 구성의 제약이 많다는 의미는 다르게 이야기 하면 이 선수를 중심으로 팀을 꾸리기 힘들다는 의미도 있다. 파울아웃에서 손대범 편집장도 릴라드와의 비교에서 폭발력은 아이버슨이 한 수 위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팀을 꾸려 한 명을 데려간다면 아이버슨보단 릴라드를 선택 한다고 말을 하였다. 물론 현 시대에서 아이버슨이 뛰면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라는 이야기도 하였다.[14] 무엇보다 우승을 한번도 못했고 플레이 스타일상 동료들이 희생을 할 수 밖에 없고, 실제 전문가들도 아이버슨이 과대 평가를 받는 슈팅가드라 이야기 하기도 했다. 희생을 하는 이유는 아이버슨의 플레이 스타일 자체가 볼을 오래 소유하고 있고 득점 욕심히 상당히 강하고 그를 위해서 공간을 자주 내줘야 하기 때문. 그리고 그 스타일상 팀 동료들은 3&D가 강요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는 르브론 제임스역시도 지적되는 문제이지만 르브론은 아이버슨보다 득점부터 시작해서 훨씬 효율성이 뛰어난 플레이를 했으며, 무엇보다 우승을 했다.
국가대표 경력 역시도 아이버슨을 잘 보여준 좋은 예시이다. 아테네 올림픽에서 그는 팀내 득점 1위를 기록했지만 야투율이 상당히 처참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미국은 3위로 동메달을 딴다.
4.2.1 반론 및 보강
아이버슨의 수비는 과도하게 저평가 당하는 경향이 크다는 주장도 있다. 키가 작아서 상대팀의 포인트가드를 막아야했던건 사실이지만 포인트가드 수비에서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고 스노우, 린치와 함께하는 압박은 필라델피아를 강력한 수비팀으로 만들어 주었다. 물론 나이를 먹어가며 수비도 점점 약해진건 사실이지만 반쪽 선수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수비가 약하진 않았고 위의 수비를 안 한다는 평가는 아이버슨은 리그에서 가장 열정적인 플레이어였다는 점, 승리를 항상 열망하며 몸을 아끼지 않는 아이버슨의 플레이를 보았다면 말도 안되는 평가라는 것이다.
아이버슨은 커리어 동안 자기가 거의 공격의 중심이고 주변의 동료들은 자기임무에 충실한 롤플레이어들이 많다보니, 혼자 공격을 도맡아 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슛시도가 많을 수 밖에 없었다는 변호도 있다. 그는 난사쟁이라기 보다는 팀 시스템상 슛을 던지고 싶지 않아도 슛을 많이 던지고 성공시켜야 하는 입장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만약 그가 볼호그[15] 스타일의 난사쟁이라면 농구선수가 가장 손쉽게 득점할 수 있는 자유투를 얻는 능력이라도 떨어져야 할텐데, 아이버슨은 그런것도 아니다. 커리어 평균 8.9개의 자유투를 얻어냈으면 못해도 자유투로 7점이나 10점 이상은 할 수 있다. 성공률도 78%로 나쁘지 않은 편.
하지만 반대로 이는 좋은 편도 아니며, 예전이나 지금이나 아이버슨 = 난사쟁이 논란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편이다. 옵션이 있었다 해도 지나치게 홀로 하는 플레이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소년가장이라 손해를 본다라고 해도, 하든같은 자유투 귀신 비교사례가 있기 때문에 단순히 좋게 봐주기도 어렵다.
수비 스탯에 대한 변호로는, 농구의 2차 스탯은, 수비 한정해서 야구의 2차스탯에 비해 신뢰성이 떨어지는 편이라는 것을 지적하는 경우가 많다. 공격 관련 스탯이나, 특히 TS%같은 경우 신뢰도가 높은 편이지만 마진 스탯의 경우 아직까지 관련 스탯들의 신뢰성에 대해서는 의심이 많고, 윈셰어같은 경우는 팀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특히 팀의 수비력이 높을수록 디펜시브 윈셰어가 높게 나온다. 그런데 르브론, 조던, 코비, 아이버슨 중 전체 커리어로 봤을 때 아이버슨이 가장 약체 팀에서 뛰어왔음은 부정할 수 없고, 약체팀이다 보니 수비도 약했음이 사실이다.[16]
아이버슨이 분명 르브론, 조던, 코비보다 효율성이 떨어지는건 사실이지만 피펜과 함께한 조던, 웨이드, 보쉬와 함께 뛴 르브론[17], 샤크, 가솔과 함께한 코비와 달리 아이버슨은 커리어 내내 멜로와 함께한 덴버시절 2시즌을 제외하면 조력자라고 할 만한 선수가 없었고 바로 그 덴버시절 아이버슨의 야투율은 46%정도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아이버슨의 필라델피아 원맨팀 시절 아이버슨 외에 공격을 마땅히 할 선수가 없다보니 상대팀은 더블팀 등 집중 견제를 피펜과 함께한 조던, 마이애미 르브론, 샤크와 함께한 코비보다 훨씬 쉽게 할 수 있었고 공격할 선수가 없는 팀 사정상 많은 슈팅시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덴버에서 카멜로 앤써니와 함께 뛰자 야투율이 급상승한 점은 분명하고, 아이버슨이 코비, 조던, 르브론보다 기록이 떨어지는건 사실이지만 이런 역대급 선수들보다 기록이 낮다고 난사라고 부른다는건 다소 박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야투율로 표현되지 않는 아이버슨의 강점은 엄청난 파울겟 능력이다. 아이버슨에게 파울을 범하는 선수는 아이버슨의 매치업 혹은 상대팀 빅맨인 경우가 많은데 당시 6성슈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스윙맨 전성시대임을 감안하면 아이버슨의 매치업은 상대팀의 주 득점원인 경우가 많았고, 상대의 주 득점원, 빅맨에게 많은 파울을 범하게 하여 상대의 게임플랜을 망칠 수도 있기에 아이버슨의 파울겟능력은 엄청난 강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00-01시즌 아이버슨의 팀동료들을 살펴보면 에릭 스노우 평균득점 9.8점, 조지 린치 8.4점 타이론 힐 9.6점, 애런 맥키 11.6점, 토니 쿠코치 7.6점, 디켐베 무톰보 10점이었다. 무톰보는 시즌 종반에 팀에 합류했음을 감안하면 아이버슨은 나머지 저 멤버들을 이끌고 엄청난 집중견제를 뚫고 평균득점 31.1점을 기록하며 팀을 파이널로 견인했다. 이정도의 멤버구성으로 파이널에 진출시키는 것은 코비도, 르브론도 해내지 못한 것이다. 아이버슨이 물론 코비, 르브론보다 뛰어난 선수가 아닌 것은 사실이다. 다만 당시 필라델피아라는 팀을 알고 이해한다면, 아이버슨에게 난사라는 꼬리표는 절대 붙일 수 없을 것이다.
단, 상술한 파울겟 능력은 야투율에는 포함되지 않을지언정 TS%에 포함되는데, TS% 역시 다른 플레이어들에 비해 상당히 낮은 것을 생각하면 위 주장엔 어느 정도의 구멍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팀 사정은 팀 사정이고 난사는 난사이기 때문에, 하든도 휴스턴에 들어와 난사라는 얘기는 죽어라고 들었다. 그러니 공격효율성이 낮은 이유를 변호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공격효율성이 낮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이다.
또한 아이버슨은 아테네 올림픽에서의 심각한 야투율 부진이라는 오점도 남긴 바 있으며, 이는 수준미달의 팀원들 때문에 무리하게 공격을 하다가 공격효율성이 낮아진다, 라는 것에 대한 반박이 될 수 있다.
아이버슨은 팀 동료들을 희생한다기 보다는 팀 구성에 제약이 어느정도 있는 편이다. 게다가 슈퍼스타 한 명이 있으면 그 선수를 중심으로 팀을 구성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 또한 위의 과대평가라는 말은 이번 ESPN 올타임 슈팅가드를 뽑을 때 한명의 전문가가 한 말을 인용한 듯한데, 그 전문가를 제외한 나머지 전문가들에 의해 아이버슨은 이번 순위에서 역대 6위의 슈팅가드에 뽑혔다. 한 명의 전문가가 과대평가라고 말했다고 해서 다수의 전문가가 포지션 올타임 순위 6위로 뽑은 선수를 과대평가라고 볼 순 없다. 근데 ESPN 전문가 랭킹은 욕 들입다 많이 먹는 걸로 유명하다는 것도 기억하자
4.2.2 2차 스탯에 입각한 아이버슨의 공격 효율성
- 평균 득점: 26.7
- 마이클 조던: 30.1
- 코비 브라이언트: 25.0
- 드웨인 웨이드: 23.7
- 클라이드 드렉슬러: 20.4
- 제임스 하든: 21.1
- Effective Field Goal Percentage: 45.2%
- 마이클 조던: 50.9%
- 코비 브라이언트: 48.2%
- 드웨인 웨이드 50.1%
- 클라이드 드렉슬러 49.5%
- 제임스 하든: 51.7%
- True Shooting Percentage: 51.8%
- 마이클 조던: 56.9%
- 코비 브라이언트: 55.0%
- 드웨인 웨이드: 56.2%
- 클라이드 드렉슬러: 54.7%
- 제임스 하든: 60.5%[18]
- Offensive Rating: 105
- 마이클 조던: 118
- 코비 브라이언트: 110
- 드웨인 웨이드: 110
- 클라이드 드렉슬러: 113
- 제임스 하든: 117
- Player Efficiency Rating: 20.9
- 마이클 조던: 27.9
- 코비 브라이언트: 22.9
- 드웨인 웨이드: 24.7
- 클라이드 드렉슬러: 21.1
- 제임스 하든: 22.2
- Offensive Win Share: 3.6
- 마이클 조던: 7.0
- 코비 브라이언트: 4.4
- 드웨인 웨이드: 4.3
- 클라이드 드렉슬러: 4.5
- 제임스 하든: 5.4
플레이오프에서 아이버슨은 평균 29.7점에 6.0어시스트를 기록하지만 야투 성공률은 40.1%, TS%는 48.9%, eFG%는 43.4%, ORtg는 105, PER은 21.1, OWs는 3.5를 기록했다.
4.3 팀 연습 게을리하기
필라델피아 시절부터 팀 연습에의 잦은 결석, 지각으로 마찰을 빚었다. 그에 대해 지적하는 감독(래리 브라운)에 대해 '경기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고, 연습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는 인터뷰를 해서 대차게 까였다. 당시 인터뷰 동영상은 여기. #practice란 단어를 딱 20번 썼다.
이에 대한 래리 브라운의 반응은 '당신이 사장으로 있는 회사에, 매일 같이 늦고, 때로는 아예 출석조차 하지 않는 회사원이 있으면 이해할수 있겠는가'였다. 훗날의 아이버슨은 당시의 자신이 미숙했다고 인정했다.
위 인터뷰의 힙합 리믹스 버전도 있다. #
이후 덴버에서 디트로이트로 트레이드되어 기자회견을 가질 당시, 아이버슨이 감독이 요구하는 대로 최선을 다해 수행할 것이라고 말하자 어느 용자기자가 "그래서 연습은 할꺼임?"이라고 물었고, 아이버슨은 넉살좋게 과거 자신의 답변을 그대로 사용하며 기자회견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Practice? Part 2
5 기타
- 물러섬없는 저돌성. 그리고 언제나 자신감 넘치는 모습, 콘로우 헤어스타일과 헤어밴드, 그리고 힙합패션은 그를 상징하는 아이콘중의 하나다. NBA에서 콘로우 헤어를 유행시킨 장본인. 자신감 넘치고 할말은 꼭 하는 스타일이었던 탓에 NBA와도 마찰을 겪은적도 있었고, 언론도 대부분은 아이버슨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힙합앨범도 낸 적이 있는데, 앨범내용이 폭력, 여성과 동성애 비하가 많아서 데이비드 스턴 총재가 앨범가사를 수정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NBA가 드레스코드를 시행하려 할때도 적극적으로 반대하기도 했다.[19]
- 앨런 아이버슨은 팬들도 많지만 또 안티도 상당한 편이다. 아이버슨 본인도 안티가 많은건 인지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아이버슨은 보통 자신의 안티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안쓰는 편. 아니 무관심하다고 보는 편이 옳겠다. 팬들에게는 상당히 친절한 편. 싸인을 해달라는 요구를 거절하지 않고 해주며 한사람에게 싸인을 두번 해줬다는 일화도 있다. 다만 기자에게는 불친절하다고 알려져있다. 특히 경기전에 인터뷰를 요청하면 욕을 할 정도라고.
- 은퇴 후 계속된 재정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
2014년 8월 루키지에 따르면 아틀란타에서 구걸하는 것이 목격되었다는 기사가 있다.[20] 다만 기사의 원본이 찌라시로 유명한 The NewsNerd라 기사의 신뢰성이 높다고는 볼 수 없다. 그에 대한 반박 기사도 있다.[21]
- 해당 사이트는 찌라시 정도가 아니라 가짜 뉴스를 생산하는 패러디 사이트이다. 자세히 보면 메인화면 아래쪽에 해당 사이트의 기사는 패러디라는 문구가 있다. 참고로 여기 올라온 기사는 아이버슨뿐 아니라 복서 메이웨더 파산설, 애플의 삼성 인수설같은 말도 안되는 기사가 넘쳐난다. 즉, 애초에 가짜라고 못 박아놓고 대놓고 말도 안되는 기사를 올리는 장난사이트에 루키가 낚인셈. 결국 루키는 며칠후 "아이버슨 구걸 기사는 가짜"란 기사를 냈다. 그러나 정작 자기들이 오보를 냈다는 건 쏙 빼놓고 마치 "아이버슨 구걸설"이 가짜라는 걸 밝히는 양 기사를 써서 팬들의 분노를 샀다.
유체이탈 화법 쩝니다또한 논란이 된 기사는 인터넷에만 올라왔음에도 독자에 대한 사과는 인터넷엔 안하고 다음달 잡지에만 딱 두 줄 써서 더욱 까였다. - 참고로 "해당 사이트의 정보는 가짜입니다"는 식으로 밝히는 걸 disclaimer라고 하는데 이건 명예훼손 등 소송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이미 패러디라고 밝힌만큼 고의로 비방한건 아니라는 논리. 그러나 루키의 해당 기사에는 이런 게 없는만큼 명백한 오보이고 그럴 확률은 한없이 낮지만 만약 이 기사를 접한 아이버슨 측이 고소해도 할말이 없다. 현실적으로 아이버슨이 머나먼 나라의 조그만 잡지사까지 전부 고소할 일은 없겠지만...
- NBPA Awards 라는 NBA선수들이 뽑는 시상식에서 GAME-CHANGER HONOR를 수상하였다. 2000년대 초반등장해 가드포지션의 패러다임을 바꾸었으며, 단신선수들도 가능하다는 희망등 현재 NBA농구경기를 바꾸었고 많은 선수들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수상했다. 대표적으로 르브론이 가장 존경하는 선수로 조던과 아이버슨을 뽑았다.
- 샤킬 오닐, 야오밍과 함께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 ↑ 1996년 드래프트 측정 결과 맨발 신장 6' 0" = 182.8cm
- ↑ 그 유명한 "농구는 신장이 아닌 심장으로 하는 것이다." 라는 명언으로 알려진 발언으로, 원문을 직역에 가깝게 번역한 것이다. 초월번역 항목 내용 참조.
- ↑ 일반인이라면 장신에 속하지만(미국 흑인 남성의 평균키는 179cm.) NBA 무대에서 6' 0"(약 183cm)는 많이 작은편에 속한다. 참고로 NBA의 평균 신장은 약 6피트 7인치(201cm)이다.
- ↑ 참고로 이 시즌 파이널 MVP를 제외한 모든 개인상은 식서스가 차지했다. 정규시즌 MVP와 올스타전 MVP는 아이버슨, 수비상은 시즌 중반 트레이드로 합류한 디켐베 무톰보, 감독상은 래리 브라운, 식스맨 상은 애런 맥키. 파이널 MVP만 차지했다면 최고의 시즌이었겠지만....
- ↑ 부상으로 옛날의 운동능력을 상실했지만 당시 웨버의 존재감이 너무 거대해서 아이버슨도 그가 팀에 온다는 말에 "농담하지 마셈"이라고 할 정도였다.
- ↑ 오히려 둘이 서로의 공격기회를 나누다보니 같이 있기 전보다 둘 다 평균득점이 떨어졌다.
- ↑ 그는 애틀란타에 거주한다.
- ↑ 이것이 아이버슨을 포인트 가드라고 보지 않는 결정적 이유다. 농구에서 포인트가드가 공격의 중심이 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고, 심지어 현시대 NBA는 포인트 가드가 공격의 중심이 맞다. 하지만 적어도 그 공격이 유기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볼핸들러의 플레이를 보고 나머지 4명이 약속한대로 다음 행동을 결정하고 볼핸들러도 공격흐름을 유연하게 이어가도록 하는, 흔히 말하는 조직력이라는게 배어있어야 한다. 그런데 아이버슨의 플레이는 그런게 없이 자기 팀원들 조차 공격하는 아이버슨이 다음에 뭘 할지 모르고, 때문에 아이버슨 눈치만 보다가 공격권이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플레이를 하려면 최소한 코비 브라이언트처럼 정해진 공간,시간 내에서만 개인기질과 난사를 하던가(...) 마사장님은 항상 옳다라고 결정하고 들어가던가 그래야 한다.
- ↑ 역귀(疫鬼). 한마디로 아이버슨이 이적한 팀에서 필라델피아에서 그랬던것처럼 자기중심의 플레이를 해서 팀 자체가 시망이 되는걸 역병을 옮기는거에 비유한것이다(...)그러나 이는 아이버슨입장에서 상당히 억울한별명인게 아이버슨은 덴버에서도 좋은 활약을 했고 덴버의 성적이 PO 1라운드에 그친건 아이버슨이아닌 빅맨들이 부상탓이 크다.
- ↑ 또 난사라 까이는 코비 브라이언트는 55.5%이며 르브론 제임스는 58.1% 마이클 조던은 56.9% 이다.
- ↑ 100포제션 기준 득점 기대치
- ↑ 공격 부문 승리 기여도
- ↑ 애초에 전문가들 순위에서도 차이가 상당히 난다. 조던은 부동의 1위이고 르브론 역시 최근에 현역 버프를 받아 올라갔으며, 코비는 못해도 15위 안에는 무조건 드는 선수이다.
- ↑ 릴라드는 연습을 빼먹지도 않겠다 라는 말도 덤으로 하였다.
- ↑ 공을 잡고 질질 끄는 것
- ↑ 물론 2000년대 초반에 필라델피아는 강력한 수비팀이었지만 전체 커리어로 보면 나머지 세 선수에 비해 아이버슨의 팀은 약체팀에 속하는 편이다.
- ↑ 물론 클블 1기 시절은 명백히 원맨팀이었다.
- ↑ 하든도 팀에서 아이버슨과 같은 절망적인 소년가장 위치에 있다 보니 좋은 비교 사례가 된다. 야투율이 아무리 떨어져도 역대급 자유투 삥뜯기는 TS%가 높아지는 기적을 만들...
- ↑ 이때 아이버슨이 한 말이 "살인범에게 양복을 입힌다고 해서 그가 살인범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니다 (You can put a murderer in a suit, and he's still a murderer)." 당시 드레스코드 도입이 흑인 선수들을 겨냥한다고 판단한 아이버슨이 뱉은 말이다.
- ↑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nba&ctg=news&mod=read&office_id=398&article_id=0000001822 , http://www.thenewsnerd.com/sports/allen-iverson-begging-for-change-in-atlanta/
- ↑ http://www.theepochtimes.com/n3/889656-allen-iverson-seen-begging-for-change-outside-atlantas-lenox-mall-is-fa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