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홍

이 문서는 대한민국의 전 · 현직 정치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정치적 · 이념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포함할 수 있어 문서를 열람할 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한 문서의 악의적 서술 · 편집은 민사 · 형사 상 소송이 발생할 여지가 있습니다.


呂運弘
1891년 9월 1일 ~ 1973년 2월 3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몽양 여운형의 친동생이다. 호는 근농(勤農)이다.

1891년 경기도 양근군(현 양평군)에서 태어났다. 한성부 경신학교, 미국 우스터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1919년 3.1 운동 이후 프랑스 파리 강화 회의에 참석하였다. 같은 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 1920년 상하이 인성학교 교장 등을 지내고 귀국했다. 귀국 후 보성전문학교 영문학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1년 태평양 전쟁 이후 시국강연 참석과 친일 논문 저술 등을 하며 변절하였다.

1945년 8월 형 여운형이 준비한 조선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하였다. 8.15 광복 뒤에는 여운형, 김규식 등과 함께 좌우 합작 운동, 남북협상에 참여하였다. 한편 조선인민당, 근로인민당에 참여했으나 1946년 박헌영의 노선에 반발하여 조선인민당을 탈당하여 사회민주당 당수 등을 지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기도 양평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2년경 자유당에 입당하여 선전부장을 역임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기도 참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3년 자유민주당에 있다가 자유민주당을 탈당하여 민주공화당에 입당하였다. 이후 민주공화당에서 선거대책위원장, 상임고문 등을 지냈다.

일제강점기 말기의 친일 행적 때문에 한국독립당 당원 김승학이 작성한 친일파 명단, 교육 부문에 수록되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