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멜로 앤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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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닉스 No. 7
카멜로 앤서니(Carmelo Kiyan Anthony)
생년월일1984년 5월 29일
출신학교시라큐스 대학교
신장199cm (6' 6.25")[1]
체중108kg (240 lbs)[2]
포지션스몰 포워드
드래프트2003년 1라운드 3순위
덴버 너겟츠에 지명
역대 소속팀덴버 너겟츠(2003~2011)
뉴욕 닉스(2011~현재)
등번호15번(덴버)
7번(뉴욕)
수상내역NBA All-Star 9회 (2007-2008, 2010-2016)
All-NBA Second Team 2회 (2010, 2013)
All-NBA Third Team 4회 (2006-2007, 2009, 2012)
NBA Rookie Challenge MVP (2005)
NBA All-Rookie First Team (2004)
NCAA Basketball Tournament MOP (2003)
2013년 NBA 올해의 득점왕
케빈 듀란트카멜로 앤서니케빈 듀란트

1 개요

NBA 선수. 별명은 이름을 줄인 '멜로(Melo)'. 역대 최고의 드래프트 중 하나로 불리우는 2003년에 3순위로 지명된 선수. 대학시절 그야말로 전미를 흥분시킬 정도의 포스가 있었으나... 데뷔부터 같은 포지션에 한학년 아래인 르브론 제임스와 라이벌 구도가 되었고 그때부터 거의 콩라인 대접이었다. 초기에는 행실에도 문제가 좀 많아서 르브론 제임스와는 달리 안티들의 먹잇감이었으나, 지금은 결혼도 하고 행실도 고쳐져서 안티도 많이 줄었다. 아직 경기에 임하는 자세에 문제가 있다고 욕을 먹기도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성숙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관계로 비판이 점점 줄어드는 추세..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푸에르토리코인이고 어머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다. 8살때 메릴랜드주 볼티모어로 이사를 갔다. 고등학교때부터 볼티모어 지역 최고의 고등학교 선수로서 주목을 많이 받았으며, 지역의 올해의 선수상을 싹쓸이 했다.

2002년만해도 카멜로 앤서니는 그때부터 주목받던 1년 후배이자 라이벌인 르브론 제임스처럼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NBA 드래프트를 신청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때만 해도 야오밍외에는 이렇다할 전체 1번이 유력한 유망주가 없었기에 빨리 데뷔해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NBA를 선택하는 것이 앤서니의 최선의 선택이라고 보였다.

그러나 카멜로의 선택은 놀랍게도 시라큐스 대학교 진학.

시라큐스 대학교는 NCAA의 전통적인 명문이긴 하지만 경기 스타일은 1976년 짐 뵈하임 감독이 온 이래 2-3 지역방어 하나만 철저하게 집중하며 수비와 기본기로 이기는 농구에 치중하기를 20년 가까이 바꾸지 않을 정도의 보수적인 스타일로 매년 64강 토너먼트는 진출하지만 늘상 16강 정도에서만 놀며 NBA와는 플레이스타일이 달라 시라큐스 출신은 프로에서 안통한다는 시선까지 있을 정도로 카멜로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대학교였다. 그가 다른 농구 명문 대학교를 거절하고 시라큐스를 택한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뉴욕에 가까웠기 때문.[3]

그러나 이는 완벽한 오산이었다. 시라큐스에 입학한 카멜로는 감독에게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아 자신만의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전술적으로 그린 라이트를 부여받았고, 이 재능을 앞세운 엄청난 공격력으로 슈퍼 신입생 돌풍을 일으키며 NCAA 대학농구판을 싹쓸었다. 1학년때 평균 22.2점 10.0리바운드 를 기록했고, 시라큐스 대학을 NCAA 농구결승으로 이끌었고 결국은 우승까지 시켰다. 파이널4 MOP(MVP와 같다.)는 당연히 그의 몫이었다. 그로써 1년만에 뉴욕에서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리며 자신의 가치를 입증한 멜로는 2003년 NBA 드래프트를 신청했다.

2 플레이 스타일

뛰어난 득점력과 폭발력을 갖춘 공격형 포워드로, 특히 아이솔레이션에 능하다. 점프력은 평범한 편이지만 퀵니스가 좋고 몸빵이 출중해서[4] 이를 이용한 포스트업과 몸싸움, 돌파는 리그 최고 수준. 또한 슈팅폼이 간결하고 모션이 빠르기 때문에 수비에 아주 잠깐의 빈틈이 있어도 바로 점프슛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페이스업 상태에서 자잘한 페이크나 잽스텝 한두번만에 쿨하게 점프슛 올라가는 모습은 그의 경기에서 매우 자주 볼 수 있는 무브. 슛레인지도 길다. 힘이 장사다보니 골밑 몸싸움에서 잘 밀리지 않고 리바운드가 탁월하다. SF 중에서는 가장 리바운드 갯수가 많은 선수 중 하나이며, PF도 소화 가능하다. 실제로 PF로 출장한 적도 많다. 다만 돌파력과 중거리슛 정확도에 비해서 골밑슛 마무리가 좀 떨어지는 편이라 가끔 자기 혼자 곹밑슛 실패 → 리바운드 → 풋백을 반복하는 경우가 자주 나온다.

그런 이유로 야투율 기복이 좀 있는 편이다. 득점이야 거의 항상 일관성 있게 고득점을 올리는데 위처럼 골밑 마무리가 이상하게 안되는 날이나 감이 안좋은 날은 난사를 해서 채운다(...) 또한 위에서 서술했듯이 수비를 앞에 두고도 슛을 쏘거나 뜬금없이 3점슛을 던지는 등 슛선택이 좋은 편은 아니라서 종종 야투율 난조를 볼 수 있다. 감정을 잘 드러내는 편이고 기분이나 모티베이션에 따라 집중력이나 컨디션에 영향을 많이 받는 선수이기 때문에[5] 국내에서는 일명 '감성 슈터'라고 부르기도 한다. 공격에 비해 수비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2013년 이후 수비에 대한 비판은 대부분 없어졌고, 수비는 평균에서 평균 살짝 이상으로 볼 수 있다. 패싱 능력도 그냥저냥 나쁘지는 않은 편인데, 뉴욕 이적 후 한때 그를 르브론 제임스처럼 포인트 포워드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플레이 메이킹을 맡길 정도까지는 아님이 입증되었고 다시 전형적인 스윙맨/코너맨 역할로 복귀한 적이 있다. 일단 포인트 포워드를 하기에는 시야가 상당히 좁아서 아군이 오픈인 상황에서도 르브론 제임스와는 다르게 패스를 못 뿌려주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하지만,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가 데뷔하고 애런 아프랄로, 로빈 로페즈 등이 영입된 2015-16시즌에는 나름대로 패스에도 맛을 들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여담으로 다른 NBA 선수들이 1대1로 막기 가장 어려운 선수를 뽑으라면 항상 1~2위로 거론된다. 폴 피어스는 르브론은 포스트업을 못하게하고 점프슛을 쏘게하면 그럭저럭 막으려 할수는 있고, 코비는 달라붇어서 몸빵으로 막아보려 들수 있지만 멜로는 점프슛은 코트 안에서 못 쏘는 곳이 없고, 몸빵과 힘도 엄청나서 포스트에서도 관광당하기 때문에 르브론이나 코비보다 막기 어렵다고 말한적이 있다.

코비 브라이언트도 개인적으로 멜로가 가장 막기 어려운 선수라고 한 바 있다.

수비도 마음만 먹고 하면 수준급으로 하지만, 마음을 안먹는게 문제. 점프력이 딸리니까 절묘한 타이밍으로 상대편 선수가 골밑슛 시도시 뛸때 공을 재빨리 블럭하는 모습은 자주 볼수 있다. 닉스 경기를 보다보면 정말 지금 얘보다 득점 잘하는 선수가 정말 있나 하는 플레이를 보여주고선 수비를 설렁설렁해서 득점한 포인트를 다시 내주는 모습이 자주 나와 팬들의 혈압을 들었다 놨다 한다.

3 NBA 커리어

3.1 덴버 너겟츠


콘로우 간지의 날써니 시절

NCAA를 접수하고 드래프트에 참가했지만 당시의 관심은 르브론 제임스에게 거의 집중되었다. 거기다 2픽인 디트로이트가 다르코 밀리시치라는 듣도보도 못한 백인 꺽다리를 지명하는 바람에 3순위로 덴버 너겟츠에 지명되었다. NCAA우승이라는 아주 멋진 이력까지 갖췄던 멜로로서는 좀 자존심이 상했을듯.

루키시즌에 준수한 활약을 펼치며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끌지만, 관심은 거의 르브론 제임스에게 쏠려있었다. 이 달의 동,서부 신인을 르브론과 함께 싹쓸이했지만[6] 신인왕 투표에서 르브론에게 밀려서 2위를 기록하기도 하는등..콩라인테크를 제대로 타고 있었다.[7] 2년차 시즌에는 뭔가 안풀렸는지 루키시즌보다 못한 활약을 펼쳤다. 돌파대신 점프슛만 쏴대는 바람에 플레이의 생산력도 떨어져 버린것. 하지만 시즌 중간에 영입된 감독 조지 칼의 지도로 다시 본연의 플레이 스타일을 다져갈수 있었다. 이때 역대 3번째로 어린나이에 통산2천득점을 돌파한 선수가 되었다. 2005년 홈에서 열린 올스타전에서 루키 챌린지의 소포모어 팀의 일원으로 참가하여 31득점 5리바운드 2어시스트 2스틸을 기록하기도 했다.

05-06시즌 즉 3년차시즌에는 원숙한 활약을 펼치게 되었다. 구단은 그에게 5년간 8천만달러의 연장계약을 제시했고, 멜로는 이에 응했다. 06-07시즌에는 6게임연속 30득점 이상을 기록해서 팀의 프렌차이즈 기록과 타이기록을 세웠다. 특히나 06-07시즌은 덴버가 초반에 엄청난 돌풍을 일으키고, 멜로도 득점 1위를 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2006년 12월 6일 뉴욕닉스와의 경기도중 난투극에 가담하는 바람에 15경기에 출장정지를 당했다. 이때 함께 공격을 주도했던 J.R 스미스도 출장정지를 당하는 바람에 덴버의 가드진은 붕괴되었고 팀은 부랴부랴 앨런 아이버슨을 트레이드로 영입한다. 팬들은 아이버슨과 멜로가 보여줄 콤비 플레이에 기대를 드러냈다. 둘은 뛰어난 공격력으로 상대를 무너트렸지만 주로 둘의 아이솔레이션에 의존한 공격으로 실제 시너지 효과는 크지 않았다.[8] 여전히 플레이오프에서 1라운드 탈락..07-08시즌에도 1라운드 탈락이었다. 2007년 올스타전에 선발되긴 했지만 팬투표나 감독추천이 아닌 부상선수 땜빵으로 나오는 굴욕도 당했다.

08-09시즌. 앨런 아이버슨이 디트로이트로 트레이드 되고 천시 빌럽스가 영입되고 난후 팀의 분위기는 급업되었고, 그해 팀은 돌풍을 일으키며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했지만, LA 레이커스에게 패해 탈락했다. 09-10시즌에도 뛰어난 활약을 했지만 감독인 조지 칼이 암수술을 받으면서 플레이오프에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지휘관이 없는 덴버는 다시 1라운드 탈락했다. 10-11시즌. 카멜로 앤서니와 덴버의 결별설이 계속해서 나돌았다. 카멜로는 2011년 계약이 만료되고, 또한 2011년에 자유계약선수가 되기 때문에 여러팀이 그를 노렸다.

3.2 뉴욕 닉스

그러다가 뉴욕 닉스가 트레이드를 제안했다. 뉴욕은 2010년 여름에 그렇게 르브론 제임스를 영입하려고 공을 들였지만 르브론 제임스는 마이애미로 이적했다. 그러자 뉴욕이 플랜B로 노린 것이 카멜로. 르브론과 맞불을 놓을 수 있는 리그에서 세 손가락에 꼽히는 스몰포워드이자 또한 뉴욕 브룩클린 출신이라는 메리트가 있었다. 거기다 위에서 말했듯 카멜로의 뉴욕에 대한 애정이 애정인지라... 더욱이 뉴저지 네츠 역시 멜로를 노리고 있었고 적극적인 트레이드를 덴버와 이야기했던지라. 결국 르브론을 데려오는 데 실패했던 뉴욕은 2011년 2월, 팀의 주요선수들을 거의 대부분을 내주며[9] 멜로를 데려온다. 멜로가 합류한 이후 뉴욕은 오랜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물론 1차천 상대는 보스턴 셀틱스였고 4전전패로 탈락했지만[10] 뉴욕으로서는 멜로를 영입한 것이 큰 수확이었으며, 멜로 역시 고향팀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할수 있게 되었다.

11-12시즌은 전체커리어를 통틀어서 부진한 시즌을 보냈다. 야투율은 자신의 경력중 제일 최악이며, 슛 시도로 많이 줄었다. 제레미 린이 포텐을 터트리기 전까지 뉴욕의 포인트가드들이 하나같이 시망이어서 카멜로가 볼 배급까지 해야하는 상황이었는데, 본래의 스타일과는 다른 플레이를 하다보니 적응이 되지않고 무엇보다 아마레 스타더마이어와 플레이 동선이 자주겹치다보니 이 둘의 시너지효과가 전혀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 마이크 댄토니 감독과의 불화도 표면에 드러나면서 결국 댄토니가 사임을 하게된다. 마이크 우드슨 감독 체제로 5연승을 달렸지만 본인은 여전히 부진했다.

그런데...아마레 스타더마이어제레미 린이 갑작스레 부상으로 시즌아웃이 되면서 다시 본격 괴물 모드를 선보이고 덴버 시절처럼 다시 소년 가장이 되기는 했지만... 어쨌든 연일 야투율이 50%에 근접하며 닉스가 다시 상승세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2012년 4월 8일 시카고 불스와의 홈경기에서 43점을 넣으며 승리로 이끌었다. 4쿼터 막판 괴물모드를 선보이며 마지막 동점 3점을 넣어 경기를 연장으로 이끌었고 연장에서는 극적인 역전 3점 위닝샷을 클린샷으로 성공시켰다. 닉스 팬들은 닉스가 남은 일정이 그리 좋지는 않지만 멜로의 활약상에 고무되어 플옵을 기대하고 있으며 이제야 진정한 멜로의 모습을 다시 보고 있다며 흐뭇해 하는 중.

차라리 8번 시드를 따서 시카고 불스와 플옵에서 경기하는 건 어떠냐는 소리가 많기는 했다만 결국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를 제치고 7번 시드를 따내며 플옵 1회전에 올라갔고 상대는 마이애미 히트.. 멜로는 1차전에서 야투를 15개 던져서 3개 넣는 최악의 모습으로 11점에 그쳤지만 2차전부터 30-22-41-35점을 넣었다. 하지만 닉스는 1-4로 패해서 탈락. 오랜만에 플옵에서 스윕을 안 당했다는 것에 의미를 둬야했다.

12-13 시즌에는 케빈 듀란트와 득점왕 경쟁을 했다. 시즌초에는 팀도 동부 1위를 달리며 MVP소리도 나왔지만.. 부상자들이 나오고 앤서니 본인도 부상으로 결장이 많아지며 퍼스트팀 수상도 힘든 상황이 되었다. 팀도 동부 1위에서는 밀려났지만, 4월부터 3경기 연속 40점 이상, 6경기 연속 35+ 득점을 기록하는 등 대단한 퍼포먼스로 팀의 시즌막판 13연승을 견인했다. 덕분에 닉스도 정말 오랜만에 50승을 달성했고, 동부 컨퍼런스 2번 시드로 플레이오프를 시작하게 되었다. 더불어, 3년 연속 득점왕이던 듀란트를 제치고 데뷔 10년만에 드디어 득점왕을 해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세미파이널에서 인디애나 페이서스와 만나고 탈락.

이어지는 뉴욕에서의 4번째 시즌, 팀원들 여럿의 부상 및 부진으로 하위권에 처진 닉스를 위해 애를 쓰고 있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에 놓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1월 24일 샬럿 밥캣츠와의 경기에서 무려 62점을 몰아넣으며 본인의 커리어 하이와 뉴욕 닉스 역대 1경기 최고득점, 매디슨 스퀘어 가든 역대 최고 득점을 갈아치우는 의미있는 기록을 남겼다.

현지시간으로 2월 21일부터 24일까지 열린 3경기에서 평균 40득점이 넘는 득점을 하고도 팀은 3연패를 당하며 동부 컨퍼런스 8위와의 승차가 6게임으로 벌어졌고 이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어진 상태다. 시즌이 거의 다 끝나고서야 팀원들이 정신을 차리며 애틀란타 호크스를 추격해봤지만 애틀란타가 4월 12일 마이애미 히트에게 승리해 8위를 확정지으면서 NBA 데뷔 이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탈락을 맛보고 말았다.

닉스의 미래가 어둡다보니 떠날 의향이 있어보였으며, 시카고/댈러스/휴스턴/레이커스 등 여러 구단이 관심을 보였다. 이곳저곳 간은 많이 봤지만 필 잭슨의 청사진을 믿은건지 마누라 때문인지[11] 뉴욕에 남는걸 선택했다. 계약금액은 5년 간 1억 2천4백만 달러(1274억원).

한편, 저런 어마어마한 금액으로 계약을 맺은 앤서니는 "나는 우승하고 싶다. 돈은 신경 쓰지 않는다."라고 발언해서 까였다.*

재계약 첫 시즌 뉴욕은 NBA 전체 꼴찌 다툼을 하는 상황이고, 멜로 본인도 무릎 수술을 받게 되면서 올스타전을 마지막으로 시즌아웃되면서 악몽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닉스 역사상 최악의 시즌 중 하나였던 14-15시즌을 겨우 넘기고 15-16시즌에는 대형 신인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의 활약으로 팀 전체가 조금씩 상승세를 타 경기 도중 웃음을 자주 짓던 멜로였지만...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뒷심이 떨어져 플레이오프 진출이 힘들어짐에 따라 경기 내내 어두운 표정을 보일 때가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인터뷰에서 본인의 드래프트 동기인 르브론, 웨이드, 보쉬가 몇번의 우승을 했는데도 본인은 그러지 못해서 회의감을 느낀다고 발언했다.본인이 우승할 수 있는 팀에 이적할 기회를 걷어 차고 현실에 안주해 대형 계약을 맺어놓고 징징 거리는걸로 밖에 안보이는게 함정

4 이것저것

  • 르브론 제임스에게 많이 가려져 있고, 지금은 케빈 듀란트에게까지 밀리는 듯 하지만, 그도 제임스나 듀란트만큼이나 뛰어난 기량을 갖춘 선수이다. 무엇보다 드래프트 때 그에 대한 평가는 공격 하나 만큼은 르브론보단 뛰어나다. 라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단순 아이솔레이션만 봤을때의 공격력은 르브론과 호각 혹은 그 이상이다. 지금은 3번 포지션이지만 대학시절에는 3번과 4번을 번갈아가며 뛰었다. 덴버에서도 스몰라인업을 돌릴 때 간혹 4번 포지션으로 뛰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2012 런던 올림픽때는 르브론과 동시에 나올때나 그렇지 않을때나 4번으로 뛰었다. 본인은 자기포지션을 3번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지만, 4번으로 뛸때도 자기보다 키가 큰 다른 팀의 전문 파워포워드들에게 주눅들지 않고 열성적인 플레이를 펼치면서 호평을 받았다. 12-13 시즌 뉴욕에서는 아예 전업 파워포워드로 뛰었다. 존 홀린저같은 미국의 세이버 농덕후들은 아예 멜로를 풀타임 4번으로 돌리라는 의견을 계속 내고 있다. 앞서 나온대로 멜로의 떡대가 NBA 4번 상대로도 밀리지 않는데다 스피드나 개인기,슛 레인지등에서 4번들 상대로는 압살 수준이기 때문에 4번으로 뛰면 수비 약점도 어느정도 센터의 도움으로 커버가 되고 공격력을 극대화 시킬수 있다고 평가한다.[12]
  • 뛰어난 기량을 갖추었고, 데뷔도 전국구 스타였던 상태로 프로에 데뷔했지만, 르브론 제임스와는 달리 초기의 평판이 안좋았다. 에어 조던항목에 나와있는 4쿼터 출전 거부사건등 프로페셔널리즘이 부족한 거 아니냐는 지적을 수차례 받아왔고, 총기 소지, 주변 건달 친구등 갱스터 캐릭터 아니냐는 우려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 때문에 팬들의 외면을 받아서 올스타전에 한동안 초청을 못받고 2007년에 겨우 부상선수 땜빵으로 선정되는 등 굴욕도 겪었다. 경기에 임하는 자세도 비판받았다. 턴오버 이후에 코트에 드러누운 채 일어나지 않아 경기를 중단시키기도 하고 경기에 지고 있는데도 싱글벙글 웃고 있다고 까여서 그 웃음이 조정린과 비슷하다고 해서 거의 반조롱으로 조정린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물론 지금의 저 조정린 호칭은 애정으로 바뀌었다.[13] 현재는 경기에 임하는 자세도 남달라졌다. 무엇보다 베이징 올림픽 참가가 그에게 터닝포인트였던 셈.
  • 얼굴이 상당히 잘생겨서 비주얼만 놓고 보면 라이벌리(?)를 형성하고 있는 르브론 제임스케빈 듀란트를 압도하고 있으며 덴버 시절에는 콘로우 헤어스타일과 날렵한 몸매의 간지 스타일로, 현재도 L.A.레이커스와 함께 팬 많기로 쌍벽을 이루는 뉴욕 닉스의 에이스 플레이어로서 국내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은 NBA 선수 중 하나.
  •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전에 2004년 아테네 올림픽때도 대표팀에 뽑혔지만 많이 뛰지는 못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도 참가하여 르브론 제임스와 함께 3회 연속 올림픽 참가 타이 기록(데이비드 로빈슨 : 1988, 1992, 1996)을 세웠고 미국의 금메달에 기여하였다. 특히 2012년 8월 2일 조별예선 나이지리아전에서는 단 14분만에 3점슛 10개를 포함 37점을 기록하여 미국 농구 올림픽 대표팀 1경기 최다득점자 기록(종전 기록 : 2004년 스테판 마버리의 31점)을 경신하였다. 참고로 그 경기에서 미국은 156:73의 대승을 거두어 올림픽 전반전 최다득점(78점), 올림픽 1경기 최다득점 (종전 기록 : 1988년 브라질이 이집트를 상대로 달성한 138점), 미국 국가대표팀의 3점슛 성공(29), 필드골 성공(59), 야투율(71%), 최다득점차(83점) 등의 기록을 경신하였다.
  • 팀 조던의 일원으로 그의 이름을 딴 시그네쳐 Melo 시리즈가 발매되고 있다. 현재 Jordan Melo M12까지 총 12개의 시리즈가 발매되었다.
  • 정치적인일에 굉장히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있다. 어제 오늘일이 아니라 늘 그래온 사람
  1. DraftExpress.com 2003년 드래프트 측정 결과 맨발 신장 6' 6.25" = 199cm, 착화 신장 6' 7.5" = 202cm
  2. 고3때는 99kg(220lb), 대학교와 신인시절에는 104kg(230lb), 이후로 천천히 불면서 108kg(240lb)로 늘었다가, 2014년 여름에 체중감량을 통해 104kg(230lb)로 낮춤. 허나 시즌 도중 무릎 부상으로 인해 다시 108kg으로 불음.
  3. 지도상으로는 뉴욕 시티와 정반대에 위치한 시라큐스이지만 뉴욕 시티내에 캠퍼스가 있는 학교(NYU 등등)들은 운동에 투자하지 않기 때문에 뉴욕 주 출신 스포츠 유망주들은 뉴욕 주 내에 진학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시라큐스가 농구로 제법 강하긴 하지만 전술한 이유+사립대의 높은 등록금때문에 NBA 특급 유망주들이 오기를 꺼려하는 곳이다.
  4. 체중이 늘어난 뉴욕 시절부터는 거의 PF급 이상의 파워를 보여주고 있다. 코비 브라이언트는 2013년 한 인터뷰에서 앤써니를 '힘이 황소같다'라고 한 적이 있다.
  5. 매치업 상대가 르브론 제임스케빈 듀란트 같은 선수일 경우 특히 열심히 뛰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6. 덴버 너겟츠는 서부 컨퍼런스,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는 동부 컨퍼런스.
  7. 신인왕을 멜로가 받았어야 했다는 의견도 많았다. 개인 성적은 비슷한데 멜로는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끌었지만 르브론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
  8. 아이버슨의 영입으로 멜로의 공격기회가 줄어들어 멜로의 득점이 떨어지게 되었고 결국 득점왕을 하지 못했다.
  9. 레이몬드 펠튼, 윌슨 챈들러, 다닐로 갈리날리, 티모페이 모즈코프, 2014년 1라운드 드래프트 지명권까지 내주었다. 여기에 추가로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에 앤써니 랜돌프와 에디 커리를 내주고 로드니 튜리야프를 데려온다.
  10. 아마레 스타더마이어와 천시 빌럽스가 부상으로 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멜로가 엄청난 대활약을 해서 비록 결과는 스윕이었지만, 내용면에서는 접전을 이끌었다.
  11. 아내가 배우이자, DJ 출신이다. 그래서 그런지 대도시 생활을 선호하는 모양
  12. 다만 이러면 닉스에서는 아마레가 센터로 뛰던가 아예 나오면 안된다(...). 때문에 상당한 딜레마.
  13. 불어난 살 때문이기도 한데, 데뷔 초에는 날렵한 체형이었는데 갈수록 살이 불어가더니 결국은 이런 별명을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