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

1 靈芝

영지버섯.

2 英智

사전적인 의미는 '뛰어난 지혜'를 의미하고(네이버 국어사전), 현대 한국어에서는 일상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 단어이다. 일본어에서는 이 단어를 보통 英(えいち)로 표현하는데, 현대 일본어에서도 이 단어는 일상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걸로 보이는데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면 아시는 분은 추가바람.

슈에이샤의 한자 표기인 集[1]의 英이 위의 英知의 줄인 말로, 풀이하자면 뛰어난 지혜를 모으는 회사 정도가 되겠다. 또한, 심쿵! 프리큐어에서 히시카와 릿카큐어 다이아몬드로 변신할 때, "英知の光! キュアダイヤモンド!(지혜의 빛! 큐어 다이아몬드!)"라고 하는데, 현대 한국어에서는 일상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기에 한국의 프리큐어 팬들은 이 英知를 지혜로 번역한다.

3 領地

왕이 제후에게 내린 땅. 제후는 그 영지를 다시 기사들에게 나누어 주고, 충성을 약속받았다.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고등학생들이 주인이 될 경우 비논리적인 속도로 발전하게 되는 듯 하다

유럽 중세사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봉건제도의 핵심이다. 즉 핵심 중의 핵심.

제도 자체는 고대 게르만족의 전통과 고대 로마제국의 은대지제도가 짬뽕되면서 발생하게 되었다.
고대 게르만족은 자신을 돌봐주는 상급자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노동력을 제공하였는데, 이에 상급자는 이들에게 먹고 사는데 필요한 음식과 옷과 여자를 제공했다. 로마제국의 은대지 제도는 말 그대로 제국의 관리에게 상급자가 일정량의 먹고 살 땅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이게 중세시대에 들어서면서 상급자는 하급자에게 땅을 제공하고 필요한 충성 서약을 받게 되어 봉건제도가 완성되었다.

영지는 일반적으로 영주의 성, 자유민 구역, 농노 거주 구역, 농노가 경작하는 땅, 영주의 땅, 숲 등으로 구성되어있다.

판타지소설을 보면 영주가 죽으면 자연스럽게 그의 아들에게 나이와 상관 없이 세습되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11세기 이전의 중세 유럽에서는 일반적으로 장자상습제가 아닌 형제상습제 통용되었고, 영주가 죽으면 영주의 형제가 영지를 이어받았다. 그러다가 보다 본격적으로 봉건 형태가 갖추어지면서 장자가 상습하는 제도로 바뀌게 되었다. 하지만 장자는 살리카 법전에 예시된 성인이 되지 못하면 영지 상속권을 받지 못한다. 장자가 너무 어려서 상속이 불가능할 때는 상급자가 영지를 몰수해가서 다른 놈에게 주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 같은 것을 방지하기 위해 죽은 영주의 아내가 상속자인 장자가 자랄 때까지 영지를 관리하곤 했다.
중세에 여성의 역할은 생각 외로 컸다. 즉 후견인으로서 아내인데, 이때 아내는 죽은 영주의 성을 완전하게 세습받아 영주 가문의 완전한 일원이 되어야 한다. 즉 완전하게 친가와 연을 끊고 성을 가는 거다.

이런 후견인인 아내가 상속자가 자라기 전에 누군가와 결혼하면 그 누군가는 해당 영지의 영주가 되었다.
물론 이 경우에도 친가와 완전히 연을 끊고 성을 갈아야 한다. 다시 말해 데릴사위. 주로 젊은 기사들이 이런 수혜를 받았다. 이 경우 상속자는 망했어요 신세. 다만 그 외에도 영주의 아내 외에도 그 상급자가 따로 영주의 친척이나 또는 봉신들 또한 후견인으로 자처한 것을 인정했으며, 중세사회가 사실상 거의 가부장적이였기에 사실상 죽은 영주의 친척들이 아이의 후견인을 자처했다. 물론 그 친척들도 금새 태도가 돌변해 영지를 빼앗으려고 하는 전례가 많다.

여담이지만, 상속자들 즉 장자들은 자신의 아버지가 죽기 전에는 결혼도 못했다(고중세에 한해서).
이는 1영지 1영주 정책으로 영지 내 상속 분란을 막기 위해서였는데, 덕분에 일반적으로 고중세의 영주들은 40세 이후에야 결혼할 수 있었다. 결혼은 일반적로 15~17세의 귀족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때문에 영주들이 죽어도, 영주의 부인들은 보통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의 나이였다.
욕정도 강하고, 외로움도 강할 시기라서 이를 노리는 젊은 기사들도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뻔하게 상속예정자가 있는데도 중간에 기사들이 영주가 되는 위의 경우가 발생할 수 있었던 거다. 그러나 실제로 젊은 기사들이 영주가 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다. 젊은 기사들이 이런 수혜를 받으려면 죽은 영주의 아내의 신분과 같거나 그보다 더 높은 집안 출신이어야 했다. 만약 가문의 신분이 낮은 젊은 기사가 죽은 영주의 아내와 결혼한다면 귀천상혼으로 취급되어서 왕의 허가를 받기 전에는 영지의 영주가 될 자격이 없었다. 다만 이것은 귀천상혼이 엄격한 나라들의 이야기이고, 귀천상혼 개념이 희박한 경우는 이러한 일들이 꽤 빈번히 일어났다.

또한 영주 밑에 속해있는 기존의 또 다른 영주나 가신이 있는 경우에도 젊은 기사들이 영주가 되기가 어려웠다.
여태까지 그 영주 집안을 모시던 사람들에게 어느날 갑자기 웬 듣보잡이 결혼 한 방으로 자신의 상관이라고 거들먹거리면 기분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반란이 터지는 경우도 꽤 있었다.

3.1 중국[2]

3.2 유럽

3.3 기타 관련 문서

4 令支

춘추시대에 산융이 세운 국가로 서주 말기부터 세력이 강성하여 고죽을 영향에 두고 (燕)을 공격하여 압박하였지만 연과 (齊)의 연합으로 멸망하였다.

5 대한민국아이돌 걸그룹 카라의 멤버 허영지

허영지 문서 참고.

6 대한민국의 여성 보컬 그룹 버블시스터즈의 전 멤버

출생1981년
본명김영지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버블시스터즈의 멤버로 활동하였다.

2013년 무한도전에서 박명수의 어떤가요[3]하하가 부른 'Sexy Boy'에 피처링을 하였다.

2016년 복면가왕나왔다고 전해라 백세인생으로 출연했다. 1라운드 듀엣 때 조PD인순이의 '친구여'를 불렀다. 무대 내내 한복을 입고 있었는데, 이 1라운드 듀엣에서 파트너였던 아임 파인 땡큐가 오로지 랩만 했기에 보컬 부분은 전부 영지가 맡았다. 보컬만 한 게 아니라 랩도 같이 했는데 복장이 한복이라 은근히 위화감이 든다(...) 3라운드까지 올라갔으나 램프의 요정에게 패배. 여담으로 3라운드 직전 가왕결정전 후보가 된 소감을 말하는데, 원래 우리 동네 음악대장을 보려고 방청 신청을 했는데 안되서 직접 출연했다고 한다(...)

현재는 교수로 재직 중이다.
  1. 우리가 집영사라고 알고 있는 그것이 맞다.
  2. 주나라에서 비롯된 오등작은 유럽과 달리 작위의 종류가 적었으며, 주나라 당시 최고 권력자가 이었던 관계로 공작이 가장 높았다. 이후 황제라는 개념이 생긴 이후에야 작위로서의 왕이 탄생했다.
  3. EDM 프로젝트.