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발퇴펠

Waldteufel.jpg

Émile Waldteufel. (1837.12.9~1915.2.12)

프랑스의 경음악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요한 슈트라우스 2세를 비롯한 슈트라우스 가문이 유럽을 석권하던 시절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들 중 한 사람이었다.

▲ 왈츠 "스케이터"(Les Patineurs), Op.183. 결국 남극대모험의 BGM으로 잘 알려진 곡이다. 연주는 알프레드 발터 지휘의 슬로바키아 국립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 생애

프랑스인이기는 하지만 이름이 독일식인데, 알자스-로렌 지방의 독일계 유대인 후손이라 그렇다. (참고로 성씨인 'Waldteufel' 은 숲(Wald)과 악마(Teufel)의 합성 단어다. 숲의 요정도 아니고 '숲의 악마' 라...) 스트라스부르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인 루이와 형 레옹은 오스트리아에서 요한 슈트라우스 1세가 그랬던 것처럼 소규모의 무도음악 악단을 이끌던 바이올리니스트였다.

에밀도 아버지와 형을 따라 자연스럽게 음악을 배웠고, 형이 바이올린 전공으로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게 되자 가족들과 파리로 이주했다. 에밀도 같이 음악원에 입학했는데, 아버지나 형과 달리 바이올린이 아니라 피아노를 전공했다. 그 때문에 바이올린을 켜며 지휘하는 동시대 무도음악가들과 달리 일반적인 지휘봉만을 사용해 지휘하는 이례적인 인물이 되었다.

졸업 후 외제니 황후의 황실 전속 피아니스트로 기용되는 행운을 얻었는데, 당시 프랑스는 나폴레옹 3세황제로 집권하던 제2제정 시기였다. 이 때부터 사교계의 명사들과 접촉하면서 왈츠를 비롯한 춤곡들의 연주에도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1867년 파리 만국 박람회 때 프랑스를 방문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공연을 접하고 큰 인상을 받았고, 그 길로 아버지와 형의 뒤를 이은 무도음악 작곡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1871년에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의 패배로 제정이 무너지면서 발퇴펠은 실업자 신세가 되었고, 아버지와 형의 악단에 잠깐 빌붙어 생활해야 했다. 물론 춤곡 작곡과 발표는 계속 했지만, 파리 사교계에서 그의 명성은 듣보잡 신세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오히려 발퇴펠이 무도음악 작곡가로 인정받은 것은 1874년에 영국 왕족들 앞에서 공연했을 때였는데, 훗날 에드워드 7세가 되는 왕자가 '마놀로 왈츠' 를 듣고 매우 좋은 평가를 내렸다. 이 소식은 곧바로 영국 순회 공연과 영국 음악출판사의 출판 제의 등으로 이어졌고, 심지어 빅토리아 여왕 앞에서 공연을 하는 등 제대로 땡잡게 되었다.

1880년대에는 영국 뿐 아니라 독일과 본국인 프랑스 등지에도 이름이 알려질 정도의 유명 인사가 되었고, 해당 국가들에서 정기적으로 순회 공연을 개최했다. 1899년에 은퇴할 때까지 약 230여 편의 춤곡들을 작곡했고, 그 중 대부분이 왈츠였다. 이후 작품의 인세 수입 등으로 파리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에 세상을 떴다.

2 주요 작품들

2.1 왈츠

나의 꿈 (Mon rêve op.151)
시레느 (Les Sirènes op.154)
아주 귀엽게 (Très Jolie op.159)
다이아몬드의 비 (Pluie de Diamants op.160)[1]
돌로레스 (Dolorès op.170)
그대를 사랑합니다 (Je t'aime op.177)
스케이터 왈츠 (Les Patineurs op.183)
학생 악단 (Estudiantina op.191)[2]
에스파냐 (España op.236)

3 창작 상의 특징

발퇴펠의 춤곡들, 특히 왈츠는 슈트라우스 형제 등 오스트리아의 양식을 그대로 따온 빈 왈츠 형식의 곡들이었다. 하지만 선율에 있어서는 샹송의 강한 영향을 받아들여 확실한 차별화를 이뤘고, 관현악 편성에서도 트럼펫 대신 코넷을 사용하는 등의 차이점을 보인다.[3]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곡들 중에는 다른 작곡가의 작품을 편곡하거나 선율을 차용해 짜깁기한 것들도 많은데, 에마뉘엘 샤브리에의 관현악 광시곡 '에스파냐' 를 왈츠화한 동명 작품이나 폴 라콤의 중창곡과 스페인 민속 선율을 배합한 '학생 악단' 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 곡은 오스트리아 계통 왈츠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스페인색으로 어필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너무 왈츠로 뜬 감이 없지 않아, 폴카 등 다른 장르에서는 이렇다할 유명 작품들을 찾기가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말년에는 드뷔시 등 인상주의 계열 작곡가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갑작스레 구티난다는 인식을 받는 안습 신세가 되기도 했다.

4 사후의 평가

프랑스 음악사에 큰 획을 그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19세기의 '좋았던 시절(Belle Époque)' 을 대표하는 무도음악 작곡가로서의 명성은 여전하다. 이것은 프랑스 특유의 약간 자뻑스러운 성향과도 연결되곤 하는데, 그런 탓인지 왈츠 원조를 자처하는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이벤트인 빈 신년음악회에서는 고의성 짙은 듣보잡화로 흠좀무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4] 하지만 2000년대 이후 꼬장꼬장했던 선곡 전통이 차츰 유화적이 되어 가면서 2016년 무대에서 처음으로 왈츠 '에스파냐'가 연주되었다.

그리고 유대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때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면서 작품들이 죄다 금지곡으로 지정된 흑역사도 있다. (참고로 오페레타 작곡가로 유명했던 자크 오펜바흐 역시 유대인이었고, 마찬가지로 금지크리를 먹었다.) 점령 시기의 굴욕을 지금도 기억하는 프랑스인들이라, 발퇴펠을 띄워주는 것을 단순한 우월감이나 열폭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도 이 때문.

한국에서는 본의 아니게 고전게임 매니아들 사이에도 이름이 알려진 경우가 종종 있는데, 펭귄남극을 뽈뽈거리며 뛰어다니는 결국 남극대모험의 배경음으로 나오는 곡이 바로 '스케이터 왈츠' 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당 곡은 제목 때문에 피겨 스케이팅 대회에서도 종종 선곡되고 있어서, 피겨 경기를 본 사람이라면 아마 한두 번은 들어봤을 경험이 있을 것 같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와 요제프 슈트라우스의 춤곡 전집 CD를 내놓아 충공깽을 선사했던 낙소스 산하 서브레이블 마르코 폴로에서도, 전집은 아니지만 11장의 춤곡 선집 CD들을 발매해 특유의 레어템 파기 근성을 발휘한 바 있다.

  1. 독어권과 영어권 국가에서는 '황금의 비(Goldregen/Golden Rain)' 라는 제목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2. 동양권에서는 '여학생 왈츠' 라고 알려져 있지만, 스페인어 제목을 잘못 읽은 오역이다.
  3. 둘 다 모양이 비슷한 금관악기지만, 코넷이 좀 더 관이 짧고 부드러운 소리를 낸다. 프랑스 관현악단들은 섬세한 소리를 위해 트럼펫보다 코넷을 더 선호했다고 한다.
  4. 빈 신년음악회에서는 원칙적으로 19세기 중후반의 빈 혹은 오스트리아 출신 작곡가들의 춤곡만을 고르고 있다. 그런 탓인지, 발퇴펠 작품은 지금까지 한 번도 선곡되지 않고 있다. 후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